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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 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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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중보기도에 대해서 많은 말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중보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중보기도의 능력과 필요성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중보기도의 능력은 합심하는 것에 중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의 중요한 전략가운데 하나가 합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에 모였다 하면... 남의 잘못을 들춰내서 비판하거나 흉을 보는 일에... 우리는 쉽게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도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몇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많은 이야기 가운데... 그 주제가 무엇입니까?...
아마 많은 이야기들은 주로 자기를 자랑하는 이야기... 아니면 남을 비판하거나 흉을 보는... 그런 이야기가 많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입니다.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분쟁하도록 만들고 합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서는 절대로 안되겠습니다.

사람은 함께 비판하고 함께 맞장구를 쳐가면서... 같이 흉을 보았으면서도 집에 가서는 같이 흉을 본 그 사람을 더 나쁘게 생각합니다.
"남 흉볼 자격이나 있나? 자기는 어떻고?" 그럽니다.
"자기는 더 그러면서...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그러네?" 그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대화는 세상사람들과는 뭔가 좀 달라야 합니다. 모이면 남을 흉보고... 모이면 남을 비판하는... 그런 대화가 오고가서는 안됩니다.
함께 있을 때는 맞장구치고.. 같이 웃으면서 비판을 했어도.... 집에 가면 같이 모였던 사람들을 다 욕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도 그랬으면서... "이궁... 이 교회 사람들... 못쓰겠네..." 그러면서 교회 전체가 나쁜 것으로... 성도들 전부가 나쁜 사람으로.... 도매금으로 넘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노리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는... 모였다 하면 은혜를 말하고... 모였다 하면 하나님 얘기하고... 기도 응답 받은 간증을 얘기하고... 남을 칭찬하는... 그런 얘기만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다행히... 남을 비판하거나 흉을 보는... 그런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100%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단점만 보고자 하면 모든 것이 미워 보이고 좋은 점만 보고자 하면 모든 것이 다 예뻐 보이는 겁니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온 성도가 합심해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고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그런 은혜의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합심하지 않으면 절대로 부흥이 없습니다. 합심하지 않으면 절대로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반드시 합심해야 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7:1∼14절의 말씀은 마태복음 5장에서부터 연결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은 그 유명한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산상수훈이 5장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7장까지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도 바로 5장, 6장, 7장.... 산상수훈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산상수훈의 총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입니다.

어떤 사람은 산상수훈을 가리켜 '천국시민의 헌장' 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진정한 제자도'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 천국 시민이라면 산상수훈에서 가르쳐주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해석하면... "천국시민이라면 이렇게 살라!" 하는 율법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봐라... 그러면 천국이다!" 그런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산상수훈이 기록된 배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에게 모여든 많은 무리들을 보시고... 주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가르쳐 주신 내용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5:1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무리들을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은 무리들의 무엇을 보고 말씀하셨을까요?... 저들이 방종하고 타락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대로 살라고... 율법적인 말씀을 가르쳐 주신 겁니까?... 아닙니다.
주님은 무리들의 불쌍하고 불행한 인생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해서.... 주신 말씀이 바로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심판을 받고 저주를 받는다는 율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되고 형통하고... 복을 받기를 원하시지... 잘못한 것을 찾아내서 심판하고 책망하고 저주하려고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그러면 우리가 감사 감격해서 충성하고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처럼 말씀을 억지로 지켜나가므로... 은혜가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셔서... 저들에게 참으로 필요한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 내용인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에도...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결점이나 잘못을 보시고... 책망하고 저주하고자 하시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사랑의 눈으로 인생의 불쌍한 면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천국을 모르고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들에게 복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천국을 선포하고 있어요...
산상수훈 가운데 오늘 본문은 제일 중요한 부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을 꿰뚫고 있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싸우거나 미워하면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족 중에도 한 사람만 삐딱한 사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가족 전체가 깨집니다.
어떤 모임이나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만 삐딱한 사람이 있으면 전체 분위기가 깨지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그런 내용입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려면... 즉 상처를 빼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1∼6절까지의 내용은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결의 방법으로서... 7∼11절까지 보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의 말씀은 작은 결론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13∼14절의 말씀은 1∼12절까지 전체를 묶어주는 결론적인 말씀인데...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랬습니다.

1. 비판하지 말라!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눈에 '티' 로 비유했습니다.
눈 속에 티가 들어간 경험... 아마 대부분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겁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눈 속에 티가 들어가면 아주 고약합니다.
눈물이 철철 나면서... 눈을 뜨지 못하니까 아무것도 못합니다. 처음에는 눈을 비벼보고 거울을 쳐다보면서 티를 빼낼려고 애를 씁니다. 사람들에게 "호..." 불어달라고 하고... 그래도 안되면 맑은 물에 씻기도 하고... 그래도 안되면 병원까지 가야 합니다.
남에게 상처 주는 것을 눈에 티 들어가는 것으로 비유했어요...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고약한 것입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개의 경우에는 그 사람을 비판하게 됩니다. "저 사람만 없으면 조용 할텐데..." "저 사람이 있으니까 분위기 다 깨지네..." 그러면서 비판해요...
비판이란 욕하고 비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정에서도 이런 문제가 많습니다. "어이구, 저놈의 자식... 자식이 아니라 웬수야 웬수!"
부부간에도 부모자식간에도...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비판이 오고갑니다.
그러나 비판은 또 다른 비판만 낳을 뿐입니다.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려거든... 고치려거든...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라 그랬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해석... 일반적인 해석은 다른 사람의 작은 죄를 지적하지 말고.. 나에게 있는 더 큰 죄를 회개하라는... 그런 말씀으로 오늘의 본문을 해석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본문 전체의 내용으로 볼 때... 다르게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제의 눈 속에 티를 빼려고 하기보다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내라" 그랬는데... 여기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라!"
비유치고 너무 과장된 말씀은 아닙니까?... 대들보는 쉽게 말하면 통나무입니다.
아름드리 나무예요... 어떻게 통나무가 눈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말도 안되죠...
다시 말하면 말도 안 되는 죄를 회개하라는 거예요...
뭐가 말도 안 되는 죄입니까?... 바로 형제를 비판하는 죄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야고보서 4:11∼12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그랬습니다.

