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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의 소망으로 인내 합시다 (살전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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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소망으로 인내 합시다
(살전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32세 된 윌리엄 코우퍼(William Cowper)씨는 일생에 있어서 중대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코우퍼씨는 아편을 사들고 죽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마차를 타고 마부에게 템즈강에 가자고 하였습니다. 코우퍼는 다리에서 투신 자살을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은 런던에 짙은 안개가 끼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시간 동안이나 달렸지만 목적지에 닿을 수가 없었습니다. 싫증이 난 코우퍼 씨는 내려서 거기까지 걸어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코우퍼 씨는 마차가 멎은 곳이 자기 집 대문 앞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차는 맴돌기만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코우퍼씨는 칼을 찾았지만 칼날이 부러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또 죽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목을 매어 죽기로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의식불명 일 때 끈이 끊어져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이상하게 마음이 밝아진 순간 성경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코우퍼 씨는 로마서 중에 한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 순간 코우퍼 씨는 믿음의 눈이 뜨여졌고,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을 깨닫고 기쁨을 되찾았습니다. 얼마 후, 코우퍼 씨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자신의 믿음을 키워갔습니다. 이제, 코우퍼 씨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애찰되는 훌륭한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코우퍼가 지은 찬송가의 가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한 훌륭한 시입니다.

찬송 190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

(190장 1절)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190장 2절) 저 도적 회개하고서 이 샘에 씻었네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 하네 죄 씻기 원 하네 죄 씻기 원 하네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 하네
(190장 3절) 속함을 얻은 백성은 영생을 얻었네 샘 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한없이 있도다 한없이 있도다 샘 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190장 4절) 날 정케 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 없네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 하겠네 늘 찬송 하겠네 늘 찬송 하겠네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 하겠네
(190장 5절) 이후에 천국 올라가 더 좋은 노래로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 하겠네 늘 찬송 하겠네 늘 찬송 하겠네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 하겠네 아멘

'구원'은 완전한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갖게 될 구원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교육하고 선교하며 봉사하며 소망으로 인내하되 구원의 소망으로 인내하는 달입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낮에 속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낮'은 빛을 말합니다. 또한 빛은 하나님을 말합니다(5절).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1:5). 그러므로 '우리는 낮에 속하였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게 속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근신하여'라는 말은 어둠의 자식들과 대조하여 사용되는 말로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각성한 상태를 말합니다. 말씀의 빛에 의하여 영적인 눈이 뜨인 상태입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할 것이므로(2절) 어둠의 자식들, 즉 사탄에게 속한 자들은 술 취하고 방탕하며 잠을 자고 있습니다
(사 6:9-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롬 11: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게 속하였기에 깨어 근신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날이 도적 같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2)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날을 대비하여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방탕한 데 쏟지 않고 잘 조정하며 기도하는 가운데(벧전 4:7) 자기의 책임과 직무를 완수해야 합니다(딤후 4:5).

이것은 군인과 연결하여 이해할 때 쉽게 이해가 갑니다. 그리스도인은 보초병과 같습니다. 보초병이 잠들 수 없고 허황된 데에 마음을 둘 수 없는 것처럼 주의 날을 기다리며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의미를 소유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항상 미래를 바라보며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살전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살후 1:8-10)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데살로니가 교인의 신앙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다시 강림하실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진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은 그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죽음 후에 부활이 있었고 그의 재림이 앞으로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신앙의 내용입니다.
주께서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 22:20)고 하셨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더디 오리라거나 오지 아니하리라고 믿는 자들에게는 어두운 데 내어 쫓겨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자들은 진노의 심판에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기꺼이 그들의 변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는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의 내용과 중심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충실히 들었고, 그 복음에 따라 산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은 오늘날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신앙입니다.

  서기 79년 8월 24일 일어난 베스비우스 화산 폭발로 페허가 된 14-15개의 도시 가운데서 발굴된 폼페이 시를 방문하면 그 폐허의 현장의 생생함에 놀라게 됩니다. 한 사람은 화산에서 뿜어 올라오는 시뻘건 용암의 분출과 화산재에 온 시가지가 덮여 가는 것을 보면서 벽에다가 '소돔과 고모라'라는 두 단어를 새겼다고 합니다. 그의 눈에 방탕과 사치와 음란의 도시가 마치 소동과 고모라성의 최후의 모습과 같이 깨달아졌던 것입니다.

