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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나안으로 가는 사람들 (히 3: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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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은 인간을 ‘안드로포스’라고 합니다. 그 뜻은 ‘직립하는,’ ‘두발로 걷는다’는 뜻이지만 더 깊은 뜻은 “위를 바라보는 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인간은 직립보행하면서 ‘위’를 보며, 앞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땅을 바라보며 사는 짐승과는 다른 것입니다. “돼지는 병들어 누웠을 때 외에는 하늘을 쳐다보는 법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얼굴을 앞으로 향하게 만드셨습니다. 앞을 바라보며 살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병들어 눕기 전에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기 전까지 그저 땅의 것만을 쫓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하늘을 바라볼 때 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앞을 바라보며 쫓아 갈 때입니다.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 것은 잊어버리고 앞의 것을 바라보는 인생이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야 할 목적지를 준비하시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이 거친 광야를 횡단할 때 악조건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일교차가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먹거리도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다 이스라엘 민족의 행군을 방해하는 족속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반복되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용기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전에 살던 애굽을 그리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엔 나일강이 흐르고 있고, 끓는 고기 가마솥이 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이 언제나 있고, 맛있는 과일이 있고, 잠자고 쉴 수 있는 집이 있다. 그러니 그 곳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귀소본능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애굽으로 가지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전진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만 가야 합니다.

인생은 과거로 돌아가면 안됩니다. 인간은 귀소본능이 있습니다. 연어도 귀소 본능이 있어서 아무리 먼 바다에 갔을 지라도 고향에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다고 하지요. 우리 인생도 돌아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찬송가에도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편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고향 하늘나라”우리가 돌아가야 할 귀소는 하나님 계신곳입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귀소는 사는 쪽, 생명이 있는 쪽으로라야 합니다. 죽는 쪽, 망하는 쪽으로 돌아가면 안됩니다. 미래지향적으로 가야 합니다. 과거지향적으로 가면 안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과거지향적 신앙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노인들이 모이면 옛날이야기로 밤을 지새고 장년들이 모이면 현실이야기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모이면 장래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젊은사람, 젊어지고 싶은 사람, 젊게 살고 싶은 사람들은 앞을 보고 앞으로 될 일을 말해야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지 맙시다.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퇴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그는 일자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어느 날 신문 구인난에 사설동물원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습니다. 주인의 요구는 매일 출근하여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고 월급도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다음날 출근해 보니 그가 하는 일은 원숭이 우리에서 원숭이탈을 쓰고 원숭이처럼 뛰고, 기어오르며 원숭이 흉내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싶어 몇 번씩 그만둘까 했지만 월급도 많고 원숭이탈을 쓰고 하는 짓이어서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터라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일도 익숙해졌고 적응력도 생겨 진짜 원숭이처럼 뛰고 기어 오르내리며 원숭이짓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떤 날 그네를 타고 힘껏 올라갔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바로 옆에 있는 호랑이 우리로 떨어졌습니다. 겁에 질린 그가 소리쳤습니다. “아이구 사람살려”라고.
그때 호랑이가 일어나 어슬렁거리며 원숭이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죽었구나 싶어 벌벌 떨고있는데 호랑이가 원숭이 귀에다 대고 “이봐 나도 탈 쓴 호랑이야”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두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인간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사람은 나이는 늙어도 마음은 언제나 청춘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다른 마음이 나의 순수한 마음을 짓누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위선과 체면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위선의 탈, 체면의 탈, 거짓의 탈, 자신을 속이는 탈, 자존심의 탈을 과감히 벗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고 했습니다. <<영상>>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언제나 준비하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가나안땅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 수고 없이 들어가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싸워서 들어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 1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첫째, 강퍅한 마음 때문입니다.
15절을 보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말라”고 말씀합니다. 강퍅하다는 것은 굳어진다, 딱딱해진다, 경직화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신체구조는 흐름과 유연성이 중요합니다. 피가 정맥과 동맥이 제대로 흐리지 못하고 막히면 문제가 생깁니다. 근육도 뭉치거나 몽우리가 생기면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무서워하는 암이란 정상세포가 변형되어 딱딱하게 굳어지는 병적 현상을 말합니다.

