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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한 사마리아인이 됩시다 (눅 1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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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참된 이웃이 누구인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신약 시대의 모습 뿐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까지도 그려내고 있습니다. 본문의 강도 만난 사람들은 바로 현대인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입니다.

강도가 누굴까요? 성경은 마귀와 귀신을 강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 이라』

그러므로 강도 만난 사람이란, 사단 마귀의 권세로 인해 정신적, 육제적, 물질적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말합니다. 정상적인 삶의 모양이 아닌, 일그러지고 굴절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정신적 황폐화와 가치관의 전복으로 삶의 참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바로 이런 강도 만난 자들의 이웃이 되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본문의 선한 사마리아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선한 사마리아인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고,
우리도 그런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1.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죽음의 위기를 맞은 사람이었습니다.
(눅 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본문의 사마리아인에게 있어 강도만난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입니다. 어쩌면 평상시 종교 문제로 사마리아인들을 늘 멸시하고 핍박해오던 유대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는 기꺼이 강도 만난 자에게 달려가 도움을 베풉니다.

오늘 예수님이 지적하고 있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본문의 사마리아인은 바로 생명을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을 지으신 이를 경외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명의 주인을 멸시하는 자는 생명을 경시합니다.
(시 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의인은 육축의 생명이라도 돌아봅니다. (잠 12:10)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생명은 사회적, 경제적, 윤리적, 종교적 차이를 무력화시키는 유일한 힘입니다. 모든 생명에는 주인이 있으며, 그 주인은 동일한 한 분,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자, 불쌍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은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사마리아인의 이러한 모습을 매우 의도적으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눅 10:31) 『제사장이..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눅 10:32)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눅 10:33)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본문의 사마리아인은 긍휼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웃의 삶에 모양을 눈여겨보고 관심을 기울일 줄 아는, 마음의 넉넉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눈에 비친 강도 만난 사람은 불쌍하고, 꼭 도와주어야 할 자로 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내 주변 사람의 삶의 모양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웃의 아픔이나 어려움에 대해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까요? 성경은 말합니다.

(마 25:35-40)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 이니라』

3. 기름을 준비하고 있는 자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여행길에 기름과 포도주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눅 10: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기름은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을 가리킵니다.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고후 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포도주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의 피입니다.
(마 26:27-28) 『[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지혜로운 자는 언제나 예수의 피와 성령의 기름을 준비합니다.
사망 권세를 이길 힘은 바로 이 피와 기름뿐이기 때문입니다.
(마 25:3-4)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4. 주막을 다니는 자였습니다.
본문의 사마리아인은 자신이 다니는 주막이 있어, 여행길이면 항상 그곳에 들르는 자였습니다.
이 주막이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교회를 상징합니다.

여행길에 낯선 객을 맡기고, 그 생명을 돌아봐 주길 부탁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주막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바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망의 그늘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현대인들의 상처나고 약해진 것들을 치유하고 강건케 해줄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평안한 안식과 풍성한 먹거리로 우리 영혼과 삶을 배불릴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바로 이런 곳으로 강도 만난 이웃을 데리고 왔습니다. 오늘 우리도 강도 만난 우리의 이웃을 교회로 안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참된 치유와 회복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5. 자신의 물질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자였습니다.
(눅 10: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자신의 물질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기꺼이 남을 위해 내놓는다는 것은, 그가 바로 희생정신을 가진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를 단지 주막에 맡긴 것으로 자신의 의무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1)남을 위해 기꺼이 물질을 허비합니다. 뿐만 아니라,
    2)그를 돌아봐 달라고 주인에게 부탁을 합니다.
    3)돌아오는 길에 그를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합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것을 희생하는 수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물질도 사용해야 하고, 때로는 남에게 굽히기도 해야 하며, 또 때로는 끝까지 그 사람을 책임지는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강도 만난 이웃을 교회로 데려왔습니까? 그렇다면, 그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그 관심과 사랑의 끈을 놓지 맙시다. 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새 생명을 얻을 때까지 수고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결 론>

오늘 본문의 비유는 율법사의 영생을 얻는 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율법사는 사랑이 율법의 완성인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이며 어떻게 베푸는 것인지 모른 채, 율법의 지식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은 우리가 강도만난 자에게 참 사랑을 베푸는 이웃이 되어주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주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치 않는 자가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실천하는 자가 됩시다.

생명을 사랑하고, 이웃에 관심을 가지며, 기름을 준비한 선한 사마리아인을 본받아, 우리도 교회로 강도 만난 이웃을 인도합시다. 그리고 수고와 희생으로 돌보아 줍시다.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함으로 주의 뜻을 행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박성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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