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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살아있는 교회(골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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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교회
골로새서 1:3-5

우리는 바울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떤이는 바울을 선교사로 표현을 하기도 하고, 어떤이는 위대한 학자로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바울의 신앙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바울 서신을 읽어보면 항상 어김없이 제일 처음에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신앙을 표현을 해보라고 한다면 ‘감사신앙’으로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쓴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3절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우리 한국 사람이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몇 개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등등의 표현은 우리 한국사람이 표현을 참 못합니다. 여러분! 지난 일주동동안 지내면서 이런 표현을 얼마나 했습니까?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특별히 바울은 감사하다는 표현을 참 잘합니다. 바울 서신의 어디를 살펴보아도 감사하다는 표현을 쉽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도 서신의 처음부분에 감사표현을 해 놓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쉽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감사표현을 쉽게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감사를 표현할 줄 알고 감사의 신앙을 가졌던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때에 감사를 합니까? 보통의 사람은 자신과 관계된 것을 가지고 감사를 합니다. 부자가 되거나, 자녀가 대학에 합격을 했다거나, 회사에서 승진을 했다거나 할때에 감사를 합니다. 남의 일을 가지고는 별로 감사를 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른 사람의 일로도 얼마든지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울을 통해서 배워야 할 부분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골로새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지만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설립한 교회가 아닙니다. 골로새 교회는 7절에 나와 있는대로 에바브라라고하는 사람이 세운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향해서 감사의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도 자신이 세운 교회가 잘되는 것을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세웠던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인근 지역에 소문이 나기를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시기도 생기고 질투도 생기기도 할텐데도 바울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감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만큼 골로새 교회가 칭찬을 받을만 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골로새 교회를 창찬하고 감사하게 했습니까?

1. 골로새 교회는 믿음이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보통 믿음이라고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생각합니다. 단회적이고 구원받는 믿음의 성격만을 의미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칭찬하고 있는 골로새 교회의 믿음은 이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4절상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바울은 믿음이 예수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안에 우리의 믿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 말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안에 모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안에 계신 예수님과 계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의 이러한 믿음을 보고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지금 현재 예수님과 끊임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상당히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활이 어렵고 삶이 힘들어서 생기는 답답함의 문제가 아닙니다. 답답함은 교회에 열심히 나와도 삶의 변화나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전혀 경험하지 못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렵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답답해도 예배중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한다면,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경험한다면 삶의 괴로운 것들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삶에 문제가 없어도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예배도 많이 드리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럴때 참 답답하고 문제가 됩니다. 예배를 왜 드려야 되는지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기도 합니다. 왜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지 아세요?

첫 번째는 죄 때문입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세상의 유혹에 빠져서 죄를 짓고 말씀을 한번도 읽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혹시 이런분이 계시다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됩니다.
두 번째는 매너리즘에 빠져서 그렇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습관화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저 예배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시간에 맞추어서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주보에 순서가 나와 있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되는 것 뿐입니다.
여러분! 예배 순서가 왜 있는지 아세요? 예배순서는 순서대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을것이라는 가정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계속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순서만 따라하면 예배를 다 드린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 찬양을 할때 대충 하겠습니까? 기도할 때 형식적으로 하겠습니까? 말씀을 들을때 남의 이야기로 듣겠습니까? 그런 간절함과 사모함이 있으면 찬양할때도 마음을 다해서 찬양할 것입니다. 기도할때도 간절한 마음으로 할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때도 집중해서 듣고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예배를 종교적인 경배차원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학생이 학교에 출석하는 것으로 학생의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출석하는 것으로 학생의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 학생이 공부를 제대로 하겠습니까?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무언가를 깨닫고 알아가는 기쁨을 경험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에 출석하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돼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고,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배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깊은 교제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이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때 사람들이 왜 응답하지 않을까하고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십니다.
여러분! 기도응답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는 그 자체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 자체를 즐기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응답은 부수적인 문제입니다. 본질은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본질에 충실하면 열매를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과의 교제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2. 골로새 교회는 사랑이 있는 교회입니다.
4절하 “....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칭찬하는 이유가 골로새 교회가 사랑이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골로새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아주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도 기초가 있습니다. 삼풍 백화점이나 성수대교가 무너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이유도 기초를 제대로 닦지 않고 부실공사를 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초가 잘 닦여 있어야 사랑이 더욱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기초가 잘 닦여 있어야 지속적인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의 기초가 무엇인가요? 바로 믿음입니다. 사랑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왜 믿음, 사랑, 소망을 말하면서 제일 앞에 믿음을 두는지 아세요. 믿음이 사랑과 소망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도 믿음이 제일 먼저 나왔지요. 고전 13장에도 믿음, 소망, 사랑을 말하면서 믿음을 제일 먼저 두었지 않습니까? 믿음이 사랑과 소망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교제를 하면 사랑은 저절로 배어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요일4:16)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본질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우리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질이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칭찬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냥 인간적인 정에 끌려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섬기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정에 끌린 사랑은 또 오래가지를 못해요.
남녀가 결혼할 때 사랑이 펄펄 끓지 않습니까? 평생 식지 않을 것처럼 뜨겁지 않습니까? 그런데 결혼할 때 그렇게 뜨거웠던 사랑이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못살겠다고 이혼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이혼하는 사람들이 결혼할 때 이혼을 전제로 결혼하나요? 결혼할 때 자기들이 이혼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또 이혼을 하지 않아도 오래 살다보면 정으로 산다고 하지 않아요?
이 모든 것이 다 뭐에요? 인간적인 사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사랑의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도 믿음에 기초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때 그 사랑이 오래 지속되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가 믿음을 기초로 해서 교회내에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해서 자기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질, 사랑이 밖으로 저절로 드러나니까 인간적인 사랑의 한계를 극복하더라 그것입니다.

