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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께로 나오라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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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긋방긋 웃고 있는 아기를 보고도 마음이 밝아지지 않는다면,지금은 쉴 때입니다.
식구들 얼굴을 마주보고도 살짝 웃어주지 못한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에 비치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사랑하는사람의 하루가 궁금하지 않고 전화도 기다려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오랜 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고 "바쁘다"는 말만하고 끊었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친구가 보낸 편지를 받고 그것을 끝까지 읽지 않거나 답장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당신은 그동안 참 많은 일을 했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쉬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휴식 또는 안식을 풍성하게 누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일주일에 이틀을 쉬는 주 5일제에 들어갔습니다. 그러하다면 전보다 더 우리는 스트레쓰가 줄고 마음의 여유가 많아졌습니까? 인생이 더 풍성해지고 더 행복해졌습니까?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쉼은 어떤 것일까요? 지쳐있는 현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쉼을 향해 나아올 것을 초청하십니다.

1.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하고 현대인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무엇일까요? 현대인들을 짓누르고 있는 가장 크고 무거운 짐은 무엇일까요? 스트레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쓰는 사람들로 쉽게 지치게 하고 피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스트레쓰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소한 일에 짜증스런 반응이 나오도록 만듭니다. 스트레쓰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질병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심장병, 위장병, 불면증, 각종 암을 유발시키는 발병원인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스트레쓰는 기억력을 둔화시키며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도 하고 우리로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의 행복을 송두리채 앗아가는 정신적으로 나쁜 바이러스같은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각종 레져활동 또는 문화활동을 합니다. 현대에는 특히 엔터테인먼트사업이 각광을 받고 잇습니다. 여행이나 인터넷 등으로 스트레쓰를 푸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은 유익함이 많이 있고 스트레쓰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만으로 사람들은 스트레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병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의사나 병원이 스트레쓰로부터 온전히 자유하도록 어느 정도나 도울 수 있을까요? 50%? 30%? 20%? 10%? 아마 그 이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지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안식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은 정말 있는 것일까요? 진정한 행(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복의 처방은 있습니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있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스트레쓰로 인하여 눌리고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말슴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참된 안식을 주고 지치고 병든 너희를 온전히 치유하겠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무언가에 시달리고 지쳐 있지 않습니까? 무거운 짐에 눌려 신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참된 안식이 여러분에게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까? 모든 스트레쓰로부터 해방되고 평안을 누리며 더 건강하게 되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까? 무언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여러분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그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해지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스트레쓰인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 부터 사람들을 어떻게 해방시키실 수 있습니까?

2. 예수님께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단순히 [오라]고 말슴하십니다.

(사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주님은 단순히 오라고 말슴하십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려고 오라고 하십니다. 목마르고 주린 자들의 갈증과 주림을 해소해 주시려고 오라고 부르십니다. 나아가 영생을 주시고 사랑해 주시려고 오라고 하십니다. 특히 어둠의 권세에 눌리고 얽매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며 불행한 사람들을 풀어주시고 자유케 해 주시려고 주님께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예수 앞에 나오려고 하지 않을까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예수 믿는 것이 내 인생의 짐을 하나 더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교를 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입니다. 종교가 짐일 수 있습니다. (마 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누구를 가리킨 말입니까?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가리킨 말입니다. 유대교라는 종교에 속박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지웠습니다. 당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울법의 외형적인 준수를 지나치게 강조했습니다. 거기다가 장로들의 유전을 제정하고 사람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굴레로 착고를 채워 신음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대교뿐 아니라 오늘 많은 종교를 갖고 사는 사람들중에는 자유를 얻기는 커녕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지고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여!' 라고 부르는 주님의 말씀에는 종교의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도 포함됩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면서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신앙 생활하면 ...하지 마라와 ...하라는 명령에 둘러쌓여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교회 생활 하는 것도 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 예수님을 체험한 사람에게 교회 생활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스트레쓰가 아니고 안식이며 동시에 기쁨입니다.

3. 안식을 주시겠다고 부르십니다.

농학자요 목자였다가 목사가 된 필립 켈러(Philip Keller)라는 분은 목자가 양을 안식하게 하기위해서 두가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첫째는, 배불러야 합니다. 배고픈 양은 절대로 안식할수 없습니다. 배고픈 양은 푸른 초장에 절대로 눕지 않는다고 합니다. 둘째는 안전감을 느껴야 합니다. 필립 켈러는 파리나 해충이 주변을 날기만해도 양은 결코 풀밭에 눕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안전하다고 느낄때에 비로소 초장에 눕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배고프지 않기 위해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한17:8에 보면 예수께서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니--"라고 하십니다. 또한 그는 이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보혜사(보호하고 위로하시는 분)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요한14:17-18에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우리가 말씀으로 배불리 먹고 성령의 임재안에서 안식하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푸른 초장에 눕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에서 "쉴만한 물가"라는 단어는 본래 히브리어에서 메누하(menuha)라는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안식"이라는 유명한 책의 저자 마르바 던(Marva Dawn)은 이 단어의 의미를 "단순히 아무것도 일을 안하는 단절의 상태가 아닌 존재 전체가 생명과 기쁨으로 가득찬 충만의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이어서 영적 안식의 중요성을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오늘의 현대문화에는 우리의 안식의 갈망을 채울수 있다고 손짓하는 매춘부적인 선전들이 허다하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거룩한 시간이 아니면 인간의 공허함은 그 무엇으로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신부를 사랑하는데 초점을 맞출때 다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예배와 묵상을 통해 안식일의 여왕과 사랑에 빠지고 우주의 왕이신 그분을 사랑하는 더 깊은 사랑속에 들어갈때 우리의 안식은 그만큼 견고하고 충만하다."고.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예배와 영적 성숙의 진정한 축복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시편기자의 고백은 비로소 시가 아닌 체험일수 있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쉴만한(메누하)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종교를 짐으로 생각해서 자기가 믿고 따르던 신앙을 버리고 떠나갔다가 인생의 긴 방황 끝에 돌아와 다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소설을 쓴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입니다. 톨스토이는 어렸을 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틴에이저 시절에 신앙을 떠나 갔습니다. 그의 나이 55세가 되었을 때 그는 신앙론이란 글을 쓰면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나의 지나간 55년간 살아 오는 동안 내 인생의 최초의 15년간의 소년기를 제외하고는 나는 안식을 경험하지 못했다. 안식을 알지 못하고 살아 왔다. 내가 18세 되던 나이 내 친구는 나에게 찾아와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나는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 말이 진리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의 종교, 가족의 종교인 기독교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심지어 종교는 속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나이 55세, 이제 나는 내가 버린 어머니의 품과 같은 신앙의 품으로 돌아온다. 나는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 왔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나는 다시 참된 안식을 발견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은 만나셨습니까? 그리고 진정한 안식을 누리고 사십니까? 만일 여러분중에 아직도 방황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권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시는 그 예수님 앞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문기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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