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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빛이 비추었습니다 (고후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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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며 즐거운 여행도 있고 힘든 여행도 있습니다. 여행길이 편안하고 잠자리가 좋고 먹을 것이 좋으면 사람들은 보통 즐거운 여행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여행에서 그런 것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여행자냐 인솔자냐에 따라서 여행길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여행에서 따라만 다닐 때는 별 문제가 없는데 인솔자가 되면 많은 문제를 감당해야합니다. 그러니 결코 편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만큼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의 여행길은 결코 편안하지를 않습니다. 목적지는 있지만 그곳에 정해진 장소나 안내자나 숙소나 먹을 것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더욱이 그에게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도 있습니다. 놀러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월급 받고 하는 것이 나니라 자비량으로 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반기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꺼리는 일을 합니다. 더욱이 그의 일을 방해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그러니 평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1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 하지 아니하고...지분을 하나 받았는데 그 직분이 부담 되는 직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제일 무서운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전도하라는 말입니다. 복 받아라 하면 부담을 가질 분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전도하라하면 기뻐 할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부담스럽습니다. 이일은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다 부담스럽게 느낍니다. 바울은 그 일을 맡았습니다. 그 일을 맡고난 다음에 편안한 날이 별로 없습니다. 수도 없이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귀한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하나는 긍휼하심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낙심 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긍휼하심을 입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입니다. 은혜를 깨달으면 감격이 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헌신이 나옵니다. 그래서 순교자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나 순교를 합니까?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에 체험했기 때문에 보았기 때문에 순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보세요. 은혜를 알기 전에는 다 도망갔습니다. 모두다 인간의 욕망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성령 받고 은혜를 깨닫고 난 다음에는 주를 위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순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도 이은혜의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민방공 훈련 가운데 실제상황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연습이 아니고 실제 일이 닥쳐서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것이 실제 상황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로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밤낮 목사가 말하는 예수, 목사가 말하는 하나님 목사가 말하는 말씀이 아니고, 여러분이 만난 예수,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 여러분에게 들려진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어야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긍휼의 입었다 이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낙심하지 아니한다. 했어요. 8절에도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라고 했고 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낙심할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잘 들어 주지를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난을 합니다. 심지어 고난을 겪는 수 도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일을 수도 없이 당했습니다. 감옥에도 갔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도 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낙심 하지 아니합니다. 그만큼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일이 소중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에게 받은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성지 순례 중 애급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가려면 사하라 사막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것은 출 애급 여정이기도 합니다. 이곳을 지나려면 사방으로 보이는 것이 온통 모래땅과 붉은 산뿐입니다. 얼마를 가도록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내 산을 통과하면서 군데, 군데 나무가 서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 모양이 앙상하기 그지없고 가시나무처럼 정감이 가지를 않습니다. 이 나무가 이름 하여 싯딤 나무입니다.

처음에 이 나무를 보았을 때는 땔감으로나 쓸까? 다른 아무데도 쓸데가 없는 나무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잎이 적어서 그늘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곧게 반듯하게 자라서 기둥감도 되지 않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 나무는 너무 너무 단단하고 질겨서 톱질을 하면 톱이 휘어지고, 꺾으려 해도 꺾이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쓸모없는 나무, 못된 나무라고 해서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별 볼일 없는 나무로 법궤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 나무로 법궤를 만들어 순금을 입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 두도록 하셨습니다.

그 사정을 알고난후에 이 지역을 지나는 성지 순례자들은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고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저도 쓸데없는 나무라 생각했다가 법궤를 만들었다 하니 나무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억센 나무가 아니라 무언가 장엄하고 굳굳한 나무 모양이 아주 멋이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손대시니 광야에 버려진 것 같은 나무가 존귀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잘 것 없는 우리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시면서 빛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아무쓸모 없는 자가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어려움도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이 빛을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단 합니다. 2절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이것은 바울이 이렇게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자기 자신은 이렇게 살기로 작정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작정이 무엇인가요. 오직 진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삶의 목표입니다. 진리는 복음입니다. 진리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그는 옛 생활을 버렸습니다. 인간 적으로 살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보석 집에 가면 눈에 무엇인가 끼고 보석을 열심히 감정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냥 육안으로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흠이나 결점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숨은 부끄러움입니다. 사람에게는 이런 숨은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본인만이 간직하고 있는 부끄러움 내 놓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잇습니다. 그런 것 까지도 복음을 위하여 다 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깨끗한 보석처럼 그렇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복음은 보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복음이 가리어 졌다면 무슨 일입니까? 그것은 마귀가 마음을 혼미하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혼미하게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6절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 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이것이 은혜요 할렐루야입니다. 빛이 골고루 온대지에비치니 추위가 물러가고 생명의 역사가 약동을 합니다. 말씀의 빛이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골고루 비치어서 생명이 약동하고 힘 과 능력이 솟아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말씀이 들려져야 합니다. 말씀이 들려지는 것이 빛이 비추어지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 꼭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리고 예화 같은 것만 들리고, 은혜를 받을 얘기는 안 들리고 목사님 성경 잘 못 말한 것만 들리고 내내 옆 사람하고 이야기하다가 예배시간마나 되면 잠이 와 꾸벅꾸벅 졸게 되면 곤란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혼미케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려지는 사람은 성령으로 충만해서 예배당 만 들어와도 가슴이 설레이고 기대감으로 가득 차고 아멘이 저절로 나오는 사람입니다.

당신에게 빛이 비추어져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집니까? 그러면 이제는 그리스도의 빛이 되어 비추시기바랍니다. 빛을 받은 전등은 빛이 납니다. 영상을 받은 TV모니터는 그림을 보여 줍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빛을 받았습니다. 복음이 비치고 예수그리스도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이탈리아의 한 화가가 도자기에 최후의 만찬을 그렸습니다. 그 화가는 이 그림을 통하여 복음이 전하여 지기를 바람으로 온 정성을 다 해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 왔습니다. 그림이 그려진 도자기를 본 친구는 그 화가가 그린 그림은 본 척도 안하고 도자기의 아름다움만 칭찬 했습니다. 그 화가는 많이 실망했습니다. 보이고 싶어 하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도자기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내게서 빛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를 본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발견합니까? 내게는 예수는 없고 내 외모만 보이는 것은 아닙니까? 저와 여러분에게서 그리스도가 보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보여 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구가 있습니다. 빌1:20-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김영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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