본문은 강퍅해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여러군데 바로의 마음이 강팍해져 하나님을 대적한 기사가 나옵니다. 바로는 강퍅하다가 망했습니다. 다니엘서 5:20을 보면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도 그 마음이 강퍅해졌기 때문에 왕위를 빼앗기고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역대하 36장을 보면 남왕국 유다왕 시드기야 역시 마음이 강퍅해져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다가 망했습니다. 강퍅한 마음이나 강퍅한 심령치고 복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왜 마음이 강퍅해 질까요? 그것은 죄의 유혹과 교만과 불신앙이 주범입니다. 죄의 유혹에 빠지면 앞 뒤 분별력이 없어집니다. 교만에 빠지면 목에 힘이 들어갑니다. 믿음이 깨지면 마음이 딱딱해 집니다.
강팍한 내 심령을 성령의 뜨거운 불로 녹입시다. 경직화된 심령을 부드럽게 만듭시다.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 지면 은혜가 마르고, 사랑이 마르고, 믿음이 메마르게 되면 심령이 단단해 집니다. 그렇게 되면 대들고, 따지고, 공격하고, 난폭해 집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렇게 하다고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시험했기 때문입니다.
9절을 보면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였다”고 했습니다. “시험하다”(페이라조)는 것은 데“확인하다 조사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조사하고 확인하려고 따져들지 맙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수사관처럼 조사하고 확인한 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려고 하셨다면 용서 받을 사람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구원받을 사람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고 구원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조건 사랑해 주시고 무조건 용서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도 무조건 믿으십시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 .
10-11절에 보면 하나님을 시험한 그들을 향하여 노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믿고 순종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든지 시험하고 확인하고 조사하는 사람을 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대하여 노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 믿고 따르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믿음이 없어서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9절을 보면 “믿지 아니함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라고 했지 “네 생각대로 될 지어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한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고 감동하는 것만으로 산다면 멸망하고 말것 입니다.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는 말씀에 굳게 서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12정탐꾼은 똑같은 장소와 똑같은 시간에 정탐하고 돌아왔는데 그들의 보고는 서로 달랐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부정적으로 말하면서 불신앙의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긍정적인 믿음의 보고를 하였습니다.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 자신을 우리가정을, 우리교회를, 우리사회를 더 혼란하게 만들고 더 불안하게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가정에 가장이 긍정적이고 진취적이고 하나님을 강하게 의지하는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는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조그마한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우왕좌왕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남을 탓하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가정은 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성공학 이론을 보급시키고 있는 한 출판사가 있습니다. 그 출판사에서는 성공에 대한 많은 책들을 펴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당신의 출판사에서 성공에 대한 많은 이론을 이야기를 하고 엄청난 책들을 펼쳐 냈는데 그 모든 책을 종합해서 한마디로 성공의 비결을 말한다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편집장이 대답하기를 ‘태도와 목표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좋은 태도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면 그 사람은 마침내 성공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은 환경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태도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원망과 불평과 탄식으로 일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버리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에 굳게 섰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광야를 지나도 낙심하지 않고, 높은 성벽을 보고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낙자손 대장부를 보고도 겁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민수기 11장 8절에서 9절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라고 외쳤습니다.