운의 집(Faun)의 집에서 발견된 것으로 추정해보면 그 많은 보화를 차마 버려두고 도망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억울한 일이기에  그 집 여주인은 자기의 모든 보석들을 한데 끌어 모으기에 바빴습니다. 뱀 모양을 한 금으로 만든 브로우치 금반지, 금 목걸이,  금 귀걸이, 은으로 만든 거울, 금전을 한 가방 가득하게 채우고 그리고 나서 도망하려고 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서 화산재와 돌이 이미 떨어지면서 지붕을 강타하자 지붕이 무너지면서 그 여인은 보석과 함께 그 밑에 깔려 화석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구원의 소망으로 인내 합시다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사탄의 역사가 흉용한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 속하여 살고자 할 때에는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그 언약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는 것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을 의미합니다(요일 1:9,10)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2:1,2)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다른 하나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사죄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엡 6: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골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몬 1:5-7)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사랑은 종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 하나님의 의의 종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탕자 비유에서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에게 품꾼으로 써 달라고 하는 고백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시로 자신을 쳐서 하나님에게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사탄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고 자신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는 방패입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마치 군인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가슴에 흉배를 붙이는 것처럼 사탄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기 위하여 믿음과 사랑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유명한 복음 전도자였던 죤 길모어 목사는 어느 날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주방용품을 팔고 있는 어느 노인과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요즘 장사는 잘 되시는지요? 예, 그럭저럭 잘 됩니다.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물론 믿지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렇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지요, 그래요? 그게 뭔데요?  그건 나를 구원해 준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단지 구원받고 죽어서 천국 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그 속에서 천국 생활을 미리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으로 인내 합시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살 5:8, 9).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죄와 형벌로부터의 구원 받은 (엡 2:3, 5; 빌 1:28; 살전 1:10; 살후 1:8, 9)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은사를 누리며 항상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미래에 완전한 하나님의 후사가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이 소망을 소유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고 지금의 고난을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커다란 기대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내적인 힘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짧은 시간에 그토록 놀라운 선교의 성과를 거둔 것은 모두 이러한 내세의 소망에 의한 내적 힘 때문입니다.

(엡 2:3-5)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그리스도의 긍휼을 입은 자들은 과거의 죄와 허물을 벗어버리고 전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납니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에 대한 성경의 증언은 너무도 많습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 삭개오, 바울 등은 예수를 통해 변화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만남으로 인생의 질적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죄의 사유가 있었고, 예수께서 생을 당당하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으로 존재했습니다. 완전한 긍휼이 그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을 살린 것입니다.

수년 전에 시카고에서 대종교회의가 열렸는데 그 곳에는 사상가로 알려진 모든  종교의 대표자들이 참석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한 토론 과정에서 보스톤의 죠셉  쿡(Joseph Cook) 박사가  갑자기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깊은  비애에  빠진 한 여인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녀의 손에 생긴 핏자국을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거나 빠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실의에 빠져 좌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의 어떤 종교가 그녀의 죄를 씻고 평안을 찾아  줄 수 있겠습니까?" 침묵만이 흐를 뿐 누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쿡 박사는 하늘을 쳐다보며 외쳤습니다. " 또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 요한, 당신은 이 여인의 무서운 죄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해 줄 수 있나요?" 그 훌륭한 설교자는 마치 대답을 듣는 것처럼 잠잠히 기다리더니, 갑자기 외쳤습니다. "들어보시오.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오."(요일1:7) 누구도 그 침묵을 깨지 않았고 동양의 종교와 서양 종교의 대표 들은 벙어리가 된 채로 앉아 있었습니다. 인간의 욕구에는 희망의 메시지가 없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인류의  죄는 갈보리 십자가의 보혈을 필요로 한다.(예화뱅크-인류를 구원할 보혈)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구원의 소망으로 인내 합시다.

교육하고 선교하며 봉사하는 교회로 소망으로 인내하되 우리는 낮에 속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구원의 소망으로 인내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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