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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때가 가까움이라 (계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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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가끔은 미래에 대해서 생각 하지만 그것도 역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데 어떤 보탬을 될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로마클럽이다 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팀들이 나오지만 포커스는 오늘 우리가 먹고 사는데 어떤 것을 미리 내어다 볼 것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대해서 말합니다마는 여기서가 아니라 저기서 다가올 미래를 준비시키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그리고 듣는 사람들과 이 책의 예언을 지키는 자들을 향해서 축복을 선언합니다.

사람들은 요한 계시록에 대해서 관심을 갖습니다. 호기심이 사실 많습니다. 그래서 책들이 엄청 많이 쏟아져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읽을만한 책들은 거의 없는 것이 또 현실입니다. 이단들 치고 계시록가지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지 않은 데가 없을 만큼 단골 메뉴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계시록을 통해서 공부하고 은혜 받고 살아야 할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계시록은 어려운 책이야’ 이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보편적인 모습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전을 잃은 교회는 침체합니다. 환상을 상실한 교회는 무기력합니다. 계시를 망각한 교회는 방자해집니다. 그 특징중의 하나가 교회의 주인이 누군지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만나서 회의를 하다 보면 우리가 마치 주인이고 우리가 마치 힘겨루기를 해야 될 대상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뜻을 수종드는 종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직분 훈련을 받는 30명 가까운 분들이 모여서 직분은 받았는데 어떤 각오로 우리가 일 할 것인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부분의 분들이 자기가 어떻게, 참 부담스럽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살펴보면 답이 안나온다는 것입니다. 왜 내가 이런 자리에 부름을 받았는지. 그러나 하나님이 뜻하신바가 있어서 사역자로 쓰기 위해서 세움을 받은 것입니다. 사역의 자리에서 섬기는 일인데, 섬기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주께서 부르시면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교인들을 통해서 내가 이 자리에 세움 받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잘못하면 군림하는 모습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한분은 그런 고백을 하더라고요. 자기는 젊었을 때부터 한 20년 우리교회 생활을 하면서 나는 앞으로 직분 맡으면 정말 섬기는 사람이 되겠다. 그게 자기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섬기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출된 권력은 기간이 있잖아요? 대한민국처럼 대통령은 5년, 미국은 4년 중임 하던지 우리는 옛날에는 투표를 통해서 선출이 되면  신임을 물을 수 있도록 되어있었는데 지금은 누군가가 없애 버렸어요. 그렇게 되면 한번 선출되면 70대까지 갑니다. 저도 이제 10년쯤 있었고 저부터 시작해서 앞장서서 섬기는 사람들이 아직도 옛날 그 때처럼 교회의 신임을 받는지 한번 묻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은 50주년을 앞두고 한번 검토 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섬기는 자세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부터 다릅니다.

교황은 자기를 공식적으로 일컬어서 하나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그렇게 부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종들이기는 하지만 직분자로 선출을 받으면 하나님의 종들의 종의 자리에 가는건데 현실적으로 그걸 잊어버릴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현실을 망각하면 교회가 방자해집니다. 누가 주인인지를 잊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우리들 끼리 파워게임을 한다고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세상의 주인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권력의 최후 향배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요한계시록 말씀을 통해서 밧모 섬에서 요한이 받은 계시를 우리의 것으로 삼게 되면 우리 앞에 다가오는 날들이 더 이상 무의미한 날들이 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할 사건들이 더 이상 우리를 침체시키지 아니할 것입니다. 주님이 영광 가운데 오시기 전에 일어날, 반드시 속히 일어나게 될 일들의 일부로서 파악하게 될 때 여러분과 저의 가슴은 뛰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활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세에는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정말 곤혹스러운 때를 당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인생길에, 저주 아래 있는 삶의 자리가 더 비참해지고 고통이 극심해지는 때가 오리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이 터질 것입니다. 감당하지 못할 사건들이 발생할 것입니다.

쓰나미나 지진이라고 하는 재해, 그 뿐만 아니라 자연재해가 미국을 덮치고 너희가 왜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포용 못하느냐고 비난하는 나라에는 무정부상태로 방화를 하고 이런 일들은 다만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멀리 미국에서 다행히 프랑스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주 노동자에 대해서 우리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울산이 다음 타켓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은 빨간 띠 두른 사람이나 방화하는 사람이 다 대한민국 사람이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입니다. 곤혹스런 사건들이 터져 나올 때에 세상이 도대체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 계시록이 우리에게 답을 줄 것입니다.

그런 때가 닥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상과 함께 절망하지 마십시오. 오실 주님의 징조로서 그것들을 확인하십시오. 그러면 닥치는 재난 가운데서도 우리의 마음은 새로운 힘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계시록이 씌어지던 시대는‘믿는다’는 것은 고생한다 그 말하고 같았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순교한다는 말과 같이 통하던 시대에 이 계시록이 씌여 졌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환란의 때에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조금 더, 조금 더 참으면 주님이 오신다. 주님이 오시면 세상이 새로워질 것이다. 이것을 성도들에게 확인해 주기 위해서 이 책을 썼습니다.

