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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살 맛을 나게 하는 사람 (마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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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만나서 반가운 사람이 있고 만나서 불편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옆에 분들과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참 잘 만났습니다’) 반대로 “또 만났네?” 해 보세요. 이 얼마나 불편한 관계입니까? 만나서 반갑고, 만나보면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지기를 바랍니다.

조선일보 2005년 10월12일자 신문에 보니 웃음의 운동 효과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한번 크게 웃으면 윗몸 일으키기 25번, 10초 동안 웃으면 노 젓기 3분, 15초 동안 박장대소하면 100m를 전력질주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웃고 사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들과 ‘웃고 삽시다’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는 웃지 못할 일들도 많이 있고, 서로 믿고 살 수 없는 어떠한 상황이 조성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덮어주고, 신뢰하고, 세워주고, 용기를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제자들을 택하신 후,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중의 한 말씀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소금은 우리들이 사는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있으며 동일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금이 자기 맛을 잃으면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소금은 맛을 내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살맛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소금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벗어나 숨거나 고립되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소금이 배추 속에도, 생선 속에도, 소고기에도 어디서나 필요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곳에서나 누구와도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느날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있는 참으로 신기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신비로웠는지 베드로는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주님, 여기가 좋사오니 이 산에서 내려가지 말고 여기에서 살면 어떻겠습니까?”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많고, 어둡고, 불행하고, 불의한 세상이지만 제자들을 데리고 그 산을 내려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불의해도, 미운 사람, 못마땅한 사람들이 있어도 소금의 사명을 다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범하는 잘못 중의 하나가 세상이 악하니까 이 세상을 멀리하고 숨어 살자는 “은둔주의”입니다.

어떤 분은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서 그 직장을 그만두어야 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서 교회에 가기 싫다는 분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꼴 보기 싫은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피하거나 숨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소금이 되어 여러분 때문에 살 맛 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던 것 같습니다. 꽁꽁 언 거리에 마음 훈훈한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매서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원에서, 역전에서 무료 급식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추운 날씨에 꽁꽁 언 손으로 봉사 하는데, 먹는 이 들은 반찬이 어떻다는 등 투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도“더 잘해드리지 못해 미안 합니다“라고하며 기쁨으로 봉사 합니다.

또한 구세군을 비롯한 이웃사랑을 위한 모금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씩 움츠러든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감동의 사건들이 있습니다. 수 백 만원, 수 천 만원이 든 봉투를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 없이 내놓고 쏜살같이 사라지는 분들, ‘단지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을 뿐 외부에 절대 알려선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소리 없이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이웃을 외면해 온 우리들을 부끄럽게 하는 일들입니다.

목사님의 조크라는 유모어가 있습니다. 한 여자가 남자에게 버림을 받고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이 아무리 달래도 여자의 울음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그 때 마침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이 “목사님, 이 여인에게 따뜻한 말을 좀 해 주세요.” 영문을 모르는 목사님은 그 여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스보일러, 기름보일러, 손 난로, 찜질 방...” 썰렁하셨습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 마음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장기려 박사가 운영하는 청십자 병원에 한 농부가 입원했습니다. 이 농부는 워낙 가난해서 치료를 끝내고도 입원비가 밀려 퇴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다 못한 농부는 장박사를 찾아가 하소연했습니다. “원장님 모자라는 입원비는 돈을 벌어서 갚겠다고 해도 도무지 믿어주지를 않습니다. 이제 곧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제가 가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수 가 없습니다.” 농부의 사정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있던 장박사가 입을 열었습니다. “밤에 문을 열어 줄테니 살짝 도망치시오.” 그날 밤 장박사는 서무과 직원이 모두 퇴근한 다음에 병원 뒷문을 살짝 열어 놓았습니다.

얼마 뒤 농부와 그의 아내가 머뭇거리며 나타났습니다. 어둠 속에서 장박사가 농부의 거친 손을 잡았습니다. “얼마 안 되지만 차비요. 열심히 사세요.” 다음날 아침, 환자가 사라졌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서무과 과장이 원장실로 뛰어 왔습니다. “원장님, 106호 환자가 간밤에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장박사는 “사실은 내가 도망치라고 문을 열어 주었네. 다 나은 환자를 병원에서 붙들고 있으면 그 가족은 어떻게 살겠나? 이과장도 알다시피 지금은 농사철이 아니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 있어도,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은둔하지 말고, 세상 등지고 산에 올라가지 말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에 따라 더불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맛을 내야 그리스도인입니다.

소금은 음식 속에 들어가면 맛을 내 줍니다. 짠맛을 가지고 있지만 떡에 들어가면 떡 맛을 내고, 고기에 들어가면 고기 맛을 내고 토마토에 들어가면 토마토의 맛을 더해 줍니다. 소금은 이처럼 맛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금은 싱거운 것에 맛을 내고 또 맛을 가지고 있던 것에 새로운 맛을 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의 큰 기쁜 소식을 맡은 자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살맛을 나게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 저 사람은 매력있다. 저 사람을 보면 생기가 난다, 저 사람과 가까이 하고 싶다, 저 사람만 보면 살맛이 난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반대로 ‘저 사람은 위험인물이야, 조심해야 돼, 저 사람만 보면 밥맛이 떨어져, 저 사람은 저질이야!’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수준이 격상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개개인의 수준이 질적으로 떨어지면 교회의 수준이 떨어지고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여러분 개개인의 질적 수준이 올라가기를 바랍니다. 기도와 말씀과 훈련을 통하여 변화를 시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의 가정의 수준이 올라가고 여러분이 속한 속회와 선교회의 질적 수준이 격상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이 살아가는 이 사회의 수준이 올라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마가복음 9장 50절에 보면,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소금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화목한 맛을 냅니다. 또한 화목한 맛은 인생의 맛을 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소금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입내밀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입들어가게 하고, 웃게 만들고, 등돌리고 있는 사람들 틈에 들어가 손잡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4장에서는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지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은 ‘무릇 더러운 말을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라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안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을 하려 할때도 덕을 세우는 말인지,상처를 주는 말인지를 생각해 보고 해야 합니다. 더러운 말이나 이간질 하는 말, 불평하고 원망하는 말, 이유없이 남을 깎아내리는 말, 남을 곤경에 빠지게 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맛을 내기 위해서 소금안에 있는 불순물들을 , 성령의 능력으로 걸러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습니까? 더불어 살아가십시오. 스스로 질적 수준을 업 그레이드 하십시오 또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김명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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