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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호 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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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살고 있는 것이 복 받았다는 증거요, 감사의 조건입니다.
옆의 분과 인사합니다. "복 받았습니다. 살고 있는 것이 복입니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따라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지금까지 지내온 것 (460장 1절)♬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 목요일, 제 작은 아들 <영민>이가 수술을 했습니다.
1년 전 레슬링을 하다 쇄골뼈가 부러져 수술을 했는데
그때 붙여 놓았던 쇠 조각을 떼어내는 수술이었습니다.

쇄골[鎖骨, clavicle] : collarbone이라고도 씀.
척추동물에서 상지연결대(上肢連結帶)의 앞에 위치한 굽은 뼈.
어깨를 지탱하는 버팀목 기능을 한다.
쇄골은 물건을 잡을 때 쓰는 앞발을 가진 포유동물과 박쥐에는 있지만,
바다의 포유동물과 달리기에 알맞게 적응된 동물들에게는 없다.
새의 유합쇄골(癒合鎖骨)은 쇄골 2개가 붙어서 이루어진 것이고,
몇몇 물고기에서는 가슴지느러미 아래에 초승달 모양의 쇄골이 있다.
사람은 2개의 쇄골이 목 밑부분의 앞쪽에 양쪽으로 수평을 이루고 있는데,
S자로 완만하게 굽은 쇄골의 내측 끝은 흉골(胸骨)과 관절을 이루고
외측 끝은 견갑골의 어깨돌기와 어깨 쪽에서 관절을 이루어 어깨관절의 일부가 된다.
강한 인대(靭帶)가 두 쇄골의 양쪽 외측 끝을 지탱하고 있으며,
뼈몸통[骨幹]은 상지연결대와 목근육에 붙어 있다.
쇄골은 선천적으로 크기가 작거나 없을 수도 있으며,
쇄골의 강한 정도는 근육발달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가보고 싶었는데 비전센타 강단 공사 중이고… 너무 자주 자리를 비우는 것 같기도 하고…
부러졌을 때 한 수술보다는 쉬운 것이라고 해서 저는 참았습니다.
(자기 아들 아니라고 별것 아니라는 분도 계시더군요.)
남들은 걱정 말라고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제 마음은 일주일 내내 작은 아들에게 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녀 된 우리가 힘들 때 아버지가 아들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안타까우실 것이다.'
따라서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멘.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성경 들고 우리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신18:8~9).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고백한 대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가져다가… 두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에게 사람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을 깨닫게 합니다.
요단강 동편에서 이른 아침부터 강을 건널 준비를 하였던 사람들이
강을 모두 건넜을 때(수3:17~4:1)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모든 백성들이 강을 건너고 난 후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은 '만세'였을 것입니다.
만세는 경축과 환호의 뜻으로 외치는 말이며, '성공, 승리'의 기쁨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야~ 이겼다, 가졌다, 해냈다'는 의미입니다.
매우 기뻐하며 손바닥을 부딪치며 얼싸안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 명령이 여호수아 4장 2~3절입니다.
백성들 각 지파에서 하나씩 12명을 뽑아
요단강 한 가운데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서 있는 곳에서
12개의 돌을 가져다가 오늘밤 묵을 곳에 두라고 했습니다.

5절에 보니 어깨에 메고 나올 만큼의 큰돌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강을 건너 안심하고 좋아하며 만세를 부르는 상황인데
다시 강 가운데로 들어가서 무거운 돌을 들고 나오라는 명령입니다.
강을 건너느라 몸이 피곤했을 것이고… 강물이 불어 물이 넘치는 때입니다.(수3:15)
물론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강 가운데 서 있어
물이 끊어지고 쌓여 벽처럼 서 있지만(수3:13)
그 물이 언제 쏟아져 내릴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건너왔는데 다시 강 가운데 들어가서
어깨에 큰 돌 하나씩 메고 나오라니…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그렇지만 9절에 보면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백성들에게 전달만 하지 않고
자신도 직접 강 가운데로 들어가서 12개의 돌을 세웠습니다.
여호수아는 믿음과 순종의 본을 보인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가지고 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믿음과 용기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물론 의심과 낙망에도 전염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과 가까이 하는가?, 어떤 사람이야기를 듣는가?,
누구와 함께 하는 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집니다.
보세요. 비슷비슷한 사람끼리 만나고 비슷비슷한 사람끼리 친구가 됩니다.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비슷비슷해지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났더라도 그 중에 말과 행동이 센 사람에 따라
그 영향을 받아 비슷해집니다.

