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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면 (눅 24: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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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누가복음 24:38-39)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위해 대신 죽어주심으로 인간들을 속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본래의 영광을 회복하시기 위해 살아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정복하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아침이 옴으로 두려움과 공포의 아침이 아닌, 평화의 아침이 왔습니다. 실패의 아침이 아니라 승리의 아침이 온 것입니다. 정의가 불의를 이기고 선이 악을 이겼습니다. 사랑이 미움을 이기고, 빛이 어두움을 이기며 진리가 거짓을 이긴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발라드리고자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은 뜻밖의 사태에 두려워하고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무덤을 막아 인봉하였던 돌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근심하는 여인들에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면서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천사의 이 말은 주님은 죽음 가운데 계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덤 가운데 계신 분이 아니라 살아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시 살아나신 주님은 주님의 부활을 확신 시켜 주시기 위해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바울은 다시 살아나신 주님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전 15:12)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3-8)

  우리의 믿음은 결코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 믿음이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의 자리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무덤에 묻히신 예수를 찾아서는 안 됩니다. 살아 계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생명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합니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면 어떤 사람이 됩니까?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눅 24:38)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의 믿음 없는 것을 보시고 꾸짖으셨습니다”(막 16:14) 그리고 의심 많은 도마에게는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부활의 주님을 제자들에게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말합니다. 믿음은 지식이 아닙니다. 믿음은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능력입니다. 믿음이 좋고 나쁨은 관계성의 척도에 있습니다. 믿음이 좋다, 나쁘다, 또는 옳다, 잘못되었다고 하기 전에 그 사람의 주님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관계의 대상이 죽어있는 분이라면 그 믿음도 죽은 분과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분과의 관계는 살아있는 믿음을 만드는 것입니다.   

  엠마오를 향하던 두 제자는 죽었다고 생각하는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었기에 예수님의 다시 살아나시리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 사실을 받아드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나타나셔서 함께 동행 하시면서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눅 24:25)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마음에 더디 믿는 사람은 미련하고 바보스러운 사람입니다.

  왜 미련한 믿음입니까? 살아 계신 주님과 관계하지 않고 죽었다고 생각하는 주님과 관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나타나셔서 살아나신 주님으로 관계하심으로 그들의 믿음을 살아있는 믿음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는 성도는 과거에 계셨던 주님이나 죽은 주님과 관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함으로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옛날에 계셨던 주님, 이미 죽으신 분으로서, 그의 정신이나 이념과 관계하는 믿음이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과 함께 하는 생명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함으로 참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강의 사람이 됩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가지고 삽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평강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는 평강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시기전의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회복하셨기에 이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강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이 평강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교회들에게 이 평강을 기원했습니다.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 1:7)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고 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3) 고 했고, 골로새 교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고 하셨습니다.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이 평강이 넘쳐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이 평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사람임과 함께 뜨거운 마음의 사람이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는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 24:45)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를 향하던 두 제자와 동행하시면서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 24:26) 고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눅 24:26)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예수님 자신에 대해 약속된 구약성서의 말씀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의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면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된 후에 두 제자는 큰 슬픔과 함께 자신들의 갈 곳을 찾아 엠마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마음은 절망과 불신앙으로 차가워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들에게 다시 사신 예수님은 함께 동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동행하시면서 대화로 성경의 말씀을 풀어 주시며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고 고백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이신 요한 웨슬레 목사님도 한때는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과 같았습니다. 그는 미국 조지아 주에 가서 선교했지만 선교에 실패로 인해 실망과 낙심하여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죄용서 받았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회의와 낙심 가운데 올더스 게이트 거리의 어느 작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루터의 로마서 서문 강해를 듣다가 마음의 뜨거움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후 웨슬레는 “예수께서 나의 죄를 지셨고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마음의 뜨거움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심으로 말씀을 깨닫는 사람일뿐 아니라 뜨거운 마음의 사람으로 사십시오. 차가운 마음은 살아 계신 주님을 믿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확신 없는 차가운 믿음에서 확신 있는 뜨거운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차디찬 이성으로만 믿는 믿음, 객관적 사실에 의지적으로 시인하고 자기의 노력을 행동화하려는 차가워진 마음에, 부활의 주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의 내적 증거를 가짐으로 감격과 감사로 충만해지는 뜨거운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형식과 체면의 차가움에서 뜨거운 열심의 생활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희생하며 최선을 다하는 즐거움의 뜨거움을 가지고 사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뜨거운 마음의 사람은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있는 사람이 됩니다.
  두 제자는 엠마오를 향하던 발걸음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제자들 가운데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성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4-49)

  예루살렘은 희망과 기쁨의 새 출발의 약속의 장소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희망과 새로운 역사를 향하여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로 하나님의 약속과 그리스도의 약속 안에 살게 하십니다.

  봄이 다가오면 강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 때, 나무 가지가 마구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무척 애처로워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식물학자들에 의하면 그 강한 바람은 나무에 곡 필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초봄의 강한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고 나무가 흔들림으로 새잎을 내는 데 필요한 양분이 잘 올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뿌리로부터의 영양공급이 겨우내 활동 안한 나무줄기를 통하여 새 싹 부분까지 원활히 잘 올라가려면 바람에 흔들리는 운동 작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의 정황은 강한 바람 앞에 흔들리는 애처로운 가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현실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보아야 할 현실입니다. 새로운 약속을 향하게 하시는 현실로 보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는데서 가혹한 바람과 같은 시련은 새 움을 트게 하는 새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어떤 어려움 중에도 우리로 새로운 약속 안에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 안에 살아가십시오.

  죽어 가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명을 알면서 평소와 같이 자주 기도를 하며 지냈습니다. 그런 그에게 무엇을 바라며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놀라운 대답을 했습니다. “무얼 바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무얼 구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 왜 바라는 것이 없으면서 기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 죽음을 앞에 둔 그 환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저......., 기도를 하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아들 영광을 회복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게시면서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살아 계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주님은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믿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로 평강과 말씀의 깨달음과 함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인생의 승리자가 되게 하십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아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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