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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금식의 원리 (마 6: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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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16-18.

  사순절을 맞아서 온 교회가 40일 연속 금식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금식기도는 개인의 영성과 교회의 영적부흥을 위해서, 또는 심각한 위기에 대처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 자원입니다. 성경은 금식기도를 중요시하는데,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56구절에서 금식에 대해 69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들에게는 금식기도가 중요한 신앙적 행위임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 동안이나 금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2절에 보면 예수님이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라고 했습니다. 금식기도는 예수님이 사용하신 방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금식기도를 할 때 조심해야 할 몇 가지가 있는데, 우리 주님께서 그것을 친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로, 금식할 때 위선자처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금식할 때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16절)고 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이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hypocrites)들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금식을 하는데 그 속에는 미움과 질투, 갈등, 분노가 가득 차 있어서 속과 겉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금식은 왜 합니까? 속과 겉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금식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16절). 금식이나 기도나 섬김이나 신앙생활에서도 언제나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야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교회생활을 들여다보면 섬김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본인은 잘 모르는지 모르겠으나 옆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아요. 신앙생활은 어디까지나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금식을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성경을 읽든지 예배를 드리든지 하나님 앞에서 해야지 사람에게 보이려는 모습을 조심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 신앙이 없으면 눈에 걸리는 게 많고 속상한 게 많습니다. 보이는 것마다 별로 좋아 보이지 않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평화가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을 다 그렇게 봅니다. 저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학생 때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 때입니다. 저희 교회의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이 다 싫었습니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여요. 그 당시에는 예수를 잘 믿고 기도 많이 한다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다 슬퍼 보이는지…. 너무 경건한 나머지 모두들 얼굴이 굳어있었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 중에서 웃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더군요. 모두 심각해 보이고 슬퍼 보이고 어두워 보여서 “예수를 왜 믿는 건가? 내가 이런 교회를 계속 다녀야 하는 건가? 이런 예수를 계속 믿어야 하나?”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고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왜 슬퍼 보이고 심각해보이고 딱딱하게 보여야 합니까? 왜 그렇습니까?

  제가 어느 교회의 수련회 강사로 갔을 때의 일입니다. 오후에 놀이시간이 있어서 모든 참석자들이 같이 놀았습니다. 그런데 딱 한 사람, 놀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들 즐겁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10m 정도 떨어진 나무 밑에 교인 한 사람이 조용히 앉아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목사의 눈에는 외로운 사람, 외톨이들이 잘 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교회 지도자들에게“저 사람보고 와서 같이 놀자고 합시다.”했더니, “저분은 놀지 않습니다. 저분은 지금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못 놉니다.”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왜 기도하는 사람은 못 놀까? 기도할 때는 기도하고 놀 때는 놀 일이지 온 교인들이 다같이 놀고 있는데 왜 저렇게 혼자 앉아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옛날에 제가 학생 때에도 교회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를 대강 믿어야겠다. 저렇게 되기 싫으니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신앙과 성경을 깨달은 후에는 예수를 잘 믿고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읽고 예배에 잘 참석하고 금식을 많이 해도 그 얼굴에 기쁨과 평화가 있고 행복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잘 믿을수록 기쁘고 행복하고 감사하고 더 아름다워지는 그런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금식하기 때문에, 기도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 때문에 재미없는 인간이 아니라, 정말 즐겁고 아름답고 평화롭고 자신감이 넘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금식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며 얼굴을 흉하게 보이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종교성을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교성이 너무 강하거나 신앙생활을 너무 열심히 해서 슬퍼 보이고 딱딱하게 굳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인도에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인도의 길거리에는 마치 정신이상자처럼 보이는 힌두교 구도자들이 많습니다. 머리를 안 감아서 기름이 줄줄 흐르고 세수도 하지 않아서 얼굴이 까맣게 되었어요. 종교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신앙생활을 잘 할수록 머리도 잘 빗고 목욕도 잘 하고 옷도 아주 멋지게 입기를 원하십니다. 비싼 옷 입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비싸다고 다 멋진 것은 아니잖아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돋보이고, 더 좋아 보이고, 더 평화롭게 보이고, 더 행복하게 보이고, 더 자신 있어 보이고, 더 힘차게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이 정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식하고 기도한다고 옷도 얼굴도 어둡고 흉하게 보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그 중에서 예수님이 제일 마음에 듭니다. 제가 어릴 때 학교에서 “너의 영웅이 누구냐?”고 물으면, 아무리 찾아봐도 예수님 같은 분이 없어서 “예수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중학교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을 보면 참 멋있습니다.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어요.

  둘째로, 사람의 동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서 금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번에 제가 네 번 째 일주일 금식기도를 합니다.” “저는 두 주째 금식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엔 40일 금식을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라고 주변에 알립니다. 이런 말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이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이미 상을 받았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으니 하늘에서는 상이 없다고 하십니다.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16절).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고 순수하고 좋은 동기로 하나님이 보시도록 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을 행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모를수록 좋은 것입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6:3). 이렇게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살기 때문에 마음이 늘 편안합니다. 보통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면 너무 좋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사람들이 칭찬을 하면 그 절반만 믿어야 됩니다. 대개 칭찬할 때는 과장해서 합니다. 만약 칭찬의 말을 그대로 믿으면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18절). 사람의 동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서 금식하지 말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진실한 금식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금식은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보통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심각한 일이 있을 때, 어려운 위기나 내가 견딜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밥을 먹지 않고 간절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이 좋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금식하며 기도하는 간곡한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중심을 보시고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금식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종종 가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의미 없는 습관적인 종교행위로 금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14절과 마가복음을 보면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우리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정기적으로 금식을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도 하지 않는 그런 신앙생활을 합니까?”하고 예수님께 도전을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금식은 종교행위 가운데 하나로서 늘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습관에 그칠 뿐 별 의미가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이레 동안에 이틀은 반드시 금식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십일조를 철저히 하는 사람들입니다.”신앙생활이 자랑거리요, 교만의 주제가 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사람들에게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내가 하는 신앙생활을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데 쓰면 안 됩니다. “나는 수요예배에 꼭 오는데 저 사람들은 어디 갔냐? 왜 안 오냐? 저래도 믿는다고 할 수 있냐?” “나는 금식을 하는데 저 사람들은 왜 금식을 안 하냐?” “나는 새벽기도를 하는데 왜 저 사람들은 새벽기도를 안 하나?”이러지 말라는 겁니다. 그냥 새벽기도를 하세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서 내가 새벽기도를 하는 것이지 그런 공로를 세우려고 새벽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행위를 남을 비판하는데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식하고 기도하고 선을 행하는 등의 좋은 신앙적 습관들도 신앙에 방해가 될 수 있고 덕이 안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인간의 가슴 속을 파고드십니다. 인간들은 언제나 사람들의 겉모습을 보는데 예수님은 계속 마음속의 그 순수한 동기, 하나님 앞에 서는 모습, 이것을 중요시하십니다.

  이번 사순절 동안 여러분이 금식하고 기도하고 선을 행하고 자신을 살피면서 여러분 모두에게 참 복된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그런 가운데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을 따라서 우리 신앙에 방해가 되지 않고 꼭 유익이 되도록 사순절 금식기도를 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성찬을 받을 텐데, 이 성찬을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과 모습을 깨끗하게 씻어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기쁨과 감사와 찬송이 우리 입술에 가득 차기를 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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