그래서 '잘 만나야 합니다'
>친구 잘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뿐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친구 잘 만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직장에서도 좋은 동료를 만나야 하고,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도 믿음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선생님도 잘 만나야 합니다.
학교에서 교회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합니다.
스승을 잘 못 만나면 평생 그 생각과 가르침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제가 신학대학에 다닐 때 여러 교수님들께 배웠습니다.
그 중에 어떤 교수님은 매사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의 수제자가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교수님의 생각이 닮고 싶었던 사람들,
그 교수님의 생각이 절대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지금도 매사 비판적이고 부정적입니다.
특별히 운동선수들 좋은 코치를 만나야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합니다.
기초를 잘못 배우면 아무리 다시 가르치려 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남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지도자도 잘 만나야 합니다.
교회의 작은 속회/선교회/부서도 어떤 사람이 리더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제대로 된 속회강사를 만나면 속회가 부흥됩니다. 선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에 어떤 분이 새로 오셔서 주일낮예배 뿐 아니라
녁예배, 수요일예배, 금요심야, 성경공부 등 모든 모임에 열심히 참석했더니
속회강사가 "너무 초장에 열내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제가 그 얘기를 전해 준 분에게 '그런 말을 한 속회강사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불러서 책망하고 가르쳐 생각을 바꾸게 해야지요. 아니면 그만두게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런데 의리 때문인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분은 속회 인도 하면 안됩니다.
-교회도 목회자에 따라 성도들이 닮아갑니다. 그래서 제가 늘 긴장하고 사는 것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말해서 무엇합니까~ 요즘 우리나라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지요.

이런 저런 만남의 복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만남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그 사람 만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지,
내 인생에 그런 분을 만났다니…' 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어떤 분이 "목사님, 제가 그때 그분 집에 월세를 들어가기를 천만다행입니다.
그분이 얼마나 잘해 주셨는지 제가 그 분 집에 월세로 들어가
그분의 인도에 따라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이 우리 교인 집에 전세로 살면서 우리교회를 소개받고 지금 신앙생활하고 있는데
그것이 너무 너무 감사하다고 담임목사님이 너무 수고가 많으시다면서
제게 봉투 하나를 전해 주셨습니다. (이런 일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만남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념비를 세우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받은 명령을 전할 뿐 아니라
자신이 그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순종의 본을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용기 있게 실천하도록 자신이 강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돌을 들고 나가게 하고 여호수아는 강 가운데에 12돌을 세워 두었습니다.
9절에 보면 그것이 "오늘까지"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성경 여호수아서는
요단강을 건넌 후 세월이 좀 흐른 뒤에 기록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요단강 가운데 있던 돌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뒤에
그 엄청난 일, 그 놀라운 일,
그 감동적인 체험을 기억하는 것과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탈출 할 때부터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 기적, 돌보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요단강까지 건넜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간순간 불평하고 원망하고…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하고… 하나님말고 다른 힘센 신이 없나하여 금송아지를 만들고…
정말 한심한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닌 엉망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건넌 후에
강 가운데 돌을 가져다가 기념비를 세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강 밖에도 돌이 많았을 텐데… 왜 강 가운데 있는 돌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을까요?
여러분, 강 밖에 있는 돌과 강 가운데 물 속에 있는 돌은 다릅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한탄강 강변에 살았습니다.
그때 본 기억으로 강 밖에 있는 돌과, 강 가운데 있는 돌은 다릅니다.
강 가운데 있는 돌은 구르고 깎여 반들반들 했습니다.

그런 돌을 바깥에 12개를 세워 놓아야 사람들이
"이 돌은 무엇이냐"고, "왜 이 돌이 여기 있느냐"고 물을 것 아니겠습니까?

