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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정받는 일꾼들 (빌 2: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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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인사가 만사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일을 하는가에 따라서 일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도 그렇고 하나님의 나라도 그렇습니다. 세상도 사람을 통해서 일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고민은 사람은 많지만 지도자는 적고 쓸만한 일꾼은 생각처럼 많지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며칠전에 사퇴한 국민총리후임으로 새로운 여성 한분을 총리후보로 내정한 소식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그러나 내정된 총리후보는 국회에서 비젼과 업무와 인격과 모든 것을 인사청문회를 거쳐 검증을 하게 됩니다. 과거에 한번 여성홍리후보로 내정되었던 분이 가짜학력파동으로 결국 임명이 부결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내정된 여성총리후보되시는 분의 경우에는 여러면에서 무난하다고 하면서도 또 한편에서는 사상과 당적을 문제로 삼고 있어서 결과가 주목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주간 식사를 하면서 문화관광부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하는 것을 잠깐 본적이 있습니다. 어디에서 조사햇는지 그분의 과거가 소상하게 다 조사되어 국회의원들이 질문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질문 내용 중에 공직의 장관으로서 부적절하게 여겨지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주 집요하게 국회의원들이 까다롭게 문제를 제기하고 추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중요한 공직의 지도자일수록 학력 경력 인격 삶 모든 면에서 흠이 없는 사람을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일하려면 모든 면에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권위가 세워지기 때문입니다.힘이 들고 어렵지만 귀하고 중요한 일을 하는 지도자들은 까다롭게 선택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되어진 사람들을 인정하고 우리는 따라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일꾼을 세울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만한 사람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교회 일꾼을 세울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검증입니다. 다방면에서 충분히 검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내년에는 새로운 교회 일꾼을 세워야합니다. 교회의 장로나 안수집사 권사와 직분을 통해서 세우는 일꾼은 어떤 한 사람의 명예를 위해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유익하게 하고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고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
과연 우리가 교회 속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성숙한 사람 바울이 인정하는 귀한 평신도 일꾼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울곁에서 바울을 도와서 교회를 섬기던 이들은 오늘 우리들에게 귀한 사표가 되고잇습니다.
성숙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숙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결국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임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인정을 받는 일꾼들을 우리는 본문에서 봅니다.바울은 이들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추천을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받을 만한 귀한 일꾼들이기 때문입니다.

