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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 (행 2: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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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온 한 천사가 마법에 걸려 개구리가 되었습니다.  개구리가 된 이 천사는 나무꾼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할아버지, 제게 키스해 주시면 제가 아리따운 아가씨가 되어 당신의 아내가 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신기한 듯 말하는 개구리하고 놀기만 하지 키스는 안 해 주시는 겁니다.  초조해졌던 개구리가 할아버지에게 묻습니다.  "할아버지, 제게 왜 키스를 안 해 주세요."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너도 내 나이 되어 봐라.  개구리하고 이야기하는 게 훨씬 더 재미있어.  마누라 둘이 필요 없어."

사랑하는 여러분, 부부가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 서로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보다 더 비참하고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서 살아도 서로간에 말이 통한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매 한가지입니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 말이 통하는 공동체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초대 고린도 교회를 보십시오.  고린도 교회는 당시 어느 교회보다도 은사가 활발한 교회였습니다.  소위 말해서 영적 뜨거움이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시간마다 때마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는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도들간에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라고 하는 파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 안에는 은사 우월주의, 내지는 영적 교만이 심각했습니다.  자기가 받은 은사가 최고인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하는 사람은 방언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성령의 체험을 하지 못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라고 업신여겼습니다.  치유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공동체이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업신여겼습니다.  이들을 바라보면서 사도 바울은 영적 아비의 심정으로 이렇게 호소를 합니다.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같은 말은 사상이 같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의 공감대가 같아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뜻을 품어야 합니다.  언양 영신교회 가족 공동체인 저와 여러분 모두가 같은 비전을 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같은 열매가 맺어져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한국 교회가 저마다 많은 일꾼들을 세웁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에게 중요한 직분이 주어졌을 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상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방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공유하는 비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교회 안에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결국 문제는 일꾼의 기준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수제자는 스승의 사상을 그대로 물려받는 제자입니다.  스승의 사상과 틀리는 제자는 변질된 제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참된 교회의 일꾼은 담임 목사와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목사님과 마음이 같아야 하고, 뜻이 같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적 지도자인 목사에게서 훈련을 받고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을 붙잡고 한 길로 달려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같은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19세기말 미국의 부흥운동의 영향 아래서 태동된 교회입니다.  부흥운동은 개인주의적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번 개인주의, 이기주의에 오염되고 나면 그것을 벗어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여자 청년이 은혜를 받고 나니까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늘 기도한다는 것이 송구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약속을 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제가 기도 한번을 하더라도 타인 지향적인 삶을 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내 신랑감만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이제는 그것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제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부모님에게 훌륭한 사위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에게 좋은 사위감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제는 저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제 여동생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제 여동생에게 좋은 형부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 되겠습니까?"

웃지만 우리 모두도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부흥운동은 개인적 중생, 회심, 체험 등이 강조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말씀을 중시하고 중생과 사죄의 은총을 강조하는 좋은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부흥회, 사경회를 통해서 한국 교회는 놀라운 축복과 성장을 경험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는 개인주의적인 신앙의 약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주의적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다보니까 교회 안에는 영적 우월주의, 내지는 은사 우월주의라고 하는 가라지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경험한 주관적인 신앙이 지나치게 강조됩니다.  자기가 받은 은사와 신앙적인 체험이 공유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서 어린아이의 신앙이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자기 감정과 주관적인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에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예배의 분위기는 예배가 아니라고 거부합니다.

결국 이것이 교회 안에서의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킵니다.  그리고 모임 밖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정복하는 일에 있어서도 대단히 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기 신앙 안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에는 어떤 하나의 은사가 다른 은사보다 더 낫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은사 우월주의는 결코 바람직하고도 성숙한 신앙적 자세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신앙 체험이 너무 강조되어서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켜서도 안됩니다.

성경을 보면, 끊임없이 공동체로 충만합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의 가족 공동체에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한 구속의 완성으로서의 교회의 공동체,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타나고 있는 바 역사의 마지막에는 하나님 나라의 천년왕국 공동체로 그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한마디로 공동체의 역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땅의 교회에는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몸집은 대단히 커졌는데 그 안에 진정한 가족의식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진정한 가족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정복할 만한 어떤 능력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된 가족 공동체 의식이 없는 교회와 성도는 그 심령에 공허함만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좋은 환경 속에 살면서도 끊임없이 공허해 하는 이유는 소속감의 결여와 공동체 경험의 부족에서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한 공동체의 형제 자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 없이 내가 못살고, 나 없이 그대가 못사는 아름다운 가족, 서로 돌봐주고 서로 세워주고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성장하고 함께 쓰임 받는 멋진 가족교회, 이것이 바로 공동체요 주님이 원하시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꿈꾸고 함께 만들어가야 할 언양 영신교회 가족 공동체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미국 시카고에 교회를 공동체로 만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쳤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일이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된 여성작가 '마러 폴'이라는 사람이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이라는 잡지에 이런 고백적인 글을 썼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세우고 유지하는 일에 대한 자신의 무능함을 절감하면서 슬픔과 실망을 토로하는 자기 고백적인 글이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를 공동체로, 하나님의 가족으로 만드는 것이 이렇게도 어렵습니까?"

