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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상받는 신앙인이 됩시다 (빌 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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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매스컴에서 하인스 워드라는 사람이 관심과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2006년 미국 프로풋볼MVP라는 큰 상을 수상한 운동선수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바로 한국인입니다. 홀어머니 속에서 어렵고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그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풋볼선수로 성공했고 가장 큰 상도 수상했습니다. 그가 어머니와 함께 우리나라를 방문하자 서울시장은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주고 환대했습니다.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에 초청하여 선물을 주고 만찬을 베풀면서 대접했습니다. 방송3사에서는 그의 방문뉴스를 최대의 뉴스로 다루면서 한방송사에서는 직접 그를 9시 뉴스에 출연시켜 10분 이상 특집방송을 할 정도였습니다.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그로 인해서 우리나라에 있는 혼혈인들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갖고 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외국인과 결혼한 가정의 피부색이 다른 자녀들을 얼마나 무시하고 얼마나 소홀히 여겼습니까? 그런데 한 사람이 큰 상을 받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왜 하인스 워드를 주목하는 것입니까? 바로 남들이 받을 수 없는 큰 상인 미국퓻볼대회에서 MVP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가 상을 받지 않았다면 그런 영광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상을 받아본 경험이 있습니까?
운동에서 상을 받든 공부에서 상을 받든 아마 상을 받아본 사람들은 얼마나 기분이 좋고 보람이 있는지 모릅니다. 자식이 상을 받으면 그 부모들이 얼마나 좋아합니까? 비로 그 상이 작은 상일지라도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상은 가정의 영광 가문의 영광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집에 가보면 받은 상장과 트로피들을 진열하여 놓고 기념이 되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나라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상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신앙 생활을 바로 하고 잘 하는 자기 백성들에게 상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진정한 신앙을 갖았던 믿음의 사람들은 이 상받기를 간절히 구하고 소원햇던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의 바울도 상을 받기를 소원했습니다. 바울이 상을 얼마나 열심히 추구했는지는 그의 서신서 곳곳에 소개됩니다. 바울은 우리가 상받는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좋은 모범을 보여줍니다.

1. 예수님을 더 알아가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10-11
이미 바울은 예수님을 많이 아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더욱 알기를 원했습니다.
여기 “안다”의 원어의 의미는 부부간에 서로가 알 때 쓰는 단어입니다. 부부지간에 서로 체험하면서 알게됩니다. 서로가 깊이 대화하고 인격적으로 교제하면서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그리스도를 더욱 체험하면서 알기를 원했습니다. 이미 지금까지 체험했고 많이 알지만 그것에 자족하지 않습니다. 더욱 주님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먼저 그리스도를 더욱 체험하면서 알아가는 마음의 간절함과 열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알기 원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함의 능력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이기신 그 능력이 과연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불가능한 것인가?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그 능력을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죽은자 같은 고난”을 구했습니다.
고후1:8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소망까지 끊어지고“라고 합니다. 바울은 환난 때문에 심한 고생으로 살소망까지 끊어졌습니다. 고후1:9에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라고 합니다.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몸은 살았지만 이미 마음에는 죽은자같은 극심한 현재의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후11장에 보면 바울이 어떤 정도의 고난을 겪었는지 바울은 소개합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 맞았습니다. 세 번 태장으로 맞았습니다.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습니다. 여러분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형제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분 굶고 춥고 헐벗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고난이 바울에게 있었을까?
만약에 바울이 피햇다면 바울은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도망갔다면 고난이 비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고난에서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바울은 이런 고난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에 참예함을 소원했습니다. 고난에 참예함을 기뻐했습니다.
골로새서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합니다.

