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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건의 유익 (딤전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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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맞아 계속 경건에 관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경건이란, 하나님을 섬기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아 사랑을 베풀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임을 성경에서 밝히고 있습니다(야고보서 1:27). 이러한 경건한 삶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기도하며, 경건한 삶을 연습하라고 하셨습니다. 경건한 삶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많은 절제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은 너무도 소중합니다. 무엇이겠습니까?

一. 어려움에서 보호하십니다.

베드로후서 2:9~10의 말씀에“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앞길을 지켜주셨습니다. 그가 나아가는 길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지키시므로 누구도 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믿음으로 세속의 유혹을 이겼던 노아를 천하가 물에 잠겨 멸망한 대홍수의 시험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믿음으로 세속으로부터 자신을 지켰던 롯을 소돔과 고모라성이 유황불의 심판을 받을 때 그를 지켜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하게 살아가다가 억울한 누명으로 굶주린 사자 굴에 던짐을 받았으나 하나님은 그를 건져 주셨습니다.

식인종들에게 선교하셨던 분들 중에 아셀트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선교 활동을 하는 중에 식인종들이 여러 번 아셀트 선교사를 끌고 가서 잡아먹으려고 아셀트 선교사 집을 밤에 침입했었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찾아갈 때마다 대문 앞에서 창칼을 들고 지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낮에는 아무도 없는데, 밤에 와서 끌고 가 잡아먹으려 하면 그 사람이 창칼을 들고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서워서 떨다가 그냥 가고 또 그 다음 번에도 왔다가 그냥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식인종들이 아셀트 선교사를 낮에 찾아갔습니다.“낮에 가보면 없는데. 이상하게 밤에 가보면 누군가가 칼과 창을 들고 너를 지키고 있다. 그 사람이 누구냐?”식인종들의 물음에 아셀트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우리 집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다.”그러자 식인종들은 “거짓말 마라. 한두 번이 아니고 우리가 너를 끌어다 잡아먹으려고 여러 차례 왔는데도 밤만 되면 창칼을 들고 지키는 자가 있어서 무서워서 너한테 갈 수가 없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아셀트 선교사에게는 퍼뜩 떠오르는 영감이 있었습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 쓸모없는 죄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지켜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저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했던 불신앙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아셀트 선교사는 순간적으로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주님을 믿는 사람이 가장 약할 때는 자기 홀로 있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그러나 가장 강한 때는,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을 때입니다.

시편 34:7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와 가정을 지키시는 복된 삶을 살아가길 바라십니까? 경건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경건하여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 순종하며 살아갔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그는‘예’하고 순종했습니다. 공향과 친척과 아비집을 버리기까지 순종했습니다.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재물로 바치기까지 순종했습니다. 지나가는 낯선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며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이러한 집안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경우를 두고 성경에 말씀하시기를“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브리서 13:1~2)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1~4에 하나님은 경건한 고넬료에게 사자를 보내셨습니다.“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남달리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출입하는 가정은 복 있는 가정입니다. 누가 감히 그를 해하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가 받아 누릴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을 위해 경건한 삶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二. 경건한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요한복음 9:31에“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도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드리는 기도마다 응답을 받으나 어떤 이는 응답이 없습니다. 혼자 기도하다가 지칩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경건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생활인 순종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생활인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생활인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생활인 세속을 이기는 빛의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을 경우 하나님을 원망하며 낙심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경건함이 부족하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기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기적적으로도 병을 고치기도 하시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손길인 의술을 통해서도 치료하십니다. 의술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병 고침보다 죄 사함을 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에는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예수님께 메고 와서 고침을 받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병 고침을 받았다.”라고 하지 않으시고“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중풍병자가 병에 걸린 것은 마음의 죄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로는 환자들 가운데 50% 이상은 약을 먹을 필요가 없는 환자라고 합니다. 마음의 죄책감, 불안감, 열등의식 등 우리의 마음을 마비시키고 있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건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색으로 집안을 망친 한 남자가 극적으로 회개하고 빛나는 생애를 보낸 경우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문호 빅토르 위고가 그 사람입니다. 어느 날 외동딸 레오포르딘의 시체가 세느강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옆에는 아버지의 심한 외도와 과음, 거기에 짓눌려 사는 비참한 엄마 때문에 세상을 살아갈 의욕을 잃었다는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위고는 “이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외치며 반성하고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공무원이 된 그는 헌신적으로 일해 프랑스 교육부 장관까지 지냈고, 프랑스 국기인 “3색기”의 유공자가 되었습니다.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의 문학도 더욱 깊어 갔습니다. 한사람의 회개와 경건한 신앙이 자신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역사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3:5에“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하셨습니다.

三. 경건은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습니다.

