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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새로운 자유 (요 8: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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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은 사실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고 신약 교회는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주일, 주님의 날로 부르면서 예배일로 삼았습니다.

부활주일을 맞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은 심오한 선언을 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8:36)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세 가지 차원의 새로운 자유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1. 부활의 주님은 과거의 고통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불행의 첫 번째 원인은 과거에 집착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상하게 할 만큼 과거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지금 주어진 현재를 붙잡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 관련해서 두 가지가 주로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그것은 바로 원한과 후회입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에 대한 원한입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 그리고 스스로 행한 어리석은 짓들로 인해서 우리는 후회를 합니다.

1.1 먼저 주님께서는 원한의 고통에서 여러분을 자유하게 하십니다.

오늘 이 예배실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은 예외없이 누군가에 의해서 상처를 받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삶이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비의도적으로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상처 받는 것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에 대해서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자유할 수도 있고 고통의 감옥 속에서 지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상처는 무엇입니까?

땅에 얼굴이 닿도록 넘어진 수치입니까? 아니면 죽도록 부끄러운 짓밟힘입니까? 사람과의 관계가 짓밟힐 수도 있고 신체적으로 짓밟힐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심리적으로, 때로는 성적으로도 짓밟힐 수 있습니다.

무수히 부모로부터 거부당한 기억이나 조롱받은 상처를 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실패한 결혼을 두고 곱씹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겐 무엇이 잊혀지지 않는 상처입니까? 이런 말을 듣다가 보면 또 그 사건이 생각이 나고 또 그 사람이 생각나는 그런 분은 없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원한의 고통에서 여러분을 자유케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에게 지금 주어진 삶을 복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옛날 일만을 생각하며 오늘을 탄식으로 보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그 옛일만을 되돌아보며 과거에 매여 살지 마십시오.

과거에 머물지 마십시오. 과거를 흘러가게 하십시오. 원한을 버리십시오. 하나님께서 계산해 주시도록 내어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기록을 갖고 계십니다. 갚아주는 일을 누가 잘 하겠습니까? 여러분일까요? 하나님일까요?

원수 갚는 것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여러분에게 상처 입힌 사람을 다루시도록 맡겨드리십시오. 여러분은 과거를 잊어버리십시오. 거기에 머물러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입니다.

“목사님은 모르시잖아요? 어떻게 내게 상처를 입혔는지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요. 그러기엔 상처가 너무 깊어요. 도무지 용서할 수도 없고 잊어버릴 수도 없어요.”

예, 맞습니다. 여러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부활의 주님이 필요합니다. 인간적으로 말해 상처받은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과거를 잊어버리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가슴에 부음 바 될 때에 우리는 과거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우리가 듣기 전에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상처가 회복되기 전에는 우리는 쉽게 과거를 떨쳐버릴 수는 없습니다. 계속해서 옛 생각이 나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하나님께 내어드리면 거기서부터 여러분을 구출하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오늘 여기에는 분명히 상한 마음으로 오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을 위로하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을 도와서 과거의 고통에서부터 벗어나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오늘도 고통 중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겪은 고통은 아무도 모른다고요?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이해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심장 박동까지도 보십니다. 여러분이 숨쉬는 것조차 아십니다. 여러분의 삶에 좋은 것, 나쁜 것, 추한 것 부끄러운 것을 모두 다 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1.2 우리 하나님은 후회의 고통에서도 여러분을 도와주시길 원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준 상처만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저지른 어리석은 짓까지도 여러분을 괴롭힙니다.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래서 후회를 합니다.

죄책감은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힘을 앗아갑니다. 자신을 처벌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만약 그 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을 연발하게 합니다.

“내가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나의 과거를 지울 수 있다면, 어리석은 결심을 그 때 하지 말았더라면 오늘이 달랐을 텐데.” 그러다보면 우리는 후회와 죄책감의 감옥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

후회로 삶을 채우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며 세월을 보내고 책임을 그 누군가에게 전가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과거를 숨기려고 하고 수치를 감추려고 하고 후회를 묻어두려고 합니다.

술을 마시거나 약물을 복용하거나 어쨌든 잊어버리려고 노력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일에 중독 되기도 합니다. 한가해지면 생각이 나는 것이 두려워서 일에 자신을 몰아넣습니다.

