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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창 50: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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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 울었더라.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완연한 봄입니다. 새싹이 나고 꽃도 피고 그러다 좀 있으면 덥다고 하는 여름이 오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 다음에는 겨울이 옵니다.
자연의 법칙은 틀림이 없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침에 해가 뜨면 저녁에는 해가 집니다. 오늘 저녁에 해가 지더라도 내일 아침에는 또 해가 뜹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가 있습니다. 이 원리는 사물의 근본 이치라고 합니다. 이 원리가 세상을 지배합니다. 뉴턴의 「 만유의 인력의 법칙 」이 있습니다. 뉴턴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 사과는 위에서 아래로 똑바로 떨어지는 것일까? 휘어져서 떨어질 수도 있는데, 옆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데... 왜? 꼭 위에서 아래로만 떨어지는가?’ 사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모든 물체가 다 위에서 아래도 떨어집니다. 그 많은 생각 끝에 결론을 내리기를 사과가 가지에서 아래로 떨어질 때 옆으로 떨어지거나 휘어서 떨어지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똑바로 떨어지는 것은 밑에서 당기고 있는 어떤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구에는 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이렇게 끌어당기는 힘이 지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달에도 있고 우주의 별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보니까 많은 것들이 만유의 인력의 법칙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지구와 달, 그리고 별과 별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도 만유인력이라는 법칙에 지배를 받아서 그렇습니다. 이런 상태를 양력이라고 하잖아요. 태양을 중심으로 별들이 움직인다는 케플러의 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의 원리나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도 이 만유의 인력의 법칙에 지배를 받아서 그렇다는 겁니다.

저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신기합니다. 이렇게 큰 물체가 어떻게 하늘을 날아 갈 수 있는가?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는 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 롱비치에 전시되어 있는 하워드 휴즈가 만든 「H4 허클루즈」라고 하는 비행기는 118톤이라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700명이 탈수 있는 그런 비행기입니다. 이렇게 무거운 것이 하늘을 날수 있는 것이 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는 모든 것이 다 원리에 의해서 움직이고 지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스릴 때 다스리시는 원리가 있습니다. 창50장 20절에 담고 있는 하나님의 원리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해를 당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해를 선으로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1. 이 원리를 요셉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해서 요셉을 애굽의 상인들에게 팔았습니다. 애굽의 종이 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시고 만인의 생명을 구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 야곱이 죽자 이 권력있는 요셉이 자기들을 죽이고 해할까봐 얼마나 걱정을 하는지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되면 잘못했으니 용서를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그 말에 눈물을 쏟으면서 형님들 그게 아닙니다. 내가 형님들을 지금 용서하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합니다. 19절-21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형들은 지은 죄가 있으니까 용서해 달라고 당신의 종이 되겠다고 엎드리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것은 당신들과 나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속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원리가 있었다는 겁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만인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요셉이 말하는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원리를 알아야합니다. 이 원리가 고통 중에 있는 우리를 고통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가지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해를 선으로 바꾼다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의도와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요셉이 국무총리가 됐습니다. 국무총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요셉이 무슨 공부를 했습니까?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와서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예로 살면서 원망이나 불평하나 하지 않았습니다. 맡은 일을 불성실하게 대충 대충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마음에 쏙 들어서 우리가정의 살림살이를 다 맡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정의 총무가 됐습니다. 거기서 경제를 알고 경영을 배운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에 가서 고통 받고 어려움을 당했겠지만 이 감옥에서 정치인 수용소이기에 정치인들을 만났습니다. 술 맡은 관원, 떡 맡은 관원... 나라를 알고 정치인들을 사귀게 됐습니다. 거기에서 정치를 배웠습니다. 경영을 배우고 정치를 배우고. 이만하면 국무총리 될 만하잖아요. 하나님이 국무총리 되게 하신 것은 우연히 하신 것이 아니라 이런 놀라운 계획 속에서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분명 고통이고 어려움이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서 국무총리를 만드신 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한 맹모삼천지교를 가지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시장 통에 사니까 시장 놀이해서 교육에 나쁘고 무덤가에 사니까 곡하는 사람 따라다녀서 교육에 나쁘고 그래서 제일 좋은 학교 옆에 갔더니 훌륭한 사람이 됐다고 합니다. 정말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도 가만히 보세요. 어떤 분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시장 통에 살면서 맹자에게 경제를 가르쳤고 무덤가에 살면서 사람들이 죽음을 보면서 인생을 가르쳤고 그리고 학교 옆에서 많은 지식을 쌓게 했더니 경제를 알고 인생을 알고 지식을 쌓은 맹자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더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왔지만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감옥에 갔지만은 노예가 되고 감옥에 가는 것은 분명히 고통이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고 하나님은 고통을 축복으로 바꾸셨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원리가 요셉을 다스리는 겁니다.

