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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5년 2월에 여러분들이 배려 해 주셔서 성지순례를 잘 했습니다. 벌써 십여 년이 지나갔습니다. 그 후로도 책을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그곳의 상황을 자주자주 접하여 왔습니다. 성지를 순례하면서 느낀 것이 많지만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종교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 위에 세워진 종교라고 하는 사실에 더욱 주님을 향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종려 주일이며 이번 한 주간은 우리 주님께서 고난당하신 고난 주간으로 우리가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고난 주간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고난 주간 특별 새벽기도회를 하려고 합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때가 때인 만큼 우리 대선의 모든 가족들이 새벽에 모여 합심기도를 하며, 예배를 드리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때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벽 5시에 모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셨던 그 길목을 우리 함께 걸어가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후에 대제사장의 군병들에 의해서 체포당하신 후에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형언도를 받으신 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 언덕까지 걸어가신 그 길을 우리는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라고 합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언덕까지인데 약 800m가량 됩니다. ‘비아’라는 말은 길이라는 뜻이고, ‘돌로로사’라는 말은 슬픔, 고난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성 밖으로 나가 골고다라고 부르는 처형장으로 가실 때 밟고 가신 그 길을 순례자들이 따라 걷는데 그 길을 순례자들이 ‘비아 돌로로사’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라틴어입니다만 다른 말로는 “십자가의 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곳 비아 돌로로사를 순례 할 때에는 매 지점마다 잠깐 씩 머물면서 고난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회상하고 묵상하는 좋은 전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다 머물거나 쓰러지신 장소들이 모두 열 네 군데입니다. 오늘 이 시간 골고다의 언덕으로 가는 길목을 살피며 은혜를 받도록 하시겠습니다.

1. 사형언도를 받으신 지점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유대인들에게 내어줄 때(요19:16) 예수께서 서 계시던 곳입니다. 재판관마저도 죄를 인정할 수 없었던 사건, 오히려 재판관이 예수를 놓아 줄 기회를 찾으려 했던 사건(요19:12), 그러나 예수를 놓아주면 가이사에게 불충한 신하라는 오명이 싫어서 죄없는 예수를 십자가형에 내어 주었던 장소가 첫 번째 지점입니다.

2. 십자가 형틀을 지셨던 지점입니다.(요19:17)

예수께서 마침내 빌라도의 수중에서 유대인들의 손으로 넘어가 몸소 십자가 형틀을 짊어지셔야 했습니다. 그곳에는 지금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있고, 그 안에 유죄판결기념 예배당과 채찍질기념예배당이 있습니다. 채찍질 예배당은 재판관의 재판에 앞서 죄인을 매질하는 고문실이 있던 곳입니다. 예수께서도 재판을 받기에 앞서 이곳에 끌려 와 군중들에게 매질을 당했습니다. 군인들은 매질을 했을 뿐만 아니라 가시나무로 왕관을 엮어 예수의 머리에 씌우고 임금이나 입는 자색 용포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예수 앞에 다가서서 “유다인의 왕 만세”하고 소리치면서 그의 뺨을 때리던 바로 그 치욕스러운 곳입니다.(요19:1-3,17) 순례자들은 이곳에 작은 기도실을 만들어 놓고, 오고 가는 세대의 모든 순례자들에게 그때의 그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유죄 판결 예배당에는 실물 크기의 십자가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십자가의 무게는 가로나무(patibulum)와 세로나무(stipes)가 각각 40kg로 전체 중량이 80kg쯤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비아 돌로로사를 올라가셨습니다.(마27:31-32) 매주 금요일 오후 3시마다 프란체스코 사제들의 비아 돌로로사 행진이 있습니다. 그때 한 사제가 이 십자가를 메고 행진합니다. 고난 주간에는 이런 행진이 매일 오후 3시마다 있습니다.

3. 첫 번째 쓰러지신 지점입니다.

그 육중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시다가 땅에 처음으로 쓰러지신 곳입니다. 십자가를 못 이겨 쓰러지신 연약한 예수님은 십자가를 옮길 힘이 없습니다. 넘어진 몸 위에 육중한 십자가가 예수님의 몸을 누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짊어지시기 전에 이미 모진 채찍에 맞아 거의 탈진 된 상태였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처음으로 넘어진 그곳에 순례자들은 작은 기도실을 지어 놓았습니다.

4. 모자의 상봉 지점입니다.

예수께서 비탄에 잠긴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만나신 곳입니다. 땅에 쓰러지셨던 예수께서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십자가 형틀을 짊어지고 일어서려던 순간, 예수께서는 군중들 틈에 끼어서 울며 따라오는 당신의 어머니를 보신 것입니다. 어머니의 눈에는 벌써부터 피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쓰러지면서 형장으로 끌려가는 아들을 지켜보아야 하는 어미의 심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처형 받으러 끌려가는 아들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미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자식이 고통당할 때 자식만 아픈 것이 아닙니다. 그 어미는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몸에서 살점이 뜯어져 나가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자식과 함께 어머니도 처형 받는 셈입니다.

5. 구레네 시몬을 만나신 지점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께서 지고 가시는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고 간 곳입니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져 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시몬이 함께 지고 가는 것입니다. 여기 시몬 대신에 누구를 거기에 넣으면 좋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6. 베로니카를 만나신 지점입니다.

