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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심하라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 (행 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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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에는 꿈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마음에 어떤 꿈과 소망과 어떤 인생의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인생에서 정말 성공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패와 좌절에서 오는 절망감을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좌절을 극복하지 않고는 결코 꿈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있다면 프랭크린 루즈벨트입니다. 그는 미국 대통령을 무려 4번에 걸쳐 연임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소아마비로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보냈던 사람이었습니다. 6.25 전쟁시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트루먼은 한때 잡화상의 점원과 약장사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링컨의 실패와 불행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크고 작은 선거에서 무려 7번이나 낙선했고, 사업에도 두 번이나 실패했습니다. 그는 그 때 진 빚을 청산하기 위해 무려 17년 동안 시달려야 했습니다. 10 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20살에는 누이 사라가 죽었습니다. 27살 때는 결혼을 약속했던 사랑하는 연인 앤 메이지가 갑작스럽게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42살에는 둘째 아들 에드워드가 죽었고, 53살에는 셋째아들 윌리엄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마저 1865년 4월14일 저녁 워싱턴DC의 포드극장에서 존 윌크스 부스의 총탄을 맞고 다음날 아침 죽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성공만 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 모두는 인생에서 실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자신에게 달려 든 인생의 환난과 고통을 이기고 극복하여 인간승리의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파가니니'라고 하는 이탈리아의 아주 유명한 음악가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음악 애호가들의 모임에서 연주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연주 도중에 줄 하나가‘팅’하는 소리를 내면서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파가니니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남아 있는 세 줄로 계속 연주를 해나갔습니다. 조금 있다가 또다시 줄 하나가 또 끊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남아 있는 두 줄로는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주를 계속되었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지만, 남아 있었던 두 줄 중에 또 하나의 줄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매우 당황했고, 탄식 소리가 청중 속에서 흘러나왔고, 어떤 사람들은 파가니니에게 오늘은 참으로 재수가 없는 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연주회의 상황은 그 자리에 앉아 있기가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세 번째 줄이 끊어지는 순간 파가니니는 청중들을 바라본 후에 잠시 연주를 멈추더니 그 남아 있는 한 줄로 완벽한 연주를 해냈습니다. 그가 그 마지막 줄로 연주한 것은 바하가 작곡한 G 선상의 아리아라는 곡이었습니다. 그는 한 줄로도 얼마나 훌륭히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가를 보여 주었고, 동시에 인생의 위기나 고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며, 이 사건을 통해 그는 아주 유명한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내가 소망하며 인생을 의지하던 줄이 끊어져 나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돈 줄이, 때로는 명예의 줄이 때로는 가정의 줄이 때로는 사랑의 줄이 때로는 건강의 줄이 끊어 질 수 있습니다. 이런 줄이 끊어지면 사람들은 절망하게 되고,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줄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이 한 줄만 있으면 우리는 G선상의 아리아와 같은 아름다운 인생을 연주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희망의 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우리 인생의 영원한 구원의 줄인 예수 믿고, 인생에서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링컨이나 파가니니처럼 인생의 여러 줄이 끊어지는 경험을 했던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11:23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여러분 죽을 번했고, 강도와 배고픔과 가난 속에서 그리고 여행 중에 파도를 만나 세 번이나 파선한 상황에서 힘겹게 살아남으면서 고난을 이겨낼 수 있게 한 그 능력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원한 생명의 줄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역시 자유하지 못한 로마의 죄수 바울을 만나게 댑니다. 바울은 아시아와 유럽으로 전도 여행을 하는 도중에 예루살렘에 가뭄이 들어 형제들이 배고픔에서 고통당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교회 그들을 돕자는 편지를 보냈고, 여러 교회에서 보낸 구제 헌금을 가지고 그는 몰래 예루살렘 교회에 방문했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알아보고 그를 죽이기 위해 때로 몰려들었고 그를 붙들어 서로 당기면서 찢어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행23:10). 결국,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붙들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로마 황제를 대적한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고 로마의 황제 가이사에게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붙들려 옥에 갇혀 이제 로마로 이송하게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23:11)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에게 말씀하신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말씀을 믿게 되자 그는 나는 로마에 가서도 말씀을 전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저는 오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5절의 말씀입니다. 25절을 보면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인생에서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말씀을 믿자 그는 감옥에서도 평안을 얻을 수가 있었고, 감옥에서도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바울은 예루살렘을 떠나 이탈리아로 가는 죄수들을 싫은 배에 실려 짐짝처럼 끌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고 파도가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 배가 풍랑을 만나게 된지 아십니까? 이들에게 인생의 고난과 위기가 왜 닥쳐 온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 배에 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울처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배가 출발하기 전 바울은 죄수들을 이송하는 책임자였던 율리오라는 백부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반 잃을 뿐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큰 타격과 손해가 있을 것 같습니다.”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을 믿지 않았습니다. 11절 말씀에 보면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고 했습니다.