여호수아 4장 21절에 보면
"…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수4:21)
22절 "…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수4:22)
23절 "…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수4:23)
24절 "…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 (수4:24)

후손들이 돌들을 보거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요단강이 갈라져
사람들이 마른 땅을 밟고 강을 건넜음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사람들 뿐 아니라 후손들의 신앙생활까지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순간 순간 닥친 일에만 관심이 있고 순간 순간 해결되는 일에만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관심 가져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에 살게 될 후손들,
우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신앙생활 하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도 신경 써야 합니다.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다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은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자연을 깨끗하게 지키고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후손들이, 자녀들이 살아가야 할 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 혼자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르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다음 세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늘 '기둥교회는 계속 성장해야 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이 '이 정도면 아담하다.
교회가 너무 클 필요가 있느냐, 우리끼리 잘 믿고 잘 살다가 가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며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한 생명이라도 더 예수 믿게 해서 구원받는 사람이 많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새신자가 늘어나게 하고 세례 받는 사람이 많게 해야 합니다.
특별히 젊은이와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야 하고 그들은 세상 구석구석, 세계 각처에 흩어져
복음의 빛을 발하는 사람으로 살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해야 하고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가만히 있으면 편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걱정거리 없습니다.
전도하자, 선교하자, 지교회 세우자, 선교사를 돕자…
이런 저런 곳을 돕고 심지어 아프리카의 어린이를 돕고
교회 이곳 저곳 고치고, 비전센타 고치고… 왜 합니까? 살았으니까 하는 것입니다.
왜 합니까? 여기가 복음전파의 선교의 전진기지 이기 때문에 든든해야 합니다.
왜 합니까? 여기가 우리들의 신앙의 기념비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멋지고 의미 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적을 두고 신앙생활 하는 이 기둥교회가 기념비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대를 이어야…

요단강을 건넌 사람들이 강을 건넌 기쁨과 감격 그리고 하나님의 돌보심과 능력에 대해
마음속에 새기고 기억하고 후대에 잘 전하면 됐지…
요단강 바닥의 돌을 주워다 눈에 보이게 세워 영원한 기념이 되게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21절 말씀대로 "후대의 사람들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묻게 하기 위해"서이며
24절 말씀대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그들에게 알게 하고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어디다 세워야 후손들이 보겠습니까?
이 교회가 기념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기둥교회가 기념이 되시기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이 오라시면…, 주님 다시 오시면… 언제든지 '아멘'하며 다 버리고 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기둥교회가… 네 할아버지가 신앙생활 하던 교회란다.
이 교회에서 네 할머니가 집사였었지. 찬양대 봉사하고 교사를 했단다.
내가 예수 믿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던 증거가 이 기둥교회란다…"하며
가르쳐 믿음의 대를 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왕이면 교회도 잘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상합니다.
호텔이나 백화점을 크고 화려하게 지으면 그곳을 이용하며 좋다고 합니다.
절간을 멋지게 지으면 구경갑니다. 소풍가고 수학여행 갑니다.
절은 크고 멋지게 돈 말이 들여 지어도 뭐라 말하지 않으면서
교회를 크고 멋지게 지으면 뭐라고 합니다. 자기 집 잘 짓고, 자기 옷은 좋은 것 입으면서…
자기 집 소파는 바꾸면서 교회 의자를 바꾸고 교회 식당을 고치면
'교회가~ 이런 데에 굳이 돈들일 필요가 있나' 라고 합니다.
안 짓고 들판에서 예배드리거나, 남의 집 빌려 예배드린다면 몰라도
이왕 지을 것이면 잘 짓는 것이 좋지요.

여러분 지금 입고 계신 옷이 얼마짜리인가요?