바울이 고난을 구하고 고난에 참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지금 여기에서 알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망의 위험을 경험하면서 사망보다 강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바울은 고난의 위험을 경험하면서 고난보다 강하신 예수님을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실라와 함께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왔습니다. 종의 주인이 자기 이익이 끊어지자 관원에 고발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붙잡사 매로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바울가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랫떠니 감잡기 홀연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고 매인 것이 벗겨지게 됩니다. 이 광경을 경험한 간수가 놀라서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합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합니다. 그러자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여서 놀라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고난이 더한 곳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더했습니다. 사망과 같은 고난을 경험하는 곳에 사망을 이기시는 주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바울은 이론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능력의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십자가에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지금 여기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그래서 바울은 고난을 오히려 구했습니다. 고난을 주님을 아는 기회로 여겼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통해 능력의 주님을 체험을 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티비에서 나오는 프로그램 중에 인간시대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저는 가끔 이프로를 보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지난 주간에 내용 중에 홍천에 사시는 60이 넘은 한 할머니가 동네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손자뻘되는 동네아이들과 함께 한 교실에서 학생이 되어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집에 와서는 집안일도 해야 하고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면서 농사도 지어야 합니다. 요즘같은 농사철에는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밭에 나가서 일을 합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다시 학교에 가서 공부합니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밭에 나가서 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늦게가지 공부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여건 중에서도 공부를 위해서 도전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한글을 깨우치게 됩니다. 한글을 깨우치게 되니까 책도 읽고 거리에 간판도 읽으니까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비록 고난은 있지만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과 즐거움 때문에 고난을 극복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고난을 통해서 주님을 더욱 알아가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 고난에 참예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 주님이 기적의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욱 풍성하신 주님을 알아가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13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바울은 자신을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경주자에게 비유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원리는 운동장의 경주자와 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는 오직 목표점인 결승점을 향하여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갈 때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운동장에있는 경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정신자세입니다. 만약에 이때 선수가 자만에 빠져서 준비도 소홀히 하고 열심을 다하지 않으면 그 선수는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운동경기를 할때에 운동선수들을 이끄는 지도자들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정신력을 기르는 일입니다. 아마추어이든 프로이든 같습니다. 모든 선수들에게는 먼저 정신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운동선수가 이미 자만에 빠져 있고 마음이 교만하면 운동을 하기에 힘듭니다.그런데 어떻습니까? 처음에 시작할때에는 자신의 부족을 알고 열심히 하려고 하고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가면 그 초심이 온데간데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운동선수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렇습니다.

지금 빌립보교회의 문제는 바로 스스로 자신들이 섰다고 생각하고 자만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섰다고 생각하는 자만에 빠진 자들이 많으면 교회가 어떻게 됩니까? 앞으로 전진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앞세웁니다. 서로 싸웁니다. 이럴때 결국 신앙에 낙오자가 됩니다. 그런 교회는 결국 성장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빌립보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현대교회가 그럴 수 있습니다. 믿음 생활을 하면서 신앙의 경주에 더욱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많은 요인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나쁜 자세가 바로 ‘이미’의 자세입니다. “이미 나는 되었다” “이미 이정도면 나는 잘한다”“이미 나는 많이 안다”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진보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상을 위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아직’ 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 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마음이 바로 겸손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실 바울은 누가 보아도 신앙의 거묵이었습니다.나이가 이미 최소한 60대 이상의 노년기입니다. 그리고 남다른 말씀에 대한 지식도 있고 성령의 체험도 했습니다.그리고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해서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누가보아도 신앙적으로 성공한 그리스도인이었고 그것을 자랑해도 비판할 사람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과거에 매이지 않았습니다.과거를 잊어버렸습니다.자신의 모든 성공을 잊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잊어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종종 신앙생활하면서 “과거의 노예”가 되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봅니다.
어떤 분들은 실패한 과거에 노예가 되어서 두려움을 갖고 미래에 도전하지못합니다.
어떤 분들은 성공한 과거에 매여 자만에 빠져서 미래에 도전하는 데 실패하는 것을 봅니다.
과거에서 분리되려면 잊어버려야 합니다.
먼저 실패한 과거를 잊어버려야 합니다.인간관계에서 실패했습니까? 용서하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사업에 실패햇습니까? 감사함으로 잊어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실패한 과거의 상처로 인해서 현재에 비생산적인 결과가 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때로 실패의 과거를 기억함으로 오히려 우리에게 득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실패의 과거를 기억하면서 두려움과 자신감을 잃게 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 실패로 인해서 기죽어서는 안됩니다. 실패를 많이 한다고 해서 ‘실패하는 사람’이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편견을 갖고 보면 실패자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실패했지만 실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생애가 그렇습니다. 겉으로보기에는 실패햇습니다. 젊은 나이게 그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인생의 실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완전한 성공이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예수님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성공한 과거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자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과거에 성공했을 지라도 그것에 대하여 자만해서는 안됩니다.종종 우리가 역전의 공을 너무 앞세우다 보면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라고 합니다. 사람을 가장 퇴보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만”입니다. 이정도면 되었지,스스로 만족에 빠지게 되면 진보는 없습니다.그렇게 되면 열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 부흥하는 교회와 그렇지 않는 교회를 가만히 한번 비교하여 보십시오.

