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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분별력 있는 삶(2) : 지혜로운 아비가일 (삼상 25: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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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저지르는 사람과 수습하는 사람>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고, 일을 수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일을 저지른 사람이 일을 풀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가정생활도 그렇지 않습니까?
남편이 일을 저지르면 아내가 일을 풀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혹은 아내가 일을 일으켜 놓으면 남편이 해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식이 큰 문제를 일으켜 놓으면
부모가 온갖 고생을 다해서 수습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분별력이 모자란다는 사실입니다.
지난주에 나발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 본 것처럼
분별력과 지혜가 모자라서 큰 문제 거리를 만드는 것이지요.
   
나발은 양 떼가 삼천 마리, 염소 떼가 천 마리나 되는 큰 부자였습니다.
다윗이 부하 10명을 보내어서 정중하게 양식을 요청했습니다.
나발은 얼마든지 다윗을 도와줄 수 있었고, 또 도와주어야 마땅했습니다.
그 많은 재산 중에 다윗을 조금 도와주었다고 해봤자
자기 재산에 아무 축도 나지 않고 손해 볼 것도 거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의 부하들이 나발의 일꾼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들판에서 양을 칠 때 다윗의 부하들이 밤낮으로 보호해주기까지 했습니다.
은혜를 입은 것이지요.
그러니 다윗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당연히 도와주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발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고자 한 부하들 앞에서
다윗을 함부로 폄하하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이 군사 400명을 이끌고 나발 집안의
남자란 남자는 다 씨를 말리겠다고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나발은 일을 저지르는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그에게는 분별력이 없습니다.
센스와 지혜가 전혀 없습니다.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한 상황인식도 하지 못했고
지금 자기가 내뱉고 있는 말이 미래에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도 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현실 판단도 부족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습니다.

<위기의 순간을 돌파하는 지혜: 아비가일을 주인공으로 해서 읽는 삼상 25장>
자, 문제는 이렇게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일을 저질러 놓았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수습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집안에도 한 사람이 어리석으면 다른 사람이라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삼상 25장의 말씀을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을 주인공으로 해서 읽어봅시다.
남편인 나발은 분별력이 없었지만 그 아내인 아비가일은 분별력이 뛰어 났습니다.
그리하여 아바가일 덕분에 나발 집안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아비가일은 단순히 자기 집안의 재앙을 막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장차 이스라엘의 최고가는 군왕으로 통치하게 될 다윗이
불필요한 피를 흘리지 못하도록 막아 준 역할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비가일은 나발 집안은 물론이고 다윗 가문까지 살린 여성이었습니다.
아마 성경에 나오는 여성들 가운데 가장 재기가 넘치고
가장 빼어난 말솜씨를 자랑한 여성이 아비가일일 것입니다.

아비가일이 그토록 분별력이 뛰어난 여성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이 비결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아비가일은
참 지혜로운 일꾼을 두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삼상 25장 말씀을 읽으면서 다윗이 심부름 보냈던 10명의 부하들과
나발에게서 일어났던 사실을 아비가일에게 보고했던 일꾼 한 사람을 생각해봤습니다.
이들은 다 아랫사람들로서 이 이야기에서 별 주목을 끌지 못하는 엑스트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만일 이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이 말씀을 읽을 경우
굉장히 좋은 설교거리가 나오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아비가일이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지혜로운 하인의 정확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본문 14-17절을 보세요.
나발의 일꾼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비가일에게 찾아와 보고를 합니다.
이 하인의 보고는 실제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낸 아주 뛰어난 보고였습니다.
아비가일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 상황보고였던 것이지요.

하인의 보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다윗이 부하들을 보내서 나발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을 모욕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의 부하들이 자기들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는지 설명합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자기들이 양을 칠 때 함께 지낸 적이 있었는데
한 번도 자기들을 괴롭힌 적도 없고 양떼를 훔쳐 간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과 양들을 보호해주는 성벽의 역할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발과 나발의 일꾼들에게 은혜를 베푼 다윗의 부하들을
그렇게 모욕적으로 대한 것이 큰 잘못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셋째로, 이제 이렇게 해서 엄청난 재앙이 생겼는데
주인 마님께서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7절 말씀의 후반부를 보면 이 하인은 그러면서
나발의 성격이 하도 불같아서 말도 붙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엄청난 재앙이 밀어닥치게 생겼는데 어리석은 나발에게
이야기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지요!
이렇게 아비가일의 슬기로운 대처에는 실제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해준 일꾼의 공로가 큽니다. 

