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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은 계약 (출 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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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명을 데리고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와 멀찍이 엎드려 있으라.”하셨습니다.(출24:1-2) “모세 너만 하나님 앞으로 나오너라. 다른 사람은 나오면 안 된다. 백성들은 아예 너 모세를 따라 올라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왔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자세히 일러주었습니다. 온 백성들은 입을 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따르겠습니다.”고 대답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기록했습니다. 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산 밑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표시하는 돌기둥 열두 개를 세워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중 몇몇 젊은이들을 그리로 보냈습니다.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게 했습니다. 수송아지를 잡았습니다. 화목제를 드리게 했습니다. 모세는 그 피의 절반을 받았습니다. 항아리에 담아놓았습니다. 그리고 절반은 제단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계약서를 집어 들었습니다. 백성에게 읽어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다 따르겠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모세는 그 피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뿌려주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너희와 계약을 맺으시는 피다. 그리고 그 모든 말씀은 계약의 조문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읽은 말씀의 줄거리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은 피의 언약입니다. 이를 시내산 계약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많은 약속을 합니다. 계약이란 반드시 조건이 뒤따릅니다. 어느 한 편이 약속을 어기면 불이익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선언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맺으신 이 계약은 아주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약 선포를 하신 것입니다. 이 선포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한 번 이 장면을 연상해 보십시오. 아론과 그의 두 아들과 70명의 장로들이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모세만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때에 하나님께서 법을 주신 것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 이번에 장관이 되신 분들이 교통법규를 상당히 많이 위반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어떤 분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1년 넘게 내지 않았습니다. 하긴 이런 사소한 문제야 그리 큰 것은 아닙니다. 굵직굵직한 범죄가 문제입니다. 요즈음은 발바리를 잡으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혼자 사는 여자의 집(원룸)을 가스관을 타고 들어갑니다. 성폭행합니다. 돈을 빼앗아 갑니다. 택시 타기가 무섭다고 합니다. 호신용 가스총, 호루라기 등이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우리 시민이 마음 놓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은 성 범죄자에게 전자 팔지를 차게 한다지요. 또 집 앞에 ‘이 집은 성 범죄자가 사는 집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차에도 ‘이 차주는 성 범죄자입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인답니다. 우리나라는 인권위원회에서 그런 제재가 인권침해라 하여 못 하게 한답니다. 사실 그렇게 해서 사회 질서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인권위원회가 잠깐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맺은 약속(계약)에 대해 같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Ⅰ. 더 좋은 삶을 위해서

아담의 후예는 연속해서 범죄 합니다. 가인이 아벨이라는 동생을 죽였습니다. 시기와 질투한 나머지 돌로 때려 죽였습니다. 노아시대는 너무 죄가 많았습니다. 관영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보실 수가 없었습니다. 몰로 싹쓸이 하실 계획이셨습니다. 그래도 기회를 주셨습니다. 120년이란 긴 여유를 주신 것입니다. 이 기간에 하나님은 하나님 정하신 의식도 행하라 하셨습니다. 사람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노후를 위해서도 일찍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연세는 많고 생활 능력이 없어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앞날을 위해 젊은이들이 건강을 위해 적당한 운동도 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살이 너무 쪄서 걱정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모든 부분이 약해서 걱정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상급 학교 진학도 그렇습니다. 당일치기로 공부가 안 됩니다.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말처럼 모든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지금 사막에서 무슨 이런 법이 필요합니까?’라고 할 만 하지요. 다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목적지에 가서도 늦지 않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법은 혼자서도 지켜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라는 공동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장 으뜸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계약입니다. 사람은 걸핏하면 딴 짓을 하려고 합니다. 사람은 걸핏하면 자유에 대한 향수에 젖습니다. 자유와 방종은 분명히 다릅니다. 자유는 법 안에서 누리는 자유입니다. 방종은 이름 그대로 제 멋대로 사는 것입니다. 맨손체조를 하든지 말든지 자기 마음입니다 그러나 맨손체조를 한다면 남의 눈을 찌르거나 콧잔등을 치는 것은 죄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만 200만 명이 됩니다. 각각 자기 마음대로 행동 한다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까요? 상상이 가능합니다. 하나님도 모른다, 다른 사람도 모른다, 나만 잘 살겠다고 한다면 큰 난리지요. 그래서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  법을 주신 것입니다. 인간을 옭아매려는 것 아닙니다. 인간이 잘 살고 복 받게 하기 위한 법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뺑소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입니다. 그분을 기쁘시게만  해 드리면 우리는 복입니다. 그래서 법을 지켜야 합니다. 법의 정신이 있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평등정신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만 편하자고 차선을 무시하고 횡횡 달리면 당장 사고 납니다. 자기만 편하자고 아무데나 쓰레기 버리면 안 되지요. 우리 교회 앞 은행정원(뒤뜰) 곁은 주차 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그 곳은 차 한 대 주차하기 아주 적당한 자리입니다. 누가 알려 주는지 사람들이 그 곳에 주차만 하면 하루에도 몇 대씩 끌려갑니다. 시청과 은행에 잠깐 볼일 보러 갔다가 오면 차가 없어져 있지요. 또 차를 견인하고 있습니다. 시비가 벌어지는 것을 자주 봅니다. 딱해서 교역자들에게 “이곳은 주차 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상습적으로 견인되는 자리입니다.”라고 글을 써서 코팅해서 붙여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것을 하루도 안 되어 떼어 버렸습니다. 사실 그 곳이 주차하면 안 되는 자리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가 배출한 세계적인 전위예술가 백남준 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예술행위를 했습니다. 그는 1960년 스물일곱 살 청년이 그의 스승이자 동료인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랐습니다. 그는 자기보다 스무 살이나 위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장례식에는 유명한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넌의 부인 오노요꼬 여사가 참석자들의 넥타이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공손히 고인의 유해 위에 올렸습니다. 이런 퍼포먼스는 그의 위대함을 기리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약 판 전달식은 더 장엄했습니다. 70명의 장로들이 멀찍이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 판을 받으라, 이 말씀대로 살아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합시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법을 어길 수 없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사람을 헤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삽시다. 이것이 계명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우상숭배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주일성수가 어렵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삽시다. 살아도 하나님, 죽어도 하나님이어야지요. 개혁주의 신앙은 ①하나님 중심 ②성경말씀 중심 ③교회중심입니다. 이것은 아주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하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우리는 삶의 목적이 불신자와는 다릅니다.