서울의 모 백화점에서 맞춤양복이 3천만원이라고 합니다.
'오뜨꾸뜨르(맞춤정장) 출장서비스'를 통해
가격대 155만∼3천만원인 맞춤양복을 판매한다고 합니다.
맞춤정장 출장서비스는 20년 이상 경력의 전문 패턴사가 고객을 찾아가
체형과 요구에 맞는 정장을 만들어주고 이후 완성품까지 배달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맞춤 정장의 인기가 꾸준히 늘어 매출이 작년보다 29% 가량 늘었다"고 합니다.
(2006. 3. 14. 동아닷컴 참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너무나도 관대하고 풍요롭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왜 그렇게 인색한지요.
다른 것을 바라보는 데는 관대합니다.
심지어 수십억 씩 들여 절을 짓는 것을 보아도 관대합니다.
그런데 왜 교회에 대해서는 인색합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정에서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후손을 위해 기둥교회가 기념비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출석하고 세례 받고, 직분 받고, 은혜 받고, 봉사하고, 섬기고,
건축한 교회에 내 후손도 다닐 수 있어야 합니다.

알게 하며… 경외하게 하라

잘 들으세요. 자기만 잘 믿어 끝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혼자만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안심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도 자기가 살 길이 열렸을 때
자기 가족들을 챙겨 함께 살았습니다.(수2:12~13, 6:17)
가족과 친척의 구원에 관심이 없고 후손들의 신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바른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 중요한 직분을 세울 때
'가족들이 바르게 신앙생활 하는가? 자녀들이 바르게 신앙생활 하는가?' 를
보는 것입니다. 여기 혹 직분 받을 때까지는 자녀들이 신앙생활 잘 했는데
직분을 받고 나서 자녀들이 바르게 신앙생활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중직의 자녀들이 바르게 신앙생활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도 성도들 앞에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후손들이 바르게 신앙생활 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몸부림치며 금식하고 간절함으로 기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가르치라고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 가운데 있는 돌을 가져다 강 밖에 돌을 세우게 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가족이, 자녀들이, 온 식구가 한 마음 되어 신앙생활하고
믿음의 대를 잇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보다 더 먼저, 더 잘 성공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순종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고 끝까지 성실해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귀찮은 것, 어려운 것이 있을 줄 압니다.
예배 마치고 나가면서 목사님, 전도사님들의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쏜살같이 나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눈 마주치면 성경공부하라고 할까봐, 선교회 참석하라고 할까봐… 귀찮으실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들이 교역자들이 여러분을 괴롭히려는 말씀이겠습니까?
교역자들이 하라고 하는 것들이 여러분을 짜증나게 하기 위해 하는 것이겠습니까?
'주일 지켜라/예배 귀중히 여겨라/성경 읽어라, 배워라
바르게 드려라/섬겨라/겸손해라/봉사해라/화목해라/용서해라/
분을 내도 죄짓지 말고 해지기 전에 풀어라/부부끼리 싸워도 기도 외에 분방하지는 말라.
어느 곳에 살든지 신앙생활 하는 사람처럼 살라'는 말들이 귀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는 길이며 사는 방법입니다.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지독한 근시안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2개의 안경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하나는 돋보기였고 하나는 보통 안경이었습니다. 요즘엔 다중초점이 나와서 편합니다.
주머니에 안경 2개를 넣어 다니는 일이 여간 짜증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밀워키에서 대중연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청년이 그를 향해 총을 발사했습니다.
청년이 쏜 총알은 루스벨트의 가슴에 그대로 명중했습니다.
그런데도 루스벨트는 약간의 부상만 입었을 뿐 연설을 계속했습니다.
총알이 안주머니의 강철 안경집을 맞고 튕겨 나간 것입니다.
그렇게 귀찮아했던 안경집 때문에 그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2006년 3월 13일 국민일보 겨자씨>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거추장스럽고 귀찮게 생각되는 일도
그것이 때로는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귀찮게 여기는 그것들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귀찮게 여기는 그것들이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게 하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믿음의 조상들이 순종하며 살았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대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만 잘 믿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를 잇고
"영영한 기념이" 이 교회를 통해 세워지고
여러분의 믿음이 하늘에서 해같이 빛나는
복된 믿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에 예배드렸습니다. 말씀 들었습니다. 찬양 불렀습니다. 이제 예물 드립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께서 하라시는 명령대로 순종하며
모든 신앙의 표적을 남기는 그 교회의 복된 성도들로 남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는 말씀이 예전 요단강가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말씀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우리와 우리 가정, 자손들에게 계속되는 말씀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6년 3월 19일 주일낮 부예배, 고신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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