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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길 (출 3:9-12, 막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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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마지막 주일에는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의 본문으로 설교하는 교회력 전통에 따라, 예수님의 공생애에 중요한 분기점을 이루는 사건의 신앙적 의미를 나누어 봅니다.

본문은 “엿새 후에”로 시작됩니다. 변화산 변모 사건이 있기 “엿새 전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예수께서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경을 지나십니다. 길 위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으십니다. “세례 요한, 엘리야, 또는 선지자 중 하나라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십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복음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로) 고백하고, 이후 예수께서는 “이제 인자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다.” 하십니다.(막8:27-31) 예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자신이 그리스도로서 걸어야 할 길을 선언했습니다. 이것이 엿새 전의 사건입니다. 이 일은 예수께서 “나는 왜 이 세상에 보내졌을까? 나의 세상을 구원할 사명을 받은 자로서 걸어가야 할 길을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한, 예수님의 그리스도로서의 자기 인식의 사건입니다. 자신의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인식한 것입니다. 이럴 때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의미 있고 보람 있게 하게 됩니다.

이 사건 후 “엿새”입니다. 변화산 사건이 예수님의 자기 인식과 십자가의 길을 수용한 것과 연관 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후 자신의 일을 “드러내 놓고”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변화산에 올라 예언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엘리야와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와 더불어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눅9:31) 대화하십니다. 예수께서 예언과 율법의 완성자(마5:17)로 오심을 증거합니다. 홀연히 구름으로 보이지 않게 되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현현하시어 예수께서 아들이심을 인정하시고, 메시야로서의 구원 사명은 아버지께로부터 부여받은 것임을 확인하십니다.

두 개의 사건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중요합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 보내진 목적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 목적에 따른 걸음을 걷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나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어야 하는구나. 이 길이 내가 걸어야 할 길이라면 나는 걷겠습니다.” 하자, 하나님께서 “그래 과연 내 아들답구나.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한다.”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본문은 모세의 소명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내 백성을 해방시켜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라.” 명령하십니다. 모세의 바로의 궁정에서의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데 사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모세는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4:13)라고까지 하며 거부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잡고 바로 앞에 섭니다. 모세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맡기신 사명을 잘 수행했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위대한 구원 활동의 중심에 선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에 충성함으로 영광스러운 생애를 이루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나름대로의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어둔 밤에 빛나는 별, 새벽마다 어둠을 뚫고 하늘을 향해 떠오르는 태양, 가장 낮은 곳에 엎드린 바다, 강남 갔다가 돌아오는 제비, 풀 잎 하나, 무덤까지도 존재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올 해 3월 22일이면 700번째 수요시위를 하는 정신대 할머니들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의 시위도 목적이 있습니다. 보상의 문제는 근본적인 것이 아닙니다. “일본아, 네 잘못을 알라!” 에 있습니다. 3.1절을 기념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또한 흑인영가로 이 날들을 기념하는 목적은 “이 나라에 다시는 일제 압제와 같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이 지구상에 흑인노예제도와 같은 죄악된 일이 어디에서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는데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불러 세우시고, 21세기 대한민국에 초동교회의 교인되게 함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을 즐겨 부릅니다. 우리는 그 다음을 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사랑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복 받기 위해, 구원 얻기 위해, 영생 누리기 위해" 에서부터 한 걸음 더 내디디어야 합니다. 복 주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영생을 약속해 주시는 주님의 뜻과 목적을 헤아려 살펴,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변화산의 주님처럼 영광스러워지고, 삶의 보람과 믿음의 긍지를 얻게 됩니다. 이 삶을 아름답고 복된 삶이라 하게 됩니다.

우린, 오늘 여기에 왜 있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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