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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과 회복의 능력 (계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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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부활 이전에는 그리스도인이 없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되새기는 감격의 2006년 부활절 새아침! 죽음의 어두운 장막이 걷히고 영광스럽고 감격에 찬 생명의 새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부활 생명의 은총이 주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여러분들과 여러분의 가정과 경영하시는 모든 일들 위에 항상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벤 부렌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예수 부활 이전에는 그리스도인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야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나를 믿을 수 있고 남을 믿을 수 있고 세상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믿게 됩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만이 생명의 길을 알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두 가지 부활이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요 또 다른 하나는 사망의 부활입니다. 우리가 믿고 소망하는 부활은 생명의 부활이요 새 하늘과 새 땅으로의 부활입니다. 생명의 부활에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이 있는데 그것은 회복과 부흥입니다. 생명의 부활 속에는 회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부활을 통하여 모든 것들이 회복됩니다. 부활 속에 들어있는 회복의 능력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생명으로의 회복

부활은 모든 죽음을 생명으로 다시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셨습니다. 생명 없는 것을 붙들고 그것을 어루만지면서 낙심하고 슬퍼하고 있는 우리에게 다시 사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신 것입니다. 다시 사신 주님을 바라보시고 가까이 나아가서 주님을 만나시고, 그분의 생명을 만지고 느끼고 그 분과 생명의 관계를 회복하고 기쁨과 희망을 가지셔서 여러분들의 신앙과 삶이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움으로의 회복

오늘 본문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은 마치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상실했던 모든 깨끗함과 아름다움이 부활을 통하여 다시 회복 될 것입니다. 온 세상이 깨끗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과거가 되고 현재가 되고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 매 순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고, 영혼이 맑아지시기를 바랍니다. 순간순간이 녹슬지 않으면, 삶 전체도 녹슬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미워질 때가 있고 흉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추하게 사는 사람도 없지 않아 많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모습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날에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의 모든 얼굴과 삶이, 인격과 성품이 아름답게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잃어 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 아름다움으로의 회복이 생명의 회복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특별히 이번 사순절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영적 부흥을 경험하므로 지난날의 삶의 무게로 낙심하고 침체되었던 피곤한 심령들이 새롭게 회복되고, 우리의 교만한 마음과 낡은 틀 속에 갇혀있던 아름답지 못한 우리의 모습들이 아름답게 변화되어가는 현상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동안 잠재되어있던 우리의 영적에너지가 새벽기도회를 통해 분출하게 되면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여러분들의 믿음과 삶이 영암교회의 무한한 가능성의 영적부흥과 비젼이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아름답게 진행되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완전함으로의 회복

죄로 말미암아 타락 한 세상은 불완전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늘 불안전하고 그래서 세상에서의 삶은 늘 불안하고 초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그러한 우리 인간의 모든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회복시킬 것입니다. 모든 불완전함이 완전함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는 눈물도 애통도 없습니다. 완전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부활 속에는 부흥의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부활은 단순한 회복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회복만으로도 큰 은혜가 되지만 부활은 부흥의 능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회복과 부흥은 본시 창조의 원리요 원칙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 안에서 다 회복되고 있습니다. 사람도 자연도 다 회복되고 있습니다. 회복은 창조의 원리요 원칙인 것입니다. 부흥과 성장도 창조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원칙과 질서 안에 있으면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단순히 회복되는데서 그치지 않고 부흥하고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가 될 것이지만 그 부활의 능력은 먼 훗날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지금부터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ale고 온전히 믿으면 이 땅에서도 우리는 부활의 능력을 덧입으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부활의 능력은 회복과 부흥으로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죽음과 실패는 생명과 성공으로 회복 되고, 우리의 악함과 추함은 선함과 아름다움으로 회복 되고, 우리의 불완전하고 불안전한 모든 삶은 완전하고 안전한 삶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는 진정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면 모든 어그러진 것들은 바르게 회복될 것이고 모든 약하고 죽어 가는 것들은 강하고 생명력 있는 것으로 바뀌게 되어 진정한 부흥의 역사가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 나타날 것입니다.

