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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가 쓰시겠다 하라 (마 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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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의 분들과 웃으며 인사합시다. “주께 쓰임받는 인생이 됩시다”

  혹시 1988년 서울 올림픽의 탁구 선수로 출전해서 금메달리스트가 된 양영자 선수를 기억하십니까?
  양영자 선수는 현재 부부가 선교사가 되어 몽골 울란바트로에서 450km 동쪽으로 떨어진 동고위 지역에서 9년째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안식년을 맞이해서 1년 6개월 여정으로 다시 고국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몽골인, 현지인 한명과 예배드리는 것으로 선교 사역이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주일이면 40여명의 현지인들이 와서 함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고 합니다. 근래에는 탁구 선교도 겸해서 탁구를 지도함으로써 더 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하나 참으로 감동적인 얘기는 금메달리스트이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다달이 받는 연금 100만원을 선교사로 떠날 때, 어느 노 목사님 앞으로 돌려놓아 그 분의 생계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고 합니다. 부부는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먹이시고 입히시는지 기대하면서 선교지로 나갔고, 하나님이 9년 동안 한 번도 먹는 것, 입는 것 때문에 걱정하지 않도록 채워주셨다는 고백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저는 양영자 선교사를 보면서, ‘아! 하나님은 저렇게도 사용하시는구나. 탁구로 세계를 제패한 금메달리스트, 저 영광스런 선수를 몽골 지역을 위한 훌륭한 선교사로도 사용하시는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에릭 리델(Eric Liddel, 1924년 파리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이라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중국에 가서 남은 생애를 선교사로 보낸 것처럼, 우리 양영자 선교사도 참으로 귀한 생애로 쓰임을 받는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습니다. 탁구로 세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그녀가 이제는 영혼을 살리는 선교사로서 몽골 지역에서 요긴하게 쓰임 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평상시에는 그 길을 그냥 걸어서 들어가셨지만, 오늘은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십니다. 그것은 바로 스가랴 9장 9절에서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라고 증거하듯이, 메시야로 오시는 분이 겸손하여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다는 말씀이 예언되어 있기에 그 예언을 이루시고자 그 분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감람산 벳바게 지역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두 명의 제자를 보내십니다. 다른 성경을 참고하면 베드로와 요한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을 보내서 “저 건너편 마을에 가면 나귀와 아직 사람이 한 번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있는데 그것을 끌고 오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덧붙이시기를, “왜 끌고 가느냐? 고 주인이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실제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건너 마을에 가니, 어느 집 앞에 나귀 한 마리와 나귀 새끼 한 마리가 매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풀어 데리고 가려고 했더니 그것을 바라보던 주인들이, “아니, 남의 나귀는 왜 끌고 가는 거요?”하고 묻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예! 주께서 쓰시겠다고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19장 33절 이하에도 동일한 기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말씀 할 때 주인이 허락했고, 그 나귀를 끌고 와서 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그 나귀 새끼 위에 얹고 예수님이 그 나귀를 타고 “호산나,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는 많은 사람의 영광과 찬송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3월 1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기까지의 이 모든 과정과 행적을 살펴보면서, 부활의 아침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계절, 경건과 회개의 계절입니다.
  사순절과 아울러 우리 영신교회에서는 동일하게 연속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사순절에 깨어서 기도할 수 있다면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특별히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을 보면, 아주 귀중하게 쓰임 받은 짐승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귀 새끼입니다. 참으로 미천한 동물에 불과하지만 누구보다도 귀중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적어도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에는 약 200만 명의 순례자들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그런 수십만의 사람들 앞에서 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등에 태우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 영광을 체험한 것이 바로 그 나귀 새끼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귀 새끼는 아주 귀중하게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천한 동물이지만 그는 예수님을 태우는 영광을 맛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이들 중 가장 축복된 인생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당신은 우리 집의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우리 공동체에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즉, 내가 어느 공동체나 모임에서 쓸모 있고 필요한 사람으로 요긴하게 쓰임 받을 때 그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이 가장 비참할 때는 언제일까요? “당신은 필요없어.”, “당신은 쓸모없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는다면, 굉장한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느 젊은 부부가 미국에 유학을 갔답니다. 남편은 공부에 전념 하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뒷바라지를 다 했습니다. 미국생활이야 우리가 다 알다시피 시작하는 일이 세탁소, 슈퍼마켓 등의 일입니다. 또 남의 빵집 가서 일해주고 하루 일당을 받는 등의 일을 해서 남편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무려 7, 8년의 세월이 흐르고 남편이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가족의 장래의 일을 의논하다가 부부가 뜻이 맡지 않아 언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목소리가 높아졌고 험악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홧김에 부인을 향해 “이제 너 같은 건 필요 없어. 나가!” 그 말은 아내에게 크나큰 충격이었습니다. 7,8년 동안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으면서 갖은 고생, 식모살이 다 해가면서 남편 공부 시켜 놓았더니 필요 없다고, 쓸모없다고 나가라고 하니 그 아내에게는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한동안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자기 상실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내가 필요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상대로부터 듣게 될 때 그 충격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가장 축복된 말은, “당신은 정말 필요한 분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소중하고 요긴한 분입니다.”하는 얘기입니다.

