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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브롯 핫다아와 (민 11: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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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LG경제연구원이 밝힌 '이런 사람이 불량 직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일곱 가지 유형으로 대별됩니다. 첫째, 회사경영, 동료, 상사 등에 대해 습관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항상 불만형. 둘째,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에는 마음이 없고 더 전망 좋은 직장이나 자신에게 잘 맞는 직장이 발견될 때까지 머무는 임시체류형. 셋째, 능력은 있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 유아독존형. 넷째, 언제 어디서나 마찰, 갈등, 위험부담을 안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마찰회피형. 다섯째, 언제 어디서나 만든 결과를 가로채는 무임승차형. 여섯째, 항상 부지런하고 분주히 일하지만 뚜렷한 목표 의식이 없는 좌충우돌형. 일곱째는, 한 방에 끝낸다는 생각으로 매사를 결정하는 홈런타자형 등입니다. 직장생활은 곧 사회생활입니다. 그가 속한 사회생활을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사람됨이 드러납니다. 사람의 얼굴과 생김이 각양이듯 사람됨이나 사회 적응 태도도 다양합니다. 문제는 그의 사람됨을 인하여 그가 속한 공동체가 안정될 수도 있고, 뒤틀릴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말 한마디와 행동하나가 공동체를 사르는 불씨가 될 수도 있고, 세우고 지키는 건축 자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사람됨에서 비롯됩니다.

  오늘 본문은 고기 먹기를 소원하며 불평을 일삼던 백성에게 메추라기를 약속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일단 모세를 도울 70인의 장로를 세우신 다음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메추라기를 공급하심으로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평한 죄에 대해서는 큰 재앙을 통해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후부터 그곳 지명을 '기브롯 핫다아와' 곧 '탐욕의 무덤'이라 하였습니다. 육신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것은 영혼과 육체의 멸망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육신의 욕망과 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한 영혼의 건강은 무엇보다도 우선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육신의 것 때문에 불평과 욕심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가정과 교회의 '기브롯 핫다아와'를 하나님께 간절히 회개해야 합니다. 사순절 기간에 예배와 기도를 통해서 '탐욕의 무덤'이 사라지는 감사와 섬김의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불평의 무덤
  본문 31절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 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바람의 변화를 주도하셔서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장면입니다. 자연적인 현상을 초월하여 하나님께서 동남풍을 이용하여 철새들을 이스라엘 진 위에 소나기처럼 무더기로 떨어뜨리셨던 것입니다. 메추라기가 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면에 하룻길, 약 32km 정도에 걸쳐 지면에서 두 규빗, 약 1m 높이로 쌓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추라기를 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의 엄청난 고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기까지 온 것도 하나님의 전적으로 은혜입니다. 앞으로의 일정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와 감사의 마음은 다 마르고 날아갔습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살았습니다. 만나를 먹으면서도 불평하였고 고기를 달라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탐욕이 앞서면 불평 불만의 봇물이 터집니다. 탐욕은 불평입니다.

  이솝우화 중 네 마리의 황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들판에 네 마리의 황소가 한가롭게 뛰놀고 있었습니다. 황소들은 풀을 뜯을 때나 잠을 잘 때도 늘 함께 할 정도로 친했습니다. 위험이 닥치면 서로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런데 사자 한 마리가 황소들을 호시탐탐 노렸으나 네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하기는 힘에 겨웠습니다. 어느 날 사자는 약간 뒤쳐져 풀을 뜯는 황소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다른 소들이 네 흉을 보더라."
  사자는 다른 소들에게도 차례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네 마리의 황소는 서로를 불신하기 시작했습니다. 황소들은 서로 세 친구가 자신을 따돌림 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황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사자는 황소들을 한 마리씩 차례로 공격해 네 번의 멋진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자는 황소의 마음에 불신의 씨앗을 던져 공격에 성공한 것입니다. 사탄의 전략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가정과 조직을 허물기 위해 '불평의 씨앗'을 던진 후 무너뜨립니다. 사랑과 믿음은 가정과 사회를 지키는 굳건한 방패입니다.

  불평은 저주이고 죽음이고 무덤입니다. 불평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탐욕은 불평을 낳고 멸망의 종착역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감사가 사라지면 불평과 불만이 튀어나옵니다. 불평이 있는 곳에서는 신앙과 사람과 범사가 다 죽습니다. 무덤화됩니다.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과 사람과 교회와 가정에 대해서 불평이 있었다면 회개하고 다 청산합시다. 불평의 불씨가 여러분의 모든 행복과 축복을 다 태우고 삼키기 때문입니다. 불평의 무덤 속에 갇혀서 저주와 멸망의 백성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순절 기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생각하면서 불평의 삶을 버리고 감사와 찬양의 삶으로 변화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불화의 무덤
  본문 32절 "백성이 일어나 종일 종야와 그 이튿 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십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이틀간 닥치는 대로 메추라기를 모아들였습니다. 그들이 모은 양이 그들의 탐욕 정도를 대변해 줍니다. 즉 그들 중 적게 모은 자가 '십 호멜' 약 120말 정도였으니 전체 백성들이 거둬들인 양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났음이 분명합니다. 특히 그들의 원망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처럼 당신의 크신 권능을 친히 나타나셨건만,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깨닫고 자숙하기는커녕 서로 더 많이 모으겠다고 아귀다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백성의 완악함을 보게 됩니다. 먹는 음식 가지고 욕심을 부리고 싸우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보기 흉합니다. 이는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탐욕으로 인하여 메추라기는 썩고 백성들 간에는 다툼과 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썩을 음식으로 인하여 사람과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불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 간에 불화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나눔과 화목을 기뻐하시고 성도들의 필요를 더욱 채우십니다.

