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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은 새 창조입니다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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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기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우리 모든 죄를 사해주신 주 예수님. 이제 무덤을 깨치시고 사망권세를 영원히 물리치신 주님의 승리와 영광을 찬양합니다. 저희들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밝고 환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셔서 무한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을 승리자로 살아가며,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의 짐을 나누어 질 수 있게 하옵소서. * 세계 곳곳에서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모든 주님의 자녀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 가정에 평화를 주시옵소서. 날마다 사랑으로써 어제의 실수와 어리석음을 버리는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소망을 품고 내일로 달려 나가는 가정으로 축복하옵소서. * 오늘 예배를 주님께 드립니다. 부활의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저희들에게는 한없는 기쁨이 되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부활은 새 창조입니다.
시편 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함께 감사와 기쁨의 인사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나는 28년 전인 1978년, 부활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금문인이 여럿 나올 줄 믿습니다.

어린아이들의 기도 몇 토막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 내가 무얼 원하는지 다 아시는데 왜 기도해야 하나요?
      그래도 하나님이 좋아하시면 기도할께요.

      하나님, 제 이름을 로버트예요. 남동생이 갖고 싶어요. 엄나는 아빠에게 부탁하래      요. 아빠는 하나님한테 부탁하래요. 하나님은 하실 수 있죠? 하나님, 파이팅!

      하나님, 꽃병을 깬 건 도날드예요. 제가 아니라구요. 분명하게 써 놓으셔야 해요.

      하나님, 돈이 많으신 분이세요? 그냥 유명하기만 하신 건가요?

      사랑하는 하나님.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대라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하나      님은 여동생이 눈을 찌르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나님, 왜 한번도 TV에 안 나오시는 거예요?

      하나님, 만일 내가 하나님이라면요, 지금 하나님처럼 잘 해내지 못할 거예요.
      하나님 파이팅!

      하나님, 우리 옆집 사람들은 맨날 소리를 지르며 싸움만 해요.
      아주 사이가 좋은 친구끼리만 결혼하게 해 주세요.

우리 아이들 세대가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계십니다. 이건 정말 부활의 소망이요 그 은혜입니다.

흔히 부활은 "옛날로 돌아가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오해입니다. 한자나 영어 표현은 모두 "되돌아감"의 뜻이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잘못 쓴 말이 되었습니다. 부활은 새 창조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나는 이번 주일 설교에서 "새롭게 창조하시는 가정"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부활절 메시지를 전합니다. 우선 가정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밝혀 둡니다. 창세기 1-2장을 자세히 읽으면, 하나님께서 창조의 클라이막스로 가정을 지으셨음을 알겠습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기초작업(하드웨어, 혹은 인프라 구축)입니다. 나머지 3일, 즉 4일부터 6일까지는 생명체를 만드셔서 그 기초작업한 공간에 차례대로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각각 사명을 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제4일의 해, 달, 별을 '생명체'로 분류하기는 무리지만, "땅에 비취라." 하셨고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해, 달, 별들이 주님을 찬양한다는 대단히 의인표현이 가능한 것은 이런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습니다.

제5일의 물고기와 새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신 축복을 받았습니다.

제6일째 지으신 사람에게 복 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이 둘이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 가정에 넘쳤습니다. 가정의 아름다움은 하나님 창조의 꽃입니다.

그런데 오늘 가정의 존재 이유가 여러 가지로 의문시 되고 있습니다. 최근 가장들이 가정을 파괴하는 잔인한 모습이 계속 뉴스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인 가정이 살인과 파괴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만한 아버지와 남편이 불과 칼과 총을 들고 가정을 파괴합니다. 그들의 눈은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난주일, 예배에 참석했다가 돌아갔던 카니 강 장로님은 LA Times 기자입니다. 중고등부 학부모들과 모임을 갖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분이 서둘러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방금 차타고 돌아가던 중 회사에서 취재명령이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가장이 아내와 아이들을 총으로 살해하고 자기도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과 딸을 차에 밀어 넣고 불 질러 살해한 지 꼭 6일 만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인터뷰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회의 중이니,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돌아가면서 전화로 인터뷰를 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이런 문제가 한인가정에서만 나는지 물었습니다. 아니, 주류에 들지 못한 이민가정의 특징인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답은, “오히려 백인 중산층에 이런 일이 더 많지요. 그들은 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한국 사람의 기질이거나, 이민자들의 문제로 국한시킬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계층을 불문하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가정 모두가 앓고 있는 중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LA Times와 인터뷰에서 나는 교회 목사로서 몇 가지 심각한 반성을 한다고 했습니다.

1. 교회가 가정의 문제를 치유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제공해야 하겠습니다.

