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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막아 주시고 열어 주시는 하나님 (삼상 2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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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는 듣는 곳입니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라 합니다. '미드바르'는 '다바르'라는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다바르'는 명사가 되면 '말씀'이 됩니다. 또 동사로는 '말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광야라는 말은 '말하다'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곳입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광야에 가면 하나님의 소리가 잘 들립니다.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면 풀립니다. 들리면 열립니다. 들으면 자랍니다. 믿음도 자라고 사랑도 자라고 소망도 자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광야로 부르십니다. 실패라는 광야로, 실직이라는 광야로, 시련이라는 광야로 부르십니다. 그건 말씀을 하시고 싶어서입니다.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때가 있다.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을 때가 있다. 사람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얘기 나눌 사람조차 없을 때가 있다"(제프 스완). 이 때가 광야를 만난 때입니다. 이 때가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할 때입니다. 광야를 만났습니까? 그럼 말씀을 듣기 위해 엎드리십시오.

  오늘 말씀은 십 광야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다윗 일행이 하길라 산에 숨어 있을 때에 십 사람들이 다윗의 거처를 밀고하는 장면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사울 조차도 그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23: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 사람들은 사울의 왕권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십 사람들의 밀고를 받고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또 다시 나선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사울의 군대는 막강한 블레셋의 군대를 번번이 격파했던 정예병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군대를 지휘하는 아브넬 또한 출중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막아주시고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군사들의 감각을 둔화시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버린 자의 비참한 실상인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동행 여부가 성패를 판가름해 준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있어서 다윗처럼 항상 하나님의 주권과 뜻을 존중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복잡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생존 경쟁이라기 보다는 생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매일 매순간 큰 은혜를 내리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위험을 막아 주시고 축복을 열어 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죽음을 막아 주시는 하나님
  본문 1-2절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이르러 가로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사울이 일어나 십 황무지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과 함께 십 황무지로 내려가서"

  '십'(Ziph)은 헤브론 남동쪽 약 8km 지점에 있는 유다의 성읍입니다. '십' 사람들의 밀고를 받고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달려 갔습니다. 사울 왕의 지극히 불안정하고 변덕스런 성격이 다윗에 대한 증오심으로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이스라엘의 최고 정예병 삼천을 거느리고 갔습니다. '삼천'은 사울이 일찍이 수많은 블레셋 족속들을 무찌를 때 동원했던 수효와 동일한 병력 규모입니다. 사울이 삼천의 병력으로 다윗과 그의 추종자 육백 명을 일거에 제거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울이 다윗의 군대에 비해 5배나 많은 정예 병력을 동원하여 십 황무지까지 추격한 것은 다윗의 무리들을 죽이려는 살인적인 각오이었던 것입니다. 사울과 삼천의 군사들이 황무지로 들어옴을 깨달은 다윗은 탐정을 보내어 잘 피신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삼천 군사들이 다윗을 찾아 죽이려 하였지만 그들의 눈을 막아 주시고 감각을 둔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과 그의 군대가 쉽게 포기하고 눕게 하시고 잠들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생명을 지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을 죽이려고 삼천의 정예 군대가 날뛴다면 심장마비로 죽을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죽음을 막아 주셔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다윗의 공로나 특출함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공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책에서 고든 맥도날드는 내면세계의 질서가 정돈되지 않은 대표적인 인물로 사울 왕을 예로 듭니다. 고든 맥도날드는 사울 왕을 '쫓겨 다니는 사람(a driven person)'이라는 이름 붙였습니다. 쫓겨 다니는 사람의 특징은 소명을 따라 살지 않고 욕망과 야망을 따라 삽니다. 그는 오직 성취함으로 만족을 얻습니다. 존재 자체에서 참된 목적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취를 통해서만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쫓겨 다니는 사람은 성취의 표상에 집착합니다. 권력, 물질, 인기, 군중 등에 집착합니다.
  또한 쫓겨 다니는 사람을 절제되지 않은 팽창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절제되지 않은 팽창욕입니다. 그것은 탐욕에서 나옵니다. 차에 브레이크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은 절제라는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안전합니다. 타이타닉호가 파선된 것도 속도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속도로 질주하다가 빙산에 부딪힌 것입니다. 속도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속도, 방향을 전환할 수 없는 정도의 속도는 위험합니다. 쫓겨 다니는 사람은 전인적 인격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람보다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일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사람을 희생하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고 수없이 시도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데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장애물로 여기거나 경쟁 상대로 여깁니다. 쫓겨 다니는 사람은 지나치게 바쁩니다. 분명 열심히 사는 것과 지나치게 바쁜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인생에는 리듬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고 안식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사명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 자체가 안식이 될 수 있지만, 그래도 가족 관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안식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지나치게 바쁘거나, 지나치게 사람들 사이에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쫓겨 다니는 사람은 홀로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 듣는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얼마나 바쁘고 힘드십니까? 위기와 위험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쩌면 삼천 가지 이상이 될 것입니다. 삼천 가지 이상의 사울적인 적들이 여러분을 찾아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염려와 생명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은 여러분의 생명을 지켜 주십니다. 모든 위험과 원수들을 막아 주십니다. 눈멀게 하시고 무력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삼천 가지 이상의 위험과 원수들로부터 여러분과 가정과 생명을 지켜 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살인을 막아 주시는 하나님
  본문 8-9절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다윗을 찾다가 지친 사울과 군대 장관들이 정신 없이 자고 있었습니다. 다윗과 아비새가 삼천 군대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보통 용기가 아닙니다. 자는 모습을 본 아비새가 창으로 사울을 찔러서 죽이게 해 달라고 다윗에게 요청했습니다. 아비새의 이같은 판단은 다윗의 각오 여하에 따라서는 사울이 얼마든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결과였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자고 있는 사울에 대해서 이같이 하기는 매우 쉬운 일이었습니다. '단 번'에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대답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택하사 기름 부은 자는 여하한 경우일지라도 그 생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침해하는 것은 곧 여호와의 주권을 침해하고 모독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의 생명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던 것입니다. 왕을 세우고 폐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인 것을 인정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인도에 재색을 겸비한 한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왕과 결혼해 행복한 삶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지 1년 만에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왕은 그 슬픔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비의 무덤 동쪽에 자신의 모습을 조각한 동상을 세웠습니다. 1년 후 무덤 서쪽에 왕가를 상징하는 호랑이 동상을 세워놓았습니다. 또 1년 후 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호화로운 별장과 자신의 권력을 상징하는 웅장한 성을 건립했습니다. 왕은 맞은편 동산에 올라가 왕비의 무덤을 내려다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웅장한 성과 별장, 정교한 동상들이 중심에 위치한 무덤이 자꾸만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불러 명령했습니다.
  "저 무덤을 당장 치워버려라."
  웰스(Wells)의 단편소설 <무덤>의 스토리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살다가 권력, 돈, 사랑이 생기면 하나님을 중심에서 치워버리는 우를 범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미움을 받습니다. 욕하면 반드시 욕을 먹습니다. 비난하면 비난을 받습니다. 살인하면 죽임을 당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면 누군가 다윗을 죽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대로 합니다. 불효하면 후손들이 불효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살인을 막아 주셨습니다. 다윗이 아비새의 말을 듣고 사울을 죽였다면 다윗은 결코 왕이 되지 못하고 누군가의 칼에 반드시 죽습니다. 살인하지 않는 것은 내가 사는 길이고 축복 받은 길입니다. 짧은 세상 살면서 감정이나 눈앞에 작은 이익 때문에 살인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께 맡기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축복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왕이 되도록 열어 주시는 하나님
  본문 11-12절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깨든지 이를 보든지 알든지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로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이었더라"

