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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들어 서라 (수 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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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옆의 분과 "기둥교회 예배의 자리에서 만나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각처에서, 각 국에서 인터넷에 접속하신 분들…
카세트 테이프, 비디오, DVD로 만나는 분들도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믿음 안에서 평안하시고 소망 중에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신18:8~9).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고백한 대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었음을 고백하고
범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하며 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잊지 마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하나님부터 찾아야 하는데 잊어버리고 사람부터 찾습니다.
물고기 IQ가 0.4, 3초면 잊는다고 합니다. 물고기 보다 IQ가 조금 높은 동물이 닭입니다.
닭이 방금 있었던 일을 망각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7초라고 합니다.
닭이 물을 먹고 왜 하늘을 쳐다보는지 아십니까?
닭이 물을 먹고 하늘을 보며 '뭐 먹었더라' 한답니다.
그래서 기억력이 좋지 않아 머리가 나쁜 사람을 '닭대가리'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고 구원받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가 되었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잊지 마세요.
오늘도 주시는 말씀으로 새 힘 얻고 믿음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백성되었다고 하는 당당함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여호수아 3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모습을 기록한 것입니다.

40여 년 동안 꿈에도 그리던 땅, 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지인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가로막고 있는 요단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15절에 보면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수3:15) 했습니다.
(모맥은 밀과 보리를 말합니다.)
이것은 "요단강은 추수 때가 되면 강둑이 넘칠 만큼 물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맥 거두는 때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지금 이맘때 3, 4월쯤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쯤이 겨울인데 이때는 비가 많이 오고
북쪽 헤르몬산(Mount Hermon)의 눈이 녹아 내려
요단강물이 불어 강폭이 늘어나고 수심도 깊어지고 물살도 빨라져
보통 사람이 강을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헤르몬산은 갈릴리호수 북쪽 64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2815m의 산이다.
이 산꼭대기는 1년 내내 눈이 쌓여 있는데 이 눈이 녹아 요단강으로 흘러들어
이스라엘 땅에 물을 공급하는 주요한 수원이 된다 - 비전성경사전 참조 -


그러므로 어린이와 여자… 등 노약자를 포함한 200만 명쯤 되는 사람들이
그 강을 건넌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일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과 지도자의 탁월한 지도력
그리고 백성들의 순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 지도자의 탁월한 지도력, 백성들의 순종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있어야 하고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 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일찍 일어나는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서 행동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삶에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도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6장 12절에도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니라"
7장 16절에도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8장 10절에도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이렇게 여호수아는 습관적으로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새벽형 인간'이었음을 증거합니다.

게으름뱅이가 지도자가 된 적이 없고… 게으름뱅이가 성공한 적 없고, 승리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부지런하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훌륭한 지도자,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 이런 저런 일에 승리하며 살았던 사람들,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보면 가만히 있는 사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
몸을 움직여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게 하라 했고(살후3:10), 악하다고 했습니다(마25:26).
여러분, 부지런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성실한 삶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처럼 일찍 일어납니까?
할 일이 있는 사람, 기도할 일, 갈 곳이 있는 사람, 만날 대상이 있는 사람, 기대하는 것이 있는 사람 …
그런 사람이 설레임과 기대로 아침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소풍가는 날, 여행가는 날, 놀러 가는 날, 좋은 사람 만나기로 한 날… 그 전날 밤에 잠이 잘 오던가요?
잠이 잘 안옵니다. 그래도 아침에 벌떡 벌떡 일어납니다.
우리 교회에도 "목사님 저는 새벽에 절대 못 일어나요. 제가 새벽잠이 많아서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단풍 구경간다고 새벽에 나오라고 하면 모두 다 나옵니다.
잠을 못자고 설쳐도, 잡아 흔드는 사람이 있어야 깨어나는 사람도 벌떡 일어나서 옵니다.

꿈이 있고 목표가 있고 소망이 있으면 열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가나안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것은 당연히 약속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백성들은 한 마음으로 부지런한 여호수아를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믿고, 약속을 기대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낙망치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떠나 그 뒤를 좇으라

그렇지만 여호수아가 부지런하고, 부지런한 지도자를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따랐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난 어려움이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었지만 강을 건너는 방법은 따로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하라고 명하면서
"…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수3:3) 했습니다.

언약궤는 장방형, 직사각형의 상자입니다.
언약궤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두 돌판(신10:10)과
만나 항아리, 아론의 지팡이(히9:4~5)가 있었습니다.
지성소에 있었던 언약궤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였고(출25:22),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출25:10~22, 신10:2~5에 나와 있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 언약궤를 만드는 방법을 보면
그 치수는 대략 122×76×76cm 의 아카시아 나무의 조각목으로 만들었다.
언약궤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두 돌판(신10:10)과 만나 항아리, 아론의 지팡이(히9:4~5)가 있었다.
지성소에 있었던 언약궤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였고(출25:22),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널 때 언약궤를 앞세우고 갔으며(수3:1~17),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때에도 언약궤를 앞세웠다(수6:4,8).
일시적으로 언약궤를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기기도 했으나(삼상4장),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져왔다(삼하6:1~5, 대상13:13).
솔로몬은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전에 보관(왕상8:1) 하였으나,
므낫세는 자신이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과 언약궤를 바꾸어 놓았다(대하33:7).
후에 요시야가 이를 원상복귀시켰다(대하35:3).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언약궤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 비전성경사전, 참조 -


그러므로 언약궤를 따르라는 명령은 하나님을 따르라는 명령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 때나 아무렇게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거든 그 뒤를 따라 가라 했습니다. 그것도 멀리 거리를 두고 따르라 했습니다.