2. 성장만 보고 달려갈 것이 아니라, 각 가정의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
교회는 기업체가 아닙니다. 가정을 희생하고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교회와 가정은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속도가 더디더라도 함께 가는 성장이 바람직합니다.

3. 부부간의 갈등, 분노, 그런 감정을 치유하는 설교와 교육이 있어야 한다. 은혜가 있어야 한다. 은혜가 있어야 한다.
부부가 더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4. 성도들 간에 장점만 아니라 약점도 나눌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지난 달 지파예배 때 어떤 지파는 죄 지은 것을 하나씩 나눴다고 했습니다. 큰 은혜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5. 부모-자식 간에 이해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교회에서 부모-자식 세대가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하겠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의 예배와 성경공부에 참관할 뿐 아니라, 보조교사로 활동할 기회를 마련해야겠습니다.

나는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이것은 한국 가정, 혹은 이민가정의 문제로 국한시킬 일이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서 가정이 파괴되는 소리가 하늘을 찌릅니다. 죄 없는 아이들이 방문을 두드리며 부르짖습니다. 연약한 여자가 방바닥을 뒹굴며 외칩니다. 남자도 온몸을 웅크리고 소리 지릅니다. "이대로 살 수 없어! 이건 절망이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합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이 시대, 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심각하고 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우리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들이 듣겠나이다.

오늘 나는 시편 23편을 다시 읽습니다. 수 년 전 미국 루터교회와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릴 때, 설교자였던 내가 택한 본문이 시편 23편이었습니다. 통역하던 Rich Miller 목사님이, 일평생 부활절 설교로 시편 23편을 본문으로 삼은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했습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이제 두 번 째입니다.

우리교회 입구에 커다란 나무판에 새긴 이 말씀이 걸려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올 때마다 이 말씀을 묵상하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가정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 말씀을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혹은 평안과 행복이 가득할 때도 잊지 말고 기억하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암송’할 수 있기 바랍니다. 다음 주일에 이 말씀 다 암송해 오시면 ‘상’ 드리겠습니다. 부부가 함께 암송하면 20점 더 드립니다.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선언한 것은, 그가 죽음의 엄청난 골짜기를 지나간 다음이었습니다. 그는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알았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여기 부활신앙의 단서가 있습니다. 죽었던 우리 영혼을 다시 일어나게 하시는 분,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는 이번 고난주간 동안,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바로 나의 주님!"이라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느끼고 또 느꼈습니다. 때로 두 손을 높이 들고 소리높이 외쳤습니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여!"

오늘 나는 금문가족 여러분에게 이 소식을 전합니다. 사망권세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로 당신의 주님이십니다. 당신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부활은 '되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 창조입니다.
천지창조 때 하나님께서 가정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죄'로 그 아름다운 창조를 파괴하였습니다. 미련한 인간의 결정이란 다 그와 같습니다. 죄로 판단이 마비되었고,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만홀히(속임수로) 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난 우리의 삶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날마다 죽는 죽음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오래 살았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때 나이는 모릅니다. 그러나 가인, 아벨을 거쳐 셋을 낳을 때 그의 나이는 130세였습니다. 그 후 그는 80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930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니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은 의문이 갑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날마다 죽음이었습니다. 사람이 목숨이 끊어져야 죽은 것입니까? 거리를 보십시오. 죽은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닙니다. 어디로 가며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릅니다. 그들의 삶은 저주 자체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습니다. 싸울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마치 "삼킬 자를 두루 찾는 사자" 같은 형상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잘못 걸리면 큰 일 납니다.

이런 사람은 살았으나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이미 따먹었고, 하나님의 축복의 범주 밖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돈을 찾아 헤멥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늘 불평입니다. “어떻게 하면 남을 넘어뜨리고 그 돈 빼앗을까?” “어떻게 하면 더 편안히 살까?” 봉사와 섬김의 차원이 없습니다.

이렇게 산다면 아무리 오래 산다 한들, 설령 건강하다고 해도, 그것이 축복일 리가 없습니다. 아담은 생전에 그의 큰 아들 가인이 착하고 충성된 작은 아들 아벨을 쳐 죽이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게 사는 것입니까? 살았다고 다 산 것이 아닙니다. 어떻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병을 담당하셨습니다. 우리 슬픔을 끌어안으시고, 우리 눈에서 눈물을 씻기셨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 우리 앞에 십자가가 있다는 것, 이것은 그 자체로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부활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닮을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예수님 닮을 것입니다.

나는 새 이름을 얻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주목합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이미 죽은 자와 같이" 되었던 자들입니다. 소망 없는 나라에서 소망 없이 살았습니다. 육체의 기회도 다 끝났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들을 다시 빚어 만드신 것입니다.

