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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첫 열매 (고전 15: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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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1. 우리의 바라는 것은 이 생뿐이 아니라 부활 후의 세상을 위함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왜 예수 그리스도로 믿느냐고 질문한다면 평강을 위해서,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병 낫기를 원해서, 부자 되는 복을 받기 위해서 등등 다양한 답변이 나올 것입니다. 물론 죄 사람을 받고 구원받기 위해서라는 답변도 나올 것이며,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는 답변도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답변은 이 땅의 삶에 관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늘 바라는 것이 이 땅의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듣기 원하는 답변도 이 땅의 것이고, 우리나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도 그러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 땅의 것들로 답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땅의 것들뿐이라면 조만간 혼돈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것들에 관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에게 큰 차이가 없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의 차이가 재산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건강하고 병든 차이에 있지 않습니다. 능력이 많고 적음의 차이에 있지도 않습니다. 가정의 형통함과 우겨쌈의 차이에도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의 차이가 이 땅의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이 땅의 것을 뛰어 넘는 영역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재산과 가정과 질병과 능력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며, 기쁨을 누리고, 범사에 감사하고 찬양하며, 소망 가운데 사는 것은 이 땅의 것들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고 헌신하며 세상 가운데 아름다운 덕을 끼치는 것은 이 땅의 것들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미래에 있습니다. 미래에 우리들이 맞이할 천국의 삶에 있습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는 삶입니다.

천국에서의 삶은 부활 후의 삶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부활 후의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평강과 기쁨과 능력은 부활 후의 천국의 삶에 대한 확신과 소망 가운데서 나타나며, 이 땅에서의 삶의 차이는 그 소망의 차이로부터 나타나고 보여지는 결과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로 하여금 천국의 영원한 삶에 소망을 품을 수 있도록 이 땅의 삶을 움직여 가십니다. 그 소망의 삶을 위해서 가난도, 질병도, 고난도 허용하실 뿐입니다.

그래서 고전 15:19에서 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라고 설명합니다. “이생”이란 이 땅의 삶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능력이 이 땅의 것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면 소망이 없습니다. 이 땅의 것들이 풍성함에도 고통과 번민 가운데 자살하며, 고민하며,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이 이 땅의 것들만 바란다면 더욱 불쌍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 땅의 것들을 능력으로 삼으며 서로 사랑하고, 서로 헌신하며, 고난을 견디며, 모든 악한 환경을 이겨 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그렇게 노력한다 할지라도 그러한 삶은 율법적인 삶이고, 이중적인 삶이며, 외식과 위선 속에 사는 삶으로서 세상의 죄악의 낙도 누리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의 기쁨도 누리지 못하는 최악의 삶이 됩니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인을 “더욱 불쌍한 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이 땅의 것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것으로부터 나옵니다. 천국의 보장된 영원한 삶으로부터 나옵니다. 미래에 우리들이 차지할 영원한 천국 영토로 인하여 나옵니다. 그리므로 우리의 바라는 것은 언제나 이 땅의 것에 머물지 않고 천국의 영원한 것에 머뭅니다. 비록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이 땅에서 사는 삶도 천국을 소망하는 삶의 준비일 뿐입니다.

바울은 고전 15:20에서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알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우리의 소망의 첫 열매로 소개하십니다. 우리의 소망이 부활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우리의 소망의 시작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미래를 여는 관문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영원한 소망의 능력을 끌어 오는 천국 창고의 문과도 같습니다.

2. 부활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신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교회는 부활의 의미를 강조하며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 이미를 기억하도록 부활절 절기를 지킵니다. 성탄절과 함께 부활절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기입니다. 성탄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역사적 사건입니다. 성탄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살아나신 역사적 사건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탄과 부활의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성탄과 부활 모두 우리에게 동일하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탄절은 모든 성도가 합심하여 감사드리며 축하하는 데 반하여 부활절은 너무도 소홀히 보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성탄절이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성장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부활절이 성탄절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은 약 2천년 전,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내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이 땅에 오셨다가,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성탄절에 이 땅에 역사적으로 실제 오셨던 것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절에 실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러한 부활의 의미는 성탄의 의미를 정확히 알 때만 알 수 있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사건입니다. 성탄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낮아지시기 시작하신 사건입니다. 죄를 지은 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아지시고 더욱 낮아지셔서 죽으시고 무덤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삼일 동안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음에 처하는 가장 낮은 상태까지 가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법대로 사망까지 이르렀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사망까지 가셔야만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사망의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 가셨습니다. 사망까지 가셔야만 우리를 향한 죄의 형벌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성탄은 가장 높은 곳에서 우리의 죄의 형벌을 끝내기 위해서 사망의 가장 낮은 데까지 이르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성탄을 통해서 우리의 죄는 예수님에 의해서 사망이라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만약 이 단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끝났다면 우리는 하나님께로 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은 것뿐이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셨다는 선언은 아닙니다. 오직 부활이 그 용서의 선언입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그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죄값이 지불되었다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신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 주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보시기 때문에 우리를 의롭게 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가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입니다. 고전 15:17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내 없어져 버린 예수라는 사람을 믿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과는 관련이 없어집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기에 여전히 죄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의 용서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처럼 우리도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 11:25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라고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던 믿음의 선배들의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모든 말씀들이 옳다는 증거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확증해 주는 부활의 첫 열매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능력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의 중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갈 길을 모르는 떠돌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품고 갈 곳을 발견한 자들입니다.

고전 15:20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부활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소망입니다. 부활을 통해 완전히 예수님과 같이 거룩한 몸으로 천국에서 살아갑니다. 부활에의 소망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갈 길을 모르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첫째 목표는 부활입니다.

천국은 죄를 가지고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몸이나, 마음이나, 영혼의 어느 한 구석이라도 망가지거나 부족하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을 닮아 가지만 우리가 닮아 가는 것이 완성되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부활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셔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삽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에의 소망이 있기에 늘 평강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죽음을 이긴 자들의 담대한 평강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그러한 부활의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도 부활할 것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중심은 부활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만 땅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품에 안겨도 좋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매주 주일마다 모여서 이러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주일은 주의 날로서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즉 매 주마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예배와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 년의 하루를 특별히 정하여 부활주일로 기념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은 우리들이 이 땅에서 불쌍한 삶을 살기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품을 수 있도록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이어 줄줄이 부활할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살다가 하나님께 갈 때, 또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 모두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의 삶을 살아갑니다.

첫 열매되신 예수님은 우리들이 이러한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기 원하십니다. 이 땅의 것을 바라는 삶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바라는 삶을 살아가기 원하십니다. 이 세상에서의 모든 삶은 천국의 영원한 것을 소망하는 삶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국에 소망을 두는 삶을 살아가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한 첫 열매로 삼으셨습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는 삶은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가 아니라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행복한 자”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고,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푯대가 되시는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삶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으로 인해 고통 가운데 빠지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으로 인해 원망과 분노 가운데 빠지지 않습니다.

첫 열매되신 예수님은 요 11:25-26에서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부활이 보증되는 것이며, 생명을 얻는 것이고,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믿음으로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과 연합되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은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 안에서 이 땅의 것이 아닌 천국의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믿고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행복한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한 자는 죽음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이 죽음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김종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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