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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과 기독교는 아주 떼려야 뗄 수 없는 과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매년 이 때가 되면 한국 교회가 3․1절 기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식민지 백성의 주권적 권리 회복을 위해서 가장 열심히 싸우고 나선 것이 교회였고, 또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조선 민족의 식민 통치를 가장 어렵게 방해하고 있는 것이 교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교회의 탄압을 그토록 심하게 하였습니다. 한국 교인들의 신앙과 정신세계에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일이 신사참배라고 하는 것으로서 한국 교회가 이를 우상 숭배 개념으로 결론하였기 때문에 교회가 이 운동에 앞장서는 동기를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 지도자의 절반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에서 이때 기독교는 민중의 등불이요, 소망의 빛이 되어 그늘진 백성이 바라볼 수 있는 불빛이었다는 역사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민족적 억압 감정을 언어화해서 발표하는 유일한 통로로써 교회의 역할이 존재했고, 민족 에너지의 강렬한 자유 열망의 욕구 분출구로서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3․1운동 당시 피해 상황을 보면 7,500명이 학살당했고, 16,000명의 불구자적 부상자가 발생했고, 47,000명이 감옥에 갇혔으며 운동의 집합 장소였던 59개의 교회가 불에 탔습니다. 하나님은 억압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고통의 현장을 찾아오셨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구체적 사역을 하셨습니다.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서 역할을 하게 하시고 바로의 군대를 소멸하시고 홍해를 기적으로 갈라주시고 사막에서 마실 물과 먹을 양식 그리고 진행 과정의 세밀한 분야까지도 친히 지도하셨음을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 삶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 참여라는 신학적 근거 밑에서 3․1운동이 교회 중심으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3․1운동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였던 사람들을 민족 대표 33인이라고 볼 때 그 중 16명이 기독교 지도자들이었고 실제 만세 운동에서 가장 뚜렷한 인물 중에 한 사람이 유관순 여사였는데 철저한 기독교 청년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출연 사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란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인간 구원을 위해서 예수는 하늘나라에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데 성육신 사건의 중심 교훈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식민지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오셨는가?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 왕가의 아들로 오지 않으시고 그토록 오랜 역사동안 외세와 억압의 그늘 속에서 시달리는 이스라엘 민족 중의 하나로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나사렛 빈민촌 블루칼라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요셉의 아들로 그렇게 오셨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생명 보존을 위해서 애굽으로 피난을 떠난 기록이 있고, 나라 없는 서러움과 이방 나그네 설움 속에 살게 되었고, 이스라엘 중에서도 영광스러운 영적 장소인 예루살렘에서 성장하지 못하시고 왜 멸시받는 갈릴리 나사렛 빈민촌에서 성장을 하셨는가? 세계 역사 가운데 정치 신학의 근거가 모든 권력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며 모든 민중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국가 건설이 정치 신학의 목표입니다. 이것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데 정치 신학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치 신학의 근거 때문에 3․1운동이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식민지 백성 중에서도 아주 멸시받는 나사렛촌에서 사셔서 민중의 고난이 무엇이며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가에 대한 체험을 갖고 계시게 되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이요, 그 자유는 곧 하나님의 형상 회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형상됨을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 회복을 위해서 예수님이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3․1운동 독립선언문에서 밝혔습니다. “우리는 일본인을 배타하거나 질시함이 아니다.” 왜 우리가 이웃집 형제를 미워하겠습니까? 오히려 일본 국민들은 세계에서 모범적 국민이요, 깨끗하고 정직하며 친절하고 예의바른 민족으로 세계인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모든 외국 사람들의 평가 조사를 해마다 하는데 항상 일본 사람들이 가장 훌륭한 국민생활자라고 평가를 하고, 남미에서는 일본사람들에 대한 신뢰도가 얼마나 좋으냐 하면 지나가는 자동차가 교통 법규를 위반했을 때에도 일본인이면 절대 티켓을 발부하지 않습니다. 그런 정도로 믿음이 가는 민족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정치권력의 철학이 문제입니다. 일본군인들 조차도 죄가 없는 한국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는 일을 하고 싶었겠습니까? 왜 했는가? 전체주의는 개인이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 정치 철학이 문제입니다. 