  옆의 분들에게 축복 해 줍시다. “당신은 참 소중한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공동체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 삶의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습니다. 나 같은 것은 이 집에서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지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처럼 비극적이고 불행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이 나귀 새끼처럼 참으로 하나님 앞에 귀중하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때, 우린 귀중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4절, 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아멘. 

  왜 예수님께서는 굳이 걸어가시지 않고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선지자가 오래전에 예언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습니다. 스가랴 9장 9절에는 이미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이 나귀 새끼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왜 타셨을까요? 말을 타면 되지 말입니다. 그러나 나귀는 평화와 겸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겸손한 종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실 것이 성경에 이미 예고되고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나귀 새끼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면 우리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4영리를 가지고 전도하는데, 그 맨 앞에 보면 이런 말씀이 눈에 띕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옆에 분들에게 동일하게 얘기해 줍시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도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우리 인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이는 어두운데서 처해있는 자를 불러내기 위해서 내가 너희를 세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들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 이하에 보니,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길가에 있는 풀 한포기도 그냥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목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계획이 있는 것을 안다면 우리의 삶은 분명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이 땅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목적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그 목적을 아십니까?”하는 물음에, 응답자의 6%만이 내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안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94%는 왜 사는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인생이요, 바람 불면 이쪽으로, 저쪽으로 물처럼 흘러가는 유수와 같은 인생, 곧 대부분 많은 사람이 목적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을 개최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6주 동안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모두가 40일 캠페인을 통해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바로 알 때 우린 주께 쓰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주께 쓰임 받는 인생이 되려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3절을 읽겠습니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아멘.
  자, 누가 “그거 왜 끌고 가느냐?”말하면,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말합니다. 따라해 보겠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렇습니다. 주님이 쓰시겠다! 그러면 끝나는 것입니다. 이 ‘주’라는 말은 영어로, ‘Lord’ 주인을 의미합니다. 한자로는 임금 주(主)자입니다. 주인입니다. 주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한다는 얘기는 그 분을 내 주인으로 고백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주님께서 쓰시겠다는 얘기입니다.
 
  이 ‘주인’이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소유자’입니다. 주권을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소속된 인생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만물의 주인 되신 주께서 쓰시겠다 하십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아 그러십니까? 그러면 가지고 가십시오. 라고 말씀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은 아주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온 우주의 모든 것은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역대상 29장 11절에 보니,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해와 달과 별도 주님의 것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주님의 것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이 예배당은 누구의 것입니까?”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성가대 입고 있는 가운은 누구 것입니까?” “주님의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생명과 시간, 재능과 물질은 누구 것입니까?” “주님의 것입니다.” 그렇게 믿습니까?

