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두려움을 이기는 하나님의 은사 (사 41:10)

  • 잡초 잡초
  • 870
  • 0

첨부 1


두려움을 이기는 은사 (사41:10)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우리 인간의 실존(實存)의 밑바탕은 바로 허무(虛無)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허무라는 깊은 심연(深淵=깊은 연못)위에 놓여 있어 인간 삶의 바탕은 항상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심연을 들여다보지 않고 일상생활에 파묻혀 사는 것뿐인데 그러다가 그 심연을 들여다보는 순간 절망하며 비로소 자신의 비참한 실존을 깨닫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의 이야기란 점에서 우리는 크게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두려움과 공포를 이기는 하나남의 은사는 무엇일까요?

1. 말씀의 은사가 두려움을 이깁니다.

사41:10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확신을 주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현찰 수표와 같습니다. 이 말씀의 약속을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믿고 확신할 때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히13:5-6에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했습니다. 이렇게 담대히 주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재벌 로버트 투어니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나의 동반자이다. 당신이 어떻게 감히 두려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시23:4에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늘 묵상하면 두려움은 사라지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 말씀을 묵상한 유대인들은 두려움을 이겼다고 합니다. 월남전에서도 군목들이 들려주는 이 말씀이 그렇게 큰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주님은 마10:29-31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여기 한 앗사리온은 당시 로마에서 통용되던 화폐 중 근로자들의 하루 품삯의 16분의 1의 가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헐값에 팔리는 참새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면 참새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냥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살고 죽고는 하나님의 손에 달렸으며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결코 해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2. 두려움을 이기는 은사는 사랑의 은사입니다.

요일4:18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은사로 무장해 보세요. 아무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호랑이를 두려워하지만 호랑이의 새끼들은 어미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사랑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랑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시부모와 며느리의 관계에서도 사랑이 있으면 서로가 위로와 도움이 됩니다. 세상을 떠들썩한 조폭이라도 그의 사랑하는 가족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10:16) 하셨습니다. 이게 당시 목회적인 현실이었습니다. 앞으로 목회가 더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길은 있습니다. 그 길은 사랑입니다. 진정 사랑할 때 진실로 사랑해 주어 도와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사랑해도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려움 그 자체가 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두려워않고, 다니엘이 사자 굴도 두려워하지 않은 것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함께 하셨나요? 요일4:16에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하셨습니다.

롬8:35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다 이기게 하십니다. 역사 속의 수많은 순교자들이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는 심판 날에도 사랑의 하나님 때문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요일4:17).

3. 두려움을 이기는 은사는 기도입니다.

시34:4에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했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은사가 기도임을 보여줍니다. 빌4:6절에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면 불안증에 걸린 환자가 있었는데 3년이 걸려야 치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더니 석 달 만에 완치되었다고 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마귀와의 영적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불안과 근심은 무릎을 꿇으라는 신호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져야하는 두려움 앞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독교 [구라회]의 이사장인 신정하 장로의 간증이 있습니다. 625사변 때 인민군이 서울까지 들어왔지만 미처 피난을 떠나지 못하고 그만 인민군들에게 붙잡혔습니다. 19세의 대학생이인고로 징집대상자가 되어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과 함께 유엔군의 폭격을 피해 낮에는 자고 밤에는 걸으며 북으로 끌려갔습니다. 도망갈 궁리를 해보았으나 워낙 감시가 심해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절망 속에서 그는 하나님께 날마다 기도하며 탈출할 수만 있다면 평생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일행이 임진강을 건너자 경비가 조금 느슨해졌습니다. 드디어 문산의 장단의 한 초등학교에서 낮잠을 잔 뒤 밤에 출발하기로 해 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흰옷을 입은 어른이 나타나 깨웁니다. 지금 빨리 일어나 이곳에서 도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 보니 모두 곤히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울타리를 넘어 도망쳤습니다. 그리하여 살아났습니다.” 그 후 신장로님은 그 약속대로 외교관의 꿈을 접고 일생을 나환자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습니다.  딤후1:7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초대교인들이 온갖 핍박을 다 이긴 것도 능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4. 두려움을 이기는 은사는 지혜입니다.

잠1:33입니다.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여기 나는 지혜를 가리킵니다.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글에서 한 연구기관의 조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걱정 중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40%,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닌 작은 것에 대한 걱정이 22%,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진짜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결국 사람들은 96%의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기쁨도, 웃음도, 마음의 평화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우면 쓸데없는 걱정이 생기지도 않고 또 하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인도에 이런 마술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술사는 고양이가 두려워 떨고 있는 쥐가 불쌍해서 쥐를 고양이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된 뒤에도 불안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이번에는 개 때문이었습니다. 마술사는 다시 고양이를 개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는 호랑이가 겁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호랑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천하무적의 호랑이가 되어서도 두려워하기는 매일반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냥꾼 때문이었습니다. 사냥꾼의 총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결국 마술사는 무슨 수를 써도 안 되겠다는 결론을 얻고 호랑이를 원래의 모습인 쥐로 돌이켜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걱정도 팔자라는 우리나라 속담과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런 심령이라면 이 시간 하나님의 치유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시키실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41:10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은사, 사랑의 은사, 기도의 은사, 지혜의 은사로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평안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성진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