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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날마다 부활신앙으로 (막 1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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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최고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입니다. 다른 종교에는 부활절이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에만 부활절이 있습니다. 타 종교에서 기독교를 벤치마킹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본 딴다 하더라도 부활절은 본 딸 수 없습니다. 석가의 부활(?), 공자의 부활(?), 마호메트의 부활(?)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그런 뜻에서 보면 오히려 성탄절보다 부활절이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고 더 큰 자랑입니다.
성탄절 비슷한 것들은 있습니다. 석가 탄신일, 충무공 탄신일 . . .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죽었다가 약속하신 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역사의 최대의 사건이며, 부활절은 기독교에서 가장 큰 명절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문제는 죽음이며 인간의 가장 무서운 적은 죽음인데, 예수께서 부활하시므로 인간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전 인류의 역사를 둘로 나누는 분기점이 된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를 주전과 주후로 나눕니다. 즉 AD(Anno Domini)와 BC(Before Christ), 부활하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해서 주전과 주후로 나누어 계산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없다는 공산국가에서도, 불교, 유교, 모슬렘 국가에서도 이 연대를 쓰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토요일 안식일이 부활하신 날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교회가 세워져 오늘날 세계에 수 천 만 교회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러시아에서는 ‘주일’이란 말과 ‘부활’이란 말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암울한 이때 부활의 영광이 이 땅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도 다시 부활, 회복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치도 경제도 새롭게 부활되었으면 합니다.
인생이 새롭게 되었으면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법을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도를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헤어스타일을 뜯어고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옷차림을 바꾼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얼굴을 뜯어고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사건과 40일 간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에 대해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6시간 동안 고난을 당하시다가 오후 3시경 운명하시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3일째 되던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면서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 무덤의 돌을 굴려낼 때에 파수꾼들은 무서워 떨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파수꾼들이 지키고 있던 그 무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갔다가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천사를 만났습니다. 그 때 천사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고 전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빈 무덤을 확인했고, 부활의 소식을 처음 들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하고 소식을 전했지만,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모습을 보이셨지만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제자들이 파수꾼에게 돈을 주고 시체를 훔쳐갔다고 소문을 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 나타나셔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책망하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주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의 소식,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지상명령을 내리시고, 그 부활에 대해 믿는 사람에게는 능력과 표적이 나타날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기적이 나타납니다. 악한 마귀와 싸워서 승리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척만 하지 말고 올바로 믿으면 표적이 나타납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겉으로만 믿는 척 하는, 가짜로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7-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국의 작가 셰익스피어는 “의심은 우리의 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애써 간신히 얻은 것을 잃게 만든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심은 우리가 가진 것을 다 잃어버리게 합니다.
남편을 의심하면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을 믿지 못하면 절망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의심하면 사랑도 잃어버리고 재물도 잃어버리고 건강도 잃어버립니다.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의심 속에 빠져서 인생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믿음 속에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귀신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더럽고 추한 귀신을 믿음을 통해 쫓아내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을 괴롭히는 가난과 저주, 귀신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입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유명한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융(Carl Gustav Jung ; 1875-1961)은 “오늘날 현대의 그리스도인은 기적을 믿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적은 믿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기적을 믿으면 사업에도 기적이 나타나고, 건강에도 기적이 나타나고, 가정생활에도 기적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입니다.

1. 우리의 자랑은 빈무덤입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성지를 순례하던 어떤 기독교인이 한 독실한 이슬람교도와 그들의 신앙에 관해 담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참 대화를 하다가 이슬람교도는 기독교인에게 의기양양해서 말 했습니다. “당신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가 진정으로 살아있었던 실재의 인물이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소?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렇게 훌륭한 사역을 많이 행하셨다면 그의 시체가 무덤에 잘 보관되어있어야 할 것이 아니오. 우리 마호메트의 무덤을 보시오. 천 수 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황금에 돔에 보관되어있고 그의 축복받은 시체가 그 장엄한 무덤에 보관되어 그곳이 우리의 성서가 되어 있지 않소?”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기독교인은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예 우리는 예수님의 시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의 무덤은 예나 지금이나 텅 비어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죽으신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나오셔서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습니다. 우리는 죽은 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종교, 세상철학은 무덤을 자랑합니다. 이집트의 피라밋은 왕의 무덤입니다. 왕이 즉위하면 그때부터 피라밋을 쌓습니다. 그 왕이 죽으면 거기에 장사를 지냅니다. 온 국력을 다하여 왕의 무덤을 만드는 것이 피라밋 문화입니다.
중국 서안에 가면 진시황제의 거대한 무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무덤을 자랑합니다. 천주교도 무덤을 중시합니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은 교황들의 무덤입니다. 그리고 명동성당도 김대근 신부를 비롯한 신부들의 무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덤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무덤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자랑은 빈 무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빈 무덤으로 부활을 증명했습니다.

