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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삭의 믿음 (히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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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제자훈련을 받게 되면 처음 시작할 때 간증문을 써오는 숙제가 있다. 종종 이런 사람들이 있다.
- 나는 쓸게 없어요.

이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린 시절부터 주일학교를 다닌 사람들, 아니면 모태신앙.
특별한 사건 없이 순탄하게 신앙생활해 온 사람들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스토리가 자못 기대되는 사람들이 있다. 큰 실패를 통해서 인생의 쓴 잔을 마실 때 전격적으로 예수를 만난 사람은 간증문 자체가 흥미롭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교회 다녔던 사람들은 간증거리가 별로 없다.

이삭이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보통 말하는 모태신앙인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시인 서정주씨의 싯귀에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라는 싯귀처럼 이삭의 출생의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25년의 세월을 기다렸던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삭은 출산 때부터 너무너무 귀한 아이로 태어났고 성장했을 것이다.

창21장에 보면, 이복형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건드렸다가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결혼할 때도 연애하면서 마음 끓인 적도 없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구해다 주니까 그냥 결혼했다. 인생의 굴곡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탄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 후에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낳고 180년 장수하다 세상을 떴다.

사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한 절만을 놓고 설교 한 편을 작성해야 한다는 부담이 들었다. 이 본문 가운데서 과연 어떤 멧세지가 나올 것인가?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의 사람들 중에 이삭을 포함시켰다면 분명히 그에게도 드러낼 만한 믿음의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창세기를 펴서 이삭에 관한 내용을 부지런히 더듬어 살펴 보았다.

읽는 동안 “역시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구나”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 그의 어떤 면이 믿음의 사람이었는가?

1.순종의 사람이었다.

창22:6-9,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이 때 이삭의 나이가 20세 전후로 추정한다면 100세가 훨씬 넘은 노인 아브라함을 얼마든지 힘으로 제어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이삭을 결박할 때 그는 가만히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신뢰였다.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철저히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대다수의 성경학자들은 이삭의 순종을 그리스도의 순종의 모형으로 설명한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히실 때 베드로가 칼을 뽑아 들었다. 그 때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26:53-4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과 함께 아들의 이삭의 순종이 없이는 여호와 이레 하나님의 예비하심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아내 리브가를 맞이 할 때도 자기 기호에 맞는 여인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정해 주신대로 그대로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그리고 흉년이 들었을 때 그는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가다가 그랄 지경을 지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창26:2-6>
26: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26:3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26: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26:6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더니

아버지 아브라함은 어린 아식을 무릎에 앉혀 놓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고 어떻게 왔으며 어떻게 너를 낳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에 대하여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도 순종한 사람이었다.

2.기도의 사람이었다.

창24: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

평상시 그의 경건한 일면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황혼에 들녘을 거닐며 주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하였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아내 리브가의 일행이 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또한 결혼 후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없었다. 그는 아이 주실 것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했다.
창25:21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평상시에도 늘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들을 가졌을 뿐만아니라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그 문제에 대한 응답을 얻기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것은 아버지의 경건의 모습을 늘 보면서 삶을 통해 배운 경건이라 할 수 있다.

3.그는 평화의 사람이었다.

<창26:20-22>
26: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6: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중동지역에서 우물을 얻는 것은 곧 성공과 실패의 중대한 관건이 되었다. 그러나 이삭은 다투기 보다는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그랄의 목자들과 다투면 또 다른 우물을 파서 옮겨 갔고, 또 다투면 또 다른 우물을 파서 옮겨 갔다. 손해보기로 작정하면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에섹 - 다툼, 싯나 - 대적, 르호봇 - 장소가 넓음)
약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딤후2:14,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

아버지 아브라함도 조카 롯과 다투지 아니했다.
“네가 좌하면 우하고, 네가 우하면 좌하리라.” 욕심을 버리면 다툼이 생기지 않는다.

