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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지키신다. (시 1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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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크신 사랑과 은혜를 함께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중년이 지나면서 부인이 갑자기 발병을 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큰 수술을 받는데, 병원 당국에 서약서를 제출하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수술 받다가 어떤 일이 있어도 감수한다는 서약서입니다. 남편은 보호자란에 서명날인을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내가 병드는 것도 몰랐고, 병든 지금 내가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데 내가 무슨 놈의 보호자는 보호자냐?”

여러분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넘쳐도 완전한 보호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도 스스로 지킬 수 없고, 서로 서로 지켜주지도 못합니다. 설령 재물이나 권력, 부모, 형제, 친구 등은 일시적이고 단편적으로 우리를 보호해 줄지 모르지만, 완전한 보호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환경이 많이 좋아졌지만 사건과 사고, 질병, 이런 온갖 위험한 일들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불허라서 사람들은 늘 불안과 긴장 속에 살아가야 하는데 과연 누가 우리를 지켜주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지켜주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121편은 바로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하고 온전한 보호자가 되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시편은 표제에 있는 것처럼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갈 때 부르던 노래입니다. 그들은 명절 때가 되면 지방에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갑니다. 그 순례 길은 쉽지 않습니다. 몇 날 몇 일을 가야 하는 광야 길입니다. 평소에는 집에서, 도시생활에서, 밭에서 그냥 일을 하던 사람이 여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대자연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럼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집에만 있다가 산이나 들에 간다고 하면 무슨 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저는 이 노래가 입에서 맴돕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워 볼 때....”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창조물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순례자인 이들도 광야의 먼 길을 걸어오다가 마지막 유대 광야를 통과하는 순간 멀리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지으셨지 않았나!” 그러면서 “누가 나를 도울 수 있냐?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이다”는 고백을 합니다.

1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 순례자, 이 신앙인의 눈은 지금 대자연과 아름다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순간 “주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는 줄로 믿습니다.”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성경 맨 앞을 보면 처음으로 창세기가 나옵니다. 1장 1절을 보게 되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울러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나를 지키실까요?

첫째로, 하나님은 권능으로 지켜주십니다.

3절과 4절을 보게 되면....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실족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37편 24절을 보게 되면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라” 여호와께서 손으로 우리를 붙드시니까 우리가 넘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고난이 있지만 고난 속에서도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으로 우리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4절 보면, 하나님은 밤에도 낮에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8절을 보면,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신다’고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캪틴’(국민일보)은 비행사 신일덕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1990년 11월 16일 가을 아주 맑은 날씨에 승객 165명을 태우고 서울에서 사이판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분 좋게 조종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하는데 착륙바퀴가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동으로 열었는데 수동장치 마저도 안 돌아갑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했지만 안 되서 결국 승객들에게 기체 바퀴에 이상이 생겨서 동체 착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고개를 좌석 밑까지 최대한 숙이라고 했습니다. 기내는 금방 웅성거리고 신혼부부들이 부둥켜안고 서로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신일덕 집사님은 조종관을 부기장에게 맡기고 기관장과 함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울부짖는 절규의 기도를 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 했는지... 땀이 비오듯 온 몸을 적시는데... 하나님께서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주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 앞에 신 집사님이 ‘할렐루야 아멘’을 큰 소리로 연발하자 부기장은 집사님이 정신이 이상해진 줄 알고 “기장님 정신차리십시요.”하며 깨웠지만 집사님은 이 순간 뜨거운 성령의 불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성령에 취했습니다”.라고 소리 지르고 난 다음에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수동 장치를 돌려보게. 이번에도 안 되면 동체착륙을 하겠다고 관제탑에게 알리게.” 그래서 이 수동장치를 돌리는 순간, 조금 전까지 그렇게 돌려도 움직이지 않던 그 장치가 한 손으로 술술 돌아가는데... 마치 기름을 친 것처럼 하나 둘씩 바퀴가 내려오더랍니다.
신집사님은 조정실에서 일어나서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역사하십니다.” 아수라장이었던 비행기 안은 평정이 되고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했고 승객들 역시 무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은 오늘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주십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러실 겁니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항상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지켜 주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아차 하는 순간에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고가 많이 일어납니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를 지켜주셔서 실족하지 않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시48:14에는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 하시리로다” ‘죽을 때에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잠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죽은 후에도’ 지켜주시는데...
계21:4 보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하나님은 우리가 죽은 후에도 천국에서 영원히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2002년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 100만명을 대상으로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누구인가?’ 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런데 셰스피어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으로 1위를 차지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었습니다.