현재의 미국의 대통령의 아버지 때인 조지 부시 때의 얘기입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어느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서 “나는 브로콜리를 싫어 하니까 음식에는 브로콜리를 넣지 말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 일은 곧 입소문을 통해 퍼졌습니다.
브로콜리가 팔리지 않는 겁니다. 대통령도 안 먹는 것 우리도 먹지 말자고 그래서 브로콜리가 팔리지 않는 겁니다. 요즘 음식점에 가면 궁중음식, 임금님이 먹던 음식이라고 하면 잘 팔리잖아요. 그러니까 대통령이 안 먹으니까 사람들이 안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애꿎은 피해를 본 브로콜리 재배 농장주들은 함께 모여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그들은 거친 항의 대신에 한 통의 편지와 대형 화물차에 가득 실은 브로콜리를 대통령에게 보냈습니다.
“대통령님. 이것은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미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채소입니다. 단백질이 많고 철분이 다량 함유돼 있으며… 몸에 상당히 이롭습니다. 지금까지의 생각을 바꾸셔서 이것을 즐겨 드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자들이 이런 것을 가만 놔두겠습니까? 편지의 내용과 선물 사건은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이 됐습니다. 모르던 브로콜리가 보도되니까 이 야채가 좋으네, 나쁘네 하면서 이 야채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습니다. 엄청난 홍보 효과를 거둔 거지요.
이러니 대통령도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나도 브로콜리를 먹습니다” 그래서 백악관에서 많이 먹으니까 이 국민들도 덩달아 같이 먹는 겁니다. 그들은 화를 복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를 가리켜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내가 본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더 크고 놀라워서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그것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날 바보가 사는 집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강도가 보니까 바보거든요. 바보니까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 바보에게 내가 지금 내는 퀴즈를 맞추면 너를 살려주고 틀리면 내가 너를 죽이겠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삼국시대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삼국시대의 세 나라 이름들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바보는 답을 알 수가 없습니다. 10초안에 대답하라 하고 초를 잽니다. 열 번을 세도 이 바보가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강도가 배에 칼을 들이 대면서 대답을 재촉합니다.
그랬더니 이 바보가 얼마나 놀랬는지... “나 배 째실라고 그려? (백제, 신라, 고구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강도는 그냥 갔다고 합니다. 바보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2. 이 원리를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창세기 50장 20절의 원리는 아브라함에게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20장 8절을 보게 되면 아브라함이 블레셋지방 그랄 땅에 가서 살게 됐는데 거기서 그런데 그 땅을 지배하던 아비멜렉에게 사라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였습니다. 왜? 부인이라고 하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 갈까봐 걱정이 돼서 그렇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비멜렉이 아내 사라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것이 아니고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서 하시는 말씀이 “아비멜렉아! 그 사라는 남편이 있는 몸이다. 네가 만일 그 사라의 몸에 손끝하나 된다면 너는 죽을 줄 알아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밤에 꿈을 꾸다가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깜짝 놀라가지고 밤잠을 못자고 있다가 이른 새벽에 사라를 데리고 아브라함에게 가서 “왜 나에게 거짓말을 했냐?” 그렇게 말을 하면서 사라를 돌려 보내냈을 뿐만아니라 하나님께 자기를 좀 봐달라고 양과 염소, 선물까지 보테서 준겁니다.