  라틴 아메리카에서 목회하셨다가 지금 미국 수정교회에 계신 까를로스 오르티즈 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목회할 때 하신 설교 가운데, “여러분, 우리의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재능과 시간 물질, 다 주님의 것입니다. 종이를 나누어 드릴 테니 여러분들의 가진 것이 누구의 것인지 다 표시하시기 바랍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32평 아파트 이거 내거 아니지 하나님 것이지.’,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이것 주님의 것이지’, ‘내 통장에 있는 돈 얼마... 이것 하나님의 것이지.’, ‘내 땅 다 하나님의 것이지.’하고 교인들이 다 썼습니다. 재산 목록을 다 썼습니다. 내 생명과 내 모든 것도 하나님의 것이지 하고 다 써서 제출하게 했답니다. 그랬더니 교인들이 집에 있는 땅문서까지 다 가져 왔답니다. 그러나 그 교회 당회는 이거 우리가 받아서 뭐합니까? 다시 돌려드립시다. 하나님이 저들에게 맡기신 것인데 저들이 잘 관리할 수 있도록 돌려드립시다 하고 결정해서 다시 돌려드렸답니다. 
  그리고는 그 교회에 부흥회 하는데 부흥강사가 오셨는데 호텔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러면 “김 집사님, 이리 와 보세요. 김 집사님 댁이 누구 것이지요?” “예!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부흥 강사님을 집사님 댁에 모시길 원하십니다.” “권사님 이리 오세요. 권사님 차는 누구 것이지요?” “하나님 것입니다.” “예! 주님께서 오늘 이 분을 위해서 이 차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할 때 그 차를 내어 드렸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소유권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특별히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아주 재미있는 얘기가 나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셔서 유월절 잔치를 열어야 하는데 장소를 가지고 고민을 하십니다. 그러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서 성안에 들어가서 다락방 장소를 예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면 어떤 이가 물동이를 이고 지나갈 것이다. 그 사람을 따라가라. 그러면 집에 들어가서 여기 주님이 에비하신 방을 보여 달라고 말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이 방을 보여 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 말을 듣고 가니 진짜 물동이 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따라가서 “우리 주님이 방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했더니, “ 이리로 올라와 보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여기 3층에 넓은 다락방이 있습니다. 혹시 음식도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그것도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인데 주님이 쓰신다는데 제가 반대할 이유가 없지요.”하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그 집에서 유월절 잔치를 하셨음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을 하려면 소그룹 모임이 필요한데, 그 소그룹 모임을 위한 장소 제공자들을 오늘 광고를 통해 신청을 받습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의 집을 주님이 쓰시겠다고 할 때 내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을 주님을 위해서 잠시 6주 동안 내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성가대원들은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집이 누추해서요....” 괜찮습니다. 5,6명이 앉을 자리만 있으면 됩니다. 텔레비전이 있고 비디오만 있으면 됩니다. 그저 여러분이 커피 한 잔 대접할 정도의 여유만 있으면 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날짜에, 여러분이 원하는 시간에, 5-6명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자리면 족합니다.
  주님이 오늘 여러분의 가정을 쓰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이것이 내 것인지, 주님의 것인지 구분이 안 되기에 비극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니, 한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농사를 많이 짓는데 소출이 많았습니다. 창고를 지어놓고 곡식을 다 쌓아놓고 평생 떵떵거리며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감사한줄 몰랐고, 이 모든 것이 자기 것인 양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내게서 네 생명을 걷어간다면 이 쌓아놓은 곡식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의 것인 줄 알고 착각했던 어리석은 자는 결국 하나님이 영혼을 걷어 가실 때, 쌓아놓은 재물은 자신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올 때 아무것도 없이 오지만, 생명도 주님이 주고, 건강도 주셨고, 육신도 주셨고, 재능과 시간을 주셨고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든지 사용하다가 돌아갈 때는 다 두고 갑니다. 생명도 두고 가고, 육체도 두고 가고, 집도 두고 가고, 차도 두고 갑니다. 영혼만 돌아갑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유주가 되시고, 그 분은 우리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인생만이 쓰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1장 3절에 보니,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탄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심으로써 여러분이 귀하게 쓰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님께 쓰임 받으려면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나귀는 최선을 다해서 예수님을 모셨을 것입니다. 만약 이 나귀 새끼가 저항을 했다든가, 뒷발을 들고 사람을 친다든가,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했다면 예수님은 그 나귀를 이용하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나귀 새끼는 아는지 모르는지 예수님을 그 등에 태우고 순순히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을 향해서 걸어 들어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드리십시오. 그리고 최고의 것을 들이십시오.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께 드리는데 가장 보잘 것 없는 것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가장 최고의 것을 드리십시오. 최선을 다하여 드리십시오. 그것이 성도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무디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무디 목사님이 살던 동네에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이 젊은이를 만나면 “여보게. 자네도 예수 믿고 나와 함께 교회에 가세.”라고 하는데, 이 젊은이가 뭘 좀 안다고 나서며 “성경에 보면 예수님 우편에 있던 강도는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해서 1분 전에 구원받았는데 나도 그럴 겁니다. 나도 자유롭게 평생 재미있게 살다가 마지막 죽기 전에 1분 전에 예수 믿고 나 구원받을 겁니다.”하더랍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무디 목사님이 얘길 들으니 이 젊은이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젊은이에게 꽃 화환을 보내는데, 싱싱하고 아름다운 꽃을 보낸 게 아니라 다 시들어서 이파리가 떨어지는 시들시들한 것을 보냈다고 합니다.
  젊은이가 보니 이해가 안 됩니다. “아니 목사님, 보내려면 똑바른 것을 보내야지. 왜 이런 것을 보냅니까?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을 왜 나한테 보냅니까?”하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 여보게 어떤가. 자네도 이 시들어가는 꽃을 보니 기분이 안 좋지? 그래. 싱싱하고 아름다운 꽃이 좋을거야. 하나님이 자네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네. 자네는 젊고 싱싱할 때 자신을 주님께 드리지 않고 늙고 쭈글쭈글할 때 주님께 드리려고 생각하는가. 주님은 자네의 생각을 아시고 얼마나 슬퍼하시겠나.” 그 때서야 그 젊은이가 깨닫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젊으면 젊은 대로, 연로하시면 연로하신대로 주님 앞에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능하면 지금, 조금이라도 젊을 때 주님 앞에 더 많은 것을 드리고, 드리려고 노력하십시오. 나중에 세상 일의 분주한 것이 다 끊어지고 직장 퇴직하고 이제 한가해지면 주님의 일 하지요. 여러분, 그 때에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못합니다. 우리가 젊고 힘이 있을 때 주님을 위해서 더 봉사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최고의 것을 드리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소명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여러분의 은사와 재능이 무엇인지 여러분 분별하십시오.