  모든 선악간의 판결을 공의의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 성경의 복수관입니다. 무방비 상태의 사울을 단번에 처치하자는 아비새와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임을 들어 만류하는 다윗 사이에서 우리는 신앙의 차원을 느낍니다. 아비새는 이성과 현실에 근거한 사람이며 다윗은 신앙에 근거한 신본주의적인 사람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증할 증거로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간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고 하나님께 맡김으로 인하여 자신의 생명도 보존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르게 되었고 수많은 군대장관과 신하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의 주권을 인정하는 다윗을 기뻐하셨고 결국 당신의 선하신 계획을 다윗을 위해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세우셨고 높이신 것입니다.

  어느 주일 김 할아버지의 부인이 예배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되신 목사님이 김 할아버지께 부인의 근황을 물었습니다. 이에 김 할아버지는 어색한 표정으로 얼버무렸습니다.
  "몸이 불편한 모양이지요!"
  다음날 목사님이 그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뜻밖에도 부인은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병환 중이라고 듣고 심방을 왔는데요!"
  "병은 무슨 병이요? 우리 남편이 또 거짓말을 했군요."
  "그럼 왜 교회에 안 나오셨나요?"
  부인은 엉뚱하게도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목사님, 교회에 다니면 천국에 가지요?"
  "예, 예수님 믿고 교회에 다니면 천국에 갑니다."
  "그럼, 우리 남편도 천국에 가겠네요? 교회에 부지런히 다니니까요?"
  "그렇고 말고요!"
  "목사님, 그럼 저는 예수도 안 믿고 교회에 안 나갈랍니다. 저 영감하고 이 세상에서 사는 것도 지긋지긋한데, 천국까지 가서 같이 살 마음은 없습니다. 그럴 바에 차라리 지옥으로 가겠습니다!"
  가까이 있지만 정말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받아들이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합니다. 나를 못살게 구는 그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사랑은 권고사항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사랑 받도록 삽시다. 미움과 살인적인 사울의 삶을 버리고 사랑과 믿음의 다윗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사람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복을 부어 주십니다. 왕은 내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국가의 왕은 아니더라도 삶의 최고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최고가 되게 하십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소원과 범사에 좋은 것으로 채우시고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순절과 봄에 기적과 축복을 체험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사울이 아닌 다윗처럼 삽시다. 미움과 교만과 살인적인 사울을 버리고 사랑과 겸손과 믿음과 하나님 중심의 다윗처럼 삽시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죽음과 살인을 막아 주시고 삶과 신앙의 왕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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