당시의 글들은 요즈음과 같은 책에 씌어진 것이 아니고 두루마리에 씌어졌습니다. 책 표지가 따로 있고 서문이 따로 있던 시절이 아닙니다. 오늘 읽은 본문 3절은 책 표지이자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책 표지와 서문에서 어떤 것을 기대합니까? 책 표지에는 그 책의 제목과 쓴 사람의 이름, 혹 출판사가 기록됩니다.

그러나 두루마리에 글을 쓸 때는 저자와 출판사가 따로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누구나 책은 자기 손으로 썼으니까 저자가 바로 출판사인 셈입니다. 본문의 첫 문장은 그런 의미에서 책이름에 해당합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취한 책을 요한계시록이라고 부릅니다. 요한 자신이 붙인 책 이름이 아니라 교회가 붙인 이름입니다. 당시에 살기가 어려우니까 미래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계시록이라는 것들이 많이 나돌았습니다. 짝퉁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다른 것들로부터 구분하기 위해서 “요한계시록”이라고 불렀어요. 그러나 요한 자신은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요한 자신은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책의 서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1절은 이 계시의 유래를 말합니다. 2절은 이 계시의 성격을 말합니다. 3절은 이 계시에 관련된 축복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우선 책 제목부터 다시 생각해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 계시가 무슨 뜻입니까? 전에 가려지고 비밀이었던 것이 완전히 공개되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감추인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는 것입니다. 비밀이었던 것을 공개하는 것이 계시입니다.

누가복음 12장 2절에서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감추인 것이 드러나는 것이 계시입니다. 숨은 것이 알려지는 것이 계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적이 없고 사람들이 알아낼 수도 없는 진리를 하나님께서 공개하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진리를 찾아내는 두 가지 방법은 하나는 연구고 하나는 게시입니다. 연구라는 것은 우리가 조사해서 알아보는 것입니다. 리서치 한다고 하죠? 그렇게 해서 알아볼 수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 편에서 조사하고 살피고 따져도 답이 안나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 편에서 계시해주셔야, 보여주셔야만 우리가 알 수 있는, 성경의 진리는 우리가 찾아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해도 옳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성경 제일 마지막책을 일컬어서 우리는 계시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모든 전모가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밝혀오든 것이 이제는 활짝 꽃을 피우는것, 그 기록이 요한계시록에는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이 요한 계시록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호기심을 만족시켜줄 만큼 제대로 된 설명을 듣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룩된 구원의 궁극적인 성취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우리에게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온 우주 역사 속에 어떻게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인가를 기록했기 때문에 계시록이라고 부릅니다. 

구원의 궁극적 성취를 위하여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책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오늘 이후에 세상에서 일어날 사건들을 여러분이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요한계시록을 읽어야 합니다. 어떤 컬럼이 아니라, 어떤 사설이 아니라, 어떤 미래학자들의 진단이 아니라, 계시록이야 말로 인류 역사의 내일을 규명해 줍니다. 어떤 세계적인 사건도 계시록의 예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계시의 주체와 대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했을 때 그 “의”라고 하는 말이 무슨 뜻을 함축하고 있을까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계시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계시라는 뜻입니다(an subjective genitive).  대개의 주석학자들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GNB(Good News Bible)는 그런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풀어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것에 대한 책입니다.”

다음은 예수 그리스도에‘대한’계시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계시라는 의미입니다(an objective genitive). 속히 될 일을 통해서 영광스런 주님의 모습이 더욱 계시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계획을 교회에 공개하실뿐만 아니라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그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전달 될 때에 천사를 통해서 중계되고 있습니다. 사실은 천사라고 하면 오늘 여기 앉아계신 어른들  보다는 아이들이 더 실감 있게 느낄지 모르겠네요. 주로 동화책에 등장하니까. 계시록을 보시면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면서 등장하는 주요 역할이 천사입니다. 천사는 우리가 예배할 때에 돕는 하나님의 사역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향연과 같이 그릇에 담겨서 하나님께 올라가는 일을 천사가 언제나 계시의 주체인 동시에 계시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후자는 요한이 받은 계시의 대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요, 그 내용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입니다. 사건들이 요한에게 공개될수록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이 더욱 분명히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의 주인이시요, 계시의 중보자라는 의미입니다. 계시의 대상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주사 다시 그리스도께서 그 종들에게 보여 주시는 마지막 사건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의 문맥상 이 입장이 더 어울립니다.