여러분 보세요. 거짓말은 아브라함이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책망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비멜렉이 책망을 받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부모의 자식사랑이구나!’
제가 언젠가 신문을 보니 아들이 나쁜 사람입니다. 그래서 얼마 있지 않은 엄마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엄마를 청부살해 하려고 하다가 그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아들이 붙잡혔습니다. 꼼짝없이 감옥에 가게 됐습니다. 그랬더니 이 엄마가 경찰서에 와서 사정을 합니다. “제 아들이 못된 것 저도 압니다. 그러나 우리 아들을 감옥에 보내지 말고 나를 대신 감옥에 보내주세요.”라고 했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니까 자식의 허물이 허물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사랑하는 겁니다.

제가 교육 전도사 시절에 큰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교육전도사를 하는 시절에는 학부형들이 저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선물도 사다주고 먹을 것도 주고 어떤 분들은 여름 수련회 가는데 봉투도 하나 주시고 그랬습니다. 그만하면 교육전도사 잘 했잖아요. 그랬는데 한 어머니가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전도사님, 우리 애 말썽 많이 피우지요?” 사실 말썽 많이 피웁니다. 예배시간에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 가서 저 뒤에서 앞으로 왔다가 갔다가 하고 이쪽 저쪽 왔다 갔다가하고 얼마나 개구집니까? 예배시간에 그러고 다니니까 기도도 안되고 예배도 안되는 겁니다. 이 엄마가 하는 말이 때려서라고 사람을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그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었네요. 때리지는 않았지만 꿀밤 몇 대를 때렸습니다. 그 다음주일에 이 엄마가 인사도 안하더라고요.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 말썽을 피워도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부모의 마음이구나...’ 여러분도 여러분의 자식들이 남들이 못됐다고 하더라도 그 자식이 다른 사람에게 매라도 맞으면 여러분들도 가만히 계시지만은 않으시잖아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자식처럼 부모보다 더 사랑하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이 해를 했지만 하나님은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겁니다.
탕자의 비유에도 나오잖아요. 세상 사람들은 탕자를 죄인이라고 하고 자신도 죄인이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죄를 묻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맞이하시잖아요. 우리 하나님은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 가지고 우리를 다스리는 겁니다.

3. 이 원리를 다윗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창세기 50장 20절을 원리가 다윗에게서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24장에 보게 되면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동굴속에서 볼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굴속에는 다윗과 그 일행이 숨어 있었습니다. 사울왕은 화장실이 얼마나 급했는지 그 동굴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다윗이 옆에 와서 자기의 옷자락을 자르는 것도 몰랐습니다.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는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에게 “죽이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회가 아닙니까? 이제는 쫓겨다니는 고통의 끝이 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라고 얘기를 하면서 사울임금을 죽이자고 얘기를 합니다.
이때 다윗이 말하기를 “아니다 나는 죽이지 않겠다. 하나님이 기름 부에 세우신 종인데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자기의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목적 앞에 겸손해 졌습니다. 해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목적과 목표는 다른 것입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대표작이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를 찍은 배우입니다. 아카데미 주연상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명배우가 성공의 정점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헐리우드여! 실버스크린이여! 왜 이렇게 황당한가? 왜 이렇게 허무한가?” 배우로써는 성공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만족도 기쁨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새로운 목표를 찾아서 남편과 딸을 버리고 유명한 영화감독과 결혼했지만 얼마 못가서 파경을 합니다. 그 후에도 여러 남자와 결혼을 하지만 실패를 하고 맙니다. 그런데 어느날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이 계부를 북이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됐겠습니까?
이 여인에게는 인생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명배우가 되어서 출세를 하려고 하는 목표, 능력있는 남편을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겠다는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목적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암으로 고통 중에 죽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목표를 가지고 삽니다. 돈버는 목표, 큰집을 사는 목표, 잘 먹고 사는 목표, 대학가서 출세하는 목표, 또 건강하게 평안하게 사는 목표... 그러나 그 목표가 이루어지면 그 다음엔 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디론가 목표를 찾아서 가기는 갔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허무해지는 겁니다. 방향은 있는데 의미가 없습니다. ‘왜 사느냐?’ 이것은 목적의 질문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는 목표의 질문입니다. 여러분 목적과 목표를 혼돈하시지 마세요. 목적과 목표를 혼돈하고 마치 하나인 채 헤매다가 한번 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을 망쳐서는 안되는 거에요.
다윗의 부하들은 죽고, 살고, 이기고, 지고의 목표에 끌려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사울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인생은 실패요, 허무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릅니다. 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신앙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곳에 보내셨는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겁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는데 매를 많이 맞았는데, 고통 중에 있는데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열려진 감옥 문을 향해서 걸어 나가지 않았습니다. 감옥 문이 열린 것을 본 간수는 깜짝 놀라서 이젠 죽었다 생각을 했습니다. 죄수가 도망친 줄 알고 죽으려고 하는데 바울과 실라가 나타나서 내가 여기 있으니 멈추라고 합니다. 그때 간수는 그 앞에 엎드려서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니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서 그 간수의 가족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아서 거기에 빌립보 교회가 세워 진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목표를 세웁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은 성공! 성공! 성공!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목표 외에 목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계획, 뜻, 인도하시는 섭리가 있음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는 것이 ‘목적이 있는 삶’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있으심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쉽게 이루려고 해선 안 됩니다. 죽이고 뺏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겁니다. 왜?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원리로 우리와 우리를 다스리시는 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목표에 대한 시험이나 유혹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인생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힘이 있습니다.

