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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백합화 같구나 (아 2:1~2, 마 6: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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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매티슨은 1842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이미 시력이 약한 매티슨은 시력이 점점 나빠져서 18세가 되었을 때는 시력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그는 시각 장애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학생으로 글래스고우 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 여러 교회의 목회를 했고, 에딘버러의 큰 교회에서도 목회를 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 어떤 젊은 여인과 약혼을 했으나 그녀가 장님과는 결혼할 수 없다고 하여 파혼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깊은 사랑의 상처를 받고 난 후 다음과 같은 찬송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 나를 결코 버리지 않는 사랑이여
그대 안에 나의 지친 영혼이 쉽니다.
그대에게 나는 빚진 생명을 바칩니다.
그대의 깊은 대양에서 나의 생명이
더욱 풍요롭고 더욱 가득하게 하소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는 힘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붙잡는 힘입니다. 승리의 비결은 생명이나 사망에서 나를 결코 버리시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동물은 먹이를 먹고 살고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를 만족케 하는 참된 사랑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두 곳에서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과 그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약속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가서는 이스라엘의 지혜의 왕으로 널리 알려진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여 부른 노래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개인적인 애정의 노래가 아닙니다.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술람미 여인은 주님이 사랑하시는 성도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간단한 성경구절에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주님께 사랑을 받는 길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사랑한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가리켜“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아가서 1:1)라고 했고, 여기에 화답한 솔로몬은“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아가서 1:2) 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백합화를 비유하여 자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절에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아가서 1:1)라고“수선화”로 되어 있지만 이사야 35:1에는 같은 단어를 백합화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또한 백합화로 볼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백합화는 모두 처한 장소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들판의 백합화, 골짜기의 백합화, 가사나무 가운데 백합화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이나 궁궐은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 지혜를 확인하고자 직접 찾아왔던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만보고 한 말에 대하여 역대하 9:3~7에 기록하기를“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와 그 건축한 궁과 그 상의 식물과 그 신복들의 좌석과 그 신하들의 시립한 것과 그들의 공복과 술 관원들과 그들의 공복과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정신이 현황하여 왕께 고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진실하도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목도한즉 당신의 지혜가 크다 한 말이 그 절반도 못 되니 당신은 내가 들은 소문보다 지나도다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지혜에 의해 건설된 궁궐입니다. 이러한 솔로몬이 꾸민 정원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웠겠습니까? 그 정원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솔로몬은 어떠한 꽃을 말하고 있습니까? 본문 1절에“나는 사론의 수선화요.”라고 했습니다. 이 수선화가 이사야 35:1에는 백합화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사론이란 지역은 이스라엘의 서쪽 즉 지중해 동부 연안 지역 욥바에서 북쪽 갈멜산 지역에 이르는 거대한 평원을 말합니다. 참고로 말씀을 드리면, 욥바는 지금의 쟈바라는 곳으로 항구도시인 텔아비브에 인접해 있습니다. 갈멜산은 선지자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850명의 무리 앞에서 참된 신이 어느 신인가를 확인한 곳입니다. 엘리야는 간절히 기도하여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므로 하나님만이 참된 신임을 증명한 곳입니다. 이 평원은 남북이 약 80여 km, 동서가 약 10~19km에 달하는 넓은 지역으로 북부는 농경지, 남부는 목초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사론의 백합화”라는 것은“들판의 백합화”라는 뜻입니다.


1. 샤론의 백합화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백합화를 말하되 왕궁 정원에 핀 백합화가 아니라 들에 핀 백합화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사랑한 술람미 여인이 예루살렘 궁중의 많은 궁녀들과 달리 자신은 지극히 평범한 여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러한 자신을 사랑한 솔로몬 왕의 사랑에 기뻐하며 감격해 하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참으로 복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술람미 여인만 복 많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러한 축복이 임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존귀한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크나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될 자격이 전혀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교회에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한복음 6:44에“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나와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증거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2:3에는“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기쁨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하며 기도하는 것은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의해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헤아릴 길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성경에 말씀하시기를“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26~29)하셨습니다.