2. 인정받는 일꾼은 디모데같은 사람입니다.
첫째 디모데는 뜻이 같은 일꾼이었습니다.
20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디모데야 말로 인정할만한 일꾼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많은 제자들중에 가장 사랑받는 제가가 바로 디모데입니다.
이들은 인간적으로 보면 어울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50대의 나이라면 디모데는 십대였을 것을로 봅니다. 약 19세의 나이로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나이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바울은 디모데가 자신과 뜻이 같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가정이 잘되고 교회가 잘되려면 뜻이 같아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뜻이 같아야 가정이 삽니다. 목사와 장로와 모든 성도들이 뜻이 같아야 교회가 교회다와 집니다. “뜻이 같다”는 것은 “한 영혼으로”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은 다르지만 한 마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디모데는 어떤 뜻이 같았습니까?
바로 교회를 생각하는 것이 뜻이 같았습니다. 교회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교회를 위하여 희생하면서 섬기며 사랑하는 동기가 같았습니다. 이미 그당시에도 바울 주변에는 많은 사역자가 있었지만 전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않았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이기적인 동기가 없었습니다.
진정으로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주님의 동기를 갖고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일꾼들이었습니다.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줄 아는 일꾼이었습니다.자기 일을 구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을 대신하여 교회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디모데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숙한 일꾼은 무엇보다도 교회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복음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희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식당에서,주일학교에서,성가대에서 ,차량운전을 통하여서,구역에서 수고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것은 “같은마음 같은 뜻”으로 희생하는 일꾼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야 같은 방향으로 갑니다. 만약에 다른 마음 다른 뜻으로 사역하면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여러분 교회는 같은 마음으로 같은 뜻을 갖고 같은 방향을 향해서 갈 때 건강한 교회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속에서 먼저 중요한 것은 “같은 뜻”을 품는 과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사역을 하기이전에 먼저 중요한 것은 함께 말씀으로 양육을 받고 훈련을 받으면서 뜻을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기 주관적인 생각과 뜻으로 사역하면 어렵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뜻”에 맞추어야 합니다.
종종 교회 속에서 사역을 열심히 하는 분들이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마음 같은 뜻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하느냐 안하느냐 이것은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뜻이 같으냐의 문제입니다. 인정받는 일꾼은 주님의 뜻을 따라 희생하는 일꾼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뜻이라면 오케이하시고 동역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디모데는 연단받은 일꾼입니다.
22절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바울이 디모데를 인정하는 이유는 디모데가 연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연단은 바로 훈련을 의미합니다. 디모데는 사실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사실 디모데의 성격은 부정적인 면이 많았습니다. 디모데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하여 어려서부터 말씀을 통하여 자라온 사람이었지만 디모데는 소심한 성품이었습니다. 강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전후서를 통하여 청년 디모데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두려워하지 말고 강하라는 것입니다. 내성적인 성품은 남 앞에 잘 나서지 못하고 또 남 앞에서 말을 잘 하지 못합니다.그리고 그는 건강이 약하고 자주 나는 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성품 약한 몸도 연단받으면 다듬어지고 귀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연단이란 테스트를 말합니다. 디모데는 시험을 잘 견디고 그 결과 건전한 인격의 사람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잘 연단되면 나이를 초월하여 성숙합니다.
바울의 나이가 50대라면 디모데는 나이는 30대 중반이었습니다. 그는 나이는 30대였지만 영적 성숙은 이미 50대의 바울에게 만족을 주는 단계였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중에 하나가 바로 천국일꾼을 훈련하는 일이고 훈련받는 일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 훈련받았습니다. 실제로 복음을 위하여 함께 있으면서 가르치고 실천함으로 훈련하였습니다.
그 결과 잘 연단되고 성숙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훈련소라고 생각을 하십시오.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그 세상으로 나가서 승리하기 위해서 훈련받는 곳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우리는 훈련소하면 고통을 연상시킵니다.물론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훈련소는 이 지상의 훈련소와는 다릅니다. 훈련소장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주님이 먼저 교관으로 조교로 하나님의 사람을 세워서 자신이 택한 백성들을 훈련시키십니다. 여기 주님의 부름받은 바울이 디모데를 훈련시켰습니다. 바울은 아버지로서 자식같이 사랑으로 그를 말씀으로 훈련시켰습니다.
훈련받을 때 성숙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일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12명의 제자를 훈련시켰고 바울도 주변의 사람들을 훈련시켰습니다. 그 결과 효과적인 복음 사역과 교회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숙한 일꾼이 협력하는 교회가 될 때 결국 효과적인 교회로서 능력을 발휘합니다.
잘연단되면 능력이 극대화됩니다. 연단되면 사역이 극대화됩니다.그리스도인들중에도 야생마같은 그리스도인이 있고 경주마같은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야생마는 혼자하는 것은 그럭저럭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태우지를 못합니다. 사람이 타면 발버둥쳐서 떨어뜨리고 맙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러나 경주마는 사람을 잘 태웁니다. 그리고 목표를 향하여 잘 달릴줄 압니다. 훈련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남과 연합이 어렵습니다. 혼자서는 잘 할지 모르지만 함께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훈련된 그리스도인은 남과 하나가 되어서 연합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습니다. 잘 훈련되어져 화합하고 협력할 수 있는 귀한 인정받는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인정받는 일꾼은 에바브로디도 같은 사람입니다.