당시에 조선인들이 독립 만세를 부르며 서울 거리를 지날 때 많은 일본 민간인들은 거리에 나와서 박수를 쳤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서울에서 신문사를 경영하던 한 일본인 사장은 자기 회사 직원들이 2층, 3층에서 내다보면서 만세를 부르는 조선인들을 바라볼 때 소리를 질렀다고 그랬습니다. “제군들은 빨리 내려가서 조선인들에게 경의를 표하라! 죽었던 한 민족의 정기가 저렇게 살아나고 있는데 어찌 구경만 하고 있느냐? 일본의 전체주의는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나가서 경의를 표하자.” 기록으로 남은 이야기입니다. 히브리 민족의 파란만장한 그 많은 역사 속에서 오늘은 그 나라 건국 초기에 있었던 한 작은 사건인 기생 라합의 사건을 우리가 생각함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 민족 역사관을 한번 새롭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여 나갔습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이제 문 앞에 왔으니까 자신들이 정복해야 될 가나안 땅에 정탐꾼 두 사람을 보내 얻고자 하는 땅의 사정을 알아보라고 보냈습니다. 보냄을 받은 사람들은 대단히 지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서 어느 집을 찾아갔느냐? 기생집을 찾아갔습니다. 아마 우리 교회 다니는 보수적 신앙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왜 제일 먼저 기생집을 찾아갔느냐?’ 이렇게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그 사람들의 대단한 지혜라고 판단이 됩니다. 왜냐하면 기생집은 아무나 가도 괜찮은데 신분 노출이 안 됩니다. 가정 안전한 곳을 선택한 것입니다. 분명한 역사가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임진왜란 때 논개라고 하는 기생은 촉석루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자살을 해서 국민의 원한을 풀어주었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대리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기생들은 미국과 전쟁을 할 때 미군들을 상대해서 몸을 팔았습니다. 거의가 다 돈을 거절하고 독립을 요구했다는 것이 국가적 운명에 공헌했다는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여호수아 장군의 특명을 받은 히브리인과 기생 라합의 만남을 통해 어떤 역사가 이루어졌는가? 라합의 지혜는 무엇이었는가? 그가 바로 본 시각이 세 가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그는 하나님을 바로 보았습니다. 본래 이곳에 사는 가나안 족들이란 국가관이나 민족관이 별로 없는 잡다한 종족들입니다. 거기에는 가나안 7족을 비롯해서 31종류의 종족이 모여 살고 땅입니다. 라합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족들이 부족의 왕을 세워서 조그마한 국가를 형성하고 살았는데 이들은 역사에 보면 유리한 대로 달라붙어서 살아야 되는 집시족에 불과합니다. 지금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로서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사람들인 것을 라합이 알고 있습니다. 지붕에 숨어있는 정탐꾼을 깨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말이 “너희가 믿는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라!”라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 이렇게 봤습니다. 라합의 이와 같은 고백은 현실적으로 왜 이렇게 했습니까? 살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마다 세상을 살아가는 철학이 조금씩 다른데 아주 분명한 것은 누구나 다 똑똑합니다. 누구나 다 비상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비상한 머리와 비상한 계획이 그대로 안 된단 말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우리 뜻대로 뭐가 됩니까? 그래서 라합이 본 것은 살 길이 하나님을 믿는데 있다고 본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노력을 통하고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나의 살길을 잘 마련하고자 노력을 합니다. 때로는 그것들이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투자해야 합니다. ‘나의 살길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을 붙잡는 길이다.’ 그리고 놓칠세라 힘을 다해서 지금 라합은 생명을 걸고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이 우리의 가는 길을 돌아보시지 않는 것 같아도 절대로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항상 우리를 지켜주시며 우리를 가장 선하고 좋은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망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나타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미국 역사 중에 제일 큰 화재 사건은 한 도시를 다 태운 시카고 대 화재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미국 교회사에 가장 큰 역할을 하고 계시던 무디 목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무디 목사가 목회하던 교회도 시카고 화재 때 불에 탔습니다. 온통 도시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는데 무디 목사는 잠옷 바람에 자기가 항상 사용하는 성경책을 무의식중에 들고서 밖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시카고 전체가 다 불에 타니까 신문 기자들이 무디 목사가 잠옷 바람으로 나와 있는 것을 알고 전부 둘러싸며 물었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가장 영적으로 큰 역할을 하고 계신 분이 당신인데 이런 화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어떻게 해석을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목사님이 목회 하시던 교회도 저렇게 불타서 잿더미가 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영적 지도자의 소감을 좀 얘기해 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무디 목사는 “아, 그렇지요.” 