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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을 향한 결단과 준비 (눅 12: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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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의 전반부인 49-53절에서 대하는 예수님의 말씀들은 우리를 무척 당황하게 할 수 있는 말씀들입니다. 
49절에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하신 것부터 그렇습니다.  산불을 놓거나 어떤 건물에 불을 지르는 것은 미친 사람이나 테러범이나 무슨 원한 맺힌 사람들이 하는 짓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 이 불이 이미 온 세상에 다 붙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을 일입니다.  50절에서 "나는 받을 세례가 있다" 하신 말씀도 의아스럽습니다.  세례는 한 번 받으면 되는 것인데 이미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왜 또 세례를 받으셔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51-53절에서의 말씀도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일찍이 산에서 가르치실 때에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마5:9) 하신 예수님께서 그 자신이 하나님의 참 아들이시면서 어떻게 스스로 하신 말씀과 정반대되는 일을 하시겠다고 하실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불은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오고 있는 심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특히 여기서는 사람들을 두 편으로 나눌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불은 타서 없어질 것들과 영원히 남을 것을 구별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은 없어질 것은 태워 없애버리고 영원히 남을 것은 더 순수하고 강하게 연단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진리 그 자체이신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거짓되고 헛된 것들이 드러나고 참되고 영원한 것들이 밝혀지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한쪽에는 거짓과 멸망할 것에 속한 자들과 다른 한쪽에는 진리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속한 이들이 두 편으로 나뉘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진리와 하나님나라에 속한 이들은 진리의 주님이시고 하나님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편에 확실히 서기를 결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시작되었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로 결단하기를 요구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의 지상에서의 복음전도사역과 하나님나라의 완성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진리와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드러나고,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에로 택하시고 진리 가운데 부르신 이들이 확실히 주님을 향하여 결단하고 주님 편에 서며 그들의 신앙이 더 순수해지고 깊어지며, 마귀의 세력이 물러가고 의의 심판이 다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었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미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사역이 다 끝났다면 얼마나 좋으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 사역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사역을 완수하기 위하여 가장 힘든 일,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써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려 오셨지만 그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셨기에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시며 고뇌하셨습니다.  50절의 말씀은 바로 그 심정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여기서 말씀하신 세례는 요단강에서 요한에게서 받으신 것과 같은 그런 세례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어떤 뜻으로 예수님께서 당신이 받으실 세례를 언급하셨는지를 바로 이해하게 해주는 말씀을 우리는 막10:38에서 찾습니다.  막10:35 이하에 보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나아와서 요청하기를 "선생님,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해주시기 원합니다"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물으시기를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하셨습니다.  그 때 야고보와 요한은 대답하기를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되물으신 말씀이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받는 세례"라는 말을 "내가 마시는 잔"이라는 말에 이어서 나란히 언급하셨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가 받으실 세례는 곧 그가 마실 잔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마실 잔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잡히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을 정도로 고민하시고 슬퍼하시며 기도하실 때에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26:36-39) 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잔은 십자가의 잔, 죽음의 잔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잔이 곧 예수님께서 받으실 세례였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러한 대속의 십자가의 고뇌와 슬픔과 고통과 죽음을 감내하는 결단을 하셨다면 우리 또한 이에 응답하는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은혜를 입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택하심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에 합당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 결단으로 말미암아 가족과 갈리는 일과 같은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은혜와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이가 서야 할 자리에 서고 걸어가야 할 길을 걸으며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언제까지나 세상과 짝하여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택하심을 받지 못하고 그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과의 구별됨의 결단을 촉구하신 것이 51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전반부인 49-53절이 주의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결단을 촉구하는 말씀이라면, 54-59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믿음의 준비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날이 언제일지는 아버지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알지 못하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 시대의 징조를 분별할 믿음의 눈을 주시며 늘 깨어 그 날이 언제 임하더라도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54절 이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요구되는 그 믿음의 준비를 언급하신 많은 말씀 중 하나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팔레스타인 땅의 서쪽에 있는 지중해로부터 습기를 잔뜩 먹은 공기가 팔레스타인의 시원한 언덕으로 올라오다 보면 식어서 소나기로 쏟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한다는 것입니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사막에서 오기 때문에 뜨거운 바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질책하셨습니다.  날씨는 그렇게 잘 예측하면서 왜 시대를 분별하는 일에는 생각이 부족하냐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야이신 이가 오셨고 그의 사역의 바람이 일고 있고 하나님나라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분별할 줄만 알면 소나기 같은 은혜와 복을 누릴 수도 있고 뜨거운 심판의 바람을 피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시대의 징조를 애써 외면하려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다그치시며 "외식하는 자여" 하신 것을 보면 몰라서 하나님나라의 도래에 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보다는 알면서도 이에 대비하지 않는 자들을 가리키시며 하신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58-59절은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며 그 백성들이 해야 할 준비가 무엇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재판관 앞에 끌려가 서기 전에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어지도록 나를 재판장에게로 끌고 가는 사람에게 진 빚을 깨끗이 다 갚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빨리 이 세상에 속한 사람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는 것입니다.  택하신 백성에게서 애굽의 수치가 굴러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가치관과 삶의 목표와 삶의 의미와 삶의 방식과 삶의 기쁨을 청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좋던 것, 옛날에 자랑스러웠던 것, 지금까지 추구해오던 헛된 것들과 하루 속히 결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 백성답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이제는 그만 달고 다니고 떨쳐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나라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주의 제자로 부름 받은 이들이 주님을 향하여 행할 믿음의 결단과 준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는 몇 몇 말씀도 이 결단과 준비를 촉구하는 말씀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12:22 이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이 언제까지 자기의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것인가(22절), 언제까지 먹을 것 마실 것만을 구하며 살겠는가(29절), 언제까지 노는 일 즐기는 일에만 관심을 쏟으며 살 것인가,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결단해야 하지 않겠는가(31절)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키 작은 것을 염려한다고 그 키를 자라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25절) 부질없는 염려로 세월을 보내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 알고 계시고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필요한 대로 다 베풀어주실 것을 쓸데없이 세상사람들처럼 조르며 사는 삶을 언제까지 계속하려 하지 말고(30절)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구할 것만을 구하며 사는 삶을 살기를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12:33-34에서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좀 쓸고 도둑맞을 위험 있는 이 세상에다 온갖 보물을 쌓아놓는 어리석은 삶은 그만 살고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에다 모든 보화를 쌓는 삶을 결단하라는 말씀입니다.

  12:35-48에서는 주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준비자세를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종이 주인을 기다리는 자세는 깨어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는 것이듯이 우리도 그런 믿음의 자세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언제 돌아오게 되더라도 늘 성실하게 자기의 맡은 바 일을 행하다가 주인을 맞을 수 있는 종은 복 받을 종이라 하셨듯이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주님을 향하여 그런 믿음의 준비를 하고 있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12:48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일수록 주님을 향하여 더 빨리 결단하고 더욱 완벽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이며 더 많은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돈 버는 일과 즐기며 노는 일에 빠져서 주님을 향한 바른 믿음의 결단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주님께 드리는 것이 없다면 크게 맞고 쫓겨나 어두운 곳에서 울며 이를 갊이 있을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뿐 아니라 우리 교회와 나라도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입었는데 아직도 세상에 속한 사람처럼 세상과 짝하고 즐기며 오로지 세상사람들이나 구하는 것을 구하며 이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산다면 불시에 하나님의 뜨거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열심히 구하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 진실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거룩한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됩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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