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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한 성공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말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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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기도는 모든 불가능을 비웃는다” 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 모두 믿음의 기도로 모든 불가능들을 비웃고 가능으로 바꾸는 영적 해결사가 되시길 소원합니다.

이 땅에서 꼭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꿈을 꾸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실 때 한 사람마다 하나님의 꿈을 심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꿈을 꾸고 이루어야 합니다. 창세기 37장 19절 말씀은 요셉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 도다”.  요셉의 별명은 ‘꿈 꾸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꿈을 주시고 요셉을 통하여 꿈을 이루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되신다면 우리의 별명 역시 ‘꿈 꾸는 자’가 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꿈과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꿈을 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꿈이 무엇인가를 먼저 아는 것이 우선 입니다. 만일 성공이 꿈 이라면 성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공의 정의를 제대로 알아야 꿈의 성취여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꿈을 꾸고 이룬 후에는 반드시 나누어야 합니다. 꿈을 나눌 때 인생은 더 성장하고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진정한 성공의 핵심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진정한 성공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성공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는 사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요1 4:8). 하나님은 사랑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에너지를 얻게 되고 성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성공은 시작됩니다. 본문 2절 말씀을 참고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 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이 사랑은 극대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했는데 진작 사랑을 받은 사람은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말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경고를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말라기는 ‘나의 사자’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자(Messenger) 라는 뜻입니다. 경고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맛사’ 라는 단어인데 ‘아주 부담 되는’ 혹은 ‘아주 무거운’ 이라는 뜻입니다. 즉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자가 아주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마음의 부담감을 갖게 되었는지 역사의 현장을 이해하기 원합니다. BC720년 경쯤에 북 이스라엘은 망합니다. BC586년에는 남 유다가 느브갓네살에게 망합니다. 느브갓네살은 현재 이라크 지역 쪽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합니다. 후에 고레스왕의 칙명으로 고향으로 귀향을 하게 됩니다. 귀향 후 제일 먼저 그들이 한 일은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성전을 짓게 된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으면 그들이 고향에 돌아올 수 없었음을 깨닫고 너무나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감사해서 그리고 영원히 임재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성전과 성벽을 다시 짓지 시작합니다. 드디어 학개와 스가랴 시대에 모든 성전은 완성 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전을 다 지은 후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모든 것이 완성되고 편안해 졌을 때 그들에게 사랑은 식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식었다는 첫 번째 징조는 불만과 불평이 가득한 입술 입니다. 모든 것이 편안한 상태에서 하나님은 사랑한다고 말씀 하시지만 느낄 수 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언제 우리를 사랑 했느냐고 반문 합니다. 우리의 인생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원하며 갈망 하지만 편안한 상황이 찾아오면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때 우리에게 신앙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둘째, 진정한 성공이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나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성공 입니다. 가끔은 나의 방법으로 하고 싶고, 이해가 안가는 일이 찾아 옵니다. 그러나 이해 못하는 상황이 찾아온다고 해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욱 복된 일을 드리시기 위해 이끌어주심을 믿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것은 따르지 않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진정한 성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저들을 사랑했냐고 묻는 질문에 대답합니다. 본문 2절 하 반 부부터 4절에서 말씀 하십니다,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으며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페된 곳을 다시 찾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했고 에서를 미워했습니다. 야곱과 에서가 꿈을 이룬 것은 그들이 얼마나 최선과 열심을 다했는가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누구를 사랑했는가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성공을 좌우합니다.

야곱과 그의 백성들의 일생은 고달팠습니다. 야곱 개인의 생애를 봐도 도망 다니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야곱의 후예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40년 동안 광야를 얼마나 많이 헤 메었는지 모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면서 피 눈물을 흘리는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 성벽을 재건하는 동안에도 사마리아인 들의 많은 괴로움을 당해야 했습니다. 온갖 험담으로 그들을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후예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서는 달랐습니다. 에서는 사냥을 뛰어나게 잘해 맛나는 것들을 아버지에게 드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에서의 후예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즉 야곱의 백성들을 몹시 괴롭혔습니다. 그들은 더욱 번창하고 힘이 있는 민족이 되는 것 같았으나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많은 농사를 지은 것 같았지만 그들의 산은 모두 다 벌겋게 변했습니다. 시랑, 즉 들 짐승들이 그들을 잡아 먹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페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세우는 족족 헐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삶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상황을 접하게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부유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모습이 난감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말씀만 붙잡고 이루어지지도 않는 기도만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과 너무 단절된 것만 같아 남보다 뒤쳐지는 것 같고 무엇인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먼 거리를 내다보면, 역사의식을 가지고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고 사는 것이 승리의 삶입니다. 심리학자, 이민규 박사의 ‘끌리는 사람은 1 프로가 다르다, 1프로만 바꿔도 인생이 달라진다’ 책이 있습니다. 많은 차이도 아닌 단 1프로의 차이가 후에 큰 모습으로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영적인 의미에서 적용 시켜본다면 우리는 거룩한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 야곱을 사랑했던 하나님께 한번 더 사랑을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한번 만 더 사랑해 달라고 하나님께 통곡해야 합니다. 성령의 불을 달라고 한번 더 매달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인생을 개입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우리들을 한번 더 귀한 인생으로 불러주실 줄 믿습니다. 이 한번이 열 번이 되고 열 번이 백 번, 백 번이 천 번 만 번이 되어 우리의 삶에 새로운 역사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주인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진정한 성공이란 하나님이 가장 크신 분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지경 밖에서 크시다”(5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은 아닙니다. 나의 하나님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 하셨습니다. “무릇 주를 찾는 자는 다 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시 40: 16). 하나님은 참으로 크고 광대하십니다.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크게 볼수록 사람은 작게 보입니다. 모든 문제가 작게 보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을 크게 보면 하나님은 작게 보입니다. 문제를 크게만 보면 하나님은 작게만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페르시아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항상 구속만 되어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정치적으로 망명한 사람들처럼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향이 그리워 기도했더니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돌아와 성전을 짓고 난 후 그들의 마음에 바벨론의 생활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에서의 생활을 바벨론에 비교해 보니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것처럼 초라했습니다. 고생 끝에 고향에 돌아와보니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방인들과 결혼하여 과거 그들이 지녔던 산지와 모든 것들을 차지하고 자신들은 빈털터리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 바벨론의 생활이 더 좋았다고 불만을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지킨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병이 들고 일이 꼬이고 앞이 캄캄하고 슬프고 고독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광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메뚜기 신앙을 갖느냐 밥 신앙을 갖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메뚜기 신앙은 하나님보다 문제를 더 크게 보는 것이고 문제 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고 담대함을 보이는 것이 밥 신앙 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이 더 크게 보일 때 하나님을 붙잡고 그분의 방법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크고 위대하신 분임을 붙잡아야 합니다. 바로 이때가 하나님의 방법으로 성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 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기도하면 우리를 그러한 인생으로 붙잡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꿈이 우리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고 성공하는 인생이 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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