사실 처칠의 학창시절은 “품행이 나쁘고 믿을 수 없는 아이, 희망이 전혀 없으며 다른 아이들과 싸움질만 일삼는 문제아….”로 성적도 좋지 않아 3수 끝에 가까스로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렇지만 처칠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주먹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치를 하더라도 전쟁을 하더라도 항상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칠은 전쟁터에서나 국회에서 늘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1940년 2차대전 당시, 영국군 33만 5천명이 프랑스의 조그만 어촌 덩커거에서 독일군에게 포위되었습니다. 땅에는 전차와 기갑부대, 공중에는 독일의 전투기, 바다에는 잠수함 유투보트가 버티고 있습니다.
영국의 33만 5천명 대군이 그곳에서 몰살되든지 포로로 잡힐 운명에 놓이게 될 뿐 아니라 전 유럽도 독일에 의해 점령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영국 수상 처칠은 온 교회와 온 교역자와 성도, 심지어 믿지 않는 백성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영국의 처칠수상 자신도 웨스트민스터 성당 성가대 좌석에 가서 앉아 하루 종일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믿는 사람들은 금식하면서까지 주님께 외쳤습니다.

그러자 크고 비밀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강풍이 불더니 하늘에서 소낙비가 쏟아져서 모든 독일 전차들이 진흙탕에 바퀴가 빠져서 한 대도 구를 수가 없었고 비행기도 뜨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잠수함들이 ‘우리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하고 철수를 했습니다. 그 사이 영국은 전 상선과 개인보트까지 다 동원해서 33만 5천명을 다 철수시켰는데 놀라운 것은 영국군이 다 철수하자마자 폭풍이 끝나고 날이 맑아졌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나와 홍해를 건널 때 무사히 건너니까 바닷물이 합쳐져서 애굽의 군대가 다 죽어 버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영국은 본토로 후퇴해서 다시 군대를 재정비하여 몽고메리 원수가 그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로 진격해서, 이집트에서 유럽대륙을 향해서 진격해 독일을 물리치고 승리했던 것입니다.

잠언 16장 1절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했습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워도 응답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우리 인생의 발걸음은 하나님이 움직이신다는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는 사람의 힘과 능으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배후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늘의 천사를 거느리고 와서 싸우면 못 이길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손이 멸망에 처한 영국을 구출하고 전 유럽을 구출한 것이었습니다. 운명의 결정은 하나님께 있기에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미스바 광장에 모여서 기도를 했더니 블레셋 군대를 무찔러 주시잖아요. 출애굽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기도를 하니 하나님이 아말렉 군대를 무찔러 주시잖아요. 병중의 있던 히스기야왕 기도했더니 병도 고쳐주시고 생명도 연장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내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손에 있을 때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권세로 지켜주십니다.