본문 8절에 말씀하시기를“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디모데전서 4:8)하셨습니다.

경건으로 인한 금생의 유익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까지 드린 말씀처럼 하나님은 경건한 성도를 사랑하셔서 주의 사자인 천사를 보내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성도를 사랑하셔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이러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보다 더 큰 금생의 유익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경건한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에 서서 생활합니다. 이러한 성도의 삶은 건물 터에 비유한다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러한 튼튼합니다. 안전합니다. 홍수에도, 웬만한 지진에도 안전합니다. 그러나 경건하지 못한 사람의 생은 모래위에 집처럼 곧 무너집니다. 그래서 사상누각(砂上樓閣)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태복음 7:24~27)하셨습니다.

또한 성경은 경건한 성도와 경건하지 않은 성도의 삶을 집에 비유하여 말씀하시되“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린도전서 3:12~15)하셨습니다.

터를 시험하는 창수와 바람, 집의 재료를 실험하는 불은 세상 종말을 가리킵니다. 베드로후서 3:10~13의 말씀에“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경건은 심판을 이기고 장차올 세상인 내생에 상급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어느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었습니다. 한 늙은 부부가 길가 여관의 현관문을 밀고 들어섰습니다. 그들은 쉴 방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 카운터에 있던 종업원은 그 읍내에 3개의 여관이 있으나 때마침 모두 초만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여관도 빈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기꺼이 쉬신다면 제방을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노부부는 망설였으나 그 종업원의 간청으로 그 방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여관을 나서며 노신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당신같이 친절한 사람은 처음이요 당신은 이 미국에서 제일 친절한 여관 종업원이요. 아마도 나는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건축하게 될 것이요." 종업원은 그 노신사의 농담에 웃음으로 답하였습니다. 그 후 어느 날 그 종업원은 뉴욕 방문을 요청하는 왕복 비행기표가 들어 있는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노신사로부터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그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노신사는 그를 거대한 새 빌딩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저것은 당신이 경영하도록 내가 지은 호텔이요."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노신사는 당시 거대한 갑부였던 W. W 아스토이었고 그 청년은 아스토리아 호텔의 첫 번째 경영자가 된 G. C 뿔트이였습니다. 작은 사랑이 큰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늘나라의 영광도 이와 같습니다. 내가 심은 경건한 사랑의 씨앗은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은 큰 것으로 예비하신다고 하셨습니다.“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누가복음 19:17)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생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내생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리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고, 다시 그곳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성경은 내생의 영원한 삶을 위해 기록된 책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디모데전서 4:8)하셨습니다.

오리 새끼와 병아리를 호숫가에 갖다 놓으면 병아리는 물에 관심이 없는데 오리새끼는 물을 보자마자 호수에 들어가 헤엄을 치며 즐깁니다. 그 까닭은 오리는 헤엄치는 본능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병아라는 헤엄치는 본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영생의 본능이 있습니다. 전도서 3:11에“사람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다른 피조 물, 식물이나 동물이 갖지 않은 영혼이 있고 영생을 사모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있고 내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되면 모든 식물들이 말라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요즘 같은 봄이 되면 다시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봅니다. 콩이나 옥수수나 곡식을 땅에 심으면 땅속에서 죽어 썩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 수십 배, 수백 배 열매를 맺습니다. 고린도전서 15:35-36에“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라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라고 했습니다. 또한 42-44에는“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것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 14:1-3)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운명하신 후 비접하게 도망갔던 사람인데, 맛모섬에 귀양 가서 천국의 놀라운 광경을 보고 요한계시록이라는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도망갔던 사람들인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죽기까지 십자가와 부활과 천국을 증거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체포해 죽이던 사람인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죽기까지 십자가와 천국을 증거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11에“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19에는“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천국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이 와도 두려울 것이 없고, 내일 세상 종말이 와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죽음은 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이사 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교부 터툴리안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는 순례자이며 우리의 확고한 지위는 내 본향 천국에 있다”고 했고, 종교개혁자 칼빈은 “천국이 우리의 궁극적 소망이므로 우리 그리스도들은 이 세상 어디서 살든지 유랑의 장소이다.” 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11에는“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고향을 찾아가는“나그네와 행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본향은 어디입니까? 그곳은 부활하신 주님이 먼저 가신 하늘나라입니다.

누가복음 12:38~40에“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너희도 아는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하셨습니다. 우리의 본향 하늘나라를 위해 무엇으로 예비해야 할까요? 그것은 곧 경건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성도를 사랑하셔서 천군과 천사를 보내어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성도를 사랑하셔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성도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반열에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본문 8절에 말씀하시기를“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디모데전서 4:8)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며,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며, 자신을 타락한 세속으로부터 지켜 거룩하게 살아가는 경건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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