한동대학교 김영길 총장이 자기 학교 학생을 자랑하더라고요. 자기는 학생들에게 정직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시험도 무시험이고, 시험도 집에서 쳐서 오는 겁니다. 그래서 점수보다도 정직을 가르쳤다는 겁니다.
실력이 있는 한 학생이 대기업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 신입사원 훈련을 하는데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이 많습니까? 소위 일류대학 출신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 지방대학교 출신이 끼어 있는 겁니다. 이제 훈련이 끝나고 마지막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너무나 문제가 어려워서 도저히 풀 수가 없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옆으로 사람들끼리 쪽지가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이 학생은 정직을 배우고 하나님을 아는 학생이기에 이 그리스도 젊은이는 백지 답안지를 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입사원 평가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은 사람은 이 젊은이라는 겁니다. 감독관이 물었습니다. “자네는 왜 백지 답안지를 냈는가?”“네, 제가 아무리 봐도 몰라서 백지 답안지를 냈습니다.” 감독관이 문제를 낼 때 ‘사원들이 절대 풀지 못하는 문제를 내야지’ 하고 낸 것입니다. 그런데 훈련받은 모든 사원들이 쪽지가 오가면서 천편일률 비슷 비슷한 답이 있는데 그중에 백지가 있어서 질문을 하니 정직을 아는 젊은이였던 것입니다. ‘나는 너에게 정직의 점수를 후하게 줘야겠다’

여러분 이 세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다 승리하는 것 같아 보여도 최후의 승리자는 정직이요,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원리인줄로 믿습니다.

하인즈 워드의 후속 얘기가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버림을 받고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나를 무시하니 이를 어떻게 합니까? 내 힘만으로는 못 사는 겁니다. 새벽기도를 나가고 철야를 나가고 주일성수를 하고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하고 “하나님! 하나님만이 우리를 살게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남 원망, 불평, 거짓말하지 말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았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 가정 속에서도 그대로 이루어 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제 다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시기 바랍니다. 해를 선으로 바꾸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은 고통이 올 때 원망하지 말고 거짓말 하지 말고 우리 자신을 양보하지 말고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와 사랑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축복으로 함께 하실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 복음성가 중에도 이런 것이 있잖아요.

나의 등 뒤에서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키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평안히 길을 갈 때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 하시네

(후렴)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우리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도 앞으로도 이 한 주간 동안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승리하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오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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