태연하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다른 일은 내가 아직 잘 모르겠고, 나와 관계된 일은 내가 알 수 있는 게 있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내가 목회하는 교회가 교인이 하도 많이 와서 교회가 적으니까 큰 교회를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시카고가 땅값도 비싸고 도무지 빈틈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땅한 교회 자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이 자리에 교회를 헐고 다시 건축하기로 작정하고 기도 중에 있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아시고 불을 태워주시니 헐어버리는 경비가 줄었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게 역사에 남아서 “이렇게 큰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있습니다. 아마 이런 역사는 갱단으로 이 나라를 가장 어지럽히고 있는 알 카포네 후예자들이 시카고를 암흑의 도시로 만들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한번 하셔야 되는 것으로 우리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기자 답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망할 때에도 하나님을 붙잡아야 됩니다. 가끔 우리는 나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 지금 어떤 점을 기뻐하실까? 지금 현재 내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보는 영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20세기에서 경험했습니다. 20세기를 장식했던 두 줄기의 흐름이 인간의 궁극적 문제가 무엇인가 철학적으로 분석을 했을 때 칼 막스가 “인간의 문제는 빈곤과 계급이다. 빈곤의 세계를 물리치는 것이 평등이다. 만인이 평등한 권리에 살고 똑같이 먹고사는 유토피아 건설이 복음이다.”라고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쫓아냈습니다. 예수는 인간의 문제는 어떻게 보셨는가? “인간의 문제는 먹고 마시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정반대입니다. “영혼의 빈곤이 인간의 문제다.” 그렇게 굶주리던 2,000년 전 식민지 백성들에게 설교를 하실 때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먹고 마시는 문제입니다. 경제 성장입니다. 그런데 뭐라고 설교를 하셨습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우리는 그것이 제일 급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은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사회주의 국가들은 모두 다 굶주리는 백성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국가는 모두가 GNP 20,000불이 넘었습니다. 가장 뚜렷한 결과를 우리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남북한 비교입니다. 북한은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몇 나라 중에 한 나라가 되었고 이대로만 간다면 미래학자 허만칸이 지적한 대로 대한민국은 2,010년 이후에는 세계 10대 강국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그렇게 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차이가 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설교를 생각하면 “무엇을 마실까 먹을까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다.”라고 지금 라합은 잡다한 부족사회에서 자신의 살 길이 상천하지의 하나님을 붙잡는 일이라고 판단해서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 다음에 라합은 역사를 바로 봤습니다. 그가 역사를 바로 보는 것으로 이렇게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 아노라.” 이제 역사의 흐름은 히브리 민족에게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지금 라합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백성을 보고 그 백성 중에 나도 하나가 되어야만 살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믿게 된 동기가 성경말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의 물을 마르게 하신 것을 내가 소문을 들었노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을 내가 들었노라. 곧 그들을 다 전멸하고 승리한 소식을 들었노라.” “하나님의 승리의 손길이 지금 당신들에게 있음을 내가 보았노라.”라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모르느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도움의 손길이 있는 이스라엘을 바로 보고 나도 그 가운데 하나가 되려는 지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들을 보고 대적해서 내가 얻을 것이 무엇인가? 죽는 일이다. 살려면 이들을 붙잡아야 한다. 왜? 하나님의 역사의 손길은 그들에게 있다.’ 이렇게 본 것입니다. 사실 이때 라합은 자기가 살고 있는 부족에서 영웅적인 일을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온 부족의 왕들이 지금 히브리 민족의 가나안 땅 입성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자기 집에 들어온 정탐꾼들을 고발해서 자기 나라에서 공을 세우면, 부족 왕으로부터 큰 상을 받을 일을 만났습니다. 기생 노릇을 오래한 여자가 그만한 계산이나 눈치가 없었겠습니까? 넉넉히 그럴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바로 보고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이 민족들에게 있는데 내가 어찌할 것인가?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있는 곳을 찾아야지.’ 이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그 당시의 역사관이었습니다. 얼마나 올바른 선택을 했느냐 말입니다.

