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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고난을 축복으로 (벧전 2: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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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고난이 참으로 많습니다. 어찌 보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고난 속에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욥기 5:7을 보면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받는 고난을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이유 없이 원인도 알 수 없는 억울하게 당하는 애매한 고난이며, 둘째로는 죄를 범했기에 매를 맞게 되는 고난이고, 셋째로는 선을 행함으로 받게 되는 고난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받는 고난 중에 부끄러운 고난도 있지만 아름다운 고난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서 매를 맞게 되었다면 그 고난은 참으로 부끄러운 고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운 고난이라 할지라도 아주 유익한 고난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해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되며, 좀처럼 끊을 수 없었던 죄를 한순간에 단호히 끊어버리고 새출발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편 119:67에서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고백하면서 71저에서도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난의 유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실 때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더 큰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허락하시는 고난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1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안겨 주십니다. 그런데 죄 가운데 살도록 내버려두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우리는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되고 죄 가운데 스스로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끔직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 가운데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주셔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회개하므로 죄를 완전히 끊어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며 결국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에는 부끄러운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고난도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본문 19절을 보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보면 애매한 고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하는 도무지 그 원인을 알 수 없이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음주 운전자의 접촉 사고로 인해 큰 상해를 입었을 때, 또는 옆집의 화재로 우리 집까지 불이 옮겨붙는 피해를 보게 되었을 때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누구나 낙심하기 쉽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원망 불평하게 되며, 보복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비관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살하고 싶을 만큼 마음이 잔인해지고 만사가 귀찮고 결국 우울증까지 와서 심한 고통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전혀 다릅니다. 애매히 고난을 당해도 낙심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므로 슬픔을 참는 것입니다.

여러분, 손가락에 가시가 찔려 몹시 쓰라리고 아플 때, 하루 종일 아픈 손가락만 들여다보고 아파하면 24시간 아픔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손가락이 아픈 사실도 잊어먹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이 왔을 때 그 문제에 집착하여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슬퍼하지 않습니다. 내게 그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누구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좋으신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허락하실 때에는 어떤 계획이 있으시고 뜻이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왜 제게 이런 고난을 허락하십니까?”라고 반문하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반드시 큰 은혜를 받게 되고 큰 믿음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도 낙심치 않고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요셉은 17세의 청소년 때에, 형들의 시기질투로 애굽 상인에게 팔려가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곳에서 성실하게 일하여 보디발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큰 시험이 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끈질긴 유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단호하게 뿌리치고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반드시 축복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으며, 슬퍼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성실하게 맡은 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요셉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감옥에서도 형통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전화위복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야고보서 5:13을 보면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고난이 있을 때 참고 기도하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1.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오면 이는 “깨어 기도하라”는 사인입니다. 그러므로 염려가 있을 때 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이 있을 때 참고 기도하는 사람은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2. 죄를 깨닫고 회개할 뿐만 아니라 은혜를 받고 거룩한 새 사람이 됩니다.

향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좋은 향수는 발칸산맥에서 자라나는 장미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향수 제조자는 반드시 한밤중에 그곳에 올라가 장미의 잎을 딴다고 합니다. 즉 밤 자정 무렵부터 시작하여 2시간 내에 이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장미를 따는 데는 과학적인 실험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장미는 한밤중에 가장 향기로운 향을 발산한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비치는 낮에는 향기의 40%가량 감소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의 신앙과 인격의 향기는 어느 때 가장 잘 나타납니까? 평안할 때는 잘 모릅니다. 모진 고난과 아픔과 절망의 밤에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의 향기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큰 일꾼이 됩니다.

미국 독립군의 총사령관이던 조지 워싱턴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병사들과 꼭 같은 병영생활을 하면서 그들을 잘 훈련시켜 마침내 정예부대가 되게 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이 승리했습니다. 그 후 워싱턴은 국민들에 열성적인 추대로 미국 최초의 대통령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워싱턴은 과거에 펜실베니아 주 벨리포지에서 그의 생애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후 이곳은 공원으로 지정되어 지금도 그 역사적인 현장이 잘 보전되어 있습니다. 이 공원 안에 워싱턴 기념교회가 있으며, 거기에 그의 기도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미국을 보호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믿습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국민들을 사랑하는 진정한 형제애를 갖게 하시옵소서. 지도자들이 솔선하여 정의로운 생활을 하게 하시고, 자비를 사랑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겸손히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뿐만 아니라 그는 대통령 시절 그의 비서였던 로버트 루이스의 증언에 의하면, 대통령의 일과는 새벽 4시에 서재에 들어가 성경이 펼쳐져 있는 작은 탁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으니 미국이 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저도 목회 40여 년 동안 깨달은 것은 내 자신이 목사다운 목사가 되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고, 성도들을 사랑하며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이 되면 저절로 목회가 잘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워싱턴과 같은 좋은 지도자가 많이 나오기를 기도합시다.

4. 전화위복의 기회가 됩니다.

한 어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은 이들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만선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려고 할 때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고 불행하게도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마저 잃고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배가 파선되어 삼부자는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뱃머리를 어디로 돌려야 할지 전혀 판단이 서지 않았을 때 갑자기 작은 불빛 하나가 보이더니 점점 커져서 불기둥처럼 솟아올랐습니다. 그들은 불기둥이 보이는 곳이 바로 육지라는 판단 아래 사력을 다해 노를 저어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그의 부인이 울먹이며 집이 몽땅 불타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이들 삼부자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집에 불이 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육지를 찾지 못해 영영 집에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고난은 때때로 우리에게 예상치 못했던 복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도 고난이 왔을 때 절망하지 말고 기도하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5. 믿음으로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1930년 초 미국은 심각한 대공항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클레어린스 목사가 공장이 밀집된 지역의 한 흑인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 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 극빈자들이었으며, 60% 이상이 실직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만은 기쁨과 희망으로 넘쳐났습니다. 도무지 그들의 표정에서 절망의 빛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클레어린스 목사는 설교를 중단하고 교인들에게 “여러분! 지금은 대공항입니다. 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실업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무엇이 그렇게 즐겁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한 교인이 일어나 밝은 표정으로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곁에 계신다는 사실이 최고의 희망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신앙은 고난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인생자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고난의 밤에도 희망의 아침을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당할 때 낙심하지 아니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축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을 통해 선을 행함으로 받게 되는 고난을 가장 아름다운 고난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21~25절을 보면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아무런 죄도 범치 않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때 열두 영이나 더 되는 천사를 불러 얼마든지 그들을 멸하실 수 있었으나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된 것은 과거에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흘린 순교의 피, 즉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복음을 전해주므로 해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입니다. 우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감수하고 기쁨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해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전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지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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