베로니카라고 하는 여인이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 드렸던 곳입니다. 여기에도 기도실이 있습니다. 그 기도실 벽에는 베로니카의 수건이 새겨져 있습니다. 베로니카는 땀을 흘리시며 예수님에게 손수건을 건네 드렸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얼굴의 땀을 닦고 손수건을 돌려주었을 때에 그 손수건에는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톨릭교회에서는 소중하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을 고난의 종으로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풍채는 그리 좋지를 못하셨습니다. 볼품도 없었습니다. 그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흉측하기까지 했습니다. 빈곤과 고통, 고뇌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분을 그리스도로 여러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그 분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습니까? 여섯 번째 지점은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시험하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나는 갖가지 처참하고 참담한 얼굴의 모습이 고해 바다에 떠밀려 살고 있는 불쌍한 저와 여러분들의 얼굴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7. 두 번째로 넘어지셨던 지점입니다.

여기부터의 길은 더욱 좁아지고 경사는 더욱 급해지는 지점입니다. 바로 이 길은 골고다로 오르는 그 길목의 절정입니다. 땅에 넘어지고 쓰러지시는 메시아를 보십시오!

8. 통곡하는 여인들을 만나신 지점입니다.

이 지점이 여덟 번째의 지점입니다. 슬피 우는 여자들의 큰 무리가 따라오며 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인들이 흘리는 눈물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인간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 쌓여 죽는 행복감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힘도 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눅23:28)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합니다. 피와 흙먼지로 얼룩진 예수 그리스도는 자칫 우리의 동정의 대상처럼 여기고 눈물을 지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시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불쌍히 여김을 받고 동정을 받아야 할 대상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어 못 박히게 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유대의 장로들, 죄 없는 자를 십자가형에 처하고도 자기 입신양명만을 걱정하는 빌라도일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께 불쌍히 여기심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9. 아홉째 지점은 예수께서 세 번째로 넘어지신 곳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까지 800여 미터의 거리를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시다가 세 번이나 쓰러지셨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 번째 쓰러지신 곳은 당신께서 처형당하실 골고다 정상까지 50미터를 남겨 둔 곳이었습니다. 처음 두 번은 무거운 십자가가 힘겨워서 쓰러지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자들은 처형장이 가까이 올수록 심적인 부담이 몇 배로 가중 됩니다. 십자가 처형의 고통이 주는 공포감과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하여 비아 돌로로사에서는 누구나 쓰러집니다. 우리가 인생의 예견된 고난의 길을 걸어 갈 때에 그 고난을 만나기도 전에 우리도 쓰러집니다. 우리는 메시아보다 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 자주 쓰러질 것입니다.

10. 예수께서 발가벗겨진 지점입니다.(마27:35)

열째 지점부터 마지막 열넷째 지점은 사실 동일한 장소입니다. 여기서 네 가지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즉 예수께서 (1)옷을 벗김 당하시고, (2)십자가 형틀에 높이 달리시고, (3)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고, (4)십자가에서 운명하여 내리워진 사건들입니다. 지금까지 당한 고난도 부끄러운데 최후에 실오라기 하나 없이 발가벗김을 당한다는 것은 참담한 일입니다. 그 옷을 강제로 벗긴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모욕입니다. 그런데 폭도들은 불손하게 그분의 옷을 강제로 벗겨 그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우리의 죄 된 생활이 우리 예수님을 이렇게 한없이 부끄럽게 해 드린다는 것이 생각이 납니다. 예수께서 옷을 벗김 당한 후에 여기서 못 박히셨습니다. 군인들은 굵은 못을 그의 두 손과 두 발에 사정없이 박았습니다.(막15:24) 그리고는 밧줄로 당겨 그 십자가를 땅에 단단히 박아 세웠습니다. 거기에 달린 죄수들은 죽을 때까지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거기 달려 비명을 질러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비명 소리를 상상해 보십시오. 골고다 하늘 에, 골고다 골짜기에 그 비명 소리들이 처절하게 울려 퍼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신 후에 운명하셨습니다.

11. 마지막 열넷째 지점은 예수님께서 묻히신 지점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아들, 싸늘한 시신이 된 아들을 당신의 무릎에 올려놓고 두 팔로 감싸 안은 체로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습니다. 죽은 자식의 시신을 안고 쓰다듬으며 울고 있는 어머니! 그 어머니의 마음속은 어떠했을까요? 요람에서 무덤까지 자식은 어머니의 짐입니다. 아들을 무덤에 누이기 전에 어머니는 다 큰 아들의 시신을 마지막으로 껴안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무덤에 장사 지낸 사람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아니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 왔던 유대의 관원이었던 니고데모가 그를 돕고 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이 무서워 그 사실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용감하게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청을 허락합니다.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하여 침향 섞은 몰약을 백 근 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장례는 치러졌습니다.(요19:38-40,눅9:59,요19:41-42) 

예수님을 장사 지낸 그 무덤 위에 A. D313년에 콘스탄티누스의 황제의 명령으로 성묘교회가 웅장하게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수많은 교회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성묘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걸으셨던 비아 돌로로사의 종착점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죄에 대한 속죄입니다. 속죄를 위한 희생양입니다. 속죄를 위한 화해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롬5:10,고후5:18-19,엡2:16,골1:20) 사랑하는 여러분! 이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형제자매들이 되었습니다. 부디 이제 우리는 그 사랑을 힘입어 더욱 사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성찬 상에 참여하면서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고, 한 주간 새벽기도로 주님의 사랑스러운 희생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복된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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