과거에 시달리다보면 현재를 살아갈 힘조차 상실합니다. 그리고는 자학합니다. “어느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어. 나는 실패자야. 앞날의 희망이 없어.”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여러분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은 여러분을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저녁에는 슬픔이 깃드는 우리의 삶이지만 아침에는 기쁨을 선물 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전문가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절이 말하는 메시지의 전부입니다. 오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 하나님은 여러분이 죄책감 의 길에서 벗어나길 바라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죄책감아래 사로잡아두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하기를, 우리가 기뻐하기를,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죄짐을 지고 사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기에 구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죽게 하심으로 여러분의 모든 어리석은 짓들, 상처받은 일들로부터 자유하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가 저지른 어리석은 짓들, 잘못한 일들, 이기적인 짓거리, 생각 없는 실수, 불친절한 행동들을 용서해 주시고자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그의 죽음을 받아주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무덤에서 사흘 만에 살리셨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

그렇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 주님을 믿기만 하면 주님께서 대신 값을 치루시고 자유를 주십니다. 과거의 모든 고통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비록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상과는 먼 거리에 있을지라도 용서해 주십니다.

분노와 후회에서 자유하기를 원하십니까? 더 이상 자신을 학대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과거를 채찍하지 마십시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기에 여러분을 십자가에 매달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을 대신해서 모든 죄값을 지불하셨기에 여러분이 대신 지불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충분히 비참 속에 지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이제는 과거로부터 분노와 후회로부터 쉼을 얻을 때가 왔습니다. 예수께서 여러분의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십니다. 이번 부활절은 과거를 주님께 내어드리는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새로운 자유를 주시는 전문가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자유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하면 참으로 너희가 자유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2. 과거의 고통에서 뿐 아니라 예수께서는 현재의 짓눌림에서부터 여러분을 자유하게 하십니다.

새로운 자유의 제2의 측면입니다. 삶이 뒤죽박죽처럼 느껴집니까? 균형을 잃은 것처럼 느껴집니까? 해야 할 모든 일을 다 잊어버리고 싶습니까? 한 주간이라도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습니까?

현대인의 삶은 점점 더 복잡하고 바쁘게 되어갑니다. 이전처럼 단순하고 한가하지 않습니다. 컴퓨터가 도움이 될까 했는데 더욱 바쁘게 합니다. 너무 많은 스트레스로 인해서 이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부러질 정도입니다. 삶은 더욱 더 복잡해지고 바빠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모두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살아갈 능력과 균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약속합니다. “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사40:28-29)

정말 그렇습니다. 온 세상을 지으신 우리 하나님은 피곤하거나 힘이 빠지는 일도 없으십니다. 동시에 그분은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주시고 약한 이들을 강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자기 힘만 가지고 세상을 살려고 덤비면 지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짓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갖고 하나님께 접속해서 전능자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살도록 하나님이 의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모든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부활절은 그것을 입증하신 절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주님의 부활을 송축합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사건은 예수께서 죽음에서 일으키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중심으로 모든 역사는 B.C.와 A.D.로 나누어집니다. 부활은 인류사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이 여러분에게 가져다주는 기쁜 소식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그 동일한 능력이 여러분의 문제에서 여러분을 구출하십니다. 그 능력이 여러분에게도 유효합니다.

예수님만 죽은 자리에서 살려낸 것이 아니라 죽어버린 우리의 삶도 회복시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있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신다면 주님은 죽은 결혼도 살려낼 수 있습니다. 끝장난 경력도 살려낼 수 있습니다. 끝나버린 관계도 새롭게 하십니다. 주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모든 능력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이 전능하신 능력을 소유하면 오늘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무슨 일이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왜 피곤해 합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생성하는 힘보다 더 강력한 힘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경제적인 형편입니까? 아니면 부부문제입니까? 아이들 문제입니까? 진로나 직장 때문입니까? 건강문제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짓누르고 있습니까?

자신이 떠안는 대신에 주님께 맡겨드리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8, 29)

성경에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42번이나 바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만세반석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영원한 반석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구원의 반석이라고도 합니다. 왜 하나님을 반석에 비교할까요?

반석은 굳건하기 때문입니다. 반석은 우리가 보기에는 불변해 보입니다. 강하고 튼튼하기 때문입니다. 압력을 견디기 때문입니다. 쉽게 부서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반석으로 삼으면 그러한 능력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공급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만세반석인 동시에 머릿돌이 되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실 머릿돌은 건물의 모든 하중을 버티는 중심이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불변하는 무엇이 아니면 언제 해체될지 모릅니다. 직장은 여러분의 인생의 중심이 되지 못합니다. 경력도 인생을 떠받치는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든든한 후원자도 여러분을 지탱해 줄 수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인생이 변하는 무엇위에 놓여 있다면 여러분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지탱해 내려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굳건한 만세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여러분의 인생이 세워진다면 그분을 여러분의 인생의 머릿돌로 삼는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나 견딜 수 있습니다. 건강의 위기도, 경제적인 위기도, 가정의 위기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삶에서 닥치는 어떤 지진도 버틸 수 있습니다.