부흥하는 교회는 항상 새롭게 도전합니다 . 지금까지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또 전도하는 일에 도전합니다. 지금까지 양육과 훈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양육과 훈련하는 일에 도전합니다. 이웃을 섬기는 일에 도전합니다. 지금까지 이웃을 섬겻지만 다시 섬기는 일에 도전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회 속에는 끊임없이 같은 일이라도 또 도전하고 자꾸 해야 합니다. 주님앞에 가는 순간까지 그것이 반복되더라도 주님은 그것을 지루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안되는 교회 부흥이 멈추는 교회를 보면 과거만 자랑하고 역사만 자랑하고 지금 움직이지 않고 지금 일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교회는 모두가 현역이어야 합니다.

군대의 현역병은 항상 싸움의 현장에서 언제든지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예비군이 많으면 안됩니다. 현역에서 물러난 예비군들은 어떻습니까? 역전의 용사들로서 과거만 자랑합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이런 예비군들이 되면 안됩니다. 우리 주님 앞에 가는 그 순간까지 복음의 현장에서 영적 전장에서 새롭게 도전하는 용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상에 대한 선한 욕망이 있어야 합니다.

14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은 하나님의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바울은 이땅 아래에서 주는 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위에서 줄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서도 이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바울은 고난 속에서도 이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눈물과 땀을 흘리면서 이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바울은 최후의 목숨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이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바라보는 바울의 생애는 언제나 행복하였고 기뻤습니다. 남들은 고난이라고 해도 기쁨입니다. 남들은 절망이라고 해도 소망했습니다. 남들은 외로움이라고 해도 풍성한 삶이었습니다. 내안에 주님의 상에 대한 욕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상을 받고 승리하는 사람들을 잘 한번 보십시오.
승부욕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운동에 승부욕이 있는 사람이 운동에 상을 받습니다. 공부에 승부욕이 있는 사람이 공부에 상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에 대한 승부욕이 잇는 목사님들이 목회를 잘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실 상에 대한 욕심이 있는 사람이 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상에 대한 욕심도 없고 승부욕도 없는 사람은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선한 승부욕이 필요합니다. 남을 짓밟고 내가 이기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서 승리하는 것은 바로 삶에 대한 바른 책임감입니다.상에 대한 욕심을 갖고 정성을 다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면에 상을 받는 승부욕이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십시오.아주 독한 면들이 있습니다. 공부에 상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독하게 밤을 새우면서 공부합니다. 운동에 상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독하게 쉬지 않고 운동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신앙에 승리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독하게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독하게 전도합니다. 독하게 순종합니다.

무엇이 고통을 참고 매사에 열심히 도전하면서 살게 하는 것입니까?
그 안에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수능고사를 앞에 둔 학생을 보십시오. 공부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힘든 공부를 합니까? 목표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겨냅니까? .요즘 학교에서 고3학생들의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 반마다 이런 급훈들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네 성적에 잠이 오냐?” ‘쟤 깨워라’,‘재수 없다’,‘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30분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마누라 몸매가) 달라진다’등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왜 잠못자고 놀지 못하고 힘들게 공부합니까? 장래에 대한 욕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땅에서도 상을 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선한 욕망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고 땀을 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잘 승화되면 얼마든지 긍정적이 효과가 있습니다.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도 기쁘고 즐거운 일이지만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인정을 바라고 소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의 상을 혼자 받는데서 만족하지 않고 그 상을 함께 받기를 소원합니다. 모든 교회가 이 상을 받기 위해서 함깨 달음질하기를 구합니다. 하늘의 상을 함께 받기를 축복합니다.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서 위로부터 베푸시는 상을 받으시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더욱 주님을 깊이 알아가는 삶으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더 이상 과거에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주어진 현실에서 주님중심으로 살되 미래를 향하여 믿음으로 도전하십시다.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하여 더욱 헌신된 제자로서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땅에서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승리의 삶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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