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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교회의 모습 (행 2: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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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인이었습니다. 창녀생활을 했습니다. 그만큼 그녀는 철저히 버려진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서 삶이 변했습니다. 그녀는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고운 머리칼로 씻어드립니다. 자기의 가진 향수를 가져 그 발에 뿌립니다. 그녀는 잠시도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면서 실천합니다. 예수님이 처형달할 때도 십자가 아래 있었고 예수님을 장사지내는 무덤까지도 따라갑니다. 안식 후 첫날에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발라 드리기 위해 무덤을 찾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영광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있었고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있었고 무덤의 주인인 아리마대 요셉이라든가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들, 예수님께서 마지막 머물던 베다니의 마르다나 마리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나사로와 같은 이들도 있었는데 왜 하필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을 처음으로 보이신 것일까요?

사실 막달라 마리아처럼 비천한 여인도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불쌍한 여인입니다. 그런 그녀가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사랑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날 이후 그녀는 조용히 구님의 그림자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것은 부활의 주님을 처음 만나 뵙고 난 다음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주님을 만나 뵈었다고 자랑하지도 않았습니다. 거들먹거리지도 않았습니다. 전에 나를 무시하고 욕보였던 놈들 한번 봐라 이래도 너희들이 나를 비난할 수 있느냐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조용히 단지 조용히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곁에서 여전히 그림자처럼 섬기며 사랑을 실천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사랑이 오늘 우리들 가운데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모델을 우리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의 종의 가르침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지닌 아름다운 모습의 출발은 물론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 기도에 힘쓰던 저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도 그들이 함께 모여 주님이 주신 말씀들을 되새겼지만 이제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지금까지는 자기들의 지식으로 말씀을 이해하려고 했다면 이제는 성령께서 말씀의 해석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나누는 말씀들이 그렇게 새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전해 주는 말씀에 아주 몰두를 했습니다.

초대교회가 큰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서 저들이 사도들이 전해주는 말씀에 몰두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도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가르침에 몰두해야 합니다. 말씀에 몰두하게 될 때 성령의 충만함을 지속할 수 있으며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요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될 때 그 말씀이 능력이 되어 우리의 삶을 주님의 제자다운 아름다운 삶으로 이끌어 주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따라 기도에 힘썼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우리 역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 안에 있는 성령으로 하여금 말씀을 통해 능력으로 역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억할 것은 말씀과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어ㅗ늘 우리들이 자꾸 자신감이 사라지고 두려움 속에 살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주의 종을 통해 들려주는 말씀을 따라 실천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말씀도중요하고 기도도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모르는 성도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왜 말씀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지 못합니까? 왜 말씀을 들어도 말씀대로 아멘하며 순종함으로 실천하지 못할까요? 왜 기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기가 그렇게 힘이 들까요? 그것은 누구보다도 말씀과 기도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 악한 마귀가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듣지 못하고 읽지 못하게 만들고 말씀을 듣고 깨달아도 기쁨으로 순종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가도록 우리를 자꾸 연약한 가운데로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힘을 다해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이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모든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해야지 하면서도 자꾸 다른 핑계거리가 생깁니다. 자꾸 다른 일거리에 매이게 됩니다. 하지만 성전에 모이게 되면 함께 기도할 수 있고 말씀에 전념할 수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성전으로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여서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한 가지 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쁨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의 능력은 악한 마귀가 꼼짝을 못할 정도로 강력합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찬양하고 영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단순히 우리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찬양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서 활짝 열리게 되고 우리의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래서 힘을 다해 찬양해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 쏟아 찬양해야 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위대한 임금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이 찬양에 있습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서도 찬양했습니다. 슬픔 가운데서도 찬양했습니다. 죄악 가운데서도 찬양했습니다. 오직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항상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이요 실패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기쁨으로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입술로만의 찬양이 아닌 마음을 담아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찬양의 가사 하나 하나를 곱씹어 가면서 찬양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아주 뜨거워 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든지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모여서는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는 귀한 시간들을 이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서로 교제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 가운데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바로 성령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주의 제자로서의 모습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서로 교통하는 일, 성령 안에서 서로 교제하며 서로 사귀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는 곧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또한 서로가 하나가 되는 비결입니다. 서로 사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진짜 사랑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은 감싸 안는 것입니다. 사랑은 끊임없이 격려하는 것입니다. 칭찬을 아까지 않는 것입니다. 위로하고 붙들어주는 것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것을 내가 채워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누구도 버리거나 외면하지 말고 모두 함께 지내야 합니다. 여기에는 잘난 사람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내 마음에 들고 안들고가 없습니다. 단지 서로가 서로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평화를 누리고 서로 화목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우리의 가진 재산을 드려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고 하셨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이 곧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주는 것이 어떤 것을 바라고 주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대가를 바라지 마십시오. 갚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가 도와야 할 사람들이 보일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연약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물질을 필요로 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들에게 우리들의 정성을 모아 함께 나누도록 하여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성도들이 자기들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나누어준 것이 아니라 사도들을 통해서 즉 교회가 이 일을 하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연약하고 나는 가난해서 동참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마게도니아 교회들은 극도로 가난한 가운데서도 오히려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를 도왔고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의 선교비를 끊임없이 충당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왜 선교에 그토록 힘을 쏟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리는 비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우리가 봄철 심방을 총해 태신자 전도 예물들을 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힘써 이웃교회들을 돕고 연약한 이웃들을 돕기 위한 선교 예물에도 함께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이 나눔에는 놀라운 약속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눔으로서 우리가 또한 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다 복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선교 구좌로 또 제게 물질을 주실 때 그것들이 모여 또한 이렇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씨앗이 되는 것이요 따라서 때가 이르게 될 때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성령 안에서 교제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집집마다 돌아가며 함께 식사를 준비하여 나누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아름다움이 바로 이런 공동식사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돌아가면서 성도들을 총해 식사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각 구역 팀별로 돌아가면서 식사 봉사를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듯 주의 종과 성도들을 대접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 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것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주의 종을 대접하고 또 다른 성도들과 함께 식사를 대접하는 그것이 곧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대접을 한다고 할 때 부담을 갖는 분들도 계십니다. 나름대로 잘 대접하려고 하다 보니 분에 넘치도록 대접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잘 대접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부담을 가지고 대접을 한다면 그것은 대접을 받는 사람에게도 또 다른 부담으로 남게 됩니다. 그러니까 서로 부담을 갖지 않도록 정성껏 대접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아름다운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무슨 산해진미를 곁들여서 대접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일상적인 식사를 이웃을 청해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는 공동 식사나 집으로 청해서 나누는 식사들이 이래야 합니다. 풍족하게 대접할 수 있는 분은 그렇게 대접하십시오. 그렇지 못한 분들은 또한 자기 형편대로 대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나누는 식사 자기가 은혜의 자리가 되어야 하고 사랑이 넘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이 귀한 것은 이렇게 함께 식사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더 친밀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더 가깝게 느껴지더란 말이죠.

