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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남는 것은 그리스도 뿐 (약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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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멀미를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기차를 타고 가시거나 혹은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다니시다가 아주 정신이 혼미해지고 속이 매스꺼워지는 경험을 해 보신 분이 계실 터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속에 만들어 주신 평형을 잡는 기관에 문제가 생겨서 그러합니다. 우리의 귀에 있는 달팽이관에는 세 가지 관이 있는데 수직관, 수평 관, 또 하나는 45도가 되어있는 관입니다. 그래서 꽉 차있는 인파 액이 이 관에 있는 융털들을 건드리면서 우리 몸으로 하여금 균형을 잡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멀미라고 하는 것은 너무 정신없이 막 움직이니깐 잠깐 동안 평형을 잡는 달팽이관에서 혼돈을 일으키기 때문에 속이 매스껍고 머리가 아프고 또 여러 가지 혼돈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멀미를 극복하자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이런 멀미를 느끼는 순간들이 더러 있습니다. 높이 올라가는 때가 있는가 하면 아주 뚝 떨어지는 그런 순간도 있고, 성공의 순간이 있는가 하면 실패하는 순간이 있으며, 돈을 많이 버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돈을 다 잃어버리는 순간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때는 기분이 우쭐하고 아주 좋지만, 욕을 먹고 사람들에게 질책을 받을 때는 우리 마음마저도 아주 혼돈을 일으키게 됩니다. 건강할 때가 있는가 하면 우리 몸에 병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해서 진행되면 우리 영적인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기므로 균형을 잡지 못하게 됩니다. 높이 올라갔을 때는 우쭐하게 되고 밑으로 떨어졌을 때는 낙심하게 되는 현상을 우리는 영적인 멀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4년 전 '2002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세계 4강까지 가는 좋은 성적을 통해 크나큰 감동과 환희를 맛보았는데 지난 주간에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WBC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야구의 본고장 미국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것을 비롯하여 우리보다 훨씬 앞서있다고 자랑하던 일본팀을 두 번이나 이기면서 승승장구 6승까지 하였고 다시 그때와 비슷한 감동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다시 결승을 바라보면서 경기를 치르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 두 번 패한 일본은 지금 전 국민이 심한 멀미를 앓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이런 복잡한 삶을 사시면서 얼마나 많은 멀미를 느끼셨습니까? 오늘 우리 주님은 지쳐있는 우리들에게 영적인 달팽이관을 바르게 해 주셔서 멀미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맑은 정신으로 이 세상을 살 수 있는 지혜를 말씀을 통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또한 앞으로 다시 우리는 세상 속에 수많은 복잡한 일들을 바라보며 나가게 될 것인데 이런 여러 가지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평형을 이루는 그런 귀한 지혜를 배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평형을 이루는 삶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낮은 곳을 통과할 때 처방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 9절 말씀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인 자신을 세우자

사람이 자기보다 높은 자 앞에서는 비굴해 지면서 낮은 자 앞에서는 마음이 또한 교만해 지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성공 앞에 자만해 버리고 실패 앞에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사람은 너무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가 되면 쉽게 낙심하고 좌절하며 의기소침하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 마음까지도 내려가게 갑니다. 자존심도 내려가고 모든 삶의 의욕까지도 함께 내려가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낮은 곳으로 통과할 때의 마음이 비참해 지고 낙심이 생긴다면 그것은 멀미를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낮은 곳으로 떨어지고 있을 때는 반대로 주님 말씀이 높음을 자랑하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정말 얼마나 존귀하고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인가 하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루스 들판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그는 아주 떨어진 자처럼 돌베개를 베고 누워서 실망하고 있었고 고독에 아주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들판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늘로 이어지는 사닥다리 환상이 보였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을 야곱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떨어진 자였지만 그 순간에 눈을 들어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가 있었습니다. 자기는 보통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존재인 것을 야곱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평가하고 인정하시는 모습이 진정한 나의 모습

