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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 나라의 소망 (단 2: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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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세상의 실체를 알고 대해야 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셔서 인간에게 그 세상을 맡겨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세상은 악한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세대들을 향하여 “악하고 음란한 세대(마 12:39)”,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마 17:17)”,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막 8:38)” 등으로 규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갈 1:4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라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이 세상을 정확히 알려 주시고, 그러한 세상에서 구원 받는 영혼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 사건 이후에 제자들의 선포 내용도 동일했습니다. 행 2:40에서 오순절 사건 직후에 사도 베드로는 첫 번째 설교를 통해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패역한 세대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성도들은 그러한 세상을 알고, 그 세상에서 구원 받은 자들입니다.

바울은 빌 2:15에서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를 위한 “흠이 없고 순전하여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 가운데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롬 12:2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우리의 소망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리셨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세상의 소망이 되는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과정은 구약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왔습니다. 세상은 변하며 부침을 거듭하였지만 그 세상의 소망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생명의 삶은 언제나 견고하게 이 악한 세대의 소망으로 자리하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의 무너짐을 방지하며 지탱해 갑니다. 다니엘서의 느브갓네살 왕의 꿈도 그러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단 2:32-33에서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꾼 꿈의 내용에 대해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단 2:36-43에서 그 신상의 각 모습이 미래에 다가올 각 세대의 나라들의 모습이라고 설명합니다. 단 2:38에서 정금머리는 느브갓네살 왕을 뜻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나머지 세 나라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세계사 속에서 확인되어집니다.

일반적으로 금을 바벨론 제국으로, 은을 메대바사 제국으로, 놋을 헬라 제국으로, 철을 로마 제국으로 보는 견해가 압도적입니다. 실질적으로 이 말씀을 따라 예언이 성취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후대에 어떤 제국들이 등장하여 흥망성쇠가 거듭되었는가라는 예언적인 성격에만 초점을 둔 말씀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각 세대의 강국들이 결국은 멸망하며, 어떤 성격의 나라라 할지라도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영원하지 못하며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세상의 각 나라는 소망이 없는 나라들입니다.

지중해 주변의 거대한 제국들이 한결같이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앗수르 제국, 바벨론 제국, 메대 제국, 바사 제국, 헬라 제국, 로마 제국 등 이어지는 모든 제국들이 당대의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멸망하는 과정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 나라들과 세상 존재들이 결국은 사라질 대상들, 멸망할 대상들인 악한 세대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십니다. 이것이 세상의 실체입니다.

2. 세상의 나라들은 강한 나라처럼 보이지만 튼튼하지 못한 나라들이다.

단 2:39는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라고 하며 바벨론의 멸망과 메대와 바사 제국의 등장을 예고하였습니다. 여기서 “왕만 못한” 나라의 의미는 영토의 크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벨론 이후에 등장한 메대와 바사 제국의 영토는 바벨론 제국의 영토보다 넓었습니다. 각 제국들의 영토의 크기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커져갔습니다. 그러므로 왕만 못한 나라는 그 힘과 능력의 관점에서 평가한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인 타락을 몰고 오는 왕권의 약화에 있었습니다.

바벨론 이후에 등장한 메대와 바사 제국은 바벨론보다 영토를 더 넓힌 강한 나라처럼 보일지라도 그 제국이 둘로 나뉘어서 왕권이 약화된 나라이며, 바벨론보다 못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이들도 셋째 나라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단 2:39은 그 모습을 “세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라고 설명합니다. 셋째 나라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헬라 제국의 통치를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셋째 나라 역시 온 세계를 다스리는 것 같았지만 넷째 나라 앞에 무너졌습니다.

헬라 제국은 당시 지중해 연안의 나라 전체를 다스렸습니다. 이것만을 볼 때는 헬라 제국도 바벨론보다 강한 나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권은 점점 약화되어 넷째 나라에 무너졌습니다. 단 2:40은 “네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같이 그 나라가 뭇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라고하며 넷째 나라가 아주 강한 나라라고 설명합니다. 이 넷째 나라는 로마로 봅니다. 그런데 이 나라 역시 무너질 나라였습니다.

세상의 안목으로는 넷째 나라가 매우 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의 꿈과 다니엘의 해석을 통해 보여주신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단 2:41-42에서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 만할 것이며”라고 하며 멸망을 보여주셨습니다.