4절에 보면 "상거"(서로 相, 떨어질 距)를 '이천 규빗' 쯤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규빗은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거리를 말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40~45cm 정도 되니까, 2000규빗이면 약 800~900m 정도입니다.
왜 그렇게 하라고 했을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언약궤를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하기도 했을 것이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거룩하심을 인정하는 경외심으로 거리를 두고 따르라고 했을 것입니다.

성결케 하라

그리고 5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수3:5)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강을 건널 준비를 하는 백성들에게 명령한 것은 '성결'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성결케 하라'는 말은 단순히 몸을 깨끗이 씻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거룩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자격을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한 지 벌써 25년이 넘었습니다.
25년 동안 목회하면서 강단에 설교하러 올라오기 전에 목욕하지 않고,
몸을 단정히 하지 않고 올라온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몸을 씻었다고 해서 깨끗한 것은 아니지요.
다만 깨끗함으로 강단에 서려는 마음을 갖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결을 명령한 것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부터 그 땅을 받을 만한 '거룩한 자격'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껏 살아온 광야생활의 습관, 하나님께 범죄 하였던 불순종, 우상숭배,
온갖 더러운 모든 삶의 모습을 다 버리고, 깨끗함으로 성결함으로 언약궤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요단강변에서 과거의 모든 허물과 죄를 청산하고 깨끗함으로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에 들어가려면… 가로막힌 큰 장애물인 강을 건너려면…
청산 할 것을 청산하고,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부끄러운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언약궤를 따라 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때,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인도하시고 길 열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가나안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요단강이란 큰 장벽이 있었듯이
우리 앞에 넘어야 할, 건너야 할, 극복해야 할… 장벽, 장애물, 어려움… 같은 요단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때 먼저 살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스스로 성결케" 하였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파가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음을… 몸을… 시간을… 재능을… 재물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쓰고 있는 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따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을 받아 살기 위해 청산할 것이 무엇인지,
정리할 것, 고쳐야 할 것, 회개할 것이 무엇인지
바르게 할 것이 무엇인지, 먼저 살피라는 것입니다.
바르게 하지 않으면서 바르게 하는 척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 시간이, 말씀 듣는 이 시간이
요단강 앞에서 자신을 살펴 성결케 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여러분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너와 함께 하느니라

저는 오늘 본문 7절에서 큰 위로를 받고 큰 힘을 얻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수3:7) 했습니다.

이 말씀 이미 1장에서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수1:5)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수1:6)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수1:7)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수1:8)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1:9)

이렇게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여호수아에게
'너와 함께 하겠다,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장 7절에서 또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함께 하겠다" 그것을 사람들도 알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지도자는 참으로 외로운 자리입니다.
지도자는 큰소리 뻥뻥 치지만… 사실 염려가 많습니다. 두려움이 많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느 날 갑자기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수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요단강을 건너야합니다.
요단강은 지금 물이 불어난 때이고, 강 건너에는 여리고성이 있고, 군사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이지만, 마음에 두려움이 왜 없었겠습니까.
많은 사람을 이끌고 가야 하는 지도자는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 기둥교회에서 누가 제일 힘들 것 같습니까?
누가 제일 염려가 많을 것 같아요?
누가 제일 두려움이 많겠습니까?
이 큰 살림살이…, 해결 할 것 많고… 갚을 것 많고…
이런 저런 성도들 때문에 겪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모두 가지는 못하지만 때를 따라 애 낳는 곳부터 백일, 돌, 결혼,
회갑, 칠순, 팔순, 장례식까지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이 목사입니다.
학교, 병원, 은행은 물론이고 경찰서와 법원에까지 불려가 조사를 받기도 합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교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시는 분들… 여러분이 제 마음 아십니까?
가끔씩 던지는 말 한마디에 가슴을 쓸어 내리며 잠을 설쳐야 하는 제 마음을 아세요?
염려 말라고, 걱정 말라고 큰 소리로 설교하고
강단에서 내려가서는 염려를 맡기려고 기도하는 제 마음을 아십니까?
엄청난 일 앞에서 엄습해 오는 두려움과 싸우는 것은 여호수아라고 예외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마음을 아시고 다시 한번 처음 약속을 여호수아에게 확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 해도 사람은 사람입니다. 모든 면에 완벽할 수 없습니다.
한번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고 끝까지 담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반복적으로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잘 난 사람 쓰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 세워 붙들어 주고 쓰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자기가 못하는 것 내세워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용기를 내라.
산에 나무 많다고 걱정하지 말아라. 쓸 나무가 있고 잡목은 불때는 데 쓴다.
멍청하면, 게으르면, 되는 대로 살면… 잡목 되는 것이다. 신학생 많아도 염려 마라.
쓸만한 사람, 하나님 마음에 드는 쓸 만한 사람되려 노력하라."

