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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예수님을 맞이하는 자의 마음 (마 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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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벌써 시간이 지나 다음 주일이면 우리는 부활주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부활절 전 주일을 우리는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그의 사역의 모든 마침의 때가 다가오셔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그 다음날부터 시작하셔서 그의 마지막의 한 주간을 이루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의 쓴잔을 받으시기로 결심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로마 관원들에게 잡히시고 가야바의 뜰에서 갖은 고초를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죽으시게 되고 고초가운데 죽음을 통하여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 속하여 주시고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우리들에게 성령님 보내어서 우리들에게 주의 은혜의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특별히 이제 다음 주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이번 주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종려주일과 또 고난의 주간을 지내면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그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가슴을 덮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면 누구라 할 것 없이 특별한 심정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을 느끼고 있겠지만 특별히 부활절을 맞이하여 느끼게 되는 이와 같은 감흥은 우리들에게 더욱더 특별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간 동안에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기도를 하고 금식을 하고 선을 행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야할 삶의 결심과 결단을 이루기도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본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로서의 도덕과 그리고 죄에 대한 절규와 좌절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에 동참함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마음의 좌절과 절규를 우리는 다시 느껴보고자 소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없이는 영광에 이를 수 없으며 십자가 없이는 영광의 면류관을 누릴 수 없기에 고난을 통해서 주님의 은혜를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한주간의 고난을 당하기에 앞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종려주일의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시고 자라시고 준비하시고 공생애를 보내면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으시고 또 뿐만 아니라 자연을 정복하시고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하늘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해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지상에서 해야 될 마지막 사역 즉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우리 인간들에게 영원한 죄의 해결과 생명을 주시는 사역을 위해서 이제는 예루살렘으로 다가오시게 됩니다. 제자들은 때마다 물었습니다. 예수님 언제 예루살렘에 가시겠습니까? 그러나 그때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침내 때가 되셔서 스스로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가져오라하여 그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사람들은 겉옷을 벗어서 땅에 깔고 종려나무가지를 꺾어서 땅에 깔고 흔들며 “다윗의 자손 예수여 호산나” 하고 예수님을 환영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이들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에 원하는 정치적인, 경제적인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풍요로움을 제공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자 곧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폭도들의 외침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모든 사실을 알고 계셨으면서도 예수님은 겸손함과 온유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가셨고 또 뿐만 아니라 모든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고난의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이 있었으며 그와 같은 부활이 있었기에 우리의 죄를 사함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아름다운 역사가 동시에 있어진 것입니다. 이제 이와 같은 내용을 생각하면서 특별히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을 주로 생각해 봄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고난주간을 기념하여서 성찬의 예식을 가지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긴 말씀드리지 못하고 간단한 내용만 생각을 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첫 번째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말씀의 성취자이며 겸손과 온유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잠시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 중에서 그의 모든 행적 중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 아닌 것이 없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적은 그의 탄생과 자람과 그의 사역과 마지막 모든 십자가의 짐을 지기까지의 모든 것들이 성경의 예언을 그대로 이룬 것임을 보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 유숙하시고 감람산 벳바게 지역에 이르러 예루살렘 입성에 앞서 두 제자를 보내어서 그가 타고 갈 나귀를 끌어오도록 합니다. 이 벳바게 지역은 베다니와 인접한 마을로 베다니와 예루살렘 사이에 감람산 동편 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즉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거점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왜 그때까지 도보로 다니셨던 분이 하필이면 새끼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까 우리는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경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임을 우리는 본문 상에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스가랴 9장 9절을 보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는 나귀 새끼를 타고 그의 나라에 입성하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 그의 뜻에 가장 첫 번째이며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 그의 삶에 전부였던 것을 우리는 봅니다. 3절에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인 소유인 나귀새끼를 제자들이 가서 데리고 올 때 주님께서 쓰시겠다하라 하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변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더 이상 랍비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지닌 자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의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정확한 신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므로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이루는 장면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분으로 그의 모든 삶을 진행하고 계신 것을 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생각하는 것은 겸손과 온유의 왕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이제까지 예루살렘을 정복했던 수많은 정복자들이 화려한 전승과 전리품과 군사들을 데리고 큰 백마를 타고 당당하게 입성한 것이 아니라 조그만 나귀새끼를 타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왕의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했습니다. 그 어떠한 정복자보다 더 진심어린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새끼를 타셨다는 것은 가장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어떤 정복자들보다 당당할 수 있는 기적을 행하고 능력을 베풀며 그가 행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권세를 입은 자의 것이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 외에 그는 언제나 겸손한 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을 봅니다. 마태복음 20장 20절 이하를 보면 메시아의 왕국이 도래했을 때 그의 제자들은 누가 더 큰 자인가 자리다툼을 하는 것을 봅니다. 제자들의 이런 모습과는 달리 예수님은 자리다툼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은총가운데 겸손한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이루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도 위축되지 않는 분이시며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탐으로 오히려 겸손의 극치를 이루게 됩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겸손한 자의 모습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 환호하는 사람들 거의가 겉옷을 벗어 땅에 깔고 종려나무가지를 꺾어 깔며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 예수여, 호산나 하고 외치는 그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 뒤에 어떻게 바뀌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마음에 분노를 일으키거나 그들을 향하여 독설과 채찍을 들지 않으시고 그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시고 가엾게 여기셨던 것을 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온유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읽을 때마다 마음에 뭉클해지는 말씀구절이 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고독의 표현 부분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성을 지닌 예수님으로서 하물며 인간들이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심을 이미 읽으셨을 텐데 얼마나 상심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은 상심을 마음의 온유로서 넘어가셨던 것을 봅니다.

