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죄에서 자유를 (롬 6:1-14)

  • 잡초 잡초
  • 821
  • 0

첨부 1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영어로 Lent라고 합니다. Lent는 ‘봄’을 의미하는 말에서 유래하였는데, 봄은 자연계에서는 생명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인 부활을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순절에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위에서 찢기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금식을 하였습니다. 하루 한끼 혹은 40일 동안 전부 금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순절 기간에는 연극, 무용, 연애 소설 읽는 것과, 오락 행위가 금지되었으며, 화려한 옷을 입는 것,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등 호화생활 등도 자제되었습니다. 대신 자선과, 예배 참석, 기도, 성경말씀 읽고 묵상하는 일에 힘쓰게 하였습니다. 이런 믿음의 선배들의 경건생활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죄인이 있는데 하나는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죄인이 있고, 다른 하나는 내가 의인이라고 하는 죄인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면서도 애써 부인합니다. 입으로는 죄인이라고 쉽게 말하면서도 중심으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기가 죄인임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누구에게 예수님이 필요합니까? 누구에게 십자가가 필요합니까? 누구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시겠습니까?

우리는 ‘죄’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누가 우리를 ‘죄인’이라고 부르면 기분 나쁩니다. 반발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죄인’이라 부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0-12)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 죄에서 제외된 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죄에 대한 테스트가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스 스스로 테스트 해 보시기 바랍니다.
1) 나는 죄를 밥먹듯이 짓는다. 2) 나는 종종 자주 죄를 짓는 편이다. 3) 나는 거의 죄를 짓지 않는다. 4) 나는 죄를 결코 짓지 않는다.

고르셨습니까? 넷 중에 어디에 해당되십니까?
첫 번째, 나는 죄를 밥먹듯이 짓는다를 선택하신 분은 미안한 말씀이지만 심각한 분입니다. 이런 분들은 영적인 병원에 입원하셔서 주님으로부터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두 번째, 종종 자주 죄를 짓는 편이다를 선택하신 분은 그래도 나은 편이긴 하지만 이 분들도 회개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 나는 거의 죄를 짓지 않는다를 선택하신 분과 네 번째, 나는 결코 죄를 짓지 않는다를 선택하신 분은 정말로 죄를 많이 짓는 분들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로 크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죄에 대하여 걸리지 않는 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죄는 감기와 비슷합니다. 요즘 감기는 참 무섭습니다. 감기가 모든 질병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몸속에 침투하여 들어가 잠식하면 온 몸의 System이 Down이 됩니다. 기운이 없고, 밥맛이 떨어지고, 몸이 아프고, 매사에 의욕이 떨어집니다.

또 죄는 컴퓨터 악성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악성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컴퓨터를 켜면, 나쁜 광고가 나오고, 카지노가 튀어나옵니다. 컴퓨터에 열심히 모아 놓은 자료도 삽시간에 날아가 버립니다. 죄가 우리속에 들어오면 그와 같습니다.
죄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일단 사람 속에 들어가 죄에 전염되면 영적 system이 완전히 떨어질 수 있습니다. 기도하기 싫어지고, 예배드리기 싫어지고, 말씀읽기 싫어지고, 사람 만나기도 귀찮고, 만사에 신경질이 나고, 의욕이 떨어집니다.
죄가 주는 가장 심각한 피해는 죄의 중독성입니다. 우리가 한번 죄를 지을 때는 아직 습관적이지 않지만 그 죄가 반복되면서 늘어가는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을 가집니다. 마약과 같은 것입니다. 마약의 심각성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심각한 후유증과 함께 점점 더 심각한 상태로 중독이 된다는데 있습니다.

사탄도 우리를 죄의 노예로 끌어들일 때 절대로 한번으로 끝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마약에 빠진 사람은 비록 은혜의 체험을 했다가도 순간적으로 옛 습관에 의해서 다시 마약의 소굴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도 쉽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좋은 머리로 악한 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도대체 왜 그럴까요? 왜 그렇게 악한 것들을 생각해서 사람들을 망치고, 생각을 어지럽히고, 가정을 파괴합니까? 죄의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노예는 좋은 것을 악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괴롭힙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죄의 노예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자유, 선과 덕을 도모하는 자유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누가 죄를 짓고 싶어서 짓겠습니까? 죄인이기 때문에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죄가 이끄는 대로 힘없이 끌려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아무 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를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주셨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1:9)
이해인 시인의 이젠 다시 사랑으로(사순절의 기도) 라는 기도문에 보면
“호두껍질 처럼 단단한 집 속에 자신을 숨겼던 죄인이지만
회심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슬퍼하지 않으렵니다.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말하지 않으렵니다.
. . . 죄의 유혹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그럭저럭 살아온 날들,
기도를 게을리 하고도 정당화하며 보고 듣고 말하는 것에서 절제가 부족했던 시간들,
이웃에게 쉽게 화를 내며 참을성 없이 행동했던 지난날의 잘못에서 마음을 돌이키지도 않고 주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정말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라면 오늘 본문에서 그 비결을 배우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로, 예수와 연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3절부터 11절까지 보면 “합하여” “함께” “ 연합한” 등의 단어가 모두 아홉 번이나 나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예수와 연합된 사람이고, 예수와 함께 하는 사람이고,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과 연합하고, 예수님 안에 있을 때에 죄 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3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세례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 나는 죄에 대하여 죽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새롭게 사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에는 “나와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에 대 하여는 살았다”는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역설의 진리입니다. 죽어야 사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 내 속에 주님이 사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죽은 척 하면서 죽지 않은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리스의 신화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암 고양이 한 마리가 주인 집 아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고양이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가서 자신의 심경을 말하고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고양이의 딱한 사정을 가엾이 여긴 여신은 고양이를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어 주었고, 청년은 첫눈에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결국 둘은 결혼하게 되었고 신혼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첫 날밤 그들의 신방에 쥐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처녀가 된 고양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옆에 누가 있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까맣게 잊은 채 침대에서 뛰어내려와 쥐를 잡아 맛있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신랑은 너무 놀라 고함을 치며 밖으로 뛰쳐나갔고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프로디테는 화가 나서 그녀를 본래의 고양이로 되돌려 버렸습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변화되지 못한 사람을 가리켜 말하는 비유입니다.

