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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낙심하지 마십시오! (시 4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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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소망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더하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단이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낙심이라는 것입니다. 낙심은 그리스도인을 무섭게 파괴하는 무기일 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파괴시키는 사단의 무기입니다. 낙심은 마음의 바이러스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전염되면 그것은 가정으로 이웃으로 퍼져 신앙 공동체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말 큰 사전에 보면 낙심(落-떠어질 락 心-마음심)이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이 풀어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낙망은 솨하흐인데 이 뜻은 “풀이 죽게 하다. 구부리다. 누이다”라는 말입니다. 병균에 감염되면 사람이 몸이 풀이 죽고 누어 꼼짝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낙심에 마음이 감염되면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무기력해집니다.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사람도 만나기 싫습니다. 일하기도 싫습니다. 교회에 나오기도 싫습니다. 후회의 아픔에 사로잡힙니다.

1. 사람이 왜 낙심합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 때문에 낙심합니다. 어떤 결과가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리지 못해서 낙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사랑하는 것을 잃었을 때 낙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당할 때 낙심합니다. 꿈이 좌절된 것처럼 느껴지는 현실 앞에서 낙심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 결과가 드러나지 않을 때 낙심하게 됩니다. 기도 응답이 더디 올 때 낙심합니다. 낙심하는 경우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근거해 보면 3가지 정도의 이유를 들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자신의 마음대로 일이 안될 때 낙심합니다.(2)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낙망하고 있습니다(5,6,11). 5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이 시인이 낙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배를 드리고 싶은데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습니다. 왜 갈 수 없겠습니까?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멀리 도망 나와 있으니 어떻게 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멀리 포로로 잡혀 먼 나라에 가 있으니 어떻게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나갈 수 있겠습니까?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고!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으니 이런 상황이 오면 사람들은 낙심할 수밖에 없고 실망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성적을 얻기를 원하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분들이 열심히 일하는데 그 결과가 좋지 않은 것입니다. 뜨겁게 사랑하는데 이룰 수 없습니다. 남편을 전도하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는데 날이 갈수록 강퍅해지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더 안 좋은 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는데 가면 갈수록 더 안 좋은 일만 생깁니다. 이럴 때 사람은 낙심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일이 안된 이유를 모를 때 낙심합니다(2,9)

2절 말씀입니다만 시인은 어느 때에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지를 안다면 낙심하지 아니하겠는데 도무지 언제 올라가게 될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아니 못 올라가면 못 올라가는 이유라도 안다면 덜 낙심이 되겠는데 그 이유를 모릅니다. 이런 때에 낙심이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알면 낙심하지 않습니다. 공장을 가동하는데 생산력이 저하된 이유를 알면 그것을 고쳐 다시 생산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 되는 이유를 모를 때에 더욱 실망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열심히 했는데 남들에게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을 때 낙심합니다.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너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더니 결과는 무엇이냐, 결국 아들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아니냐?”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이 시를 쓴 사람이 고라의 후손이라면 “성전에서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더니 겨우 그 결과가 포로냐?”라는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이 살아 있으면 이런 결과가 나왔겠냐는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때에 사람들은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러면 낙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첫째로 자신을 보지 말고 사람들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한계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몇 군데 읽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그렇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과 같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낙심을 극복하는 비결입니다.

2절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즉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주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한다고 했을까요? 그것은 이 산에서는 예루살렘이 내려다보이기 때문입니다. 가지 못한다면 멀리서나마 보기라도 하기를 그렇게 소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도 이렇게 하나님과 성전을 사모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한 군데 더 보겠습니다.

8절입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즉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서실 우리 인간이 대단한 것 같지만 무능력합니다. 너무나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나에게 초점을 맞추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력한 만큼! 마음먹은 것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이 잘 안될 때는 원망하고 낙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에 너무나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루터를 방해하는 무리들이 지붕위에 기왓장만큼이나 많았습니다. 너무나 힘이 들어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죽기를 구했던 엘리야처럼 낙심이 되어 의기소침해지고 다 귀찮고 어디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날도 늘어진 어깨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부인이 들어가 소복을 하고 대성통곡을 합니다. 깜짝 놀란 루터가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여보! 누가 죽었습니까?” “여보! 글쎄 조금 전에 우리하나님께서 돌아가셨지 뭡니까? 아이고! 아이고!” 루터는 정색을 하면서 부인을 나무랍니다. “어떻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돌아가실 수 있단 말이요!” 그 말을 받아 루터의 부인이 정색을 하면서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데 왜 당신은 그렇게 낙심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는데 왜 그렇게 근심하십니까?”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을 듣고 루터는 회개하고 다시금 힘을 내어 종교개혁을 성공하게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신 분이나 낙심 중에 계신 분들이 계십니까? 힘쓰고 애쓰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아서 낙심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믿음이 잘 자라서 주님의 큰 일군이 되기를 원하는데 믿음이 잘 자라지 않아 낙심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신속히 오지 않기 때문에 낙심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인처럼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고전3:7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일하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고전 3:7) 여러분! 이 사실을 믿습니까?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때가 반드시 올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시126:5) 불의한 재판관도 귀찮아서라도 들어 준다는데 하물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 하시겠습니까?(눅18:7,8) 속히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만 우리는 내가 고난당하는 이유는 몰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원망대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시42:5.9.11) 내 뜻대로는 안 되었어도 주님 뜻대로 되면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시107:30절에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살다보면 낙심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때에 인생 다 산사람처럼 지금 잘 되는 것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신앙의 선배들은 낙심되는 상황에 있었지만 낙심하며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온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의 고비, 인신매매, 노예요, 옥살이였습니다. 얼마나 낙심되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으로 요셉의 인생이 끝은 아닙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40세에 조국을 위하여 큰 꿈을 가지고 출발하였습니다. 그던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40년간이나 말입니다. 장구한 세월을 광야에서 고독하게 보내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그는 10대에 일국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30세에 왕이 되기까지 청소년기 청년기를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사람을 반드시 훈련시켜서 하나님의 쓰실 만한 그릇으로 사용하시는 줄 믿습니다.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환난을 당할 때,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16:33)고 말씀합니다. 미래를 보며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두려움이 엄습할 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사41:10)라고 말씀합니다. 모두가 떠나 버리고 홀로입니까? “외로울 때,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6)라고 말씀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였습니까? “선을 행하나 낙심될 때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되면 거두리라”(갈6:9)고 말씀합니다. 부디 희망을 가지십시오! 주님이 저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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