자, 그렇다면 일꾼의 보고를 들은 아비가일이 어떻게 대처를 했습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분별력 있는 삶의 네 가지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① 격한 감정에 사로잡힌 다윗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왜 다윗이 군사 400명을 이끌고 나발 일가를 죽이겠다고 쳐들어오고 있습니까?
다윗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닙니까?
600명이나 되는 식솔을 이끌고 굶주려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 때 다윗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이지요!
다윗의 상한 감정을 풀어주는 것과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일입니다.

아비가일은 이것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본문 18절 말씀에 보면 빵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이미 요리하여 놓은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뭉치 백 개와
무화과 뭉치 이 백 개를 가져다가 여러 마리의 나귀에 나누어 실었습니다. 
예물을 준비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 예물은 전부다 먹을 양식이 아닙니까?
지금 다윗 일행에게 가장 긴요한 것은 양식입니다.
먹을 양식이 떨어져 나발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양식을 거절해서 이렇게 출전한 것이 아닙니까?
군사를 이끌고 나발 집안의 남자란 남자는 다 죽이겠다고 쳐들어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대로 먹지 못해 허기져 있지 않았겠습니까? 
아비가일은 현재 다윗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서 먼저 급한 불부터 끄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급선무가 무엇인지부터 판단해야 합니다.
아비가일은 식량을 선물로 준비해서 성난 다윗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선물 하나로 다윗의 화난 마음도 풀어주고, 가장 절박한 양식문제도 해결해주려 했던 것이지요. 

오늘 여러분이 풀기 어려운 난제를 만났습니까?
그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급선무가 무엇인가를 알아내십시오.
원수 맺은 사람과 상한 감정을 풀기 위해 대화가 될 수 있는 분위기 조성부터 먼저 하십시오.

② 어리석은 남편에게 다윗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일절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19절 말씀 후반부를 보면 아비가일은 자기가 다윗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남편인 나발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평소 남편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평소에도 늘 무모하고 감정이 앞서고 욕심 사납고 어리석은 일만 골라 저지르는
남편이기 때문에 말해봤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도움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마 틀림없이 길길이 날뛰면서
아비가일의 계획을 막거나 훼방했을 것입니다.

만일 아비가일이 남편에게 말해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비가일의 집안 남자들은 다 죽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대살육이 일어납니다!
아비가일은 이렇게 남편과 상의하지 않음으로서 더 큰 화를 사전에 막아냈던 것이지요!

여러분, 참 풀기 어렵고 얽히고 설킨 난제를 만날 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고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충고나 해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혜와 분별력이 뛰어나서 상황판단을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지요.
그런가 하면 이야기 해봤자 도움이 되기는커녕 문제해결에 장애만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중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고 도움을 구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소문을 퍼뜨린다든지 해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위급한 상황을 만날 때 누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③ "모든 잘못이 다 내 탓입니다." 하면서 겸손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본문 23-25절 말씀을 보세요.
드디어 아비가일이 나발 집안의 남자라는 남자는 모조리
쓸어버리겠다고 쳐들어오는 다윗 일행을 만났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보자마자 급히 나귀에서 내려옵니다.
그런 뒤, 다윗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큰절을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예의를 갖추는 것이지요.

여러분, 상대방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을 때에는
같이 맞불을 놓아서는 절대로 화해할 수 없습니다. 
노한 상대방의 마음을 진정시켜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활활 타는 불부터 먼저 꺼야 합니다.
그럴 때는 나부터 머리를 숙이고 져주면 됩니다.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극단적인 생각으로서는 절대로 화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욱하는 성질이 다 있습니다.
평소에는 양같이 순하던 사람도 상대방이 흥분하면 덩달아 흥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로는 절대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화해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제가 죽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제 잘못입니다." 하고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면 됩니다.
그렇게 나부터 죽이고 들어가면 신기하게도 상대방 마음이 누그러뜨려집니다.

