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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살전 4: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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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부활하셨다. 주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이 아침에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이 영광스러운 아침에 다시한번 더 소망을 갖게 되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 이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되자. 미국 사람들은 부활절에 이렇게 인사를 한다. 사회자가 “Christ is risen.”이라고 하면 회중들이 “Christ is risen indeed.”라고 화답을 한다.

우리들의 믿음은 주님의 부활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우리를 위해서 죽은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이 사실이 흔들린다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 되고 만다. 무엇이 부활의 신앙인가? 무엇이 부활의 축복인가?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 지를 돌아보자.

(1)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을 믿어야 한다.
14절에서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 진대’라고 말씀하시는 배경은 무엇인가? 그 답은 13절에 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자신들보다 먼저 죽은 자들이 어찌 되었는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궁금해 하고 있었다. 이들을 향해서 사도 바울이 답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도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 주님의 부활과 승천이 우리에게도 같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주님의 부활의 참 의미를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부활이 흔들린다면 모든 것이 흔들리기 때문에 바울은 직접적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흐지부지 되어서는 안된다. 다시 묻고 싶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확고부동하게 믿어야하며 이것을 막연하게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부활 사건은 역사적인 배경과 근거를 가지고 있다. 여러가지 증거들이 있지만 오늘은 그중에 한가지만 이야기 하자. 그것은 바로 예수를 믿고 완전히 변화된 자들이 주는 증거이다. 당시에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한 사람들이 최소한 오백명 이상이었다(고전15장). 고린도 전서는 예수님 당시에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는 ‘오백여 형제’라는 말은 거짓일 수 없다. 그들은 명백히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다. 그들이 생명을 걸고 예수를 믿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이 부활의 목격자였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십자가 사건 이후에 두려움으로 움추려 있었고 집 밖으로 나갈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밖으로 나와서 복음을 전하는 담대한 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이 되었고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오직 부활 사건을 목격함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예수의 아우인 야고보를 보자. 그는 어려서부터 예수를 단순한 형으로만 알고 지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하는 예수를 경솔히 볼 수 밖에 없었고 그를 정신 나간 자로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야고보는 후에 당시 교회의 큰 지도자가 되었고 야고보서의 저자가 되었으며 사도가 되기도 하였다. 무엇이 그를 이렇듯 변하게 하였는가? 예수의 부활을 목격(고전15장7절)한 후로 그는 자신의 형이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어떠한가? 그는 유대교의 광신자였고 그 열정을 가지고 예수 믿는 자들은 핍박하는 대열의 선봉에 섰다. 그런데 그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고 끝내 로마를 통째로 변화하게 만든 큰 사도가 되었다. 이같은 변화는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 가능했다. 막연히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만났기 때문이었다. 또한 오백여명이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들을 하나님의 강력한 복음전파 수단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이 부활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역사를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로마가 핍박하는 가운데 복음이 전파되고 결국 로마도 복음 앞에서 무너지는 역사는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길이 없다.

(2)주님의 강림을 믿어야 한다.
‘강림’이란 ‘재림’과 같은 말이다. 즉 다시 오심이다. 1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하셨고 지금은 하늘 보좌 위에 계시지만 때가 차면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16절에서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재림은 마굿간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 소리와 함께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직접 처소를 예비한 후에는 반드시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사도행전1장11절에서는 천사가 말하되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다. 고린도전서15장에서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우리는 썩을 몸을 벗어 버리고 썩지 않을 몸을 입을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영광스런운 순간은 언제일 것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영원히 썩지 않을 몸을 입는 순간이 될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를 위한 모든 예언이 다 이루어지고 이제는 한가지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재림’이다. 그는 재림하셔서 온 세상을 고치고 회복시키실 것이며 그의 나라를 이 땅 위에 펼치실 것이다.

(3)우리의 영생과 부활을 믿어야 한다.
예수는 부활하셔서 모든 믿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과 승천은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16절 하반절에서 재림의 때가 되면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먼저 죽은 자들의 영은 지금 천국에 있지만 그들의 몸은 이 땅에 묻혀 있다. 그러나 재림 때에 천국에 있던 그들의 영이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 임하여 썩은 자신들의 몸과 결합하게 된다. 이후에 공중으로 끌어 올림을 받고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17절에 보면 그때에 살아 있던 자들도 끌어 올림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먼저 죽은 자들의 영이 예수와 함께 임하는 moment가 있을 것이고 주님과 함께 들림을 받게 될 것이며 우리의 몸은 영원히 썩지 않을 영체가 될 것이다. 주님이 부활하신 모습대로 우리도 부활하게 될 것이고 주와 함께 영원히 거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천지만물과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땅에서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죽음을 스스로 이겨보려고 자신의 두뇌를 특수한 환경 속에 냉동해놓았다가 나중에 과학이 발달한 후 다시 생명을 연장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들은 하루에 2-3만불이라는 엄청난 돈을 낭비하면서 이같은 막연하고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은 아무러 가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의 영원한 약속을 붙잡아야 한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로 이어질 것이다. 부활, 승천, 그리고 재림을 믿는다면 곧바로 우리에게도 그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믿고 사는 성도라면 difference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가져야할 차이점은 무엇인가?