  11절 말씀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입니다. 누가 아마추어를 믿겠습니까? 제가 죄수를 이송하는 백부장 율리오였다고 해도 선장과 선주의 말을 믿고 항해를 했을 것입니다. 바다에 대해 바울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말은 무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야의 전문가의 말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할 것입니다. 전문가인 선장와 선주가 평안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그들이 그렇게 말한 것은 자신들의 경험과 일반적인 통계라는 자료라는 객관적인 인간의 판단에서 온 것입니다. 반면에 바울의 말은 전혀 근거가 없는 하나님의 계시에서 온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고 믿는 목사로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볼 때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을 더 믿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은 그 말씀을 믿고 그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경험으로 판단하고 자신들의 길이 평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길을 떠난 것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인생의 길이 평탄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길이 평탄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길을 가는 인생들에게 행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백부장이었던 율리오는 하나님의 견해를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더 의지했습니다. 처음에는 파도도 없었고, 바람도 없었습니다. 남풍이 불면서 그들은 로마로 향해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리고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깊은 바다에 이르렀을 때에 그들 앞에 갑자기 유라굴로는 광풍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유라굴로라는 광풍은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강력하고도 무서운 태풍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인생이 평안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대로 가고 있지 않다면 어느 날 어느 순간에 반드시 여러분들은 유라굴로와 같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광풍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유라굴로와 같은 인생의 폭풍을 만나게 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의지했던 물질도 없어지고, 자신이 믿었던 사람도 여러분을 떠나게 될 것이고, 심지어 생명조차도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의 기준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만이 나를 도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말을 더 믿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경험과 통계에 의지해서 인생이 안전하고 완벽한 것처럼 말하고 있는 선장과 같은 전문가들의 말입니까?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놀랍게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조차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해결점을 전문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유라굴로 태풍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지식을 앞세우고 하나님 떠난 인간의 필연적인 운명인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서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하루는 어린 아이가 아침을 먹다가 아빠의 머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랍니다. 그리고는 안타까운 듯이 말하기를 "엄마, 왜 아빠 머리에는 왜 머리카락이 조금밖에 없어?"라고 질문했습니다. 아이의 물음에 엄마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건 말이지, 아빠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거야." 그러자, 이번에는 엄마의 머리를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묻더랍니다. "그런데 엄마, 엄마는 왜 머리카락이 그렇게 많아?"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오늘 여러분들이 생각하기 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나는 말씀 그대로 될 것을 믿는다.”오늘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바른 인생의 지혜와 믿음의 지혜인지 생각하고 결정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말씀대로 될 것을 믿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불순종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그 곳을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나 거대한 태풍 앞을 만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태풍과 맞서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마디로 nothing입니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항해의 경험이 많은 선장의 권위는 완전히 깨어졌고, 남들보다 빨리 배를 몰아 로마에 도착하여 돈을 벌어 보겠다고 생각한 선주의 얄팍한 이기적인 상술도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배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배 안에 있는 사람 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배를 타면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소망은 한 순간에 깨어진 것입니다.

  15절 말씀에 보면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라고 했습니다. 17절에도 “그냥 쫓겨가더니”라고 했습니다. 19절에는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들을 그들의 손으로 내어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0절에는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없어졌더라”고 했습니다. 선원들과 선장은 그들이 가진 노하우를 를 통해 배를 묶어 보려고 했습니다. 배를 안정되게 하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배가 모래 턱에 걸리거나 좌초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배 위에 있었던 자신들에게 풍요를 선사할 줄로 알았던 재산들을 바다로 집어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노력은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항해는 실패한 항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벗어난 인행의 항해는 패배한 항해입니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어떻게 하든 살아남아야 하겠다는 생존의 의지 외에는 없었습니다.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선원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같이 소중히 여기는 항해에 필요한 연장들과 도구들까지 차례차례 하나씩 바다로 집어 던져 넣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이 이렇게 망한다면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노력해도 소망이 보이 않으니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살아남기 위해 자기 살을 깎아 먹고 있는 이 모습을 보면서 그들 스스로가 얼마나 절망했겠습니까? 어쩌면 너무나도 유라굴로의 힘이 강해서 잠시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절망할 힘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로마에서 장사할 물질도 배에 던져야 했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주장하다가 그만 자신들이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들의 전문적인 지식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식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평생 저축하여 모은 모든 항해 도구들까지 바다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입니까?  명예도 잃고, 돈도 잃고, 건강도 잃고 이제는 살 소망까지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들의 인생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국, 말씀을 떠나 자신들의 방법대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인생들에게는 더욱 큰 손실이 오게 되고, 모든 것을 잃게 되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위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기 원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는 줄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전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환난 중에도 결단코 망하지 않고, 그 환난 중에도 꿈과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장과 선주와 백부장과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떨고 있을 때에 그 두려움의 공포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바울입니다.

  놀랍게 바울은 그 배에 어떤 사람들과 아주 달랐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그를 두려움이 없었고, 평안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22절에서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고 햇습니다. 25절에서도 그는 “여러분이여 안심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폭풍을 만난 사람들은 안심할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자꾸 안심하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5절에서 말하듯이“나는 내게 말씀한 그대로 될 것을 믿는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여러분 자신을 보십시오. 얼마나 죄가 많은 인생인지 스스로 알 것입니다. 이 연약한 죄인을 위해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아 피를 쏟아내며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똑 같은 환난과 고난의 상황에서도 말씀을 믿는 바울에게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환난 중에도 변하지 않는 꿈이 있었고, 비전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살아서 로마에 가서 반드시 말씀을 전하게 될 것이라는 그 말씀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시고 그 배에 탄 사람들의 영혼을 바울의 손에 맡길 것까지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약속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꿈이 있고, 영혼을 구원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환난과 고난 중에도 영혼을 구원하는 꿈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을 믿는 바울과 같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저도 이런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항해를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안심하십시오. 만일 아니라면, 여러분은 큰 바람을 만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어쩌면 순식간에 잃어버릴 수 있게 될 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사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생명의 줄, 소망의 줄을 잡고 인생의 위기 탈출의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용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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