세 번째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육신적 욕구와 기대의 충족을 위하여 춤추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분명히 예루살렘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는 그들의 기대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기대하지 않았고 그들이 압제받는 로마의 군병들로부터 해방되어 정치적으로 해방되고 경제적으로 유족해지고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이루어주실 메시아를 원했던 것입니다. 세금의 문제, 빵의 문제를 그리고 그들에게 있었던 모든 압제를 풀어줄 유족한 삶을 주실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기적을 일으키고 능력을 행사하며 각종 회오리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예수님이야말로 그들의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기에 합당한 분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실 분으로 예수님을 채색하고 그 채색된 그들의 욕심을 예수님이 채워주시길 기대하며 예수님을 환호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환호한 것은 예수님을 위한 환호가 아니라 본인들을 위한 환호였습니다. 우리가 어느 날 믿음이 연약할 때는 우리의 소원을 위해서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이 성숙해질 때는 우리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계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그런 예수를 환호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그들의 계획이 무너지게 될 때 그들은 예수님을 거침없이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지르는 폭도들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루살렘 백성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모습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우리의 심령으로서 무엇보다 말씀의 성취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우리도 역시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자로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드리고 성취하는 자로서 우리의 삶의 역사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내 마음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우리는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야하는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어도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말씀이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되는가 하는 삶의 해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과 온유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는 겸손과 온유로 옷 입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탁월하기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탁월함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탁월함이 겸손함으로 우리들에게 균형 있게 이루어지지 못할 때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심하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는 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능력은 탁월한데 사람이 겸손하지 못하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맞이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 마음에 최대의 능력과 더불어 최대의 겸손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의 역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백성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온유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의 행할 일을 알면서도 그에게 해 하지 않고 오히려 부드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바라보며 용서하며 관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은 온유와 겸손함입니다. 겸손한 사람의 특징은 자기가 겸손한지 모릅니다. 죄를 회개하는 사람은 매일 죄를 회개합니다. 그런데 죄를 짓는 사람은 회개할 게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겸손하지 못해서 늘 겸손하려고 애쓰는데,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난 괜찮아’라고 생각하고 더 나섭니다. 전혀 변화되지 않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내가 온유하지 못해 하고 점점 더 온유해지려고 애쓰며 온유해지는데, 온유하지 못한 사람은 ‘나는 온유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괜찮은 줄 압니다. 여러분 제가 보니 ‘나는 온유하지 못해 겸손하지 못해’ 하면서 쑥스러워하시는 데 제가 볼 때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닮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겸손을 소유하시기를 간절히 소망드립니다.

더욱이 내 욕심을 위해서 말씀을 해석하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길과 뜻과 사역의 참된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삶을 살다보면 이제는 내 뜻을 위하여 주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이제 주의 뜻을 위하여 내가 살아가는 삶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예배드리는 것도 우리가 은혜받기 위해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응당 예배를 드려야 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받는 것이 내 목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첫 번째 목표요 그래서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 우리에게 축복인 것을 우리는 생각합니다. 내 욕망 때문에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초보의 단계를 벗어나,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살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룸이 우리에게 기쁨이요 영광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늘 우리는 생활 가운데 아는 것만 꿈꿀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대로 알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대로 성경이 보이게 됩니다. 믿음이 크게 되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믿음이 자라면 더 많은 것이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볼수록 우리는 깨닫는 것이 많아집니다. 아는 대로 보이고 보는 대로 안다는 것은 쳇바퀴 도는 것이 아니라 점점 상향진보적 사고를 이어가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이루셔서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어리석은 욕망으로 인간적인 환영을 이루었으나 그 꿈이 깨어질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인간들의 군상들의 모습을 보며 이제 나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깨닫고, 깨달은 대로 믿음의 역사를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때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오늘은 고난주간을 앞두고 성찬식을 하게 될 예정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이 듭니까?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서 갖은 고난을 당하시고, 그것은 인간적인 아픔과 고통뿐 아니라 죄에 대한 좌절과 절규임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아프셨을까 보다 더 우리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 인간들의 죄악을 담당하기 위해서 그 죄에 대해서 얼마나 몸서리치며 좌절하셨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로서의 좌절과 진저리침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소원합니다. 고난에 동참 없이는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고난에 동참함으로 영광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에 동참하는 것조차 우리에게 기쁨인 것을 압니다.

이제 오늘 종려주일을 맞이하며 우리의 삶 속에 주님의 은혜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성취하는 삶이요 겸손과 온유를 소지하는 삶이요 내 마음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주님을 내 소용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섭리를 이해하여 내가 그 주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되는 것이 우리 삶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주의 백성이
주의 능력과 영광과 은총이 임하여
주의 뜻을 선히 이루는
아름다운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최종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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