그 다음에 그는 사람을 바로 보았습니다. 기생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잘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봅니다.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기생 앞에 가서 노출을 합니다. 본성을 드러냅니다. 본성이 나오는 사람을 평생 경험한 여자입니다. 또, 자기 앞에서 폭로되는 인간의 본능적 내면세계를 누구보다도 많이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런 능력은 경험에 의해서 남보다 우월합니다. 자기를 찾아오는 남정네들의 욕구가 무엇인지 말 안 해도 잘 알 수 있는 경험이 풍부합니다. 그런데 지금 자기 앞에 나타난 두 남자는 기생이 목적이 아님을 봤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남자가 기생한테 들러붙은 것이 아니라 기생이 남자들한테 들러붙어서 살 길을 달라고 애원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석할 수가 있는가? 하나님 역사의 동원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잘 협조함으로 자기도 살 길이 열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역함으로 공연히 벌을 당하거나 바보가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라합은 사람을 바로 본 것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기적의 사건의 모든 소식을, 이 정세를 다 소문을 들었는데 그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면 내가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 사람들을 붙잡아야 나의 살길이 있다.’ 사람을 바로 봤습니다. 성경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은 어느 날 자기 앞에 어느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서 간청을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쉬었다 가소서.” 그리고 자기 아내에게 급한 요리를 시켜서 그들을 잘 대접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천사들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심판 계획을 그들이 폭로해 주잖아요? “하나님 역사의 손길은 여기 있다. 그런 줄 알아라!”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의인 50인을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나이까?” 우리 사람의 일생은 만남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사람을 잘 보고 잘못 본 것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우리가 인간관계 결혼에서부터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이제 라합은 생명을 걸고 운명적 게임을 합니다. 그가 본 역사관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매우 위험한 일을 합니다. 라합의 집에 사람들이 닥쳐서 “이 집에 사람들이 숨어있지 않느냐?” “아니다. 온 것은 사실인데, 해가 지기 전에 갔다.” 돌려보내고 그리고 지붕 위에다 숨기고 그들을 창문으로 달아나게 해서 살려주고 이런 매우 위험한 게임을 합니다. 그런데 그의 선택은 옳은 선택이 되어서 히브리 민족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가 성취되는 날 자신과 온 가족이 약속한 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그는 그로부터 하나님의 나라 역사에 하나님으로부터 큰 쓰임을 받는 자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가문에 들어갑니다. 아브라함의 가문 족보에 들어가는 사람은 히브리 민족이라야 합니다. 라합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방 여자입니다. 몇 사람의 이방여자가 이 가문에 들어가게 되는데 라합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조상의 족보에 올라갑니다.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 기록을 읽어보면,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이 족보 기록의 맨 나중 말은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이 여자는 마침내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대한민국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 이스라엘 백성만큼이나 어려웠지만 그 어려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상천하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 때문에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라합의 역사관으로 민족의 앞날을 바라보며 나라 민족의 장래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또 우리 자신들의 개인적 삶의 과정도 바로 라합과 같은 하나님의 쓰임 도구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특별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쓰임 도구가 되어서 세계 선교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그리고 민족 공동체가 라합이 가졌던 역사관을 가지고 살아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하나님의 큰 인간 구원의 역사에 크게 쓰여지는 아버지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민족 장래가 빛이 나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가 있게 해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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