(1)영원한 소망을 갖는 것이다.
세상에도 소망은 있지만 그것은 유한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언젠가 끝나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는 늘 제한이 있다. (영원한) 소망이 없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 마지막에 죽음을 이기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죽음을 뛰어 넘을 수 없다. 지난 2003년3월에 저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연세가 96세이셨지만 나는 그 분이 회복되시기를 기도하였다.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셨고 한가지 소망이 끊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소망의 시작이었다. 일시적인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궁극적인 소망, 진짜로 귀한 소망, 즉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되는 소망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날 이례적으로 할머니의 하관예배를 본인이 집례하게 되었는데, 어린 가족과 친지들에게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영어로 이 소망의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성경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장55절-57절)’라고 말씀하신다. 시편기자는 23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하였다.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오히려 찬송할 수 있다.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 예수께 이 상황은 ‘Too late’이 아니었다. 그분은 나사로를 살리셨고 죽음 앞에도 영원한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신 것이다. 우리는 병이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병이 나음과 관계없다. 우리의 상황이 어떻든지 상관이 없다. 이 순간에도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자. 이것이 바로 영원한 소망이다. 그러므로 내 삶 가운데 수없이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하여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시작되게 하자. 병이 깊어지고 죽음이 가깝다하여도 더 영광스럽게 주님을 맞이하고 그와 함께하는 영원한 삶의 소망을 갖자. 이것이 진정한 소망이다. 극단적이라고 생각되는 상황 속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갖자. 최근 한인 가정의 소망 없음을 보라. 가족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교인들을 보라. 더이상 헛되게 믿음 생활을 하지 말자. 소망의 주님, 살아계신 주님을 믿으며 본질적인 소망을 갖고 그리스도를 따르자.

(2)참된 위로를 누리자.
미래를 모르고 있다면 어려울 때에 쓰러지고 힘이 들 때에 무너지고 슬플 때에 괴로워하게 된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 절(18절)을 보자.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결과를 모르면 불안하고 슬퍼하고 힘들어 할 수 밖에 없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는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를 알고 있다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다. 결과가 이미 주어져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소망의 기다림을 이어온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될 때까지 한 아들을 기다려 왔고, 이스라엘 민족들은 해방을 위해서 400년을 기다려 왔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40년을 기다렸고 약속의 땅을 기다리며 또다른 40년을 인내했다. 다윗은 왕이 되는 그날까지 굴 속에서 기다렸고 수많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믿고 무수한 날들은 기다림 속에서 보냈다. 마리아와 요셉,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구세주가 오심을 순종 가운데 기다렸다. 이들이 한결같이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참된 부활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결과를 보여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때를 믿고 인내할 수 있었고, 험한 환경 속에서도 그의 은혜가 소멸된 것이 아니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나치에게 붙잡힌 미군 포로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수용소에서 임시로 만든 간이 라디오를 듣던 어느날, 독일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 반가운 소식은 삽시간에 수용소로 퍼져 나갔다. 그 순간부터 미군 포로들의 생활이 변하게 되었는데 간수들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포로들은 노래를 부르고 식사시간에 여유로운 농담도 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삼일 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흘째 아침에 그들이 일어나보니 간수들은 오간 데 없고 간방의 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이것이 부활의 소망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증거라고 하였다. 원수의 머리를 상하게하고 이미 승리를 거둔 예수 그리스도를 믿자. 그리고 이제 흔들림 없이 참된 위로와 소망을 누리며 살자. 세상의 소망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민 생활이 어렵고 힘들어도 결론을 알고 있지 않은가? 주님이 개입하시기만 한다면 이미 승리한 것이다. 이 소망이 있기 때문에 참된 위로를 서로 주고 받으며 살 수 있다. 어떤 힘든 환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이미 결정된 그대로)승리하며 전진하는 성도들이 되자.
(김승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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