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빈 무덤의 진실 (마 28:1~6)

  • 잡초 잡초
  • 293
  • 0

첨부 1


  만물이 소생하는 새 봄, 부활절 예배에 참례하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지금부터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때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은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예수가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야? 뭐, 자기가 구세주라고? 그렇게 맥없이 죽으면서 큰소리를 치다니!” 제자들은 이미  도망가 버렸고, 소수의 사람만이 슬픔에 잠긴 채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 후 사흘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려고 새벽 미명에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연약한 여인들인지라 무덤의 큰 돌문을 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파수꾼들에게 사정을 하면 될까 하는 기대를 갖고 갔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이미 돌문이 치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천사가 돌을 치우고 그 위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번개같이 빛나서 파수꾼들(4절. 수직하던 자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깜짝 놀란 여인들에게 천사가 뭐라고 말합니까? 본문 5절~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이제 그것은 ‘빈 무덤’이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사역하던 미국인 스탠리 존스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한번은 길거리에서 사람들 앞에 선 채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있던 모슬렘 한 사람이 퉁명스럽게 말을 겁니다. “여보시오! 우리 마호메트는 실제 인물이요. 그의 무덤이 메카에 있단 말이요. 그런데 당신네 예수의 무덤은 없지 않소?” 그러자 선교사가 기회다 싶어 이렇게 대꾸합니다. “아, 그래요? 사실은 예수님의 무덤도 있습니다. 그런데 텅 비어 있죠.  왜냐하면 죽었다가 부활하셨거든요.” 이 말에 그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가버렸습니다.

  지금 성지 예루살렘에 가 보면 골고다 언덕과 무덤을 기념하여 세운 성묘교회(콘스탄티누스 로마황제가 어머니 헬레나의 요청으로 AD 336년 건축함)가 있습니다. 그 교회당 안에 예수님의 기념 묘소가 있는데, 거기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습니다! 텅 빈 무덤입니다. 그래서 흔히 기독교를 가리켜 ‘빈 무덤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빈 무덤’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빈 무덤은 다음 세 가지 사실에 대한 ‘물증’입니다. 

[1] 빈 무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라는 사실에 대한 물증입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를 보면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과 구세주 되심을 부정하려는 많은 도전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악한 원수 마귀의 계략입니다. 마귀는 인간이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인간의 구원을 훼방하려고 합니다. 아주 교묘하게. 그래서 때로는 아주 유식한 사람들을 동원해서 그럴 듯하게 예수님의 부인하게 만듭니다.

  요즘 신문에 보도되는 <유다복음> 같은 것도 그런 유입니다. 대단한 문서가 발견된 것처럼 야단들입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배반해고 그 결과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유다야말로 진짜 훌륭한 사도인 셈입니다. 기가 막힌 이야깁니다. 한 마디로 이것은 고대 이단의 문서입니다. 그런 것을 발견해 놓고 2천년 기독교 역사를 흔들 수 있을 것인 양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단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사이비(似而非)예요. 그럴 듯한데 완전히 틀린 겁니다. 그리고 이단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단은 생겼다가 교주가 죽으면 슬그머니 사라져버립니다. 반면 기독교 복음은 2천년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오는 참 진리입니다. <유다복음>은 AD 1세기~2세기에 걸쳐 유행하던 영지주의(Gnosticism) 이단의 아류에 불과합니다. 나타났다 사라진 이단입니다. 

  또 수년 전 소설책으로 발간되었다가 최근 영화화되어 곧 개봉되는 <다빈치 코드>(댄 브라운의 추리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서 생긴 딸(사라)과 그 후손들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중세교회가 그 비밀을 아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라 처형하고 숨겼다는 겁니다. 그 비밀을 지켜온 기사단 중에 다빈치가 있었는데, 그의 그림에 비밀을 담은 암호가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곧 ‘다빈치 코드’라는 것이죠. 문자 그대로 ‘황당무계한 추리’일 뿐입니다.

  여러분, 이런 것들은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그러다가 마는 겁니다. 걸려서 실족하는 사람만 손해입니다. 성경공부를 조금만 해도 충분히 분별이 되는데,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데, 그것도 모르고 휩쓸리면 정말 딱한 일입니다. 이런 이단들이나 엉뚱한 소리들이 때때로 등장하는 것은 마귀의 도전인데, 그러면 왜 하나님이 막지 않고 허용하실까요? 그 이유는 ‘신앙의 진정성’을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오히려 이런 기회에 참 그리스도인들을 골라내고, 그 신앙을 연단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이단 사설 중에서 특히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게 많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가 무너지니까, 어떻게 해서든 부활을 거짓으로 주장하려고 기를 씁니다. 그래서 도난설, 환각설, 조작설, 가사설, 무덤 오인설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빈 무덤이 있고, 예수님이 십자가 죽을 때 도망갔던 제자들이 다시 모여 교회를 세웠고, 그 교회가 2천년 동안 부흥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산 사람을 위해서도 목숨 바치지 못하고 도망갔던 그들이 시체를 위해 충성하고 순교했다면 ‘희대의 코미디’이죠. 도무지 말이 되질 않습니다. 