Ⅱ. 피로 세운 언약입니다.

모세와 아론과 아론의 두 아들이 동행합니다. 장로 70명도 같이 갑니다. 산 아래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산 밑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대표하는 돌기둥 열둘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중 몇몇을 보냈습니다. 젊은이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게 했습니다. 모세는 피의 절반을 받아 항아리에 담아 놓았습니다. 그 절반은 제단에 뿌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계약서를 집어 들었습니다. 백성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따르겠습니다.”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모세는 항아리에 담아 놓은 절반의 피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뿌려 주며 “이것은 여호와께서 너희와 계약을 맺으신 피다. 그리고 이 모든 말씀은 계약의 조문이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대단한 장면이지요.

우리는 국회에서 법을 만들면 대통령이 공포함으로 법이 유효합니다. 이와 같이 오늘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피의 계약문서를 읽어 주고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전에 약속의 징표가 많았습니다. 거울을 반씩 쪼개어 약속을 다짐했습니다. 어떤 이는 몸에 문신을 새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계약문서에 도장을 찍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계약은 서로가 손해 보지 않도록 하는 안전한 장치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 쪽이 어기면 서로가 손해입니다. 하나님께서 피의 계약을 하신 것은 확실하게 하자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으십니다. 늘 인간이 약속을 어겼습니다. 번번이 하나님 속을 썩인 것입니다.

예전에는 계가 유행한 적도 있었습니다. 계를 모으는 사람이 1번을 타고 끝에 하나 넣습니다. 그래야 목돈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계주가(일본말로 오야) 1번에 돈을 타고 달아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계원이 돈을 타고 달아나 버리면 계주가 돈을 물어넣어야 합니다. 계주가 그 능력이 없으면 계가 깨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에 해당하는 계원은 돈을 떼이게 됩니다. 그래서 계를 탈 때까지는 늘 조마조마합니다. 저도 서울에서 공부할 때 큰 누님이 계를 넣어라 해서 여러 번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돈 떼이고 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도 교회 안에서 계(산통이라고도 함)가 깨어져서 노회에서 교인은 계를 못하도록 결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속상하지요. 저는 많이 봤습니다. 산통 때문에 원수지는 것 많이 봤습니다. 대전에서 간호장교 소령 출신인데 계하다가 망했습니다. 다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말입니다. 계약이 바로 그렇습니다.

아담, 하와도 계약 위반 했습니다. 우리 죄짓는 것 다 계약위반입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어떤 공사를 해도 꼭 계약서를 씁니다. 집을 사고 팔 때, 이사할 때도 그렇습니다. 요즈음 어느 방송국에서는 시청자 칼럼이란 프로가 있습니다. 약속을 어긴 것 때문에 손해 본 사람들이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법을 지켜야 합니다. 사람이 보든지 안 보든지 상관 없습니다. 요즈음 지하철 같은 곳에 누가 지키는 사람 없습니다. 저는 20년 전에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태리, 독일에 가보고 놀랐습니다. 지하철, 전차, 버스에 요금 받는 사람이 없어요. 이러고도 어떻게 유지하느냐고 걱정했습니다. 우리나라 보세요. 우리 이만하면 수준 높은 나라이지요. 조금만 더 정직하게 법을 지키면 우수한 나라가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 아닙니다. 누구나 다 쉽게 지킬 수 있는 법들입니다. 그런데 자꾸 변칙을 합니다. 세계 동계 올림픽에서 미국 선수가 우리 선수를 밀쳤습니다. 금메달을 놓쳤지요. 참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시내산에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은 멀찍이 엎드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계약문서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한 글자도 고쳐서도 안 됩니다. 누구도 이 법을 어기면 절대안 됩니다. 이를 우리는 계명이라고 합니다. 이 계명은 하나님의 축복의 법이기도 합니다. 이런 축복을 저버리면 우리는 불행한 사람이 되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언제나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길은 둘입니다. 삶의 길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죽음의 길입니다. 울며 겨자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행할 줄 뻔히 압니다. 그런데도 그 길을 갑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가 사랑의 법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이정표가 바로 법입니다. 이 법이 피의 법, 피의 언약(계약)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늘 선한 길로 가라고 성령님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보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름길을 일러주신 말씀입니다. 이 계약을 피의 계약이라고 합니다. 이 해도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6.3.5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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