  어느 구도자가 겸손해지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40일간의 금식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을 주옵소서." 40일 금식기도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그는 감사하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처럼 40일 금식기도를 한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야!' 40일 금식기도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입니다. 순간적으로 자만심이 틈을 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영적 자만심을 갖게 만드는 선행을 경계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사람은 죄인의 괴수가 됩니다. 죄를 지어서 괴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쌓일수록 자신의 추하고 약한 모습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스스로를 가리켜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율법적이고 종교적인 행적, 업적, 실적, 치적, 공적이 쌓이면 스스로를 자만하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우쭐해합니다. 은근히 우월감을 즐깁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립니다. 이런 자만은 영혼의 독입니다. 은혜를 쌓고 계십니까? 종교적 실적을 쌓고 계십니까?

  모든 사람은 사랑의 존재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귀중한 존재입니다. 싸우고 다투는 사람, 가정, 교회, 사회, 국가는 불행합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와 모습이 다 달라도 화목해야 합니다. 화목을 방해하는 수천 수만 가지의 요소가 있다고 하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화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싸우고 다투는 불화와 문제의 사람이 되지 말고 사랑하고 위로해 주는 평화와 화목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큰 소리 치지 말고 웃으면서 말합시다. 비난하지 말고 칭찬합시다. 다른 것을 찾지 말고 같은 것을 찾읍시다. 교회에 오셔서 싸우고 가시지 말고 화목하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사순절 기간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불화를 다 씻어버리고 화목케 하는 평화의 성도와 가정과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불행의 무덤
  본문 33-34절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기를 씹으면서도 탐욕을 부렸습니다. 불평을 선동했던 자들은 여호와께서 내리신 죽음의 징계인 역병으로 인하여 죽게 되어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원망과 탐욕을 일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배부른 생활'이 항상 개인에게 유익한 것만은 아님을 교훈해 줍니다. 오히려 악인의 번영은 멸망을 앞당기는 역할을 합니다. 불평을 일삼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려 다수를 죽이신 것은 오고 오는 후세대에 탐욕이 가져다 주는 불행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탐욕은 불신앙이고 불행이고 죽음인 것입니다. 탐욕으로 인해서 죄를 짓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탐욕이 우상이 되어 결국 저주를 받아 지옥의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스톤벅이라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그림을 그려서 유명한 화가가 되고 싶은 마음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리기로 했습니다. 반쯤 그리다가 시내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주 예쁜 집시 아가씨를 보았고, 아가씨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화실로 데려왔습니다. 모델로 앉아 있던 아가씨가 그리다가 중단한 십자가의 예수님 그림을 보고는 말했습니다.
  "저렇게 비참하게 죽은 것을 보니 엄청난 죄인인가 봐요?"
  스톤벅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분은 예수님이라고 하는 분인데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해 죽으신 겁니다."
  그러자 집시 아가씨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저분이 선생님을 위해서도 죽었겠네요?"
  그 말이 스톤벅의 마음을 '쿵'하고 때렸습니다.
  "선생님을 위해서도 죽었겠네요?"
  그 후 스톤벅은 예수님을 다시 그리기로 했습니다. 유명한 화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무릎을 꿇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리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님과 사람들을 이용하지 맙시다. 욕심의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섬김과 선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의 안일과 배부름을 위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 성도는 반드시 행복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구도 불행한 사람이나 가정이 없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장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집사님 두 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교통경찰이 쫓아와 오토바이를 세웠습니다.
  "아실 만한 분들이 왜 이러십니까? 이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렇게 빨리 달리십니까? 속도위반입니다. 면허증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아이, 교통경찰님 걱정 마세요. 주님이 여기에 우리와 함께 타셨습니다."
  그러자 교통경찰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법규위반 스티커를 한 장 더 떼야겠습니다. 오토바이는 정원이 두 명입니다. 세 명이 타는 것은 정원초과로 위반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탐욕을 위해 주님과 교회와 사람을 이용하지 맙시다. 더욱 사랑하고 섬기는 십자가의 삶을 삽시다. 탐욕을 버릴 때 반드시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사순절 기간입니다. '기브롯 핫다아와' 즉 '탐욕'을 버립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신앙으로 불평과 불화와 불행을 버리고 감사와 화목과 행복을 회복하는 성도와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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