마치 들에 핀 백합화와도 같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사랑을 받은 것 같이, 사랑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이 큰 사랑에 감격한 노예상인이었던 뉴턴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구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도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누구나 다 이러한 감격의 찬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에게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 들의 백합화를 통해 하나님의 보호의 약속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6:28~34)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28~30에 백합화를 두고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들의 백합화까지 입히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을 밝히신 말씀입니다. 들의 백합화까지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에게야 하나님의 관심이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의식주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삶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갖가지 삶의 문제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거친 파도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염려와 근심의 해결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방법은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 하늘의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사람의 방법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55:8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염려와 근심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30에“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으로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동차로 인한 유익이 얼마나 큽니까? 얼마나 편리합니까? 그러나 자동차로 인한 유익이나 편리함은 운전을 배워서 운전하는 사람에 한해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배움의 힘입니다. 자동차 운전 하나만도 그러 할진데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배움이겠습니까? 이것은 삶의 근본적인 해결을 가져오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신명기 10:12~13에“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안에서 살아가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행복의 열매가 있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영리하기로 이름난 여우 한 마리가 바닷가에 갔습니다. 여우는 동물 중에서 머리가 좋다는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 여우는 바다 속의 물고기들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물고기 여러분, 바다 속은 위험하니까 뭍에 올라와서 우리와 함께 삽시다. 어부들이 그물을 쳐서 여러분을 잡으려고 한답니다. 또 큰 고기들이 여러분을 잡아먹을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육지에 올라오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물고기 대표들은 모여서 회의를 하였습니다. 갑론을박, 좀처럼 회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우는 머리가 영리하니까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주장에서부터 바다 속에 사는 것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오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대립되었습니다. 고기들은 오랜 숙의를 거듭한 끝에 여우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물고기 대표는 물 위로 얼굴을 내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우님, 우리를 생각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우리는 물 속에 사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
저녁식탁에서 자녀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아버지는 계속해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물고기가 뭍에 나오면 어떻게 되지?”어린이들은 금방 알아듣습니다. 물고기가 육지에 올라오면 말라죽게 된다고 대답을 합니다.“바로 그거야.”아버지의 교훈은 계속됩니다. “유태인은 유태인으로 살아야지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유태인임을 저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어린이의 마음속에 분명하지는 않지만 무엇인가 가슴을 울려주는 감동과 각성이 있게 됩니다. 무서운 교훈입니다. 이렇게 해서 유태인은 유태인으로서의 신분과 정신을 떠날 수 없는 것을 어린 마음속에 심어준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배워 그 안에 거하면 어떤 결과가 주어질까요? 요한복음 15:7에“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의 해결은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둘째,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28~34에“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33에“너희는 먼저.....”라고 하셨는데, 사람이 살아가는데 먼저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할 일이 있다면 나중할 일도 있는 것입니다. 즉 삶의 순서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순서는 질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차량이 많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 교차로에서 자동차들이 순서를 지키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질서하게 차들이 한데 뒤얽혀 혼잡을 빗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순서는 곧 질서입니다. 그래서“질서는 아름답고, 편하고, 빠르다.”라는 교통 표어가 있습니다. 좀더 빨리 가려고 순서를 무시하며 앞으로 나아가지만 도리어 늦게 됩니다.

건물을 지을 때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할 일과 나중할 일이 있습니다. 이 순서가 바뀌게 되면 먼저 일한 공사는 다 쓸모가 없게 됩니다. 뜯고 다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옛날, 개척교회를 건축하면서 이러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습니다. 순서가 바뀌면 열심히 일을 했지만 그 수고는 헛되고 맙니다. 사용된 자재는 낭비가 됩니다. 우리들의 삶의 순서가 이와 같이 중요합니다.

시간을 활용하는 데에도 먼저 할 것이 있고 나중 할 일이 있습니다. 시간 활용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나누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신 자산이 곧 시간입니다. 똑같은 시간 속에 살아가지만 어떤 이는 성공하고 어떤 이는 실패합니다. 그것은 시간 활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늘 대하게 되는 시간과 일들을 나누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둘째, 급하진 앓지만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셋째, 중요하진 않지만 급한 일이 있습니다.
넷째,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들이 있습니다.