우리들 가운데는 지위가 낮아서 사는 맛이 나지 않고 내 인생의 낮은 지위 이것이 바로 나의 낮아진 비참한 모습이라고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올라가지 못해서 불만이고 높은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드는 일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바로 그것이 멀미입니다. 바로 그런 순간마다 내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주님의 자녀인가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낮은 형제는 부함을 자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나는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니고 하나님이 평가하는 모습,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그 모습이 나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으실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나의 수입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귀하게 보시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가 하는 그 평가가 진정한 나의 평가입니다. 주안에 감추어진 놀라운 보배를 확인하고 우리가 가장 부유한 자임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난과 함께 우리의 마음도 같이 내려가서는 곤란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속에 감추어지는 부유함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때로 우리는 질병의 골짜기로 내려갈 때가 있는데 사람이 병이 들게 되면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아주 비참해 지는 그런 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는 희망이 없어, 왜 이렇게 약할까?" 그러면서 자기 마음과 자기 믿음마저도 같이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낙심하는 것은 멀미중의 멀미입니다. 몸에 병이 들었다고 우리 마음과 믿음마저도 병이 들어서는 안됩니다. 고난의 순간은 다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런 모든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는 부한 자리를 자랑하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내가 이 고난의 밤을 지나서 찬란한 아침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는 이런 아름다운 소망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약할 때 그때가 곧 강할 때라" 이런 위대한 고백을 한 바울은 평형을 잡을 줄 아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낮은 자리에서도 참으로 우리의 신분과 우리의 삶이 존귀한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자신의 삶에 평형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이 항상 밑으로 내려가는 것만 아니고 때때로는 높은 곳을 통과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높은 곳을 통과 할 때도 역시 멀미하지 않도록 처방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높은 곳에 설 때 멀미할 수 있습니다. 우쭐해지고 으쓱해지면서 영광을 자기에게 다 돌리고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 교만을 가지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역시 나는 제일 재능 있는 사람이야 훌륭한 사람이야 높은 곳에 서서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은 바로 우리 인생의 멀미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주님 앞에 그 순간에 낮아지는 것이 그 순간에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균형 잡는 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겸손히 낮아지는 것이 우리의 삶으로 하여금 높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유지할 수 비결이 될 것입니다. 재물이 많고 남들보다 더 풍성하고 부자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물 때문에 우리 마음이 같이 높아지면 그것은 멀미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소유가 풍성해 져도 내 마음 같이 그 재물이 모두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함께 재물과 함께 올라가서는 안되고 오히려 낮아짐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물질을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바로 그 주님이 원하시는 겸손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우리 인생에 균형은 똑바로 평평하게 잡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올라가 있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토록 올라가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올라가서 우쭐거리지 말고 다시 땅을 발로 디딛게 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다시 내려가도 괜찮을 수 있는 준비를 하면서 평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내려갔다고 낙심하지 말고 올라갔다고 자만하지 않으며 언제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형을 이루는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의 일생을 보면 멀미를 느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교만을 극복하시고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므로 겸손하게 그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낮추는 자는 떨어질 두려움이 없고 견비한 자는 자만의 두려움이 없고 겸손한 자는 언제나 하나님을 안내자로 모시노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평형을 이루고 삽시다. 내가 낮추어진 골짜기를 달릴지라도 절대로 실망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바로 보므로 소망가운데 우리의 삶을 높은 곳에 둡시다. 우리가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도 그리스도를 바라보므로 우리를 주님 앞에 겸손하게 세우면서 부하여도 가난하여도 강하여도 언제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하고 평형을 잡을 수 있는 위대한 비밀을 가진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9-10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가치관이 변하지 않으면 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습, 세상의 가치관은 어떻습니까? 낮은 형제는 낮다고 상처를 부여잡고 살고, 높은 형제는 부하다고 과시하며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거꾸로 보고, 거꾸로 살아야 합니다. 즉, 없어도 낙심하지 않고, 있어도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이와 같은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바른 모습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옛날의 세상적인 것이 좋다고 하면 그것은 온전한 믿음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좋은 환경에서만 "좋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차원 높은 신앙생활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우리는 나쁜 환경에서도 "좋다"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참된 가치관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어떻게 하실까?"라는 거룩한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중요한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것보다는 영원한 것을 보는 미래지향적 가치관입니다. 자기중심적인 것보다는 이타적이고 봉사하는 것에 가치를 둡니다. 우리가 그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서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적인 세계관입니다. 그러한 세계관을 가질 때 얻어지는 플러스 알파가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엄청난 가치관의 변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 구절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 번 나오는 단어 바로 "자랑"입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자랑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삶 자체를 쓸데없다고 하면서 살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정말 소중히 여기는 것, 진정한 자랑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자랑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교만이 아닙니다. 교만과 긍지는 별개의 것입니다. 가난해도 긍지가 있어야 하고, 부해도 교만이 없어야 합니다. 물질은 없어도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질은 많은데 마음이 거지와 다름없는 분이 있습니다. 반면에 부해도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분은 정말 가장 감동을 주는 분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는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은 부하지만 낮아지는 원리를 아는 참으로 자랑스런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런 자랑스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자기 자신의 기본적인 모습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즉 물질이나 지식은 생각지 않고 근본적인 것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근본적인 인간 선언을 들어 보십시오. 10-11절을 보십시오."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꽃과 같은 것입니다. 다 떨어져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달하지 않고 아주 초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대수롭지 않은 일에 죽네 사네 하지 않습니다.

부한 자는 낮아짐을, 낮은 자는 높아짐을 자랑하는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가치관, 같은 자랑, 같은 신앙, 같은 기쁨을 향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남는 것은 그리스도  뿐이요,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혜뿐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사는 사람은 늘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서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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