  어쨌든 분명하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 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만천하에 증명하셨습니다.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에 하신 말씀대로 그 죽음은 인간의 죄를 대신한 대속의 죽음입니다. 인간이 모두 죄인이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데, 예수 십자가 대속을 믿는 자마다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습니까? 부활이 있다면 이 모든 게 사실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희대의 사기꾼이 되는 겁니다. 그럴 수 없죠.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부활절 아침에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임을 다시 한번 고백하시고 참 그리스도인으로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2] 빈 무덤은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는 사실에 대한 물증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가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승천이죠. 그분은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성령을 통해 오늘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그리고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요14:18~20을 보면 예수님이 미리 예언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마귀 권세, 사망 권세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님! 그분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신다면 세상에 무서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게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가 종교개혁을 추진하면서 많은 박해와 사련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사흘 동안 내내 심한 스트레스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아내 캐티가 상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루터가 묻습니다. “아니, 누가 죽었소?” 아내는 퉁명스럽게 외마디로 대답합니다. “하나님이요!” 루터는 화가 나서 말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불경스런 말이요? 하나님이 죽었다니 ... ?”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가 말합니다. “당신의 지금 모습을 보니까 꼭 하나님이 죽은 것 같구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낙심한 채 며칠을 꼬박 틀어박혀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루터는 통회 자복합니다. 그리고 용기를 얻어 종교개혁을 완수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나를 위해 죽었다가 부활 승리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하고 강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마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여러분! 정말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아무쪼록 오늘 부활절 아침에 그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시련도, 문제도 다 극복하고 당당히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빈 무덤은 그리스도인들도 장차 부활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물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성도의 부활에 대한 물증이요 샘플입니다. 고전15:20을 보십시오. “ ...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 열매라는 것은 샘플 혹은 모델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모델 하우스에 가 보면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아직 집이 지어지지 않았지만 지어질 집의 모습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 예수님의 부활을 보면 우리 성도들이 장차 예수님 재림 하실 때 부활할 모습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고, 그 육체는 흙으로 돌아갑니다.(전12:7 참조)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흙으로 돌아갔던 육체가 새 옷으로 갈아입듯이 부활의 몸으로 변화됩니다. 바로 그때 성도들의 무덤도 2천년 전 예수님의 무덤이 그랬듯이 다 열리고 빈 무덤이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부활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그 몸은 현재의 것과 전혀 달라질 겁니다. 질적으로 달라집니다. 눅24:36~43 보면 예수님의 부활체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제자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갑자기 한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은 유령인 줄 알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못 자국이 난 손을 보여주면서, 구운 생선 한 조각을 잡수어 보이심으로 유령이 아닌 부활체임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부활체가 얼마나 자유하고 신기한 몸인지 조금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소설 중에 <벽을 뚫고 다니는 사람>(Passe-murailles)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쟝 뤽 꼬르네트(Jean-Luc Cornette)와 스테판느 우와리(Stephane Oiry) 두 사람의 공저인데, 그 주인공이 투명인간처럼 벽을 뚫고 다닙니다. 물론 이것은 공상소설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정말 그런 식이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는 신기한 몸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부활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썩지 않고 하늘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잘 이해가 되시지 않겠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세요. 계란이 껍데기 속에 갇혀 있을 때 장차 닭이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잘 몰라도 홀연히 그 놀라운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부활 장에서 부활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전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우리는 부활체가 어떤 것일지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몸이 부활 후에는 영원하고 영광스런 것이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아름다운 것과 건강한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물론 그러시겠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인간은 누구나 쇠하고, 병들고, 추해지고, 장애가 생기고, 죽고, 썩고 ... 그렇게 됩니다. 이것이 죄인 된 모든 인간들의 비극적인 운명입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부활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활만이 인간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부활은 죽음과 질병도 고치는 ‘완전한 치유’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 자신의 부활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예수님과 늘 동행하면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 좋은 예수님, 우리 위해 십자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 가족과 이웃에게 꼭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