구원과 부활의 능력과 축복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의 부유함으로만 이 부활의 능력을 소유할 수 있는데 우리들의 문제는 이 믿음이 부유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참으로 가난하며 초라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것이 너무 보잘 것 없고 초라하여 부활의 능력을 덧입지 못하고 참으로 가난한 삶, 구차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삶

사람을 동물로 비유하여 분류하면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 개형과 고양이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개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잘 따르는데 고양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 때문입니다. 개는 주인이 아홉 번 잘못하다가도 자신에게 잘해준 것이 한번 있으면 그  한 번 잘해준 것을 기억하게 되는데 그런 기억이 개로 하여금 사람을 잘 따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고양이는 아홉 번 사람이 잘 해주다가 한번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 한번을 기억하고 사람을 잘 따르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실상은 고양이에게 개보다 더 많이 잘 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사람을 잘 따르지 않습니다. 이런 구분은 실제 개와 고양이를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말과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과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

하지만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번의 사랑을 받고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번의 큰사랑을 받고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사람을 나누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과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대개는 사람들이 사랑을 기억하기보다는 상처를 기억합니다. 사랑은 금방 잃어버리면서 상처는 오래 기억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받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사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은혜를 맡은 자들입니다. 은혜를 아는 자들이 있고, 은혜를 받은 자들이 있고, 은혜를 맡은 자들이 있는데 받은바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자는 은혜를 맡은 자입니다.

안 믿는 것은 아닌데 믿음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믿음이 영 시원치 않습니다. 평생을 믿어도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면 혹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열심히 믿으려고만 하지 말고 바르게 믿으려고 힘쓰라! 바르게 믿는 믿음은 은혜로 믿는 믿음입니다. 부활신앙은 죽음 후에 다시 사는 삶의 가치로 살기에 모든 것을 은혜로 해석하는 신앙입니다.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성경은 우리들에게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고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저 성전 뜰만 밟고 다니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모두가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봉사는 중요한 것이지만 봉사한다고 모두가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는 열심히 하는데 예수를 믿는 믿음은 정작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습니다. 믿으면 반드시 얻습니다. 구원을 얻으면 죽어서도 물론이지만 이 땅에서도 부활의 능력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모든 죽음과 실패는 회복될 것이고 모든 삶과 일에는 하나님의 부흥의 원칙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 구원과 부활의 능력은 가정에도 나타나고 세상에도 나타나고 교회에도 나타나고 마음속에도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놀라운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우리의 믿음이 부족한 때문입니다. 우리가 입으로만 주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전 뜰만 밟고 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부유함을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살고 일하기를 위하여 힘쓰고 노력하며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죽으셨을 때에는 제자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버렸지만 부활하신 것을 사실로 알게 되자 제자들의 인생은 180도 방향이 전환되었습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의심이 확신으로, 옹색하던 사람들이 너그러운 사람으로, 겁쟁이들이 용기 있는 사람들로 바꾸어졌습니다. 생각도 바뀌었고, 행동도 바뀌었고, 가치관도, 모든 것들이 다 바뀌었습니다. 죽어도 다시 산다는 이 사실이 저들의 모든 것들을 다 변화시켜버렸던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는 사실 누구에게나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괴테는 노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부활을 사실로 믿기 전에는 나의 모든 것은 오류였다." 이 부활 신앙이 있어야만 우리는 허무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부활신앙이 있어야만 우리는 환난을 이길 수가 있고, 이 부활신앙이 있어야만 우리는 고독도 죽음도 못된 생활도 청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산다는 이 소망 위에서만이, 참으로 바르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이기는,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놀라운 길을 가르치시려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이지만 세상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뛰어넘게 하므로 죽음과도 같은 고통과 환난을 능히 뛰어 넘게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참으로 이 세상에서 강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부활의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과 축복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우리를 강하게 할뿐만 아니라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반듯하게 하고 우리의 모든 것들을 변화시킵니다. 부활은 생명을 의미하고 승리를 의미하고 향기를 의미하고 기쁨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그를 영접하는 이에게는 새로운 생명이 생기고, 새로운 능력이 생기고, 향기가 나는 생활로 변하고 기쁨이 충만하여집니다. 이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이 부활의 주님을 영접함으로 참된 건강의 회복, 생명의 회복, 삶의 회복, 승리의 회복, 향기의 회복, 기쁨의 회복, 감사의 회복, 감동과 감격의 회복, 아름다움의 회복, 완전함의 회복, 영성의 회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알의 밀알은 그 자체로서 자신을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땅에 심겨지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면 어느 시점에 가서 다 말라 죽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땅에 심겨질 때 땅 속에서 썩게 되고 새 생명으로 배태되면서 싹이 돋아나고 줄기가 생기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씨의 형태는 없어졌지만 그것이 소멸된 것이 아니고 변형된 것입니다. 부활은 삶의 완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복음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죽어서 갈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서도 맛보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 속에 들어있는 회복의 능력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서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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