급하고 중요한 일은 먼저 해야 합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행하는 일입니다.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들은 누구나 뒤로 미루게 됩니다. 둘째와 셋째의 것들의 분별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급하진 않지만 중요한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밑거름이 되는 중요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독서, 기도, 예배, 봉사 등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급하진 않습니다. 바쁘면 뒤로 미루어도 됩니다. 미룬다하여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합니다. 삶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이런 것들이 쌓이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어리석은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에 많은 시간을 사용합니다. 이런 것들의 대표적인 것이 텔레비전 시청, 동네 이웃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잡담의 시간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먼저 해야 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이 일은 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일은 급하지 않기도 하지만 대단히 소중한 깃입니다. 여기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합니다. 무엇입니까?“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순서이며, 방법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 숭배와 죄악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통치하심 아래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섬기는 사람들이 날로 더해 가도록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삶의 우선순위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31-33에 말씀하시기를“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의식주 문제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살아가기 어려운 때에 하나님은 이를 해결하는 비결을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의식주 해결의 비결이 되겠습니까? 이러한 삶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만사가 사람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되게 하셔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며,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입니다.

시편 127:1-2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삶은 모든 것이 헛된 것으로 돌아갑니다. 가을 들판에 황금물결이 넘실거립니다. 풍년이 눈앞에 왔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의 장대비가 내리자 곡식이 무르익은 들판은 온통 물바다가 되어 풍년의 꿈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우를 흔하게 보았습니다. 이처럼 세상일이 내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시편 127:1~2)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28:1-7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을 축복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하셨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자기 길로 가는 사람 즉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지 아니하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신명기 28:15-19)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확실함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부요한 나라가 어디 있으며,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계 속에 두각을 나타낸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초대교회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오리겐은 마태복음 6:28~34에 관해 설명하기를“예수께서 제자들에게‘가장 중요한 것을 추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조그마한 것들을 덤으로 주겠노라. 하늘의 것을 추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세상의 것도 덤으로 주겠노라.’고 말씀했다.”라고 했습니다.

미개한 나라와 문명이 발달된 나라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미개한 나라 사람들은 자기 힘만 의지합니다. 등에 짐을 지고 나릅니다. 괭이나 삽을 들고 손으로 일을 합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된 나라는 기계를 이용 합니다. 모든 농사도, 공사도, 기계로 일을 합니다. 즉 자기 육체의 힘 외에 기계의 힘을 이용합니다. 이것이 기계화요, 공업화이며, 전자화요, 정보화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힘을 이용하는 지혜는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우리들이 누리는 모든 현대 문명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부터 들어온 문화와 문명들입니다. 그들은 일찍이 하나님을 알고 섬겼습니다. 다시 말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세계만방으로 나아갔습니다. 복음을 위해 수많은 생명이 희생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나라와 민족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넘치는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본분을 다하는 사람을 사랑하셔서 넘치는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6~7에“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하셨습니다.

기도에도 응답되는 기도가 있고 응답이 없는 기도도 있습니다.“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야고보서 4:2) 하셨습니다. 기도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지혜의 왕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은 왕위에 등극하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한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의 이러한 모습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시기를“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 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왕상 3:10-13)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솔로몬에게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을 덤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6:33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여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애타는 심정으로 말씀하시기를“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디모데후서 4:2)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3)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본받아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입술로, 우리의 행동과 삶으로 이 복음을 힘써 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도들을 사랑하셔서 크신 은혜와 축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1,33)하신 것입니다.“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염려의 대상이며, 이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소망입니다. 이 염려에서 벗어나는 비결, 이 소원을 이루는 방법이 무엇이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입니다.


솔로몬이 들에 핀 백합화 같은 지극히 평범한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들의 백합화까지 지키시며 입히신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배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은 무엇을 좋아하시며,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시는지?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 즉 복음증거로 한 영혼 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애타는 소원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 세상의 빛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이루는 데에 삶의 우선순위에 두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성공하는 삶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의식주 염려에서 벗어나 육신의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6~7에“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하셨습니다.
이 귀하신 하나님을 온 마음 온 정성 다해 섬기시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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