그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신들도 교회에서 이런 실망과 낙심을 경험했다는 수많은 편지들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독자의 편지 가운데는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나는 초대받지 않은 파티장 밖에 서서 창문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여 여러분은 이런 느낌을 가져 본 적이 없었습니까?  저는 한 교회를 섬기는 목사이지만 시시때때로 이런 고독과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하지 않고 공동체적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서로의 시간을 냈습니다.  거기에다 신앙과 인생의 승패를 걸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빛으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소금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교회가 빌 하이벨스의 윌로크릭 공동체교회입니다.  그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미국에 있는 5,000여 교회들이 그들과 똑같은 철학과 원리로 교회를 섬기기를 원합니다.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미국교회에 커다란 영적인 부흥을 하나님이 주시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많은 교회들이 똑같은 원리를 배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우리 교회의 지상과제가 있다고 하면 우리 교회를 얼마만큼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로 만들어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이 가족은 영원히 더불어 함께 살 가족입니다.  신약의 교회서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에베소서 2장 1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입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언양 영신교회에서 손님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구경꾼의 신앙인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가족 중심에 서야만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하늘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마다 때마다 이렇게 선언하고 다짐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다같이 따라 하시겠습니다.  언양 영신교회는 하나님 안에서의 한 가족이다.  우리 셀목장은 생명을 같이 하는 믿음의 공동체다.  우리는 한 가족이다.

이 고백과 선언이 분명해 진다면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가족을 세워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다가 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직분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각양의 은사들이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내가 건강하고, 또 건강해야 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몸인 교회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집이 있어야 하고, 또 집이 필요한 이유도 이 집을 하나님의 집으로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하나님의 집으로, 하나님의 가족으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하여 흔쾌히 내어놓았습니다.  자신들의 집에 아름다운 셀목장 하나를 세우는 것이 그들 인생의 목적이었습니다.  동일하게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가정과 집에 아름다운 셀목장 하나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꿈이요, 비전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기존의 전통적인 교회의 구조로부터 벗어나서 셀 교회로의 전환입니다.  이제 첫 걸음을 옮긴 우리들로서는 앞으로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셀 교회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셀 교회로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교인들을 훈련시켜 가야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인들로 하여금 셀 교회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고 함께 복음의 능력을 나누어야 합니다.

사실, 작년에 여러분들 앞에 셀 교회로의 전환을 선포하기 전까지 제 스스로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셀 교회로의 전환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셀 교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절대적인 헌신과 희생이 없으면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이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께서 그토록 세우시기를 원하셨던 바로 그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가족 공동체로서의 셀 교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로의 회복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직접 계획하시고 디자인하신 교회로의 회복을 꿈꾸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우리는 그 모델을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 우리가 꿈꾸고 만들어가야 할 건강한 교회는 어떠한 교회입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교회는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는 바,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건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첫 번째 날개는 대그룹 혹은 축제로서의 주일예배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언양 영신 가족들은 주일에 드리는 이 예배시간을 통하여 예배의 영광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예배 시간 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온몸으로 체험하셔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주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뜨겁게 체험하기를 축복합니다.  은혜와 감격이 있는 예배가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 날개는 소그룹으로 모이는 셀 목장의 날개입니다.  우리는 이 목장을 통하여 초대 교회 성도들이 누렸던 돌봄과 교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친밀하고 구체적인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목장 사역 속에서 우리는 낮아지신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가게 될 것입니다.

교회 역사상 가장 생동하는 교회였다고 믿어지는 초대교회, 다시 말해서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는 사도행전적 교회는 바로 이 두 날개를 사용했던 교회였습니다.

본문 46절에 보면,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뗐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성전에서의 모임은 첫 번째 날개인 대그룹 모임을 말합니다.  축제로서의 주일 예배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이 예배가 축제의 예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만지심이 있는 살아있는 뜨거운 예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 예배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집에서의 모임은 두 번째 날개에 속하는 소그룹 모임인 목장을 말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초대교회의 두 날개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여 갈라디아서 6장 10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여기에서 믿음의 가정이라는 말이 'the family of believers'라고 해서 믿음의 가족이라는 단어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그런데 이 가족됨을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셀 목장입니다.  우리 교회가 셀 목장으로 전환하려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족 공동체로서의 강한 연대감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가족 교회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목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목장에는 예배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장의 본질은 예배가 아닙니다.  목장에는 성경공부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장의 본질은 성경공부가 아닙니다.  목장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장의 본질은 기도가 아닙니다.  목장에도 찬양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장의 본질은 찬양이 아닙니다.