<예화> 손양원 목사님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 삼아서 추후에 목회자로 만든 이야기
1948년 10월19일 제주 폭동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서 여수에 집결해 있던 14연대 소속 군인들 중 남로당 계열의 군인 일부가 반란을 일으켰다.이 반란은 불과 4시간만에 여수 시내의 경찰서와 각 파출소,군청,역 등 주요 기관을 장악하게 되었고 삽시간에 순천까지 점령을하고 말았다.

여순 사건 당시 손목사의 장남 손동인군은 순천사범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그는 기독학생회 회장을 하면서 좌익들의 활동을 저지하고 복음전파를 통해서 학원의 평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기독학생 활동을 통한 좌익과의 대립등이 원인이 되어 여순사건때 좌익 학생들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던중 복음을 전파하다가 동인 동신 형제가 1948년10월21일 순교했다.

손목사는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중 1948년 10월25일 동인,동신의 순교 소식을 듣게 되었고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다.그 기도의 내용은 동신 동신을 죽인원수를 살려 달라는 것이었다.동인 동신은 죽어서 천국갔는데,동인 동신을 죽인원수는 지금 죽으면 지옥갈것이 분명함으로 그 원수를 살려내어 예수를 믿어 구원 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손목사는 기도한데로 하나님의 은혜로 두 아들을죽인원수를 살려내 양아들로 삼아 동인 동신 대신해서 그들의 못다한 일을 다하라고 이름을 손인신이라 지어주었다.

손목사는 두아들의 순교와 그 두아들을죽인원수를 살려내 양아들로 삼게 된 것을 분에 넘치는 복이라고 했다.그는 두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답사를 통해서 그 분에 넘치는 감사를 9가지로 고백했다.

1)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게 하시니 감사.
2)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서 이런 보배를 나에게 주셨으니 감사.
3)3남3녀중에서 가장 귀중한 장남과 차남을 바치게 하였으니 감사.
4)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함께 순교 했으니 감사.
5)예수 믿고 와석 종신해도 복이라 했는데 전도하다 총살 순교했으니 감사.
6)미국가려고 준비하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감사.
7)내 아들을죽인원수를 회개시며 아들을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8)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서 무수한 천국의 열매가 생길 것을 믿으면서 감사.
9)역경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수 있는 믿음을 주신하나님께 감사

손목사는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말로만 표현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주일에 감사 헌금을 일만원이나 드렸다.당시에 목사님이 생활비로 80원정도를 받고 있었을때다.하므로 두 아들의 순교를 참으로 큰 복,과분한 큰복이라고 고백한 것이 감사헌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그리고 다음과 같이 마무리를 했다.

“나에게 분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이 일들이 옛날 내 아버지,어머니가 새벽마다 부르짖던 수십년간의 눈물로 이루어진 기도의 결정이요,나의 사랑하는 나환자 형제 자매들이 23년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준 그 성의의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3. 골로새 교회는 소망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5절상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칭찬하는 세 번째 이유가 교인들이 소망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소망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을때 삶의 의욕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자살에 대한 예화>
서울 월계동에서 임대아파트에 사는 40대 초반의 남자가 분신 자살을 한 사건이 있었다. 밀린 아파트 임대료 360만원을 내지 않으면 강제명도이전을 한다고 해서 자살함.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합니까? 일시적인 감정에 휩싸여서 자살을 하나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소망이 없기 때문에 자살을 합니다. 미래에 좀더 나을 것이라는 소망이 있어야 삶의 의욕을 가질 것이 아닙니까?
황우석 교수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조작이라고 발표되었을때 가장 낙심하고 실망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세요. 우리들도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때로는 믿어지지 않아서 방송사에서 실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보다 더 많이 실망하고 낙심한 사람들이 있어요. 난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척추장애라든가, .... 등등의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하고 좌절했는지 몰라요. 왜 그래요? 왜 좌절합니까? 그들의 희망이 껶였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예수믿는 사람들은 소망을 어디에 둡니까? 하늘에 두는 것입니다. 하늘에 차곡차곡 우리의 소망을 쌓아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벌어지는 환경 때문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황우석 교수가 거짓말을 했다고 우리가 좌절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은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 쌓아두었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믿는 사람은 자살을 하면 안돼요. 아니 자살을 못합니다. 왜 그래요? 자살을 하면 스스로 하나님에게 있는 소망을 버리는 것과 같아요.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죽은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자살하는 것처럼 큰 죄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믿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비록 남보다 못한 것 같지만, 남에게 지는 것 같지만, 우리의 소망이 살아계신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젠가는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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