비록 성경을 들고 교회에 출석을 해도 여전히 옛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겉모습만 기독교인이지 속은 여전히 옛사람이며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쾌락을 추구하고 인본주의로 채워져 있는 교인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가롯유다같은 사람들입니다. 겉으로는 “주님 사랑합니다.”하고 입을 맞추면서도 속에는 도둑이 들어 있어서 예수님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십자가에서 죽어야 죄에서 해방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줄입니다. 애기가 엄마 뱃 속에 있을 동안에는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아서 생명줄이 끊어진 사람은 죄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죄와 싸워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서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하십니다. 죄와 싸우기를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죄와 싸우는 생활이어야만 합니다.
죄와의 싸움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는 시간부터 이미 선포되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예수님은 이 싸움을 마감짓기 위해서 오셨고 죄와 싸우셨습니다. 죄와 상관할 필요도 없으신 분이시지만 죄악된 인간들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면서 싸우신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은 순전히 죄악된 인간들 때문입니다.

사탄과 마주서서 영적 전투를 벌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정욕, 시기, 질투, 미움, 욕심, 욕망에 순종하지 말고 피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싸우기를 바랍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동경하고,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처럼, 우리도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 생활로 다시 돌아가려는 죄성이 아직도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두 사이에 끼어 있는 성도는 거룩을 위해 영적 전투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약점이 있다면 교회 안에서는 다 천사가 되었는데 가정으로, 직장으로 나가면 오히려 불신자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력한 기독교, 무력한 성도는 변화 받지 못한 성도가 되고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고, 세상의 소금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12절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죄에서 자유로우려면 몸의 정욕에 순종치 말아야 합니다.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죄와 동거했을지라도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의지하여 죄와 당당히 맞서서 싸워야 됩니다.

술이든 도박이든 도벽이든 처음에는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한 번 거기 빠진 후에는 헤어 나오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죄가 원수 같이 보여 피하지만 한번 그 죄의 요구에 응하면 죄와 친구가 되고, 두 번 세 번 계속적으로 죄에 굴복하면 마침내 죄에게 항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게 져서 죄의 종노릇을 하면 안됩니다. 어떻게 죄를 짓지 않고 죄를 이길 수가 있을 까요? 그 죄를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감추면 절대로 우리 안에 있는 죄 문화와 습성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죄는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폭로하고 사람 앞에서도 폭로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죄와 싸우시고, 사회에서 죄와 싸우십시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1-12)

성경은 말씀은 성령의 검이라고 합니다. 어떠한 검일까요? 좌우에 날선 검으로서 “어떠한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뜻과 생각을 감찰하는” 능력의 검이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령이 충만하고, 많은 체험을 해도 말씀이 전혀 없으면, 성령님이 쓰실 검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많이 읽고, 외우고, 묵상하면 성령께서는 무기창고에 들어가 필요한 무기를 꺼내서 싸워 이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의 종이 되어 넘어지지 말고 날마다 순간마다 죄와 싸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병기로 드려야 합니다.
병기(兵器)라는 말은 전쟁에 쓰이는 모든 기구들입니다. 무기를 말합니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의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가 세상에 살땐 불의의 병기가 되었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 의의 병기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사탄을 즐겁게 해주며 살았으나 예수를 구주로 섬기면서는 이젠 전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아가는 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머리가 좋고 컴퓨터를 잘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 어요. 그런데 그 지식을 가지고 은 행 남의계좌에서 돈이나 훔쳐내고, 남의 컴퓨터에 들어가서 자료를 빼 내는 해커노릇을 하고 음악에 재능이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사탄을 찬양 하는데 사용하면 그것이 바로 불의 의 병기가 되는 것입니다. 과학지식 이 있는 데 그것을 가지고 폭탄을 만들거나 독약을 만드는데 사용하면 불의의 병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의의 병기로 드려지지 않으면 죄의 병기로 드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죄에 쓰임받는 불의의 병기로 드려지는 것은 쉽습니다. 불의의 병기로 쓰임받는 것은 가만히만 있어도 됩니다.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소극적으로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장소를 피해야 합니다.
죄를 이기려면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는 기회만 있으면 우리에게 접근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범죄들이 일어나는 것은 항상 그 기회를 타기 때문입니다.

의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정신병은 주로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다고 합니다.
여인들 중에서도 자녀를 다섯 이상 낳은 여인은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로 아이 하나를 둔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고 할 일이 없어지니 서글프게 헤어졌던 옛날 애인 생각이나 하고 있고,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들어 정신병에 걸린다고 합니다. 바쁜 사람은 정신병에 걸린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헌신하시고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내 삶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의의 병기가 되도록 하나님께 내어놓고 드리는 사람은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 능력, 기술, 지식, 나의 삶 전체를 하나 님 앞에 드리고 헌신하는 사람들은 의의 병기가 되어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임경택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