5절-6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이 ‘네 우편’에 ‘그늘’이 되신다고 했는데... 오른편, ‘우편’은 ‘하나님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늘’은 ‘아래’를 의미합니다.
‘우편’에 ‘그늘’이 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권세아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해가 비취는 것도 하나님의 권세아래구요, 밤에 달에 비취는 것도 하나님의 권세 때문입니다. 그 해도 오랫동안 몸을 쬐이면 상하게 됩니다. 사람 몸이 상할 수밖에 없잖아요. 밤의 달은 추위를 갖고 온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추위가 사람 몸을 해한다는 겁니다. 이건 상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 안에 있기 때문에 그 해가 너를 상치 못하게 하고 그 달이 해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권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권능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옛날 얘기입니다.
조선 태종이 모든 정사를 세종대왕에게 넘기고 풍양궁에 살고 있을 때 일입니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뜰을 거니는데 두 아전이 하늘과 사람의 이치를 논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갑이라는 사람이 “부귀와 영달은 모두 임금에게 나오니까 임금에게 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을은 갑의 의견을 반박을 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다. 한 계급이 오르거나 벼슬을 하게 되는 것은 모두 하늘이 정하신 것이다. 비록 임금이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태종이 이 말을 듣고 “고약한 놈! 모든 계급이 높아지고 벼슬이 높아지고 행복하게 된 것은 임금이 결정하는 것이지 어떻게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서찰을 적었습니다.
세종대왕에게 “이 서찰을 들고 가는 사람에게 한 계급 특진을 시켜라!” 그래서 모든 축복은 임금에게서 온다고 말하던 신하를 불러 왕에게 전달하게 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신하는 그 편지를 가지고 세종대왕에게 전하기 위해 길을 떠났는데 갑자기 복통이 생겨서 도저히 편지를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축복은 하늘로부터 온다고 말하던 친구에게 대신 전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사람은 편지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종대왕에게 편지를 전하자 세종대왕은 그 편지를 보고 편지를 가져온 신하를 특진시켜 주었습니다. 그 이튿날 태종대왕이 보니까 자기가 계급을 올려줄 사람은 안 올라가고 안올려줄 사람이 계급이 올라갔습니다.
깜짝 놀란 태종대왕이 자초지경을 들은 후 그제서야 “임금도 하늘의 뜻을 거스릴 수 없구나!”라며 경탄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부와 귀가 모두 하나님께로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계획한다할지라도 걸음을 옮기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옛말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할 일을 다 하고도 명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어서고 넘어짐이 하나님 손에 있지 사람의 손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요셉의 생애가 그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째 아들인 요셉은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일할 때에 요셉의 배후에서는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요셉이 모든 일에 형통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보고 탐을 내지만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요구를 거절함으로 정치인 수용소인 시위대 뜰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운명은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도 하나님이 역사해서 최악을 최선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바로의 술 장관, 떡 장관을 만났는데 그들의 꿈을 요셉이 해석해 준대로 술 장관은 꿈대로 사흘 만에 복직되고, 떡 장관은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복직되는 술 장관에게 “당신 나가거든 억울한 누명을 쓰고 들어온 나를 바로에게 이야기해서 좀 건져 주십시오.”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은 믿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술 장관은 요셉의 간청을 2년 동안이나 잊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억울한 일은 해결이 안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술 장관은 요셉을 잊어 버려도 하나님은 절대 잊지 않으십니다. 2년이 지난 후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해석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술 장관이 요셉을 기억할 수 밖에 없었고 즉시 바로에게 추천을 하게 됩니다.

요셉이 왕의 꿈을 해석해 주니까 왕은 그의 총명함에 감탄을 하며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생애를 돌아볼 때 모든 일이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 같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언 16장 33절에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제비를 뽑아도 결과는 하나님이 정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간은 많은 것을 숨겨 놓아도 그것 때문에 죽임을 당합니다. 하만이 유대백성을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6절 보면,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 않도록 켜주신다고 했습니다.
광야 사막에는 여러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낮에는 열사의 햇볕이 비추고, 밤에는 차가운 달빛으로 춥게 됩니다. 더위와 추위...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입니까? 알 수 없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안 되면 다음기회라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배후에서 일하는 하나님에 의한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소망이 있잖아요. 기쁨이 있잖아요. 은혜가 있잖아요. 여러분 우리의 손은 기도의 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의 역사, 자손만대까지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멀리 하나님의 역사를 내다보고 살아갈 때에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영혼을 영원까지 지켜주십니다.

7절-8절까지 보면,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아-멘

영혼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영원한 세계입니다. 유한한 세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데 영혼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쉽게 말을 하면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
지금 대학입시의 결과가 나오고 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마음상해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것 때문에 기뻐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마음을 영원이 아니라 유한한 것에 두면 병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서 대학에 당락의 문제, 직장에 들어갔냐? 못 들어갔냐? 부자가 됐냐? 못됐냐? 이렇게 유한한 것에 마음을 두면 여러분의 마음에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육체의 병도 무섭지만 마음의 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시지요?