따라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서로를 붙들어주며 세워나가기를 힘쓰기를 바랍니다. 또한 성령 안에서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우리의 재물을 가져 주의 종을 통해 함께 나누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청하여 함께 공동식사를 나누고 또 각자의 가정으로 청해 함께 식탁을 대하는 귀한 역사가 있어야 할 것이요 바로 이런 공동 식사의 자리 중 하나가 우리의 구역 팀 예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고제가 언제든지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될 때 나타나는 귀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마음 속에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사도들을 통하여 기이한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한 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말씀을 뒤담다 듣고 기쁨으로 실천하며 기도에 힘쓰고 찬양하기를 쉬지 않을 때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역사들이 나타나더란 말입니다. 지금까지우리가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게 되고 우리들 안에 있던 문제들이 하나씩 풀려가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안에 사랑이 넘치게 되니 서로를 대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즐거움 속에서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에 힘쓰게 되니 하나님의 이적들이 우리들의 삶에 놀랍도록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백하는 대로 이루어져 가는 모습을 볼 때 우리 안에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더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는 것이요 말씀에서 벗어날 때 견딜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말씀 안에서 살아가며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져 살 때 나타나는 또 한 가지 역사는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사게 되더란 말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우리 향남교회가 이렇게 주위로부터 호감을 사게 되고 계속해서 칭찬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교회를 찾게 될 때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아 저기 향남교회로 가시라고 향남교회가 정말 교회다운 교회라고” 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에서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는 이야기가 들려져야 하고 서로를 칭찬하고 세워가는 말들이 쉬지 않고 들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시게 됩니다. 초대교회가 이렇듯 모든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사게 되니까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해 주셨습니다. 그 초대교회의 역사가 오늘 우리 교회에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주 우리는 태신자를 작정했습니다. 아직 작정하지 못하신 분들도 오늘 빠짐없이 작정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말씀 안에 깨어 있고 기도로 깨어 있어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때 그리고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교제를 이어나가게 될 때 우리가 품은 심령들이 다 주님의 백성들로 태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령의 뜻에 우리 자신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아름다운 섬김으로 서로를 섬겨나가며 교제하게 될 때 그들의 마음이 열려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향남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셨고 또한 여러분들을 사랑하셨는지 우리들은 경험을 통해서 깨닫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중보하며 기도해 왔던 일들을 하나님께서 놀랍도록 이루어주셨습니다. 아직까지 기도 중에 있는 것들도 물론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도 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이사야서 60장 4절에서 “너희 눈을 들어서 사방을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너에게로 오고 있다. 너의 아들들이 먼 속으로부터 오며 너희 딸들이 팔에 안겨서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약속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봄으로 말미암아 많이 생명들을 건져 구원하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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