부정적인 사고의 결과는 역사를 40년간 후퇴시켰고 그들을 광야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게 했습니다. 심지어 지도자 모세와 지도자 아론까지 죽게 하고 오직 긍적적인 보고를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못 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자 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강하고 담대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게 하느니라 하시니라”(수1:5-9)

네째,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18절을 보면 “불순종하는 자들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고, 19절을 보면 “믿지 아니함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 할 때 광야를 나가다가 엘림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 곳에는 물이 있었습니다. 샘물이었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12개나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곳에는 종려나무 70수가 있어서 그늘까지 있었습니다. 광야에 있는 오아시스였습니다. 이들은 이 곳에 진을 치고 살게 되었습니다. 엘림을 떠나자 말자 곧 불평불만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시에 맛사와 므리바 물가에서 행한 불순종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홍해를 갈라서 육지처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목이 좀 마르다고 하나님의 종인 모세를 원망하며 불평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화가 난 나머지 하나님께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도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씩이나 쳤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의 불신앙과 모세의 불순종으로 이제 곧 눈앞에 둔 가나안의 복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 부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 지휘관이 그날의 전투 상황에 대해 장교들과 함께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휘관이 물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어느 군인이 가장 탁월한 군인이었는지 생각들을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어느 장교는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군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장교들은 이 군인,저 군인 자기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 때 지휘관은 말했습니다.“아니오. 여러분 모두가 다 틀렸어요. 오늘 전장에서 최선의 군인은 적을 죽이려고 칼을 들어 막 내리치려는 순간 퇴각 나팔 소리를 듣고 적을 치지 않고 팔을 내리고 나팔 소리대로 후퇴한 군인입니다.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한 것이 오늘의 가장 고귀한 일인 것입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더 기뻐하시겠느냐? 보라 순종하는 것이 희생제물보다 낫고 말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삼상 15:22)

선교사 가족이 어느날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뒤뜰에서 혼자 놀고 있느데 갑자기 아빠가 급한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습니다.“얘야, 얼른 땅에 바짝 엎드려!”그 아이는 대꾸하지 않고 즉각 땅에 엎드렸습니다.
“자, 이제 내게로 빨리 기어와” 아이는 시키는 대로 기었다.
“이제 일어나서 나에게 뛰어와!” 그 아이는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와 안겼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자기가 놀고 있던 나무를 쳐다봤습니다. 거기엔 길이가 5m나 되는 무서운 독사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만일 그 아이가 아빠에게 짜증을 내고 “지금 놀고 있는데 . . . 벌서 가야 해요?”하며 꾸물거렸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주님의 음성에는 바로 순종하는 것이 큰 복입니다.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렘7:23절)
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은 더 중요하다. 반쪽짜리 순종은 불순종입니다.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순종하면 풍요가 옵니다. 순종하면 평화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풍요와 평화를 누립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해가 안가도 싫어도 순종해야 합니다. 좀 불합리해도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똑똑한 성도 열보다 순종하는 하나가 더 귀합니다.
성남에 모 감리교회에 목사님이 부임했습니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장로님들도 많은데 좋은 점도 많이 있지만 무슨 일을 할려면 일치가 되지 않고 장벽이 많아서 힘들어하던 끝에 목사님이 부흥하는 교회를 방문해 보자는 제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임장로님과 모든 장로님들이 여기저기 부흥하는 교회들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온누리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어떤 나비넥타이를 맨 남자분이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과 인사를 나누는데 그 분은 교회 사찰집사님이 아니고 교인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직업이 있는데 봉사하러 나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저사람은 집사님 쯤 되는가 보다 생각을 하면서 직분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장로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직업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KTF다닌다고 말했습니다. 직급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 예 저는 KTF에 회장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장로님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조용해 져버렸습니다. 대단한 각오들을 한 듯 모두 조용히 돌아왔습니다. 주일날 낮예배 시간, 광고시간에 그 장로님이 ‘목사님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하시더니 ‘여러분 제가 지금까지 수십년을 신앙생활 한다고 했는데 헛되게 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온누리교회를 방문하고 엄청난 도전을 받았습니다. 저는 장로가 목사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우리교회 화장실 청소는 제가 맡아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교회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부흥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항상 가나안을 행하여만 움직였습니다.40년간 오직 하나의 목표는 가나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오직 하나의 꿈은 가나안이었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꿈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돈 따라 움직이면 안 됩니다.
쾌락따라 움직여도 안 됩니다. 흥미따라 움직여도 안 됩니다. 추억따라 움직여도 안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꿈을 따라 비젼따라 가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강팍한 마음이 깨어지지 않고는 하나님의 복이 임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방망이로 성령의 방망이로 깨뜨려 부수고 부드러워 질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따지지 마십시오. 그저 단순히 믿고 따르십시오. 의심을 믿음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신뢰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도 우리를 신뢰하십니다. 불순종을 순종하는 삶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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