세계보건기구와 하버드대에서는 2020년 인류를 괴롭힐 3대 질병으로 마음의 병인 우울증을 꼽고 있습니다. 아주 급격하게 이 마음의 병, 우울증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5년, 한국자살예방협회는 한해평균 자살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은 14만 4,576명으로 하루 평균 396명이 자살을 하는데 그중에 80%가 마음의 병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병은 그리스도인도 예외는 아닙니다. 유명했던 배우 이은주 씨도 크리스찬이었습니다. 그의 자살도 마음의 병때문이라고 합니다. 스케줄과 영화출연 교섭과 인기도가 어느 정도냐에 신경을 많이 썼던 거에요. 그 마음에 병이 생긴 것입니다. ‘저 사람은 잘 나가는데 나는 뭔가’ 하고 말입니다.

중국 내지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도 마음에 병이 생겼습니다. 그도 믿음으로 헌신한다고 하니까 그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협력자와 선교비가 필요했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 도와주는 자금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헌금이 왜 안들어오나? 왜 일이 안되나? 왜 안도와 주는데...’ 그의 정신적 부담은 밤잠을 설치게 했고 마침내는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심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마음이 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에 많이 마음을 두니까 일이 잘되고 못 되고를 떠나서 마음에 병이 생기는 겁니다. 저 사람이 안 도와줘서 섭섭해 하고 돈이 없다고 해서 섭섭해 하고, 나만 고생하는 것 같고, 나만 피해보는 것 같고 나만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고.......

여러분 오늘 우리 신앙인들도 이 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모든 역사가 하나님 손에 있는데 마치 내가 다 해야 하고, 우리가 다 해야 하고, 자기가 다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까 예수를 믿어도 마음에 병이 있으니까 얼굴에 평안이 없습니다. 얼굴에 힘이 없습니다. 항상 근심하며 걱정하고 염려하고 교회에 와서도 인상만 쓰고 있습니다. 누가 그러고 있는가 찾지는 마세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잘하냐? 못하냐?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병이 생기고 그 병이 얼굴로 가니까 인상을 쓰게 되는 겁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기쁨이 없고, 평안이 없고, 즐거움이 없고, 근심만 있으니까 인상만 쓰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마음에 걸려서 슬픔에 빠지면 본인만 힘든 게 아닙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해야 하잖아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인상만 쓰고 있고 원망, 불평, 짜증만 내면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의 병이 다 치유받고 얼굴이 평안해 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허드슨 선교사가 마음에 병이 걸리니까 아무 일도 못하는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 요한복음 15장을 읽어 내려가다가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라고 하는 이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생각하기를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나는 그 가지인데 내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주님께서 수분과 양분을 공급해 주는 나무이므로 가지인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가지인 내가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려고 애쓰고 있다니 어리석었구나.”
이렇게 꿇어 엎드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어리석음을 시인하고 회개하며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 순간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의 마음에는 평안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주님! 이 시간부터는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기겠사오니 책임져 주시옵소서." 그 후로부터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성공적인 중국 선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지 않아서 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늘 마음을 하나님께로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 가능한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 들이고 하나님을 의지한 이상 우리 삶의 현장에서 다가오는 모든 문제를 전적으로 다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구절도 요한복음 15장인데 “내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요 주님이 나를 택하여 세웠나니...” 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택하셨기에 힘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일이 잘 안되면 요때도 힘주실 줄로 믿습니다. 일이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서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권능을 내 마음이 간다는 겁니다. 평안이 옵니다.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근 30년만에 동창회를 나갔습니다. 고등학교 동창회.. 토요일마다 모이니까 계속 못나갔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 목사라서 토요일에는 못나가니까 다른 날을 잡아라” 해서 목요일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 바빴지만 저 때문에 목요일에 날 잡았는데 제가 안 나가면 안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갔습니다. 동창들이 50명 적게 나왔습니다. 다를 저를 못 알아 보더라구요. 나를 왜 못 알아보냐? 이유가 있어요.
대뜸 저를 보더니.. 하나같이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옛날에 까맣지 않았느냐?” 제가 정말 고등학교 다닐 때는 요책보다 조금 하얗습니다. 그래서 나는요 지금까지도 까맣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세수를 해도 한 번 더 합니다. 까맣다고 생각을 하니까요. 정말 까맸습니다. 30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얼굴이 하해졌느냐?
제가 생각을 해보니까 예수를 믿는 집안인데도 불구하고 저희 집이 가난해서 어려울 때였습니다. 내 마음속에 ‘이건 가짜다. 내가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주일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켰는데... 이건 가짜다’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의 병이 엄청나게 깊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얼굴에 병이 다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폐병, 간병..
지금은 하나님께서 폐병도 지켜주시고 간병도 고쳐주시고... 한번은 머리가 깨져서 36시간동안 누워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천국 못간 것이 아깝지만 깨어났습니다. 지금은 아주 건강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니까 나를 몰라보게 하시잖아요. 여러분의 마음도 하나님께로 두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영혼의 시간입니다.