책 제목만 살피고 오늘 설교를 끝낼 수 없습니다. 이제 서문을 읽어 봅시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여기 하나님의 계시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뚜렷한 세 가지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그 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궁극적인 저자는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은 이 계시를 받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계시는 항상 하나님에게서부터 발원하는 샘물과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계시의 궁극적 근원이요 원천입니다. 하나님은 이 계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십니다.

두 번째 단계로서 아들 예수님이 등장합니다. 모든 계시의 원천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뜻을 알리십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의 중보자로 택하십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장차 되어질 일들을 알리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세계 역사를 위한 계획도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맡겨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계획을 교회에 공개하실 뿐만 아니라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중보자로서 그 계시하신 바를 역사 속에 실현시키는 일을 하십니다. 그는 높은 곳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동시에 보좌 우편에서 그 하나님의 뜻을 역사 속에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하시고 그 계시하신 바를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역사 속에 실현시키십니다.

중보자 예수께서는 또한 그의 천사를 통해서 요한에게 계시를 전달하십니다. 요한은 천사의 인도로 하늘의 환상을 보고 땅의 사건들을 보게 됩니다. 천사의 인도로 광야에 이끌림을 받게 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본 사실들은 신령한 것들입니다. 이 신령한 비밀을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바꾸어 요한에게 전달하는 일에 천사들이 사용됩니다.

계시록은 천사의 의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하는 데에, 그리고 땅 위에 하나님의 심판을 시행하는 데에 천사들이 그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단계로 요한이 등장합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아 그는 사도 요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냥 요한이라고 자신을 밝혀도 그 편지를 받는 성도들이 알아보리라고 확신한 것을 보면 사도요한이 틀림없습니다.

요한은 자기가 본 것을 다 증거하고 있습니다. 천사를 통해 주신 계시를 요한은 글로 써서 우리에게 증거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소개하는 동시에 계시록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하나님의 종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리더라 그러면 알아주지만 종이라고 그러면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지도자, 백성의 지도자라고 하면 우리는 거기 스포트라이트를 비춥니다. 종들, 종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분이 한분 계십니다. 우리 주님이십니다. 나머지는 다 종들입니다. 종들 가운데서도 투표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은 종들의 종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

이제 2절로 가서 이 계시의 성격을 살펴봅시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느니라.”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성부 하나님과 관련을 짓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성자와 관련해서 말합니다. 끝으로 자기가 본 것이라고 하여 자신과 관련을 짓고 있습니다.

자신이 본 계시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칭함으로써 요한은 이 책에 기록된 것은 인간의 예측이나 상상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그 말씀입니다. 역사를 이끌어 가시고 완성시켜 가시는 능력 있는 말씀입니다. UN에 모여 백날 도모한 것들을 하루에 폐하십니다. 민족들의 모든 사상을 하나님께서 무효케 하십니다. 여러분이 오늘의 역사 속에서 읽고 있는 진리입니다. 인류의 생각 속에 암세포처럼 퍼지던 공산주의 사상을 하나님께서 폐하셨고 무효로 하셨습니다. 세상은 공산주의를 폐기처분해서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가 명한 뜻을 이루십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이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모두 이루어가십니다. 그 구속의 절정 - 구원의 극치에 도달하게 하실 것입니다.

승리하시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무기는 그 입의 검 - 그의 말씀임을 기억하십시오. 승리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으로 헛된 말들을 폐하실 것입니다. 그 입술의 말씀을 통해 모든 사상을 헛되게 하시며 모든 말들을 공허케 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온 누리에 성취될 것입니다. 우주에 관한, 미래에 관한 모든 인간의 예측을 뒤엎고 요한을 통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만이 한 날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요한은 이 계시의 성격을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증거라는 말은 단순한 증언이 아니라 목숨을 바쳐서도 베팅할 수 있는, 지지할 수 있는 그런 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들이 믿는 진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말씀하시고 그 진리에 자기의 피로써 인 치신 분입니다.

세일즈맨이 상품을 팔기 위해 늘어놓는 말과는 다릅니다. 그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자기의 생애를 걸고 그 한마디 한마디에 생명을 바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였노라 . . .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시거늘 . . . ”

거듭 예수께서는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을 자신이 입증한 계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속히 이루실 하나님의 계시

마지막으로 요한은 동일한 계시를 자신이 환상 중에 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에게 보이시려고.