25절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여기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인정하면서 “함께”라는 말을 반복하여 씁니다.
함께 수고,함께 군사되고,함께 군사되고,함께 사자된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에바브로디도의 무엇을 인정하는 것입니까?
모든 면에 균형을 갖춘 사람입니다. 모든 면에서 바울과 함깨 협력하면서 도와주는 역할을 잘 감당한 것입니다. 그는 한마디로 균형감각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성숙한 일꾼은 다방면에 균형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사람은 한명이지만 어떤 자리에 있어도 그 자리를 빛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첫째는 신앙과 사역의 균형을 갖춘 일꾼입니다.
나의 형제,함께 수고한 자요,함께 군사된 자요,너희 사자,나의쓸 것을 돕는자라고 하였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이렇게 다양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균형이 잡힌 사람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신앙적인 면에서 형제였습니다.
함께 신앙을 나누면서 교제를 할 수 있는 신앙이 분명한 친구같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함께 사역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의 군사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함께 군사된 자요 라고 합니다.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에바브로디도는 교회에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교회의 사자“였습니다.빌립보교인들에게 인정을 받을 정도의 사람입니다.이것을 보아 모든 성도들과 관계가 원만하고 리더쉽이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는 사도인 바울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신앙면에서 사역면에서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은 있는데 능력에 있어서 부족한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은 좋은데 자신의 은사를 발 개발하지 못한 사람은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은 좋은데 찬양도 못하고 가르치지도 못하고 봉사할만한 어떤 능력도 없을때에 사역자로서 쓰임받기에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사역은 잘 하는데 인격적인 면에서 부족한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은 뿌리라면 사역은 그 열매입니다.개인적인 신앙도 좋아야 하고 사역의 능력도 갖추고 교회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에바브로디도처럼 신앙도 있고 사역도 잘하는 균형잡힌 일꾼들 좋은 일꾼들이 있으면 교회가 행복합니다. 교회가 바로 세워져갈 수 있습니다.
목사 혼자서 주도하는 교회는 결국 기형아가 되거나 죽어버리고 맙니다. 이제 무엇보다도 신앙과 은사를 가진 평신도지도자들이 교회를 위하여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과 당나귀에게 짐을 운반하게 했습니다. 여행 도중에 당나귀가 말에게 "내 목숨을 구해줄 생각이 있다면, 내 짐을 조금만 당신이 져 주세요."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말은 들은 척도 안했습니다. 얼마 안 가서 당나귀는 쓰러져 죽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당나귀가 지고 있던 짐 전부와 거기다가 죽은 당나귀의 시체까지 말에게 지게 했습니다. 말은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아아, 정말 한심하게 되었구나. 조금만 도와주었더라면 괜찮았을 것을, 이제 그 녀석의 짐 전부에다가 그 녀석의 시체까지 지게 되었구나."
교회도 그렇습니다. 어떤 한 두사람이 교회 모든 사역을 다 하다보면 결국 지쳐서 탈진하게 되고 결국은 영적으로 침체에 빠집니다. 사역하면서 신앙이 죽게 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신앙도 살고 사역을 통해 교회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좋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잘 개발하셔서 자신을 아름답게 잘 가꾸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은사가 좋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신앙을 잘 개발하여 키워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처럼 성숙한 신앙 균형잡힌 신앙인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서 잘 세워져 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마음과 행동의 균형을 이룬 일꾼입니다.
26절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여기에서 우리는 에바브로디도가 가슴이 따뜻한 사람임을 볼 수 있습니다.
30절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에바브로디도는 죽기에 이르기까지 함께 바울을 도와 교회를 섬기는 행동하는 산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에바브로디도는 교회를 간절히 사랑하는 가슴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인들을 간절히 사모하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회의 대표엿습니다. 그러나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을 돕기 위하여 로마에 왔습니다. 그러나 로마에 있으면서 그는 빌립보교회의 분열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간절히 생각하면서 그리게 되엇습니다.그리고 자기가 로마에서 병이 들었다는 것을 전해들은 빌립보교인들이 근심하는 것을 안따까와했습니다. 그는 조금도 교회에 누를 주고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를 사랑하는 가슴을 품으십시오.
그럴 때 교회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은 바로 교회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안고 교회를 위해 섬기십시오.
비록 주연은 아니더라도 조연에 불과하고 엑스트라같을지라도 나를 드리십시오.

에바브로디도는 얼마나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기고 사역을 햇는지 모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여기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고난 중에 있는 바울을 섬기는 일을 위해서 빌립보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감당하지 못할 일을 혼자 그것을 다 감당하면서 하기를 소원했습니다.

3. 교회에 대한 일꾼의 태도 : 교회는 일꾼을 주안에서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29절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합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같은 일꾼들을 교회에서 인정해주라고 합니다.
여기 “주 안에서”라는 말은 주님께서 천국에서 그를 인정해주듯이 하라는 것입니다.모든 기쁨을 가지고 환영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라고 합니다.

보이는 인정,보이는 격려를 해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격려를 잘 해주셨습니다. 백부장을 보고 “이스라엘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지 못하였도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가나안여자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하였습니다. 바울도 그렇습니다. 디모데를 칭찬하고 에바브로디도를 칭찬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칭찬하고 스데바나같은 사람들을 칭찬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속에서 서로 필요합니다.
서로 목장에서도 잘하는 목원들을 인정해주십시오. 서로 찬양대에서도 인정해주십시오.교회에서 사람을 인정해주고 키워야 합니다. 그때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더 용기를 주고 더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가 인정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개교교회에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에 있는 다른 교회에서도 인정받고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결론)))))))))))))))

나는 인정받는 일꾼입니까?
비록 사도는 아닐지라도 바울을 도운 조력자이지만 디모데같이 에바브로디도같이 인정받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디모데같이 젊은나이이지만 주님을 위한 뜻을 갖고 희생하는 일꾼,성숙한 일꾼이 되어서 젊음을 아름답게 주를 위해 바치는 일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에바브로디도처럼 비록 한 지역교회에서 먼저 인정을 받기 원합니다. 신앙적으로나 사역하는 일이나 가슴과 행동이 조화를 이루는 능력의 일꾼이 되시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 디모데같은 에바브로디도같은 좋은 일꾼들이 많이 나와서 많은 교회에 좋은 소문을 내는 교회로 발전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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