목장의 본질은 코이노니아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일반적으로 교제, 친교로 번역이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코이노니아는 교제 그 이상입니다.  여기에서의 코이노니아는 삶의 나눔을 말합니다.  삶의 참여를 말합니다.  목장에서는 자기의 삶을 열어서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목장 모임에서의 가장 중요한 시간은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 자기의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나눔의 교제가 우리에게는 치유와 위로, 격려 더 나아가서는 변화를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눈다'는 말은 영어로 임파테이션(impartion)입니다.  그러니까 셀 목장을 갖는 중요한 이유는 임파테이션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셀 목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교회에 부어주신 기름 부으심을 함께 나누는 성령의 임파테이션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몸된 교회에 주신 축복과 부흥의 몫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정마다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축복의 임파테이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목적과 비전이 있습니다.  이 비전을 모든 성도들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셀 목장에서 비전의 기름 부으심, 비전의 임파테이션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두 날개로 비상하는 건강한 가족 공동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교회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는 재생산이 있는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살아있는 유기체는 스스로 재생산하고 유지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생명체적인 원리에 의해서 성장해야만 합니다.  교회는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따라서 건강한 생명체는 번식을 해야만 합니다.  건강한 셀그룹은 1년 안에 번식을 해서 분가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식하지 못하는 세포는 암세포입니다.  번식하지 못하는 셀, 정체된 셀 때문에 교회가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가족의식을 가지고 생명력을 가지고 우리의 셀을 번식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지상 대명령이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교회 안에만 있지 말고 세상을 향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나가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십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  재생산을 하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소원은 재생산이어야 합니다.  꿈에도 소원은 재생산이어야 합니다.  사과나무의 진정한 열매는 또 다른 사과나무입니다.  셀 목장의 진정한 열매는 또 다른 셀 목장으로의 번식입니다.

어느 대학의 종교학 교수는 무당과 신분을 비교 연구하고 그 논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독교 사제들이 무당만큼이라도 자기 신에게 신실하고 충성한다면 세상은 이미 바뀌어져 있을 것이다.  미신을 믿는 것만큼 만이라도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신도들이 믿고 따랐다면 그들은 기적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 안에 참된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역설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공동체가 이토록 아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이 땅의 교회가 이토록 아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속에 있어야 할 사랑과 헌신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섬김과 돌봐줌과 세워줌이 모자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시고 원하시는 교회로의 건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기를 원했던 기독교 기초 공동체!  그것은 우리 자신을 바칠 가치가 있습니다.  생명을 바칠 가치가 있습니다.  물질을 바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모든 것, 내 생애를 던져 헌신할 가치가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갱단의 한 사람으로 살다가 라디오를 통해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어 목사가 된 미국 보스톤 한 공동체의 지도자 유진 리버스(Eugene Rivers)의 글 가운데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폭력배 세계만큼이라도 충성과 헌신, 결속과 의리가 있다면 세상은 금방 변화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에게는 이미 태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를 찾으십니다.  믿음이 있는 자를 칭찬하십니다.  믿음을 보시고 고치십니다.  믿는 자에게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혼돈의 시대에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십시오.

아십니까?  우리의 믿음은 사용할수록 커집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사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 안에 열정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보십시오.  성령으로 뜨거워진 믿음의 선배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충성되게 감당하면서 살아갔는가를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모든 일에 있어서 열정적입니다.  그러므로 열정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셀목장 하나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는 그것, 그 목장을 섬기기 위해서 드리는 충성, 그 모든 것들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영원히 가치가 있는 사역입니다.  주님이 반드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리더가 되십시오.  공동체의 리더가 되는 꿈을 꾸십시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리더가 되는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D12 양육 시스템을 따라 세움을 받는 셀 리더들이 더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

셀 리더가 자신의 셀을 4개 분가시키게 되면 슈퍼셀리더가 됩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슈퍼 셀리더가 되면 그에게는 슈퍼 셀 리더로서의 상징인 반지를 끼워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재단에서 뼈를 묻고 담임목사와 함께 한 비전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을 디렉터로 세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꿈을 꾸어야 된다고 한다면 황홀한 평신도 사역의 꿈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아름다운 자리에서 영광을 누리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지역 사회에서 셀 공동체를 세우십시오.  그 공동체의 리더가 되는 꿈과 환상을 가지십시오.  그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우리 모두가 셀목장,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복되고도 건강한 교회 공동체로 함께 만들어 가는 멋진 꿈을 꾸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셀목장의 리더로 부르시고 또 공동체를 세우도록 여러분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어떻게 쓰기를 원하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가진 은사를 더듬어 보십시오.  삶의 환경을 더듬어 보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눈을 열어서 그 비전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다 각자 다름대로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음성을 듣는 데에 예민하십시오.

주님 앞에 요청하십시오.  주님 제게 눈을 열어 주십시오.  비전을 주십시오.  환상을 주십시오.  성령이여 내게 기름 부어 주십시오.  그래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교회를 세워 가는 일에 밀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찬양을 하면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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