  스펄전이란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각기 주신 재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린 그 재능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 재능이 무엇입니까? 내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가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쉽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용하기를 원한다.”

  제가 언젠가 소개한 적이 있는, 소망교회 장로이시고 참존 화장품을 창업한 김광석 장로님이라고 계십니다. 이 분이 지금도 소망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만, 한번은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미국 퓰러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셨는데 다녀오시더니 걱정을 하나 하시더랍니다. 퓰러에 가니 장학기금이 많이 필요해서 일본 교회에서 100만 달러를 내고, 한국 교회에서 100만 달러를 내기로 했는데 일본교회는 이미 100만 달러를 냈지만, 한국 교회에서 내기로 한 액수를 약속한 목사님은 아직 준비를 못 하고 계시다는 걱정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10억이 넘는 큰돈입니다.
  장로님도 그 말씀을 듣고 고민을 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 때 그가 아침에 일어나 성경을 읽었는데, 그 말씀이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갖고 끌고 오게 하라, 왜 끌고 가느냐. 대답이 뭡니까? 주가 쓰시겠다 하라 였습니다.
  그는 가슴에 감동이 왔습니다. 주가 쓰시겠다는데, 하나님이 필요해서 내 재물을 쓰시겠다는데 내가 거부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하며 그는 100만 불을 기꺼이 내서 퓰러 신학대학원의 장학기금으로 드릴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하나님이 쓰신다고 하면 내 모든 것을 다 내어드릴 수 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시간을 주님이 필요로 하신다면, 여러분의 재물과 여러분의 가정을 주님께서 쓰고자 하신다면 우린 기꺼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12장 1절에 보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씀하며, 로마서 6장 13절에 보니,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증거합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 사순절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는 일에 여러분 자신을 드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온전히 예배의 제단을 쌓는 일에 여러분 자신을 드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일에, 봉사하고 충성하는 일에, 전도하는 일에 여러분 자신을 드리지 않겠습니까? 주가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놀라운 결단과 순종의 삶이 이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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