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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예배를 방해하는 마귀의 소리 (출 8: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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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를 소홀히 하는 사람 치고 신앙이 바로 성장하는 사람이 없고 예배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치고 복을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배를 철저히, 신령과 진정으로 드릴 때 온갖 영적인 복과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배를 너무 가볍게 취급하고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답지 못한 예배가 이 땅에 성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단의 계획입니다.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올바른 예배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단의 계획이며 작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예배를 단을 쌓고 짐승을 잡아 희생을 드렸습니다.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바쳤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우리를 위해 속죄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우리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믿음의 예배를 드립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 되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24절에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가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언제나 방해하고 유혹을 쉬지 않습니다. 사단이 어떻게 방해하는지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애굽의 바로 왕을 만났습니다.
  바로에게 요구한 것이 지금까지 드리지 못했던 예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출 8:27절에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보내어 광야로 삼일 길을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모세가 요구한 것은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광야로 나아가서 하나님께 희생 즉 예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이러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가서 드리겠다고 하는 예배를 네 가지 형태로 방해하고 있습니다.
  바로는 마귀의 상징입니다.
  마귀는 오늘날도 온전히 하나님께 상달되는 예배를 드리려는 성도들의 신앙을 방해합니다. 옛날 바로가 그랬던 것처럼 마귀의 수법은 오늘이나 예전이나 다를 바 없이 나타납니다.
 
  나일 강물이 피로 변하고, 갑자기 개구리 떼가 나타나서 왕의 침상까지 뛰어다니고, 땅의 모든 먼지가 이가 되어 사람과 육축의 피를 빨아먹고, 파리떼가 새까맣게 나타나서 사람들을 괴롭히자 그제서야 바로는 하나님께 굴복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모세에게 한 말을 보면 올바른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성도들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간계한 꾀가 숨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① 이 땅 예배 드려라.
  첫째는 이 땅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출 8:25절에 보면 바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이것은 너희가 믿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으면 광야까지 갈 것 없이 이 땅 즉 애굽 땅에서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땅 예배를 좋아합니다.
  이 땅 예배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별되지 않은 예배입니다. 드리는 둥 마는 둥 하는 예배입니다. 애굽은 세상의 상징이고 육신의 상징입니다. 신자가 거듭났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애굽에 속하여 사는 사람들은 애굽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3일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3일 길을 가라는 특별히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출 8:27절에 보면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사흘길 쯤 광야로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명하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 예배를 폐지하고 사흘 길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창 22:4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고 3일 길을 걸어가서 모리아 산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 삼 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민 10:33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군할 때 법괘와 이스라엘의 거리가 3일 길이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또한 요셉과 마리아가 소년 예수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시간도 3일 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예수를 다시 만난 것도 주와 헤어진지 3일 만이었습니다.
  이 땅 예배는 자기 편리주의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자기 위주의 예배를 삼가야합니다. 마귀는 성도들로 하여금 예배를 드리게 하되 하나님의 중심의 예배가 아닌 자기중심의 예배를 드리게 합니다.

  ② 너무 멀리 가지 말라
  둘째는 너무 멀리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8:28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참된 예배를 방해하는 두 번째의 말이 나옵니다. 그것은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로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희생을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는 마귀의 달콤한 음성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낼 줄 알아야 합니다.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마귀가 자기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말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성도가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성도는 마귀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하나님께로 가까워 져야합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생활 즉 예배생활을 하나님과 가까이 가지 말도록 적당히 하라는 것입니다. 주일 낮 예배는 드려도 좋지만 밤 예배는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일 헌금은 드려도 좋지만 십일조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러한 마귀의 소리를 듣고 분별력이 어두워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힘들어도 정식으로 3일길 가서 예배하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신앙의 원칙을 포기하지 말고 정식으로 신앙 생활해야 합니다.
 
  ③ 어른만 가서 예배드려라
  세 번째는 아이는 머물러 두고 어른만 가서 예배 드리라는 것입니다. 출10:9-11절에 보면 바로는 다시 제안합니다.
  모세가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우양을 데리고 가겠나이다.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 어린것들을 보내면 여호와를 너희와 함께 하게 함과 일반이니라 삼갈지어다. 너희 경영이 악하니라 그는 불가하니 너희 남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의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부모의 제일 우상은 아이들입니다. 마귀는 그것을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애들만 자기가 데리고 있으면 이스라엘이 3일길 예배를 드리고서도 자기애들 때문에 다시 애굽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마귀가 붙들고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무엇입니까?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면 그 아이 때문에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물질 때문에 참된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신앙 참된 예배는 포기하는 데부터 이루어집니다.
  욕심을 포기하지 못하니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른만 가서 예배드려라 라는 마귀의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아이도 예배드려야 합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이 자식을 귀히 여겨주실 것입니다. 물질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물질을 당신에게 주실 것입니다.
 
  ④ 양과 소는 머물러두고 가라
  자식을 남겨두고 어른만 가서 예배드리라는 유혹에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넘어갈 리가 없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양과 소는 놔두고 가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출 10:24절에 보면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과 소를 놔두고 가면 무엇으로 제물을 삼아 예배를 드리겠습니까?
  제물 없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제물 없는 예배는 헌신 없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배에는 자신의 헌신을 표현하는 헌물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에 있어서 헌신이 없는 것은 헛된 예배입니다. 참된 예배는 철저한 생활의 헌신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드리는 예배가 철저하게 헌신 되어진 예배가 되어야합니다.
  구약 시대의 예배는 제물의 피가 있는 예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지금 막 잡아서 뜨거운 피가 뚝뚝 떨어지는 희생이 있습니까?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빈손으로 가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마귀가 굴복하는 믿음이 됩시다.
  모세는 바로의 이러한 유혹에 섣불리 타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단호하게 바로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결국 하나님과 모세에게 굴복하고 맙니다.
  출애굽기 12:32절에 보면 바로가 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서 말합니다.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서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의 말대로 너희의 양도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목해야할 단어가 있습니다.
  너희의 말대로 ...라는 단어입니다. 두 번이나 강조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가 어떤 유혹과 협박을 해도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세력과 협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킵시다. 마귀가 굴복하여 “네 믿음대로 네 말대로 되라” 라고 선언하게 만듭시다.

  1950년 뜻하지 않은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 지둥하고 있었습니다. 은행도 업무를 중단하고 피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한 젊은이다 돈 뭉치를 들고 은행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지난번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을 날짜가 오늘이어서 갚으려고 왔는데요” 하면서 돈 뭉치를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이 사람아! 전쟁 통에 무슨 돈이야”
  놀라는 은행 직원을 보고 “아무리 전쟁 통이라고 하더라도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약속은 은행과의 약속 이전에 나 자신과의 약속이며 나아가 하나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는 우리나라 유리 산업의 선구자의 역할을 한 전 “한국 유리” 회장이셨던 최 태섭 장로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예배드려라” “너무 멀리 가지 말라” “아이는 두고 가라” “양과 소를 두고 가라” 라고 말하는 마귀의 소리에 넘어가지 말고 철저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분의 뜻만 생각하고 그분의 은혜만 바라보며 철저히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립시다. 그러면 마귀가 굴복하고 승리하게 되고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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