먼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열국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모래알갱이보다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수십억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또한 사래를 “사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열국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불모의 땅처럼 소망 없던 그의 몸에서 아이가 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기뻐 웃었습니다. 웃음이 그 가정에 들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전에 기도하신 내용이 요한복음 17장에 있습니다. 13절입니다. “이제 나는 아버지께 갑니다. 내가 세상에서 이것을 아뢰는 것은, 내 기쁨이 그들 속에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기쁨이 넘치신 분이십니다. 그 웃음이 우리 웃음 되게 하기 위해 세상을 떠나십니다. 어떻게요?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그러니까, 주님의 십자가 지심은 우리로 웃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슬픔을 담당하셨으니, 웃을 일만 남은 것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로 새롭게 태어난 이 가정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 가정입니다. 우리 가정의 남자는 아브라함으로 거듭났습니다. 우리 가정의 여자는 사라로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새로 창조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가정이 그 클라이막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교회'를 지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으신 교회는 '새로운 가정'입니다. 가정의 새 창조입니다.

가정과 교회는 하나입니다. 오늘날 가정의 문제는 교회에서 풀어야 합니다.

교회 밖에 어디서 남편과 아내가 함께 말씀을 듣습니까? 차타고 가는 길과 오는 길에, 한 가지 주제를 나누면서 대화할 수 있습니까? 자녀들도 주일학교에 들어가 예배드리고 공부합니다. 우리 교회는 1년 설교와 교육의 주제가 요람에 나와 있습니다. 100여 명의 전교인이 하나의 주제로 매 주일 교육받습니다. 교회가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넓은 의미에서 가정입니다. 그래서 금문교회를 '금문가족'이라고 부릅니다. 각각 구성원을 ‘금문인’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교회를 아름답게 지키는 것은, 가정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비결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그래서 때로 분노가 우리의 삶을 사로잡아 버립니다.  아, 여러분. 그런 때 여러분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습니다. 그걸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 때가 바로 우리 주님이 필요할 때입니다. 소리 내어 부르짖으십시오.

"오, 주여,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 분노에서, 그 좌절감에서, 그 엄청난 우울증에서 여러분을 건져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써. 지팡이는 우리의 방향을 지시합니다. 막대기는 원수를 물리치는 무기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증거입니다.

나는 2006년 부활주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올해는 내가 목사 안수 받은 지 10년째입니다. 부활주일에 부르심 받은 내가 벌써 목사로 10년을 살았습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로써 나는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내게 보내주신 천사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여러분이 가정으로 돌아가셔서, 여러분의 자녀들을 '천사'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참 사랑을 가르쳐 주시려고 그들을 여러분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어떤 장애를 품고 태어난 아이를 끌어안고 10년을 살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아이를 땅에 묻고 돌아온 날, 방바닥을 뒹굴면서 울었습니다. 울음 끝에 이런 고백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내게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나같이 이기적이고 못된 여자를 참 사랑으로 녹여 주셨습니다. 자존심 다 깨뜨리시고, 교만한 마음 다 무너뜨리셨습니다. 이제 천국으로 되돌아간 당신의 천사, 나는 그를 통한 참 사랑을 이제 깨닫습니다. 주님, 이제 제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너무도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아이는 내 기억 속에 언제나 살아있습니다. 오, 하나님, 이 슬픔 중에도 나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부활의 소망이 여러분의 가정을 바꾸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부활의 소망이 여러분 자신을 새롭게 만드신 것입니다.

교회가 중요합니다. 교회가 살아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돼야 합니다.

교회가 가정을 잘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에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이 “무얼 들고 집에 들어갈까?”를 생각하는 것처럼, 집안에서 아이들과 남편을 기다리면서 음식을 준비하는 주부처럼, 그렇게 영의 양식을 은혜롭게 준비하고 전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습니다.

이건 긴장입니다. 자도 자는 게 아닙니다. 먹어도 먹는 게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이런 점에서 가정을 생각하면서 준비했습니다.
가정이 부활해야 합니다.
부활은 ‘과거의 어느 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변화’입니다.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다고 해도 그래도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는 것입니다.

이 변화에는 ‘모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오늘날 가정의 갈등의 주범 가운데 하나는 ‘경제’입니다. 모든 것이 돈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돈을 벌지 못하는 가장은 무능력자로 평가 받습니다. 사회에서뿐 아니라 집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럴 경우 아내가 참 잘해야 합니다. 세상에 돈 벌기 싫어서 안 버는 사람 있습니까? 남편의 기를 살려주어야 합니다.