3. 예수께서는 여러분의 내일의 염려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우리 주위에는 비관적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 믿음을 놓치고 삽니다. 학교 간 아이들의 안전에 대해서도 불안해합니다.

도덕적으로 붕괴되는 사회에 대해서도 비관적입니다. 주요 문제를 해결하는 정부의 능력에 대해서도 불신합니다. 개인 신상의 안전에 대해서도, 공권력의 행사에 대해서도 불신합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용기와 희망을 상실할까요?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왜 우린 그처럼 쉽게 희망을 상실할까요? 거기에는 두 가지 핵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3.1. 변화시켜야 할 상황에 봉착했는데 그것을 변하시킬 수 없을 때 우리는 낙망합니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 싶고 나 자신이 변화하고 싶고 환경이 바뀌었으면 하는데 어느 것 하나 해낼 수 없을 때 우리는 낙담합니다.

“도무지 우리 부부관계는 희망이 없습니다. 수없이 노력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더 이상 대화할 용기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희망은 바닥이 납니다.

“아이들 때문에 낙심이 됩니다. 더 이상 훈계가 통하지 않습니다. 이젠 절망감이 듭니다.” “늙어가는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죽음을 향해서 나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습니다.”

“삶을 바꾸고 싶은데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은데 방법이 없습니다. 달라지고 싶은데 발전하지 않습니다. 무슨 수를 써도 실제적인 변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여러분의 삶에서 희망이 바닥나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그냥 될 대로 되라고 모든 것을 체념하고 살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3.2 우리가 희망을 상실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여러분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을 알지 못할 때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목적을 살펴보지 않고 인생을 소모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가 사람들을 만드신 목적도 찾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세상을 위해서 존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그 목적을 찾아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기업입니다. 삶의 목적을 알지 못하면 삶은 방황할 수밖에 없고 목적을 상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되는지 늦게까지 버티고 앉아있어야 되는지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쨌든 늙고 병들고 죽을 것입니다. 물론 괜찮은 인생이 전개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차도 집도 사고 예쁜 아내를 만나 자식 낳고 살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인생길에 폭풍이 불어올 때 정서적인 위기를 만나고 영적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그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살다보면 누구나 편안하게만 살수는 없습니다. 순풍에 돛단 듯이 항해를 하지만 가다보면 폭풍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라고 자문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인 저는 여러분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문자 보내지 않아도 여러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은 여러분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요? 여러분이 얼마나 나쁜 인간인지를 생각할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얼마나 실망스런 인간인지를 생각할까요? 아닙니다. 수준미달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계실 리 만무하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사29:11)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선한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희망을 가져도 좋습니다. 희망은 삶의 필수요소입니다. 음식 없이는 40일을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나 물 없이 사흘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숨쉬지 않고도 8분은 견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희망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희망을 잃는 순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다만 존재할 뿐입니다.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험한 폭풍우를 만날 때 여러분은 누구에게로 향합니까? 여러분의 희망의 원천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반석은 누구입니까? 점점 빨리 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아무도 이 변화를 다 수용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 속에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의 섬”입니다. 흔들리는 배가 아니라 여러분이 서 있을 수 있는 섬이 필요한 것입니다. 삶에서 결코 변하지 않는 정서적인, 영적인 닻이 있어야 우리의 삶을 분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닻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분께 여러분의 삶을 위탁하신 적이 있습니까?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시125: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모든 것이 악화될 때 어디에 희망의 원천을 두고 사십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한 가지 불변하는 사실은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는 일을 결코 중단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는 여러분을 떠날 수 있습니다. 한몸처럼 살던 부부도 여러분을 떠날 수 있습니다. 붙잡아도 마지막 숨을 내몰아 쉴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사54:10)

여러분이 태어나기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을 손질하고 계셨습니다. 언제 여러분이 나오게 될지도 설계하시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될지도 하나님은 계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 사랑 돌려드리기 위해서 아직도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첫 숨을 쉬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보셨습니다. 어머니의 태에서 첫 움직임을 보일 그 때에 주님의 눈은 관찰하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움직임을 아십니다. 앉고 일어섬을 아십니다. 마음의 생각을 읽으십니다. 좋은 것, 나쁜 것을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그분이 오늘 이 복된 예배의 자리에 여러분을 오게 하셨습니다. 이 부활절이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의미 있는 성찬의 자리에 나아가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과거의 고통에서, 현재의 압력에서, 미래의 근심, 걱정, 불안, 염려, 두려움에서 자유케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일을 해도 여러분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비록 구겨져도 만 원짜리 지폐라도 그 가치를 지닙니다. 조금 찢겨져 나가도 만원으로 역할을 합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여러분의 가치는 상실되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더불어 새로운 자유를 누리는 부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정근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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