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6~31)

  • 잡초 잡초
  • 440
  • 0

첨부 1


캔사스시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폭발로 인해 한 젊은이가 양손과 두 눈, 얼굴전체에 심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더 이상 자기의 눈으로 읽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에 심한 상실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영국에 사는 한 여자가 입술로 점자를 읽는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위해 입술로 읽을 수 있는 점자성경을 어렵게 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폭발 사고로 입술 신경들마저 마비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성경에 입술을 대도 아무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성경에 엎드려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 순간 혀의 감각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렵게 혀로 점자 성경을 읽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부드러운 혀로 성경을 읽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성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을 접하면서 '신앙의 고집'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런 고집스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에 매어달리는 고집스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는 고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고집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버려야 할 고집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욥기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욥'그는 참으로 고집스러운 사람입니다.
욥은 어느날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가장 소중한 자녀들도 잃어 버렸습니다. 숨쉴 틈도 없는 엄청난 비보를 접한 상황에서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1:21)
그런데 욥의 시련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건강에 갑자기 적신호가 온 것입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악창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심했던지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어야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그의 아내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나 봅니다.
"폼 잡지 말고, 하나님 욕하고 죽어버려" 그런 그 아내를 향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욥의 태도는 '고집'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것이 없습니다. 정말 대단한 고집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욥의 고집은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이렇게 욥이 자신의 고집을 꺽지 않으니 그를 시험하던 사탄이 혀를 내두르며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2장 이후에는 사단의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욥기 1, 2장은 욥이 고난을 당하는 장면입니다.
그렇다면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은 욥에 대해서 3장부터 축복의 말씀이 나와야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42장에 가서야 겨우 나옵니다.
그만큼 욥의 시련은 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욥의 시련이 이렇게 길었을까요?
3장부터 39장까지의 내용은 어려움을 당한 욥에게 친구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욥, 너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죄가 있어, 그러니까 회개해야 해" 그때마다 욥은 길길이 뛰면서 난 죄가 없다고, 의인이라고 반박합니다. 이것이 논쟁의 핵심입니다.
그런 도도한 욥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고, 그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가장 무서운 죄는 스스로 의롭다는 자아(自我)입니다.
겉으로는 자신을 그럴듯하게 위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기 의(義)가 살아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회개와 기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욥의 내면에는 또 다른 고집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욥이 그토록 오랜기간동안 고난과 시련이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 의' 때문이었습니다.
욥에 있어서 유일한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긴 고난의 터널을 벗어나 하나님을 만나면서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 회개하나이다"(욥 42:5~6)
처음에 친구들이 그렇게 회개하라고 소리쳐도 그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회개'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놀라운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축복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까지 고난과 시련을 끌어갈 생각입니까?
여전히 자신의 의(義)를 고집 하는 한, 그 시련과 고난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벗어날 방법이 있습니다.
이젠 그만, 하나님 앞에서 백기를 드는 것입니다.
나의 고집과 자아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고난과 시련을 이길 수 있는 길입니다.
'하나님 항복입니다'라고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자세가 축복의 통로가 되는 길입니다.
(옥성석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