단 2:43에서는 그 이유를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철과 진흙을 하나로 합할 수 없는 것처럼 서로 다른 인종을 하나로 통합할 왕권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외형적으로는 로마가 강한 나라입니다. 강하기가 모든 물건을 파괴하는 철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철과 같은 강함으로 뭇 나라를 파괴하여 천하만국을 통일한 듯이 보이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튼튼하지 못한 나라였습니다.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은 나라이기에 약한 나라입니다. 철에 섞인 진흙이 강한 것처럼 보이는 나라를 나누게 됩니다. 이것은 다른 인종과 서로 섞여서 합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결국은 망할 나라입니다. 영토는 넓을지라도 인종의 통합이 되지 않아서 망한 나라입니다. 왕권의 몰락은 도덕의 타락을 수반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내부적으로 타락이 극에 달한 나라로서, 바벨론 왕보다 못한 나라였고, 멸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롬 1:26-31은 당시 로마가 성적으로, 도덕적으로 얼마나 타락한 나라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한 나라와 튼튼한 나라는 다릅니다. 무력으로 이웃을 지배하는 강한 나라라도 내부가 분열하면 약한 나라입니다. 외형의 모습은 바벨론 왕이 본 것 같은 허상일 뿐입니다. 튼튼한 나라는 바벨론의 금 머리 이상의 귀한 나라로서 분열되지 않은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는 강한 나라가 아니라 튼튼한 나라입니다. 튼튼한 나라는 왕의 통치권이 모든 영역에 미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단 2:39-43은 이 세상에서 그러한 나라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 세상에는 온 세상을 통치할 수 있는 절대적인 왕권이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떠난 절대 왕권은 쾌락과 우상숭배와 신성모독으로 나타나기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 대상으로 나타납니다. 다니엘서 5장은 바벨론 멸망 당시의 그러한 정황의 일부를 보여줍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때의 심판 대상이 되는 대상으로서 8회나 언급합니다. “음녀, 가증한 것, 귀신의 처소, 더러운 것”의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왕권이 무너진다고 세상 나라가 좋아지지 않습니다. 절대 왕권이 약화되고 무너져 갈수록 도덕과 윤리가 타락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나라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느브갓네살의 꿈에 나타난 네 나라의 모습은 세상 나라와 세상의 왕권과 세상의 강성함과 번영 가운데 어느 곳에서도 소망을 찾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절대 왕권의 존재로 우상숭배의 소굴이 되거나 절대 왕권의 몰락으로 도덕과 윤리의 타락으로 그 나라가 분열되며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 세상 나라의 소망은 영원한 왕권의 지배를 받는 그리스도인에게 있다.

우리들이 살아갈 세상 나라는 소망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이 그 나라 가운데 들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철과 진흙이 섞여서 분열되고 타락하여 고통 중에 있음에도 그러한 나라를 통합할 절대 왕권이 없는 그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하여 그들 가운데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하나님 나라의 사신으로 임명하셔서 그들 가운데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 왕과 다니엘에게 세상 나라의 소망 없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세상 나라의 왕권이나 우상의 왕권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절대 왕권을 알고, 인정하고, 그 왕권 가운데로 나오게 하시는 은혜의 사건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이유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멸망할 세상 왕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십니다. 멸망할 세상 왕권을 의지하지 않게 하십니다. 하지만 그 나라를 피하게 하지도 않으십니다. 그 나라의 소망인 자로서 그 나라에 살게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영원한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 안에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절대 왕권의 통치를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 왕권은 부패하지 않습니다. 타락하지 않습니다. 그 왕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왕권입니다. 그러므로 그 왕권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세상 어느 나라에 속할지라도 멸망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으며, 우상숭배와 간음 등으로 타락하지 않는 견고하고 튼튼한 나라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 땅에 재림주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땅의 세상 나라를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분열된 나라를 하나님의 왕권으로 하나 되게 하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분열된 공동체를 하나님의 절대 왕권으로 인도하여 그 타락을 면하고, 그 멸망을 면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각종 우상숭배와 타락으로 신음하는 세상 나라 백성들을 하나님의 절대 왕권 밑으로 인도하여 그 멸망을 피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사회 책임입니다.

마 5:13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마 5:14에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빛과 소금으로서 세상의 “악한 세대, 죄 많고 음란한 세대, 믿음이 없는 세대”를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으로 인도하여 그 죄악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에 순종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당대 최대의 왕권을 쥐고 있던 느브갓네살 왕 앞에서도 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그의 왕권의 덧없음을 알려줍니다. 그의 왕권이 아무리 막강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왕권임을 알려줍니다. 그의 왕권을 인정하며, 그를 배려하며, 그를 위로하는 표현으로 그에게 나아가기는 하지만 다니엘의 설명만은 분명했습니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 앞에서 인간 세상의 절대 왕권은 없다는 것을 선언하며 그 왕 앞에 하나님의 소망의 사신으로 서 있었던 것입니다.

절대 왕권이 사라진 오늘날의 세상은 자유 민주주의가 꽃피는 세대입니다. 하지만 절대 왕권이 사라진 만큼 우상숭배와 간음과 부패 등 각종 타락으로 도덕과 윤리가 사라지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마치 철과 진흙이 하나 되지 못하는 것처럼 분열되고 분리된 세상입니다. 다원주의 사회, 다양화 사회라는 미사여구로 갈라진 세상의 모습을 미화시키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해결할 수 없는 소외의식으로 고통을 호소합니다. 삶의 만족을 얻지 못하는 우울증으로 신음합니다.

절대 왕권의 상실로 인해 나타나는 타락한 증상들이지만 다시 그 절대 왕권을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역사 속에서 인간의 절대 왕권의 고통을 무수히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헌신과 섬김과 용서로 풍성한 절대 왕권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고통과 고민 가운데 빠진 세상 나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사랑으로 풍성하신 하나님의 절대 왕권 아래서 쉼을 누리며 평강과 안식을 누립니다. 우리는 이러한 왕권을 세상 가운데 소개하며 알릴 책임이 있습니다.

세상 나라의 소망은 영원한 왕권의 지배를 받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영역과 공동체가 찾는 소망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소망을 찾기 위해 세상 가운데로 나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풍성하게 임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들고 세상의 소망이 되기 위하여 세상 가운데로 나가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가는 세상의 모든 영역, 모든 직장과 학교, 모든 일과 사건들이 소망 가운데로 나아옵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 속에서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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