1. 돈 못 번다고 남편을 남과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이병철이나 정주영과 비교하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웃집 남자나 친구 누구와 비교하는 것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2. 걱정근심 버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부활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본받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걱정 근심한다고, 염려한다고 변화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집에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이건 필수입니다. 왜요? 안 그랬다가는 집안이 가장 무서운 공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안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 닮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가정은 돈 때문에 싸우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아내는 돈 때문에 이혼하자고 대들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돈 때문에 기죽어 사는데, 집안에서 이혼 스트레스 받고, 아이들과 헤어져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가중되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됩니다. 가장 보편적인 최악의 시나리오는 ‘다 죽어 버리자!’입니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궁지에 몰린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살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죄를 사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이번 종려주일과 부활주일을 맞아, 금문교회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우리 가정을 살려주셨다, 새롭게 해 주셨다, 우리는 변화되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최고로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평안이 올 것입니다. 주님께서 변화시켜 주시는 대로 우리는 새로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수도 없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여, 내게 은혜를 주시옵소서.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나이다.
      은혜,
      듣고 또 들어도 눈물을 감출 수 없는 은혜,
      모든 것을 바꾸고 또 바꾸어도
      도리어 감사한 은혜,
      그런 은혜를 내게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풀어 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부활합니다.

우리의 부활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죽음 이후의 부활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부활입니다.
2. 지금 우리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경험하는 부활입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세상은 부활을 경험합니다. 겨울 지나 봄을 맞는 산천초목은 푸르러갑니다. 시냇물도 졸졸 흐르기 시작합니다. 얼음장 밑에 물고기도 숨을 쉬면서 약동합니다. 죽었던 대지가 살아납니다. 메마른 하늘에 종달새 몇 마리 날아오릅니다.

해마다 우리는 부활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자연과 달리 사람의 몸은 날마다 늙어갑니다.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는 부활은 어떤 모습입니까? 우리는 크게 보아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갑니다. 아울러 지금 현재의 부활은 날마다 새롭습니다.

금문교회 성도들 개개인을 ‘금문인’이라고 부릅니다.
금문교회에 속한 가정들을 ‘금문가정’이라고 부릅니다.
금문교회 모든 성도를 다 ‘금문가족’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부활주일을 맞아, 여러분의 가정이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돈은 없어서 이혼하는 수도 있지만 감당할 수 없이 많으면 그것 때문에 이혼합니다. 돈이 가정을 깨는 현상을 막아야 합니다. 어떻게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을 닮습니다. The life of Jesus
2. 예수님과 동행합니다. The life with Jesus
3. 예수님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The life for Jesus
4. 예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The life by Jesus

남편부터 시작합시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해 줄 수 있다고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아내가 싫어하는 것은 내가 싫어하는 것이요, 아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의견충돌이 생겼더라도 먼저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남편의 자존심은 버리십시오. 그 자존심은 아내가 세워줘야 서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존심을 세우기로 하면 그건 틀렸습니다.
아이들을 ‘친구처럼’ 대하십시오. 아이들의 말을 듣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십시오. 싫다는 것을 억지로 시키지 말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함께 즐기십시오.

아내도 하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허락하셨을 때, 그 뜻이 있었습니다. 그 뜻을 살려내야 합니다.

아내는 집안의 꽃입니다. 꽃은 늘 환하게 피어 있어야 합니다. 시든 꽃은 꽃의 기능을 이미 상실했습니다. 아내가 찡그리고 있으면 집안의 행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억지로라도 웃으십시오.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이 행복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웃으십시오. 웃음소리가 집안을 늘 채울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게 잘 안되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 웃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다시 남편에게로 돌아갑니다. 아내의 웃음을 지켜줄 수 있게 노력하십시오. 최선을 다하십시오. 아내가 맑고 밝고 환하게 웃는 가정을 만들어 가십시오. 그걸 위해 노력하면 됩니다. 다른 건 몰라도, 풍파가 오고, 풍랑이 일어, 방향이 감이 잡히지 않아도, 아내가 큰 소리로 웃을 수 있는 가정이라면 ‘정상운항’ 중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웃음의 가정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 이름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밖에서 모셔온 손님을 사라가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에 필요한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남편과 아내가 바뀌면 가정이 바뀝니다. 남편은 아버지요, 아내는 어머니입니다. 세상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아이들이 장성했어도, 부모는 부모입니다. 부모의 생각을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 된 여러분, 변화를 시도하십시오. 계속 변화하십시오. 변화를 즐기십시오.

기도
은혜로우신 주님.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우리 주 예수님. 저희 가정에 웃음을 주시옵소서. 끊임없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교회가 가정을 날마다 새롭게 만들 수 있도록 우리 교회에 샘솟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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