창26장에 보면 블레셋왕인 아비멜렉과 그의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이 이삭을 찾아와서 평화협정을 맺자고 제의를 한다. 그때 협상 테이블에서 이뤄졌던 대화의 내용이다.
<창26:27-31>
26: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6:28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6: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26: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26:31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세상적으로 보면 바보같이 착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이 이삭이다. 계속해서 손해보고 양보하면서 이사만 다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 이삭을 괴롭혔던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 와서 평화협정을 맺자고 제의했다. 그들이 찾아와서 이렇게 제의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26:28,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오늘날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필요하다. 기도원에 가서 “불로 불로파”도 필요하지만 정말 필요한 사람, 이삭과 같은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착각에서 깨어나라!
혼자만 경건한 채 의로운채 하지 말라. 비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욕심쟁이, 말쟁이, 소란한 사람들로 보고 있어요.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기독교의 위기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도 많고 신자도 많은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비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이삭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런 말을 들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이런 말을 전혀 듣지 못하고 있으면 부끄러운 줄 알고 회개해야 한다.
이삭의 생애가 두드러지게 믿음의 액션을 보이지는 않았다. 보이는 듯 안보이는 듯 그러나 조용한 가운데서도 그는 그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로 살았다.

너무 욕심부리지 말라, 양보하고, 손해보라. 조금 하다가 본색드러내지 말고 계속 그렇게 하라. 자기 형제간에게 인정을 받고, 자녀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친구나 이웃들에게,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으라. 서로에게 그렇게 말하라.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계신 것이 분명합니다.”

4.축복의 사람이었다.

히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이삭이 두 아들을 축복한 것은 오늘 본문의 핵심이다. 그리고 180년, 그의 인생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다. 축복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경건의 삶을 살았기에 자녀들에게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았고, 그 또한 아버지로서 아들들에게 축복할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축복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는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두 아들 역시 아버지의 축복을 사모했었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축복이었는가?
본문의 증거대로, “장차 오는 일”에 대한 축복이었다. 그러나 이 축복은 두 아들 모두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자만이 받을 수 있었다. 이삭은 장자인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했다. 이삭은 활달하고 재주가 많은 에서를 좋아 했다. 말년에 그를 축복하기 위해 불렀다.
<창27:1-5>
27:1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7:2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27:3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27:4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27:5 이삭이 그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이삭이 나이들면서 영안도 함께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의 아내 리브가는 두 아들을 낳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
창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육적으로는 에서가 장자이나 영적으로는 야곱이 장자였다. 그리고 에서는 장자권을 소홀히 여기고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동생 야곱에게 팔아 넘겼다. 에서는 스스로 장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친 리브가는 야곱을 변장시켜 속여서 둘째 아들 야곱이 축복을 받게 하였다.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가 땅을 치며 통곡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속이는 방법을 동원한 것은 분명 잘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었고, 또한 야곱이 축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물론 속이는 방법은 정당하지 않다. 아버지를 속인 행동으로 인해 그후에 여러 차례 그도 속임을 당하게 된다. 만약 기다렸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야곱을 축복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이삭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창27: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영국의 유명한 성경학자인 아더 핑크목사, “이때가 이삭의 육신의 자아가 깨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충격적 각성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 후에 이삭은 야곱을 불렀다.
<창28:1-4>
28: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28: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28: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28: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함으로 인해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의 기업을 아들 야곱에게 물려 주었다. 그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부터 받은 축복의 통로가 하나님의 뜻대로 흘러가는 중간 역할을 잘 감당하게 된 것이다. 물론 나이 들어 영안이 어두워지긴 했으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감당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의 생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초지 일관 경건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는 뜨겁지는 않았으나 늘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예배하는 삶을 살았고 그런 그의 경건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느껴져요.”

2.평생 다투기를 싫어 했다.
손해보면서 양보하면서 대적과의 관계 속에서도 화평을 이뤄낸 평화의 사람이었다.
원수 맺고 사는가? 푸는 방법은 단 한 가지 - 손해보고 양보하는 것이다.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화평의 관계를 만들기를 시도해 보라. 예)문자메시지, 메일, 카드 한 장.

3.축복하는 인생이 되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약속하신 축복, 그 축복의 통로가 마태복음 1장 족보에 잘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실 놀라운 계획, 그 계획이 성취되는 가교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잠시 인간적 생각으로 에서에게 축복할 뻔 했지만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야곱에게 다시 축복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축복의 언약을 받은 사람이다.자녀들을 축복하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그대로 성취케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이 축복의 권세는 이삭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날 믿음으로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먼저 여러분의 자녀들을 축복하라. 그리고 성도들을 축복하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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