남을 정죄하고 심판할 수 있는 분...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님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니면서... 입법자도 아니고 판단자도 아닌데...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남을 판단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대역죄를 짓는... 엄청난 죄를 짓는... 그런 경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볍게 넘어가는 문제도.... 사실은 큰 대들보와 같은 죄를 많이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6절 말씀에 보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랬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면 개가 압니까?... 진주를 돼지에게 걸어주면 돼지가 압니까?... 모르죠...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라는 거예요...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비판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기서 거룩이나 진주는 다 옳은 것을 말합니다. 비판하는 말을 하나 하나 분석해 보면 다 옳은 말입니다. 진주 같은 말이요 거룩입니다. 그러나 이걸 사용하게 되면 상처밖에 남지 않습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부인이 너무 김치 담그는 솜씨가 그저 그렇습니다. 너무 맛이 없어요..
어느날 화가 난 남편이 한 마디 합니다. "당신은 나이 40이 넘도록... 아 그래 친정 엄마한테 김치 담그는 것 하나 못 배웠어?" 그럽니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면... 뭐 틀린 말이 없습니다. 맞는 말이죠... 거룩이요 진주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곧장 반격이 나옵니다. 아내가 말하기를 "그럼 당신은 못질 하나 아버지한테 못 배웠냐?" 그럽니다.
서로 비판하고 상처만 주고받는 거예요... 비판은 비판만 나오고 고쳐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판을 수용할 만한 인간이 없다는 거예요...
개에게 주지 말라... 돼지에게 주지 말라는 것은... 비판을 수용할만한 인간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짐승입니다. 개나 돼지와 같이... 인간에게는 그걸 받아들일만한 넓은 이해심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어요...
그래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2. 위하여 기도하라!
야단치고 윽박지른다고 고쳐지는 남편이나 아내... 아이들은 없습니다.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사랑'입니다. 천국의 원리는 사랑이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13∼14절 말씀에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그랬습니다.
여기서 '넓은 문'은 비판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전부 비판해요...
그러나 '좁은 문'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이 길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어려운 길입니다.
그 좁은 문이 바로... 사랑입니다.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도... 인내하고 기도하면서 사랑하며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지만 십자가의 길이요 승리의 길, 화해의 길입니다.
이 길이 어렵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그런 어려운 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면하는 '좁은 문'입니다.
그러나 그 길로 갈 때 해결이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을 박는 저들을 향하여... "하나님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십자가로 인하여 승리케 되었습니다.

눈에 들어간 것을 후비면... 상처만 남습니다. 해결이 되지 않아요... 눈물을 흘려야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았어도 여전히 눈물로 기도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어떤 기도를 해야 됩니까?...
마태복음 5:23∼24절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랬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화목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화목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면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마태복음 5:43∼44절에서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랬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기도...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오히려 사랑을 품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14∼1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용서하는 기도... 용납하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러나 사실은 그게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죠...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오히려 기도합니까?... 예배를 드리려다가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먼저 화해하고 다시 와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은 주님이 도와주셔야 되는데... 감사하게도 주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에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셨는데...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하신 말씀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같은 말씀이 누가복음 11:13절에서도 나오는데 여기서는 좀더 자세히 나와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형제의 티를 보고... 즉, 상처를 받고 핍박을 받아도... 오히려 그를 용납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그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즉, 성령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시죠....
흔히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르는데, 이는 우리를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이해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도... 인간의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령이 도와주실 때...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도우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믿음의 권속들은 하나가 되기 위하여 힘쓰시기 바랍니다.
상처를 주는 형제가 있다면 미워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사랑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는 것이요 진주를 돼지에게 주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모두다 맞는 말이요 틀린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헤결되지 않습니다.
비판은 비판을 낳고 미움은 미움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던 바리새인들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리장 삭개오, 창녀 막달라 마리아 같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남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나 자신이 죄인인데 누구를 판단하고 누구를 정죄하겠습니까?... 아무런 할 말이 없습니다.

쉬운 것 같아도... 인간의 힘으로는 부족하지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돼요...
오늘 본문 7절 이하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랬습니다.

계속해서 11절 말씀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랬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더욱 사랑하고... 하나가 되기 위하여 힘쓰고 애쓰는... 그런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는데... 그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생명의 길, 승리의 길, 주님 기뻐하시는 좁은 문으로 다 들어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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