‘속히’ 될 일이라는 말은 곧 일어날 일이다 하는 의미도 1차적으로는 있습니다마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반드시 일어날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 책에 기록된 사건들을 신속히 이루실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된 사건들을 신속히 이루실 것입니다. 왜 신속히 이루는 동시에 반드시 이룬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합니까?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시간 속에서 듣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속히 될 일이라고 하셨는데 벌써 2천년이 다 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그것이 이루어질까 하고 의심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최후 재림이 속히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 속에 살았습니다. 주님과 관계가 제대로 되면 이 기록된 말씀이 내가 본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살아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나면 이 말씀이 공허한 약속처럼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들은 반드시 속히 될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가슴 졸입니다. 그의 재림으로 성취될 구원의 완성을 내어다봅니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신실한 성도의 태도이어야 합니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막 13:33).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하루살이가 자기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24시간이 참으로 긴 시간입니다. 그의 라이프타임 전부를 가리키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자를 가지고 재면 하나님의 역사는 엄청 길어 보입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자로서 인간사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오신다는 약속을 여러분의 경험 속에서 듣지 마십시오. “내가 이 말을 들은 지 10년 지났고 교회가 이 말을 들은 지 2천 년이 지났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릅니다.

성도들을 향한 축복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으로 예언의 말씀을 받는 성도들을 향한 축복을 살펴봅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세 그룹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마는 사실은 읽는 자가 있고 듣고 지키는 자들이 앉아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를 주목해 보십시오. 초대교회는 당시 유대회당의 전통을 따라 예배를 드렸습니다. 안식일 오전 예배시간에는 성경봉독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날 예배에서 설교가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당시 예배에서 성경봉독은 중요한 순서였습니다. 율법서를 읽고 예언서를 읽고 나아가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글들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기가 쓴 편지가 교회 예배 시에 읽혀질 것을 기대했습니다.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골로새교회를 향한 사도의 권면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해서도 동일한 권면을 합니다.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계시록은 단순히 미래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해서 쓴 편지가 아니고 예배에 참여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돕기 위해 기록한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읽는 일에 축복을 선언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잘 보시면 읽는 자는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듣는 자들은 복수입니다. 지키는 자들도 복수로 되어있습니다. 이정도 교회에 초대교회 같으면 글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참 복 받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다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젊었을 때 못 배우면 경로대학에 가서도 한글 읽는 것을 배웁니다. 초대 교회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글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드물었고 더 드문 것은 성경책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책이 아니고 두루마리였으니까 울산에 있는 450교회 가운데서 울산교회 수준정도 되면 어쩌면 두루마리 하나쯤 가지고 읽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예배에 교인들이 모이면 설교하는 사람이 앞에 선 것처럼 그 때는 두루마리를 펼치고 성경을 읽는 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나머지 성도들은 다 그것을 듣는 자들이었습니다. 읽을 줄도 알고 테이프나 MP3가지고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올해 아직도 한번 다 읽지도 않고 듣지도 않은 사람은 조금 분발해야 될 때인 것 같습니다. 한 달 남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이 읽을 수 없는 경우라도 듣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많은 환상과 상징이 어렵다고 불평하는 대신 그가 속히 오신다는 사실만 듣고도 기뻐했습니다. 요새는 공부 많이 해서 자기가 다 읽을 줄 알잖아요? 듣고 또 판단도 다 해서 “오늘 설고는 어렵네” 이러고 우리는 가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주님 오신다는 그 한마디만 들어도 가면서 찬송 부를 수 있는 영성이 있었습니다.

황제 숭배의 요구 앞에 황제 앞에 고개 숙이지 않으면 삶의 근거가 박탈당하는 위협 아래 살아가던 그들에게 “내가 속히 오리라”는 주님의 약속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도 그 때 목회를 했더라면 훨씬 더 쉬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신실히 그 말씀대로 사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제 때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시간이 임박하기에 그 계시를 읽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 말씀대로 사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제는 때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말씀은 예언의 말씀입니다. 속히 되어질 미래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성취될 일들을 미리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모든 것을 박탈당하는 위협 아래 살아가는 그들에게서는 이 말씀을 듣는것만 가지고도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온 세상이 근심하고 전전긍긍하는 그날에 여러분은 어디서 위로를 받으시렵니까? 그날의 교회를 위해서 미리 말씀하신 이 예언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묵상하십시오.

동일한 사건 앞에 세상은 할 말을 잃지마는 성도들은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일도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모든 재난들이 다 예언된 사건의 성취입니다. 그날 영광 중에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일어나야 할 일들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하는데 그건 마치 새 하늘과 새 땅이 새로운 세상이 태어나기 전에,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가 해산의 고통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새 세상이 태어나기 전에는 온 만물이 고통 하는 때가 이를 것입니다. 쓰나미도 닥치고 지진도 흔들어 대고요 열방에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 시대를 겪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지막을 향한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징조로서 볼 수 있어야 세상이 참담해 하는 순간에 우리는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구속 능력이 역사할 때 동시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도 편만할 것입니다. 악의 세력이 기승을 부려 요한을 밧모 섬에 보낸 것처럼 더욱 날뛰게 될 때 고개 들어 주를 맞이하십시오. 머지않아 주님이 오십니다. “때가 가까움이라.”

귀담아 들으십시오. “내가 속히 오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로 화답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라나타! 주님이 오십니다. (정근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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