우리 찬송가 중에 이런 찬송이 있잖아요.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눈보다 더 정하네
저 고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려 날 때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없겠네

(후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이 곡의 작사자 이름은 스패포드입니다. 그는 시카고의 변호사요, 사업가요, 대학교수였습니다. 그의 자랑은 그를 구원하신 주님뿐이었습니다.

1873년 12월의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 스패포드는 영국에서 열리는 디엘 무디의 집회에 가족들과 함께 참석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시카고에서 일어난 대화재로 인해 그는 남아서 일을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아내와 그의 네 자녀들이 먼저 배에 올라탔습니다.
그러나 스패포드를 향해 활짝 웃는 얼굴로 배 위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배가 출발하여 대서양 한복판을 지날 무렵 짙은 안개 속에서 다른 배와 정면으로 충돌한 것입니다. 2시간 만에 배는 승객들의 생명을 안고 가라앉았습니다.

스패포드의 네 자녀를 포함한 대부분의 승객들이 생명을 잃었고, 스패포드 부인과 몇몇 사람들만 겨우 생명을 건졌습니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스패포드 부인은 남편에게 짤막한 전보를 쳤습니다. '홀로 생존'이란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스패포드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영국행 배를 탔습니다. 곧 그가 탄 배도 대서양 한복판에 이르렀습니다.
사고 현장을 바라보며 슬픔과 고통에 잠긴 그의 마음을 하나님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라는 말씀으로 위로하셨고, 그에게 놀라운 영감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찬송가 470장의 가사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영국에 도착하여 아내를 만난 스패포드는 아내의 마음에도 일하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얼마동안 떨어져 있을 뿐입니다. 그들 모두 하늘나라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네 자녀들의 죽음을 한꺼번에 당했지만 스패포드 부부의 마음에는 죽음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을 구원하신 주님에 대한 감사로 가득찼습니다.
후에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무디 일행이 찾아갔을 때 스패포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오히려 무디 일행의 마음을 감격스럽게 했습니다.
"내 영혼은 만족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끝내셨습니다.
사망과 심판과 고통과 슬픔도 십자가 위에서 끝이 났습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이 네 자녀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슬픔에서 평안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애창하고 있는 찬송가를 탄생시켰습니다.

마귀는 세상적인 판단을 가지고 극단적인 판단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고난 속에서 그렇게 만듭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의 대장되셔서 싸워서 이겨야겠다고 하셔서 그리고 내 지은 죄가 주홍 같아도 다 용서하셨다. 우리 아이들의 죄를 다용서하셨다.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다.” 하늘나라에 갈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세상적으로 물들어 있으면 병들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원한 저 천국까지 이어지는 그 세계에 우리의 마음을 놓으면 우리의 손은 기도의 손이 되고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게 되고 우리의 눈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되어 지금 아니면 다음번에라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니 이 땅에서 죽으면 하늘나라에 갈 줄로 믿습니다. 유한한 세계에 우리의 소망을 두지말고 영원한 세계에 우리의 마음을 두어서 이 세상에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을 믿으시고 이 한주간도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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