무덤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구속사에는 무덤이 없습니다. 아담의 무덤도 없고, 노아, 아브라함, 다윗의 무덤도 없습니다. 유대의 역사에서 가장 존경을 받았던 히스기야 왕의 무덤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나 바울이나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의 무덤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무덤의 중요성은 시체에 있습니다. 그 속에 시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시체가 있어야만 무덤이 성립됩니다. 그러나 시체가 없는 빈 무덤은 무덤으로서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그날 아침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증언은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하면서 빈 무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천사는 빈 무덤이 부활의 증명이라고 물증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는 부활을 부정하는 이설들이 있어왔습니다. 도적설, 즉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가고 빈 무덤을 만들어서 부활하셨다고 주장하는 설입니다. 또 하나는 기절설입니다. 예수님이 완전히 죽으신 것이 아니라 기절 중에 깨어나셔서 밤중에 나오셨다는 설입니다. 또 하나는 환상설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환상을 본 것이라는 설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살아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강령설이 있습니다. 무당이나 강술자들이 죽은 사람의 형상을 신으로 내려서 오게 하는 강령설에 의해서 예수를 본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이설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증명할 수 없는 일. 즉,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믿습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습니다. 재림을 믿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고 말씀하셨습니다.

2. 부활신앙을 가지라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의, 믿음의 기초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 또는 교회에 나오는 자들 중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믿지 못하고 우리들이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우리들의 눈으로 확인하여야 부활하신 사실을 믿을 것인가? 이러한 믿음은 사실은 신앙적 믿음이 아니고, 지식, 정보일 뿐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적으로 하신 일이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계란은 생명이 없는 무정란이 있고, 생명을 안고 있는 유정란이 있습니다. 겉모양을 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미닭이 20여일을 품고 있으면 생명 없는 계란 썩어 문드러질 것이고, 생명 있는 계란은 예쁜 병아리,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 있는 믿음과 생명 없는 믿음이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이 부활신앙은 믿음의 시작이요 교회의 시작입니다. 그리스도인임에도 무력하게 산다면 그것은 부활신앙이 없고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때 유행한 이야기 가운데 “과거가 있는 남자는 용서할 수 있지만, 미래가 없는 남자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가 있는 교인은 용서할 수 있지만 부활신앙이 없는 교인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번지점프를 아시지요.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땅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꽂지만 죽지 않는 것은 허리에 밧줄이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당할지라도 죽음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생명의 줄로 묶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보리 이삭이나 벼이삭이 처음으로 올라 올 때는 신기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첫 열매는 그 다음에 다른 곡식들도 연이어 이삭이 올라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그를 믿는 자들도 앞으로 예수님과 같이 부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믿는 자는 복됩니다. 그리고 부활의 주인공이 되어 주님나라에서 주님의 얼굴을 뵙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신앙이란 무엇입니까? 내 모든 삶에 날마다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고,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8:34-37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도살장 앞에 끌려간 양 같은 위기를 만났을지라도 부활하여 승리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며, 더 이상 패배도 죽음도 없이 사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3. 날마다 부활신앙으로 살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부활신앙으로 살수 있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은 주님을 영으로 생각했습니다.그리고 그를 의심하면서 두려워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신앙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믿음이 별로 없을 때 보면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가나안에 기근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큰 실수를 했는데 혹시라도 권세자들이 자기 부인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서 자기 부인을 누이동생이라 했습니다.

모세가 태어 날 때, 히브리 산파들은 남아를 낳게 되면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충만했기에 애굽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를 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가나안으로 향해서 갈 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10명의 정탐군들은 원망과 불평을 했지만 믿음 좋은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이 비록 크고 요새가 든든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하고 백성들에게 믿음을 권고 했습니다. 믿음 없는 자와 믿음 있는 자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 결과도 다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부활신앙을 갖지 못할 때에는 예수님이 결박당하여 대제사장과 총독에게로 다니면서 심문을 받자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목격하고 성령을 받았을 때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행4:19 “하나님 앞에서 너희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그러나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답변합니다.

부활신앙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환경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합니다. 죄를 지을까 두려워합니다. 부활신앙을 갖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신앙은 항상 변화를 추구합니다. 옛 생활과 성품에서 단 한발자국도 떠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옛사람을 단호히 ‘버리고’ 새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적 아비집을 떠났을 때 복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다 버렸습니다.
기성세대의 특징은 변화를 싫어합니다. 변화하는 데는 항상 희생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전 것을 거부해야 하는 아픔이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떨어지고 직장에서의 따돌림, 진급하는데 장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활신앙을 가지면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신앙의 능력으로 침체된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불행의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부정적인 회의적인 자리에서도 일어나십시오. 사업의 절망에서도 일어나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부활시키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죽음에서, 좌절에서, 낙심에서, 실패에서 . . .
흔히들 ‘사람은 변화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의 고유한 기질, 우울질, 담습질, 점액질, 다혈질. A형, B형, AB형, O형.등이 있어서 결코 바뀌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속에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면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면 변화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에스겔18:3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 지어다...”
로마서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환경을, 사람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바라보십시오. 우리에게도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날마다 부활 신앙을 기초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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