분별력 있는 여성, 아비가일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자기 남편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하며 모든 잘못이 남편 내조를 잘못한 자기 탓이라고 고백합니다.
제가 우리 남편이 있는 현장에 있었더라면 우리 남편을 잘 구슬릴 수 있었을 텐데
자기가 그 자리에 없어서 이와 같은 불상사가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정말 이름 그대로 어리석고도 몹쓸 우리 남편의 소행에 개의치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아비가일은 계속해서 자기를 여종으로서, 다윗을 주인으로서 부르고 있습니다.
극도의 겸손한 태도로 자기 남편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고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고운 법입니다.
먼저 내가 죽어지고 모든 것이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할 때
모든 분쟁과 원수 맺은 것이 다 풀립니다.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은 먼저 자기 성찰부터 합니다.
자기를 낮추고 자기 자신의 허물부터 먼저 봅니다.
오늘 우리도 아비가일처럼 먼저 우리의 허물부터 발견하고 낮아져야 할 것입니다!   

④ 침착하고 품위 있게 말을 해서 다윗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26-31절 말씀은 성경에서 여성이 한 말씀 중에 가장 지혜가 뛰어난 말씀이라 할 것입니다.
아비가일이 얼마나 정확한 현실판단을 하고 있으며, 미래를 바라볼 줄 아는
탁월한 혜안과 통찰력이 있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다윗의 분노에 가득찬 마음을 단번에 되돌려 놓은 이 유명한 말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눈동자처럼 항상 지켜주시기 때문에 다윗을 괴롭히는
원수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갚아주실 것이기에 스스로 원수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확실히 옳은 말씀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원수 갚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리하면 상대방이 죽을 뿐만 아니라 먼저 여러분 자신이 죽습니다.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하면 아무 부작용이나 아무 해도 없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결해 주십니다.
아비가일에 따르면 지금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다윗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자기 남편인 나발이나 누구나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손보실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원수 갚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아비가일이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예물을 받으시고 노여움을 풀라는 것입니다.
냉정한 현실로 돌아오라는 말씀이지요.
다윗이 나발을 비롯해서 죄 없는 모든 사람들을 죽여봤자 이득이 될게 하나도 없습니다.
순간적인 화풀이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아비가일이 정성껏 준비해온 식량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발 일가를 죽이는 것에 비교해 볼 실리 면에서 조금도 손해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격한 감정과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현실로 되돌아 올 경우,
자기 손으로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고 재산을 빼앗는 일보다
아비가일의 선물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여러분, 무모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한 절대로 분별력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현실로 되돌아오십시오.
거기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셋째로, 다윗이 장차 왕이 되신 다음에 후회할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30-31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때에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수하셨다든지 함을 인하여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신 때에 원컨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여기 보세요.
아비가일은 다윗이 지금 순간적인 감정에만 사로잡혀
현재만 보지말고 미래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가까운 장래에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올라가실 터인데 지금 화가 났다고 해서 나발 가문의 사람들을 다 죽인다고 할 때 나중에 치명적인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아비가일의 이 말은 참 사리에 맞는 말입니다.
그동안 다윗은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자기가 해쳐서는 안 된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중에 자기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의 자리에 올랐다는 오명을 얻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왕은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데 나발 한 사람의
미련한 행위 때문에 죄없는 사람들을 살육한다는 것은 군왕이 할 도리가 아닙니다!
지금 서슬이 퍼래서 오로지 복수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다윗에게 미래에
후회하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을 지금 해서 안 된다고 간언하는 것이지요.

옳습니다.
우리는 현재 어떤 일을 하게 될 때 미래에 대한 비젼을 가져야 합니다.
이 일이 장차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지금 순간적으로 내 기분은 후련해지고 혹 이익이 되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나중에 두고두고 걱정거리가 되고 후회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그러한 일은 현재 아무리 기분이 후련해지고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해서 안 됩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 나에게 아무리 손해가 되고 뼈아픈 결정이라고 할지라도
미래에 유익한 일이 될 때에는 과감히 해야 합니다.

아바가일은 순간적인 감정과 분노에 휩싸여 이성과
분별력을 잃어버린 다윗이 제 정신을 찾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것도 어떤 특별한 행동도 하지 않고 말 몇 마디로 순식간에 다윗의 마음을 돌려놓았습니다.
잠 25: 11절은 말씀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아, 얼마나 좋은 말씀인지요!
아비가일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전부 경우에 합당한 말로서
아로새긴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였습니다!

<분별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이제 다음 주에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서는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비가일의 말이 구구절절이 다 옳았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다윗은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모든 문제를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무혈혁명이 일어났습니다!

32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아비가일을 자기에게 보내주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옳습니다.
진정한 지혜와 분별력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아비가일의 마음 속에서 역사하셔서 지혜와 분별력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와 분별력을
다 얻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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