제가 반복해서 가르쳤지만 사실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에게 채찍질하는 말이었습니다.

여호수아도 순간 순간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새 힘을 얻어 일했습니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염려하지 말아라. 네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또다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순간순간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일하는 목사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이왕이면 말 한마디를 해도 신나는 말, 용기가 되는 말, 기운이 나는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왕 쳐다 볼 것 우호적으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들어 서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넙니다.
8절에 보면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수3:8) 했습니다.

15절에 보면 그 때가 강물이 넘치는 때입니다. 그런데 "요단에 들어서라"고 합니다.
물이 멈춘 것도 아닙니다. 상식적으로는 물이 멈춘 다음에 들어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들어서라"(8절), 그러면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13절)고 했습니다.

믿고 믿음을 실천하라는 명령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했습니다.

과학은 보고 믿는 것입니다.(Seeing is believing.)
그러나 신앙은 믿고 보는 것입니다.(Believing is seeing.)
물이 멈춘 것을 보고 들어서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물이 멈출 것이라며 들어서는 것이 '믿음'입니다.

상황은 물에 들어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들어 설 수 있습니다.
들어서야 강이 갈리고, 들어서야 길이 열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들어서는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단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서는 자리에 들어서야 합니다.
세상에도 한 발, 믿음도 한 발,
믿음대로 사는 것 같기고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것은 들어선 것이 아닙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물에 들어서니까 물이 멈췄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건널 때까지 제사장들이 강 가운데서 언약궤를 메고 끝까지 견디며 서 있어야 했습니다.
언약궤에는 십계명 돌 판 2개와 만나 항아리와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언약궤 자체로도 무거웠을 텐데 그것을 메고 제사장들이 버텨야 했습니다.
200만명 이나 되는 백성들이 다 건널 때까지 버텨야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끝까지 버텨 선 동안 물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지도자, 목회자의 사명은
성도들이, 백성들이, 양들이 물에 쓸려가지 않고 강을 건널 때까지… 버티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메고, 말씀을 들고… 기도하며 버텨야 합니다.

여러분, 잘 버틸 수 있게 힘이 들고 어려워도
말씀 들고 든든히 서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가 잘나서 목회하는 것이 아닌 것을 잘 압니다.
하나님이 불러 주시고 일 맡겨 주셔서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큰 용기를 얻고 힘을 얻은 이야기입니다.


나폴레옹의 말이 도망쳤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날쌘 병사 하나가 자기 말을 타고서 나폴레옹이 사랑하는 말을 쫓아갔습니다.
그가 말고삐를 나폴레옹에게 건네주었을 때, 나폴레옹은 병사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고맙네, 대위." 그 말을 들은 병사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대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나폴레옹의 말대로 되는 때였습니다.
병사는 깜짝 놀라 얼른 차렷 자세를 하고 경례를 붙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군님!"
그는 즉시 막사로 가서 짐을 챙겨들고 장교 숙소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낡은 군복을 벗어 병참 담당자에게 주고는 대위의 군복을 받았습니다.
장군의 말 한 마디에 그는 병사에서 대위로 바뀐 것입니다.
그는 따지지도 않았고, 사양하지도 않았으며,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아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러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 맡겨 주셨기 때문에 강단에 설 수 있는 저는
하나님이 불러 주셨으니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세우셨으니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슨 자격이 있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까.
우리가 무슨 자격이 있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 천국의 시민권을 갖습니까.
그러나 성경말씀에 그리 약속되었고 이미 선언하셨으니 그리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믿는 지 아닌 지…, 순종인지 불순종인지… 애매하고 모호하게 믿지 말고 용기 있게 들어서십시오.
머뭇머뭇하지 말고… 그래야 하나님이 열어 주십니다.

정복할 산지가 요단 강 건너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건너야 할 강이 있습니다.
가정적인 장벽, 일터의 장벽, 교회적인 장벽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물은 넘으라고 있고, 강은 건너라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 앞에 장애물이 있습니다. 넘어야 합니다. 때로 강이 있습니다. 건너야 합니다.
그 강 건널 때, 장애물 넘을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고 순종하여 성결케 하고 용기 있게 들어서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의 장애물,
삶의 요단강을 갈라 주시고 길을 내어 주실 것입니다.
건너는 체험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들어서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기 위하여 깨끗하게,
강 건너기 위하여 성결하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삶이 되기 위해 애쓰는 믿음의 승리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믿고 순종하여 스스로 성결케 하고 용기있게 강에 들어서는 믿음의 발걸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개인의, 가정의, 일터의, 교회에, 삶에, 요단이 있습니다. 장벽이 있습니다.
건너는 체험과 건넌 기쁨을 간증하며 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장벽이 있을 때, 위기가 닥쳤을 때, 건널 강이 있을 때 당황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려워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히려 그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 기회에 하나님 동행하심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6년 3월 12일 주일낮 4부예배 고신일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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