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구름 따라 가는 길 (출 40:34-38)

  • 잡초 잡초
  • 408
  • 0

첨부 1


□ 구름 따라 가는 길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출애굽기 40:34-38)

1. 홍해를 건넌 후 이스라엘 백성의 길은 정처 없는 길이었습니다.

내가 그 행렬에 끼어 있었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들의 신의 능력만을 믿고 광야 길로 들어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불확실한 길인가? 상상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 중심의 생활이었습니다.
그 성막 위에는 낮에는 구름이 덮어있었고, 밤에는 불기둥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들은 항상 자기들의 <야웨>의 신이 함께 함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어야 안심이 되었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렇게 나타나 보여주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60만명의 대집단이 통제된 조직도 없고, 특별한 통신수단도 없던 그때, 가시적인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저들 신의 능력과 임재를 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므로 구름이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었고,
구름이 머물면 따라 머물었습니다.
저들의 광야 길은 구름 따라 가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이것은 우리의 신앙의 길에 주는 교훈이 매우 크다고 봅니다.
신앙의 길은 어쩌면 구름 따라 가는 길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적 이성적 합리적 사고로는 이해되지 않는 길이 신앙의 길입니다.
구름을 바라보고 가는 길을 어찌 합리적으로 이해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직도 신앙의 길로 들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신앙인의 길’은 구름을 보고 따라가는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를 건너온 것처럼, 우리 신자들은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세례를 받고, 지금 광야 같은 세상에서 약속의 땅인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고 있는 길입니다.
이 길에서 우리가 영적으로 얻어야 할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구름 따라 가는 길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쳤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중심으로 살고 있어야 합니다.
믿는 성도들은 어느 곳에 가던지 교회를 보게 됩니다.
교회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집을 얻습니다.
교회를 떠날 수 없어 교회 중심으로 생활을 영위해 나갑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신자들의 생활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성막 위에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이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거룩한 처소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나게 됩니까?
예배를 통하여, 말씀과, 찬양과, 기도를 통하여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두 개의 형태로 나뉩니다.
하나는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신자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교회는 나중에 오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우선은 자신의 집이 중심이고, 자녀들이 중심이고, 직장이 중심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그 다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기에 교회의 직분도 그렇게 행합니다.
우선에 직장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교회의 직분입니다.
전자는 모든 것을 교회와 함께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후자는 교회와는 관련을 지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연히 교역자에 대한 태도에도 나타납니다.
전자는 목사님들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존경합니다.
후자는 세상의 다른 직종의 사람들을 더 존중히 여깁니다.
자기보다 언제나 교회의 사람들은 처지는 사람들로 대합니다.
전자는 교회의 기물을 가장 귀하게 최상으로 헌납합니다.
후자는 교회는 아무것이라도 쓰던 것도 좋다고 여깁니다.

여기서 교회란 말의 의미는 본질적 의미에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 중심으로 사느냐?
아니면 하나님은 다음에 오는 선택이냐? 하는 질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간 곳마다 먼저 제단을 쌓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모든 삶의 우선순위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었다는 뜻입니다.

광야 길을 걸어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최우선적으로 와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모신 거룩한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내 마음 중심이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던지 성막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이 피어오르면 이동해야 했습니다.

거기에는 다른 이유를 댈 수 없었습니다.
구름이 움직이면 따라서 움직여야 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구름이 움직이는 것을 따라 좇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말씀에 대한 절대순종입니다.
구름이 피어 오르면 모든 것을 접고 이동해야 하였습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머물지 아니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말이 쉽지 실제생활에서는 이처럼 힘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구름 따라 움직이는 사람처럼 어리석게 보이는 것도 없습니다.
불신자들이 우리 믿는 사람들을 볼 때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사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구름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하나님을 쳐다보고 산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구원 얻을 우리에게는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불신자인 역사 선생님이 수업 중에 성경 이야기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너희들 중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해 나와 홍해 바다를 건너갔다고 하는데 그것은 정말 말도 되지 않는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홍해는 무릎이 잠기는 정도밖에 깊지 않는 갈대밭 이었으니까”
이 때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면서 일어나서 말하기를 “선생님, 그러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능력이 놀라와요?
겨우 무릎깊이의 물에 애굽 군대들이 모두 빠져 죽게 하였으니....”라고 했다는 우스개 말도 있습니다.

오늘도 불신자들은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을 보고 말도 되지 않는 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어리석다고 봅니다.
우리를 구름을 따라 가는 자들이라고 조롱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광야 길에서 구름을 따라 가는 길처럼 더 정확한 길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길처럼 더 안전한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3. 구름 따라 가는 길은 바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가는 길입니다.

미래학자들은 인류의 길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모두 불확실한 예측 들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문명의 몰락을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라들 마다 평안한 나라들이 없습니다.
유엔은 평화를 위해 창설되었으나 평화를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들어오면서 <서구문명>과 <비서구문명>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구문명은 기독교문명이라면 비서구 문명은 이슬람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문명간의 충돌은 어쩌면 인류를 멸망으로 끝낼지도 모릅니다.
동서 양진영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사상적 충돌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경제적 충돌을 거쳐,
마지막에는 종교적 충돌이 일어나면 인류의 종말은 시작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종교적 싸움의 불이 붙게 되면 끌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두 유일신을 믿는 신앙의 갈등이 자기주장의 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기꺼이 자신의 몸을 불태워 순교정신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진정한 살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인류 자체의 능력으로 파라다이스를 건설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학기술, 대량생산, 우주개발, 생명공학....,
아무리 노력해 봐야 나의 죽음은 나의 현실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사망의 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성막 위에 걸려 있는 구름을 보고 그것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는 것 뿐입니다.
그 길만이 나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3.1절 8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87년 전 우리 민족은 나라를 잃은 망국 백성들이었습니다.
절망적 길에서 헤매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분연히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구름을 바라본 신앙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길 아닌 길을 걷게 하시는 하나님!
거칠고 메마른 광야 길에서도 정의 편에 서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 본 신앙의 사람들이었기에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대한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런 선배들의 신앙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구름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굳게 믿고 정의로움의 편에 서서 길 아닌 길이지만 구름을 따라 가는 길에서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이 길에서 이탈되지 말고, 약속의 땅에 이를 수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이봉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